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214] ‘혁신’ 외치던 원희룡·남경필, 지금 어디 있나요?

 

[시민정치시평 214] 

 

‘혁신’ 외치던 원희룡·남경필, 지금 어디 있나요?

: 민주주의 지키는 합리적인 보수 정치인을 바란다

 

정상호 서원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교수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주에서 예비 교사들을 가르치고 있는 지방대학의 선생입니다. 아무런 친분도 없는 두 분 의원님께 이렇게 불쑥 글을 드리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상황 인식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위기의식을 차기 대권 주자로 회자되었던 두 분과 함께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박근혜 후보가 여성으로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 다음 달이면 벌써 1주년이 됩니다. 되돌아보면 그 1년은 여당 지지자들의 환호와 야당 지지자들의 탄식이 뜨겁게 교차됐던 분열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신임 대통령이 여성 특유의 베풂과 돌봄으로써 증오와 적대의 정치를 마감하고 약속하셨던 대로 복지 사회와 평화의 한반도로 나아가는 새 시대의 선구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입법, 사법, 행정의 전 영역에서 유신 체제로의 퇴행적 복귀가 엄습하면서 많은 국민들의 기대가 여지없이 깨지고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다음의 근거들을 살펴봐 주십시오.

 

박근혜 정부 1년 동안 가장 빈번하게 언론에 오르내린 정치적 쟁점과 사회적 이슈가 무엇이었습니까? 윤창중 대변인 사건은 개인의 해프닝으로 친다 해도 NLL 파문과 녹취록 실종, 국정원 대선 개입, 일부 군 기관의 정치 개입 논란 등 대한민국의 시계는 대선이 있던 2012년 12월에 머무른 채 단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임기 첫해는 국정 철학과 핵심 정책을 설정하는 그야말로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중대 시기입니다. 그런 이유로 역대 정권들은 대통령 취임사나 첫해의 8.15 경축사를 통해 대통령의 의제(presidential agenda)와 국정 지표를 밝혀 왔던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의 민주적 시장경제론이나 생산적 복지도, 노무현 정부의 국가균형 발전도,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도 모두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역사적 사례들입니다.

 

구체제(old regime)로의 복귀는 인사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누가 당·정·청을 장악하고 있습니까? 당에서는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의원의 당권 경쟁, 나아가 당권과 대권을 둘러싼 역할 분담론이 벌써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역주행은 더욱 놀랍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놓고 ‘기춘대원군’이니 ‘유신대군’이니 하는 조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초연금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진영 복지부 장관의 사퇴 이후 행정부에 남은 것은 치열한 토론과 수평적 소통이 아니라 순종과 눈치뿐입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개혁적 보수’를 자처하였던 두 분은 지금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역동적인 한국 정치사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정권은 전임자의 묵인으로부터 승계되는 가보(家寶)가 아니라 민심을 얻기 위한 치열한 쟁취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40대 기수론’의 주역 중 일인이었던 DJ가 당시 신민당의 주류였던 유진산 총재만 바라보았다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으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 대세론을 격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당권을 갖고 있던 주류의 묵계가 아니라 당 밖의 국민적 지지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최근의 사례는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어쩌면 그녀의 대통령 당선은 2012년 12월 19일이 아니라 세종시 수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던 2010년 6월 29일 결정되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날 박근혜 전 대표는 5년 2개월 만에 본회의 발언에 나서 이명박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수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지난 10여 년 동안 위헌 소송은 물론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종결짓고 충청 민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진정한 보수는 확고한 법치주의자들로서 뜬구름 잡는 이상적 담론도, 급진적 변혁도 모두 거부하는 생래적으로 신중한 사람들입니다. 양식과 합리성을 갖춘 보수주의자라면 내란음모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도 나기 전에 덜컥 여론을 빌미로 특정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하는 어리석은 짓은 애초 삼갈 것이고, ‘창조경제’와 같은 실체가 모호한 관념론과 수사에 매달리는 일은 피할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 철학을 집대성한 버크는 종횡을 잡을 수 없는 ‘무교도’보다는 차라리 예측 가능한 ‘이교도’가 낫다고 한 것입니다.

 

세계도 경제도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만 과거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퇴행하고 있고 나라는 반민주와 반인권의 2등 국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당·정·청을 향해 소신과 신념을 갖고 당당히 비판하는 여당 정치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정부나 집권 여당에조차 불행한 일입니다.

 

서울시장도 좋고 대통령도 좋습니다. 그것은 유망한 정치인이 가질 수 있는 마땅한 희망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 개혁의 실천은커녕 목소리조차 내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수구의 대상이 되어 개혁의 급류에 휩쓸려 갈 것입니다. 이제 한국 현대사도 해방 70년, 민주화 30여 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이제 민주주의와 인권을 준수하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 대통령 한 분 정도는 나올 때가 된 것 아닙니까? 이 나라를 위해 두 분, 아니 보수의 혁신을 주창하였던 모든 이들의 분발과 건승을 기대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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