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423] 오늘도 저녁에 ‘차가운 소주’를 붓는 당신: 노동시간 단축, 노동시간특례부터 폐기해야

오늘도 저녁에 ‘차가운 소주’를 붓는 당신

노동 시간 단축, 노동 시간 특례부터 폐기해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1984년 발간된 박노해 시인의 시 ‘노동의 새벽’의 첫째 연이다. 33년이 지난 지금 우리 노동의 현실은 달라졌는가? 한국은 엄연히 주당 40시간 노동이 법제화 되어 있지만. OECD 최장의 노동 시간 국가이고 오히려 노동 시간의 양극화가 강화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시인의 말처럼 ‘이러다가 끝내 못가고’ 과로사로 사망해서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만 해마다 310명이 넘는 것이 2017년 오늘의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더욱이 분통이 터지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불과 4개월여 전인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동 시간 단축과 휴식 있는 삶을 외쳤지만 막상 국회에서 노동 시간 단축 법안 논의는 7월과 8월 동안 공방만 거듭했다. 9월 21일-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재개되지만, 비쟁점 법안만 다루겠다는 입장이 강하고 노동 시간 단축 법안은 심의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이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이다. 대표적으로 사망에까지 이르는 뇌심혈관계 질환을 발생시키고. 사고율도 높아지며, 우울증을 유발시켜서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 보고는 넘쳐난다. 이에 현행의 산재보상 인정기준에서 뇌심혈관계 질환과 정신질환에서 장시간 노동은 주요 인정기준 지표 중의 하나이다. 매년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한 산재신청 건수는 2300여 명을 넘어서 지난 10년간 산재신청 노동자만 2만4950명에 달한다. 이중 인정받은 노동자는 5636명으로 약 20%에 불과하다. 노동 시간 산정 문제를 둘러싸고 경비, 택시 등 많은 노동자들이 실질적인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불승인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승인 남발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뇌심질환 산재인정이 매년 560여 명이고, 이중 사망 노동자가 매년 310명을 넘고 있다. 매년 추락으로 인한 사망이 350~380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수치이다.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과로자살까지 합하면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작년, 올해에 들어 일본은 과로사 문제가 주요 사회 이슈였다. ‘덴츠’라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광고 분야 대기업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과로자살을 한 것이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보수정권인 아베조차 과로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기업 내 2개 이상의 지점에서 과로사망이 발생하면 해당 기업에 대해서 전국 지점에 근로감독을 시행하고, 과로사가 발생한 사업장의 명단을 공표한다. 사업장의 노동 시간 기록은 이미 법제화 되어있고, 이를 공표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덴츠는 과로자살로 인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2014년에는 과로사 유족들의 지난한 투쟁으로 과로사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의해 전국 지방 노동관서에서는 과로사, 과로자살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고, 업종별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정부 예산으로 1만 개 사업장 2만 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진행되어 최초로 과로사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일본보다 월등히 많은 노동 시간과 과로사망,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저임금 및 고용구조와 연계되어 있는 노동 시간 단축은 주당 노동 시간에 대한 노동부 행정해석, 포괄임금제, 재량근로제등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 하는 여러 법 제도가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중에서 민주노총이 우선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두 가지 과제가 노동 시간 특례 59조 폐기와 법정공휴일 유급 휴일화다. 근로기준법 59조 노동 시간 특례는 1961년 제정되었다. 제정 당시에는 ‘공익 또는 국방상 특히 특별한 경우’에 한정해서 ‘사용자가 보건사회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서 노동 시간과 휴게 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업종도 특정하고, 노동 시간을 변경하더라도 ‘상한 시간’을 두어 시행하는 그야말로 ‘특례’였다.

 

그러나, 1996년, 1997년 무차별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서 모든 요건이 사라졌고, 2017년 현재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만 있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1996년 규제완화를 하면서 달았던 ‘노동부 장관 신고’도 바로 이듬해인 1997년에 없어져서 노동 시간 특례가 어느 정도 실시되고 있는지 그 누구도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961년 제정 당시 적용 대상이었던 업종은 특별한 요건이 사라진 뒤에도 단 한 번도 업종 축소 논의가 없어 그대로 유지되었고, 오히려 1999년에 사회복지사업이 시행령으로 도입되었다. 

 

현재 노동 시간 특례가 적용되는 업종은 26개 업종에 달한다. 철도, 지하철, 버스, 택시. 비행기 등 운송업과 운송 서비스업, 도소매업, 금융보험, 영상 방송 제작, 우편업, 병원, 광고, 숙박, 설비 청소, 사회복지 서비스 등 수많은 업종이 대상이 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상 업체는 전체 사업체의 60.2%에 달하고 종사자도 전체의 42.8%에 달한다.(노동부 조사에서도 45%의 사업체가 해당되고, 38%의 노동자가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제한 노동이 강요되는 노동 시간 특례는 결국 노동자와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다. 노동 시간 특례가 적용되는 우편업의 경우 올해에만 사망한 15명의 집배 노동자중 12명이 과로사, 자살 노동자이다. tvN <혼술남녀> 이한빛 PD의 자살을 계기로 조사한 결과 방송 제작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1일 19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4시간 이상 연속 노동도 비일비재해서 제보센터에 올라온 이들의 하소연은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만이라도 금지해달라는 정도였다. 그나마 낫다고 하는 영화제작 현장의 경우에도 1일 평균 노동 시간은 13.18시간이었다. 

 

장시간 노동은 시민 안전과도 직결되고 있다. 최근 5년간 고속도로의 졸음 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2241건에 달하고 치사율은 18.5%로 가장 높다. 택시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전 산업에 걸쳐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택시의 경우 노동 시간 특례가 적용되면서 1인 1차제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서도 1인 1차제가 교통사고율이 68.9%에 달해서 격일제의 33.8%, 1일 2교대제의 49.3%에 비해 월등히 높은 사고율을 보이고 있다. 운송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항공지상 조업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 특례 적용으로 3일을 꼬박 일하고 4일째 되는 날 퇴근하는 것이 일반적 근무 일과다. 노동자들의 건강도 위험하고, 이런 노동조건에서 진행되는 항공정비도 위험하다. 병원을 포함한 보건업에도 노동 시간 특례가 적용되는데, 보건의료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과 인력 부족으로 인한 병원 노동자의 경험하고 있는 의료사고 경험률은 33.6%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곧 다가올 10월 연휴를 앞두고 우리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 질 수밖에 없다. 장기간의 연휴를 제대로 쉬는 노동자는 30%에 불과하다. 공휴일은 공무원과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것일 뿐 유급휴일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는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연휴에 이용하는 버스, 택시,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더불어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받는 현실이다. 추석에 물량이 몰리는 집배 노동자의 장시간 중노동, 연휴 기간에 보게 되는 영화, 방송 제작 현장의 장시간 노동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노동 시간 단축은 저녁 있는 삶, 일과가정이 양립하는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또한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수년 동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장시간 중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급증이다. 적어도 무제한 노동이 아무런 제약 없이 질주하는 근거인 근로기준법 59조 노동 시간 특례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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