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46]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넘어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넘어서

인종차별 항의시위의 원인과 전망

 

백종완 뉴욕시립대 겸임교수

 

미국 전역에서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과 사법체계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의해 체포 과정에서 사망하면서 촉발되었다. 위조된 20달러 지폐가 사용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데릭 쇼빈은 비무장이었던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면서 수갑을 차고 도로에 누워있던 그의 목을 9분 가까이 무릎으로 눌러서 사망에 이르게 했고 다른 세 명의 경찰관은 쇼빈의 살인을 방조했다.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 담긴 동영상이 소셜 미디어에 공개되었고, 5월 26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잔인한 공권력 사용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후 항의시위는 멤피스, 로스엔젤레스, 애틀란타, 뉴욕, 시카고 등 다른 대도시들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6월 6일 현재 미국 50개 주, 650곳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대도시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시골지역에서도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번 항의 시위는 일일 시위 참석자 수로 따지면 미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시위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에서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의 잔인한 공권력 사용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전에도 많은 흑인들이 체포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사망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2015년 이후 지금까지 5400명이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는데 인구비율을 고려했을 때 흑인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비율은 백인에 비해 2.5배, 비무장 상태에서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비율은 4배 이상 높았다.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항의하는 시위 또한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4년 뉴욕시 경찰에 의해 에릭 가너가 사망했을 때와 미주리주 퍼거슨시 경찰에 의해 마이클 브라운이 사망했을 때 항의시위가 일어났었고, 2015년 볼티모어 경찰에 의해 프레디 그레이가 사망했을 때도 항의시위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시위들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지 못했다.

 

하지만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가져온 사회적 반향과 항의시위의 규모와 범위는 이전 시위들과 다르다. 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전국적인 항의 시위로 나타나고 있을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이 용인되어 왔던 제도적 배경과 미국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인종 차별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공권력의 차별은 뿌리가 깊다. 이 짧은 글에서 이 문제를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민권운동 이후 오늘날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과 차별을 만들어낸 중요한 사건들을 짚어보자.

 

1968년 마틴 루터 킹의 암살 이후 흑인 운동은 사회경제적 차별과 흑인을 범죄시하는 경향에 저항하면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폭력적 형태로 나타났다. 언론과 주정부 경찰은 이러한 폭력적 형태의 저항을 폭동, 반란이라 부르면서 법과 질서를 해치는 범죄로 정의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연방정부는 1968년 “범죄 단속 및 길거리 치안 종합법 (Omnibus Crime Control and Safe Street Act)” 제정한다. 이 법은 경찰에게 베트남 전쟁의 잉여 무기를 제공하고 (9/11 이후에는 장갑차 등 군대 수준의 무기를 제공), 흑인 사회에 대한 치안 유지 활동 (policing)과 감시를 강화하며, 경찰관들이 폭동 진압 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길거리 치안 종합법은 경찰의 무력을 현저하게 강화했을뿐만 아니라 흑인 사회를 법과 질서를 해치는 집단으로 대상화 함으로서 흑인에 대한 경찰의 불심검문 등 차별적 공권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법원의 판결도 경찰이 흑인을 대상으로 차별적이고 과도한 경찰력을 사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법원은 1968년 테리-오하이오 (Terry v. Ohio) 판결에서 경찰이 명확한 체포 사유가 없더라도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를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면 길거리에서 용의자를 불심검문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깨진 유리창” 이론과 더불어 경찰이 흑인 등 소수 인종을 대상으로 과도한 경찰력을 사용하는 데 일조하였다.

 

대법원은 또한 1982년 할로우-핏제럴드(Harlow v. Fitzgerald) 판결에서 공무원들은 “상식적으로 알만한 명확히 수립된 법 또는 헌법적 권리를 위반하지 않는 한” 공무 중 행위로 기소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명확히 수립된 법”과 “헌법적 권리”를 위반할 경우 기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무원의 과도한 공무 집행을 제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9년 피어슨-캘러한(Pearson v. Callahan) 판결에서 “헌법적 권리 위반”에 대한 고려 없이 “명확히 수립된 법”에 따라 면책특권을 부여하도록 판시하였다. 따라서 판례가 없으면 명확히 수립된 법이 없는 것이며 법적 책임도 없다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대법원의 판결들은 흑인에 대한 경찰의 불심검문을 정당화하고, 경찰이 과도하게 공권력을 사용하더라도 기소를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실제로 2009년 피어슨-캘러한 판결 이후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미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컸다. 그의 죽음을 담은 동영상은 경찰에게 흑인은 보호해야 할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치안 유지의 대상에 지나지 않음을, 그리고 비무장에 저항하지 않더라도 경찰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동안 미국 경찰은 정당한 법집행이라는 점을 내세워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시켜 왔다. 그리고 “경찰은 정의롭고 흑인은 잠재적 범죄자다”라는 프레임이 언론, 드라마, 범죄 소설 등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미국인들은 흑인들의 희생보다 경찰의 법집행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흑인 사회에 더는 퇴로가 없음을 보여줬고, 미국인들이 흑인 사회가 느끼는 공포를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이번 시위를 폭발적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항의시위를 확대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맥락은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다. 미국 전체적으로 인구 십만 명당 투옥자 수는 733명이지만, 흑인의 경우 2306명에 달한다. 이 수치는 백인에 비해 5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흑인은 경제적으로도 차별받는다. 2017년 인구조사 자료에 의하면 백인의 9.6%가 가난한 반면 흑인은 22.9%가 가난하다. 흑인은 의료서비스에서도 차별받는다. 질병통제센터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 환자 중 흑인의 비율이 타 인종에 비해 월등히 높다. 시카고의 경우 흑인이 인구의 30%를 차지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70%가 흑인이다. 루이지에나에서는 흑인 인구 비율이 32%이지만 사망자의 70%가 흑인이다. 상당수의 흑인이 의료보험이 없고, 원격근로가 어려운 직업에 종사하며, 가난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랍지 않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항의시위는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대한 저항일뿐만 아니라 구조적 차별에 대한 저항이다.

 

이번 시위는 미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우선 경찰 권력을 제한하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법개정 움직임이다. 시위대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경찰관들의 처벌뿐만 아니라 경찰 권력 전반의 개혁과 구조적 차별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도 시위대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뉴욕 시장은 경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했고, 로스엔젤레스 시장은 경찰 예산을 줄여서 의료와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경찰을 해산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민주당은 목조르기 금지, 경찰관의 면책특권 제한, 사전고지 없는 가택수색의 금지, 폭력적인 사적 제재(lynching)을 연방 범죄로 하는 포괄적 경찰 개혁 법안을 제시했다. 공화당이 상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에 반대하기 때문에 연내에 민주당의 개혁 법안이 실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정치권의 개혁 법안은 앞으로 경찰 권력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미국 정치에서 사회운동의 재등장 가능성이다. 1960-70년대의 민권운동과 반전운동 이후 미국의 시민사회운동은 의회 로비를 중심으로 하는 이익집단 중심으로 재편되어져 왔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노조의 쇠퇴와 불평등의 증가는 다양한 계급과 인종의 연대를 통한 대중 중심의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제한해왔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이러한 경향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폭넓은 젊은 세대의 참여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 시민의 무고한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 죽음이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에 의한 것이라면 더 슬프다. 그동안 흑인들은 같은 시민 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 복지, 의료, 교육 등에서 보호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underserving population) 취급을 받아왔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묻는다. 미국은 뿌리 깊은 구조적 인종차별을 끝낼 수 있는가?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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