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75] 이준석이 ’82년생 김지영’을 공격하는 이유는?

20대 남성, 소위 ‘이대남’ 현상이 정치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최근 GS25 홍보물을 둘러싼 소위 ‘남성혐오’ 논란은 분노한 청년세대 남성들의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대남’ 현상 자체가 실체가 없다거나 일부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에 불과하다는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과연 ‘이대남’ 현상의 실체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지금의 현상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에 대해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20대 남성 당사자, 여성주의 학자, 사회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총 6편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① 한국의 ‘이대남’과 미국의 ‘브로플레이크’…’백래시의 시간’이 왔다 / 손희정 경희대학교 교수

‘이대남’ 허상을 신화로 만든 언론…’反페미’와 취업난이 대체 무슨 상관? / 지우개 충북대학교 학생

이준석이 ’82년생 김지영’을 공격하는 이유는? / 권명아 동아대학교 교수

 

이준석이 ’82년생 김지영’을 공격하는 이유는?

‘이대남’ 현상은 실재하는가? ③

권명아 동아대학교 교수

 

보궐 선거 이후 뜨겁게 달아올랐던 이른바 ‘젠더 갈등’과 ‘이대남’ 논의는 여성 연예인에 대한 차별 선동 공격, 페미니스트 상징 색출 작업, 페미니스트 세뇌 음모론, 여성 할당제 폐지 선동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급격한 공격이 확대되며 미디어에서는 ‘젠더 갈등’을 토론 거리로 삼아 찬반양론을 묻기도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와 윤희숙 의원 등은 여성 할당제 폐지, 청년 할당제 폐지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때맞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여성과 관련한 정책을 역차별이라면서 폐지 운동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때맞춤’과 연동은 세월호 유족 공격을 비롯하여 박근혜 정부 시절 폭발했던 증오 선동에서 자주 나타나던 익숙한 패턴이다.

 

오래된 우파의 차별 신념과 변질한 ‘진보’의 기만이 젠더 갈등 프레임을 통해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고 페미니즘에 책임을 물으려는 차별 선동의 불길을 촉발하고 있다. 붉은색을 증오하던 우파가 붉은 옷을 입고 ‘혁신’을 외쳤던 것처럼 청년 고용 문제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우파 정치 집단이 지금 청년의 편에 서 있다며 페미니즘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젠더 갈등 프레임은 청년 고용 문제가 ‘고용 구조 개혁’이 아니라 ‘청년 실업 문제’로 전도되면서 구성되었다. 고용 구조의 주체는 기업이며 책임은 기업과 정부에게 있다. 그러나 취업/실업 문제로 전도되자 주체는 청년이요 책임도 청년이 지게 된다. 청년은 고용의 주체가 될 수 없으나 취업/실업의 주체로 호명되자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여기서 공정, 경쟁심, 생존주의 등 20대를 특징짓는 온갖 담론이 파생되었다. ‘촛불 정부’는 처음에는 기업의 고용 구조 개혁과 청년 고용 할당제를 민간 부문에 확대한다(청년 의무 고용제)는 공약을 내걸었다. 우파 정당은 시종일관 청년 고용 할당제를 반대했고 심지어 “사회주의 개혁경제 냄새가 난다”며 빨갱이 사냥의 익숙한 어휘를 동원했다.

 

‘촛불 정부’로 시작한 현 정부의 청년 정책은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불안정 고용을 철폐하는 고용 구조 개혁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청년 실업 대책이 된 정부 정책은 각종 선심성 지원금 지급 방식으로 변했다. 고용 구조 개혁은 재벌 개혁, 경제 민주화와 같은 정치 경제 전반에 대한 구조 개혁 문제이지만 청년 실업 문제로 전도되자 ‘문제 집단’을 지원하는 정책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는 여성 할당제에 대한 정부 정책 기조에서도 반복된다. 이는 사회 구조 개혁을 이뤄낼 수 있도록 정책을 집행하지 않고 근시안적인 지원 정책으로 후퇴한 현 정부의 이른바 ‘민주화’ 정책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파 정치 세력은 고용 구조 개혁의 핵심인 “청년 고용 할당제의 민간 부문 확대”를 포퓰리즘 정책이라면서 줄곧 반대해왔다. 청년고용 할당제의 민간 부문 확대는 재벌 개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하나로 고용 책임을 의무화하고, 청년인턴제 폐지, 비정규직 철폐, 고용 안정성 확보 등 경제 구조 전반의 개혁을 함축하는 제도이다.

