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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소입니다

우리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니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불의에 항의에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러한 4.19를 '데모'로 격하시켜 표현한 '기적의 역사'라는 교수-학습참고 자료를 전국 초중고 학교에 보냈습니다. 최근 교과서 수정 조치, 극우논객들의 현대사 특강,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의 뉴라이트 세력들의 역사관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을 외치며 집권했지만, '이념'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 합니다. 뉴라이트 세력과 이명박 정부에게 역사란 무엇일까요? 그들이 그토록 교과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학자 김기협은 이를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기초를 놓기 위한 작업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 모색이 세계 곳곳에 이루어지고 있지만 뉴라이트 세력들과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반하는 '후진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 어느 때보다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참여사회연구소가 발간하는 <시민과 세계> 1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대안교과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김기협 | 역사학자

이 책에 대한 포괄적인 비평이 <역사비평> 83호(2008 여름)에 실린 바 있다. 한국근현대사 연구자 세 사람, 주진오, 박찬승, 홍석률의 글을 모은 초점 기획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어떻게 볼 것인가"다. 기술적인 오류들을 지적한 외에 개항기를 검토한 주진오는 식민사관의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식민지기를 검토한 박찬승은 '근대화론'에 매몰된 점을, 그리고 해방 후 현대사를 검토한 홍석률은 지나친 편향성과 시대착오적 정통성론 등을 특히 문제삼았다.

교과서포럼은 이에 대해 <시대정신> 40호(2008 가을)에 "<역사비평>의 대안교과서 비평에 대한 반박"을 내놓았다. 제목에 "반박"이란 날선 말을 쓴 것부터 눈길을 끈다. <역사비평>의 비평들이 사실 그리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명색이 '교과서'를 지향하는 책이라면 그에 대한 비평 기준이 보통 책에 대해서보다 엄혹하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 비평을 악의로만 해석하고 극한적 반응을 보이는 교과서포럼의 전투적 자세가 이런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를(제기된 문제점 120여 건 중 교과서포럼이 인정하는 21건을) 제외한 99건은 비평자 자신의 사실 오인, 공연한 트집, 의도적 오독, 악의적 비방, 최신 연구를 알지 못하는 지체 상태,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역사관과 국가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역사학계의 여러 단체가 위촉한 세 연구자의 비평 수준이 이러함에 우리는 안도하다 못해 참담함을 느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우리를 조선사회정체론으로, 식민지미화론으로, 일본 우익으로, 호수샤판 교과서로 몰아세웠다. 연구자로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험구로 우리의 지적 능력과 도덕성에 흠집을 가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 이런 식의 무책임하거나 악의에 가득 찬 비평은 지난 60년의 지성사에서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322쪽)

<역사비평>의 이번 비평보다 더 무책임하거나 악의에 가득 찬 비평은 더러 본 것 같다. 그러나 교과서포럼의 '반박'처럼 이 악물고 눈 부릅뜬 글은 학술계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이처럼 특이한 태도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학술적 시비를 가리는 목적만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이 '대안교과서'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성격의 책인가 살펴보는 데서 이 책의 의미를 이해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이 책의 배경과 목적과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를 위해 우선 지금 진행 중인 역사 교과서 논쟁의 양상을 검토해 보겠다.

"'직권 수정'이란 교과서 검정제도에 없는 개념이다."

한국의 중등 역사 교과서는 2002년까지 국정이었다. 처음으로 변화를 가리킨 것이 1997년 12월 공포된 제7차 교육과정. 2003년부터 고등학교 교과에 필수과목인 국사와 별도의 선택과목으로 '한국근현대사'를 두며, 근현대사 교과서는 검정으로 할 방침을 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2년까지 6종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해 2003년 이래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2005년 결성된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이 6종의 교과서가 모두 '좌편향'이라고 비판하고 나서며 풍파가 시작되었다. 작년까지는 여기에 별 반향이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과서포럼의 주장에 대한 지지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상공회의소와 국방부, 통일부가 교과부에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출했다.

이명박 정부의 교과부 장관들은 이들의 의견을 접수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과서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김도연 전 장관은 논란이 시작되자 바로 '직권 수정' 가능성을 언급했고, 안병만 장관은 국편(국사편찬위원회)에 이 의견들의 검토를 의뢰했다. 국편의 검토가 진행되는 동안 정권의 여러 방면에서 근현대사 교과서의 수정 내지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교과부 국정감사에서 만사 제쳐놓고 이 일에 달라붙었고, 총리, 그리고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그런데 10월 중순 국편은 이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검토 보고서를 교과부로 보냈다. 제기된 문제들에 관한 바람직한 서술 방향을 제시했을 뿐, 현행 교과서들에 서둘러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있다고 분명히 판정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없는 길을 만들어서라도 개편을 강행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전문가위원회'란 것을 만들어 수정할 내용을 작성하게 한 다음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수정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직권 수정'이란 교과서 검정제도에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 온갖 압력을 동원해 실질적 직권 수정을 강행하려 하면서, 그 근거로 '전문가위원회'의 권위를 빌리려 한다. 그런데 직제에 없을 뿐 아니라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는 그 모임에 빌려줄 권위가 있을까? 엽기적인 '교과서 죽이기' 책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월 8일 20여 개 역사학 연구단체들이 공동으로 이 책동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뒤이어 전국역사교사모임을 중심으로 '역사교육자 선언'이 준비되고 있다. 책동이 계속될 경우 학생과 학부모들까지 나설 것이 예상된다. 연구와 교육의 당사자들이 반가워하지 않는 이 책동에 뉴라이트가 목을 매고 달려드는 까닭이 무엇일까?

