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8-10-20   3604

[칼럼] ‘법치’를 입에 담으려면

‘법치’를 입에 담으려면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 63주년 경축식에서 주목되는 말을 했다. “저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라도 법을 어기면 반드시 제재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는 법망을 피해가고 있는 ‘성역’들이 있다. 수사 과정에서 삼성의 비자금을 받아먹은 자들의 명단은 당연히 파악되어 있다. 시간을 끌다가 ‘시효’가 지나면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이 부분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정치권도 눈총 받기는 마찬가지다.


쌀 직불제 보조금을 비경작자들이 떼어먹은 명단도 공개를 꺼리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공정하지 못한 법 적용을 하는 법원과 검찰이 불과 얼마 안 되는 돈과 관련된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유죄판결을 가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저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라도 법을 어기면….” 이 말이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에 따라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국민의 위임을 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일종의 ‘머슴’이다. 국민을 하늘과 같이 모셔야만 한다.


그러나 헌법에서 최고의 권력자로 규정되어 있는 국민은 그 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없다. 반드시 공직선거에 의해 간접적으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를 악용하여 국민의 머슴들이 법을 위반하면서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헌법상의 ‘간접민주주의’ 제도와 헌법 제1조가 규정한 ‘직접민주주의’ 제도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인지라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존중할 의지가 부족할 때, 헌법과 법률도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헌법을 무수히 위반하면서 무리수를 두어왔다. 법을 무시하고 임기 중인 KBS 사장을 파면함으로써 헌법에 정해진 언론자유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광복절 행사를 ‘건국 60주년 행사’로 치른 것 역시 헌법 위반으로 제소되었다. 이 행사엔 무려 279억원이란 막대한 혈세가 투입됐다. 이것은 결코 ‘경제살리기’ 공약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또한 종교에 대한 중립성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헌법에 규정된 교육의 기회균등 원칙도 이른바 ‘고소영’식 정책 때문에 행방불명되어가고 있다. 헌법에는 남북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을 파기한 바 없다”라고 하면서 역주행을 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헌법 위반에 대한 보호막이 없을 때, 국민은 저항권을 갖는다. 이것이 헌법학과 정치학의 통설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불법이고 그 통치를 받는 국민은 합법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국가권력은 일종의 폭력이므로 폭력 대 폭력이 대립할 때 닥치게 될 불행한 사태를 막을 방안은 없는가. 그것이 고민이다.

<주종환 | 동국대 명예교수 / 참여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 이 칼럼은 경향신문 10월 27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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