 

이준석 후보는 이제 여성 할당제 뿐 아니라 청년 할당제 등 모든 할당제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2015년 박근혜 정부 고용 차관이 청년 고용 할당제를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며 반대했던 논지를 반복하는 것이다. 2015년에는 세대 갈등 프레임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젠더 갈등 프레임으로 갈아입었다. 또 할당제라는 정책 기조가 폐지되면 가장 타격을 입는 건 바로 20대 청년 당사자들이다. 이제 공공 부문 취업조차 가로막히게 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대학 미진학 청년들에게 세계여행 경비 1000만 원을 지원하자는 이재명 경지 지사의 정책 제안과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윤희숙 의원의 주고받음은 그런 점에서 청년 고용 문제를 대하는 두 정당의 기조를 잘 보여준다. 두 정당 모두 ’20대 남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새로운’ 제스처를 취하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청년 실업 문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젠더 갈등 프레임으로 페미니즘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막상 사라지고 있는 게 무엇일까? 두 정당은 모두 ‘청년 실업 문제’와 ‘젠더 갈등’ 프레임으로 기업의 고용 책임, 고용 구조 개혁을 담론장에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적어도 청년 고용 문제 해결에 대해서 두 정당은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의 궁극적 책임이 기업과 정부에 있다는 것을 회피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 젠더 갈등 프레임은 이런 적대적 공존 관계의 산물이다.

 

벌써 대선 가도에 들어선 더민주 정치인들이 “나는 반기업 주의자가 아니다”라거나 “대기업은 자율성을 갖고 규제 혁신을 하면 된다.”라고 자율성을 티 나게 강조하는 건 징후적이다. 고용 문제 개혁은 아주 깔끔하게 사라지고 청년 실업은 젠더 갈등 프레임과 더불어 영원한 미해결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젠더 갈등 프레임은 고용 구조 개혁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은폐하고 청년을 뜬금없이 책임 주체로 지목하고, 페미니즘에 책임을 전가하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되었다.

 

현재 이십 대들은 한국의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취업 전쟁에 내몰렸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은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고용 형태를 비정규직, 인턴 등으로 ‘유연화’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시대, 특히 2014년 이후 기업이 신규 채용 비율을 대폭 줄이면서 현재와 같은 취업 대란 시대가 열렸다. 그 결과 2015년 이후 청년들은 공공부문 취업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렸고 기업의 일자리도 불안정 고용 상태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고용 유연화의 결과 여성 취업자는 대부분 결혼과 임신·출산으로 해고가 되었고, 남성 신규 취업자들의 삶은 반복되는 해고와 산재 위험이 일상이 되었다. 동시에 이 세대는 대졸자의 신규 취업률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특이한 양태를 보여서 고학력 니트족이 대량으로 양산되어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2015년 이래 지속하였다.

 

전례 없는 청년 실업은 20대 모두가 처한 공통의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만든 주체도 해결할 주체도 기업, 정부, 정당이다. 또한 경력 단절과 해고 위협과 산재의 일상화는 고용 유연화라는 이 세대의 공통 문제가 젠더화된 방식으로 발현된 것이다. 고용 유연화의 젠더화이다. 그러하니 경력 단절 대책이 여성 할당제라고 폐지하면, 20대 남성들의 노동 조건 역시 마찬가지로 더 악화하고 그런 정책 기조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페미니즘과 여성을 공격하는 쾌락 대신 사실상 잃는 것은 안정적이고 질 좋은 일자리와 이것을 가능하게 할 정책과 여론이다.

 

이준석 후보가 <82년생 김지영>을 공격하는 건 기업 구조 개혁을 사회주의 정책으로 공격하면서 젠더화된 고용 유연화를 가속화하고 젠더 갈등 프레임으로 이를 은폐하는 전형적 전략의 산물이다. 이른바 ‘이십 대 남성’을 고용 유연화를 가속화 하는 정치 전략에 이용하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최악의 청년 실업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무책임의 극한을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나서서 ‘젠더 갈등’ 프레임을 선동하고 미디어와 빅 스피커들이 이를 확대하면서 결국 사라지는 건 경제 구조의 민주적 개혁, 기업 구조 개편을 위한 정책과 책임, 경력 단절과 해고와 산재의 일상화를 벗어나 일하고 살 수 있는 기본권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이 일들을 추진하고 만들어갈 실제적 권력을 지닌 정부, 기업, 정치인, 미디어, 지식인들에게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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