"교과서포럼의 역사관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짜맞춰진 것"

나는 이 책동의 초점이 '신자유주의' 정치노선에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란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진영 일각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중심으로 자본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약화시키는 정책을 추구한 움직임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이 노선을 채택해 공산권 붕괴를 유도했고, 그 후에는 세계화의 방향 결정에 중요한 작용을 해왔다.

신자유주의는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치노선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 왔고, 지금 터져 있는 세계적 금융 공황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가정하는 고전적 자본주의 이론을 그대로 따라 무절제한 탐욕에 무제한한 '자유'를 준 결과라는 것이다. 강자를 옹호하는 시장 만능주의는 19세기 초반 선진국들을 풍미했으나, 19세기 후반부터 그 한계와 문제점이 밝혀져 왔다. 그 원리의 문제점이 밝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미국이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것은 강자의 입장에서 그 이점을 누리기 위한 정략적 동기였음을 폴 크루그먼 등이 지적해 왔다.

그런데 한국의 입장에 유리하지도 않고 철마저 지난 신자유주의를 이 나라 정책노선으로 끌어안자는 뉴라이트의 속셈은 무엇인가? 가진 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수구 집단'이라고도 지칭되는 기득권층의 결집을 정권의 근거로 삼자는 극우 정치노선을 뉴라이트가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빚어낸 것이다. 현 정권은 강자들을 풀어주고 밀어주어 경제활동을 잘하게 하면 그들이 파이를 키워 약자들의 몫도 생기게 된다고 '7-4-7' 공약을 내세웠다. 그렇게 잘 된다 하더라도 약자의 몫이 강자의 뜻에 좌우되도록 될 것인데, 그나마 그렇게 되기도 힘들겠다는 전망이 벌써 분명해지고 있다.

교과서포럼의 역사관은 역사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빚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짜맞춰진 것이다. 그러니 역사학을 전공으로 하고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참여자 중 이영훈 한 사람이 '역사학자'를 자칭하지만 그가 과연 역사학자 맞는지는 좀 애매한 문제였는데, 교과서포럼 활동을 통해 그 문제가 분명해졌다는 것이 '대안교과서' 소동의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교과서포럼 회원과 고문들 중에는 역사학자 이름이 여럿 올라 있지만 그들은 '대안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았다.)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는 극우 정당의 수련 교재"

널리 알려진 '대안교과서'의 특징은 일본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이승만-박정희의 독재를 찬양한다는 것이다. 식민통치 미화는 그 책의 준비 단계부터 교과서포럼이 일부러 드러내 세간의 비난과 함께 주목을 모았던 점이다. 실제 나온 책에서는 '미화' 수준을 누그러뜨려 공정한 서술처럼 보이게 하려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근대화의 효과를 강조하면서 이를 식민통치의 공로로 인식하는 기본 문제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에 무엇을 담았나 하는 점 못지 않게 무엇을 빠트렸나 하는 점도 중요하다. 도입부에서 저자들은 공부 목표로 (1) 자유민주주의, (2) 경제성장, (3) 국제 관계, (4) 통일 문제를 내세웠다. 빠진 것이 뭔가? 민족문화가 없다. 실제 책 전체를 통해 문화 부문은 마지 못해 부속적으로 다뤄져 있고, 그나마 외래 문화 도입 이야기일 뿐, 전통의 측면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교과서포럼이 민족주의와 등진 입장임은 그 공동대표 이영훈이 다른 논설에서 민족주의만이 아니라 근대 이전 '민족'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발언을 꾸준히 해 온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민족주의만을 등진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표현을 내놓지만, 사실은 민주주의를 경제 발전의 부산물로 볼 뿐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찬양하는 데서 이 관점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이 자본주의의 길을 걷게 한 이승만의 공로는 민족과 평화에 대한 그의 죄악을 덮고도 남는 것이며, 박정희의 경제 성장 업적은 민주주의의 희생과 비교도 되지 않는 큰 공로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민족, 민주, 평화, 자유, 평등 등 모든 인간적, 사회적 가치가 이 책에서는 경제적 가치에 종속되거나 배치된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는 자본주의 이론의 '가정'을 '진리'처럼 떠받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다른 측면들도 가진 존재임을 사람들은 생활의 경험을 통해 상식으로 안다. 이 상식을 무시하는 태도가 신자유주의 노선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치권 일각에 나타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일반 고등학생들의 교과서에 반영하려 하다니?

역사학이란 인간성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성이 어떤 범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과거의 사실에 비추어 더듬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하는 독단적 명제를 선험적으로 정해 놓고 과거의 사실을 끼워맞추려고 드는 것은 역사학의 기본 문법에 벗어나는 오류다. 게다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너도 나도 모두 이기적 존재"라는 관념을 주입하려 든다는 것은 교육의 기본 의미를 망가뜨리는 짓이다.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는 극우 정당의 수련 교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 교과서를 바라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출간으로 촉발된 우리 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강좌를 진행하였다. 구체적인 강의 내용을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1강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2강 해방 전후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3강 식민지경제는 대한국민을 근대화시켰는가?  허수열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4강  '한강의 기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5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나?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6강  새로운 60년, 대한민국의 좌표를 묻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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