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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소입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출간으로 촉발된 우리 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좌표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3강에 대한 강의노트로 자원활동가 박소현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4강은 6월 4일 '한강의 기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라는 주제로 강원대 이병천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제3강 식민지 경제는 대한민국을 근대화시켰는가?

허수열|충남대 경제학과

 1년 전에도 강의를 했습니다. 그 때 한 시민께서 ‘다 아는 얘기를 하십니까?’라고 하시더군요.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이른바 '실증 자료'를 가지고 반격을 해오면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좀더 객관적이고 좀더 실증적인 자료로 일제시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대안교과서를 3번 정도 정독해서 보았습니다. 과거에 비해 오히려 식민지근대화론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후 교과서 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이 점점 더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 지금 시간에는 대안교과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본질을 더 파헤치는 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1.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요 주장을 살펴봅시다.

(1) 일제의 조선지배는 부당한 것이었다.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은 일제가 조선인의 의지에 반하여 주권을 침탈한 데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부당성에 대한 비판과 식민지 시기 경제 발전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혼동해서는 안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모든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책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마저 없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겠죠. 그러나 서론과 결론 부분에 한단락 정도 잠깐 언급할 뿐, 식민지가 근대화에 도움을 줬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자신들 책의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2) 조선 왕조는 체력의 고갈로 스스로 몰락하였다.
 "1905년 조선왕조의 멸망은 모든 체력이 소진된 나머지 스스로 해체된 것이라고 할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조선후기 사회가 정체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시사월간지 <정론>에 2005년에 기고한 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반도가 러시아에 의해 점거되지 않고 일본에 병합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오히려 근대화가 촉진되어, 잃은 것에 못지 않게 얻은 것이 많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런 일이며,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은 한승조 교수보다는 세련되어 있으나 결국은 한승조의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3) 식민지기에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조선인들의 삶의 질도 향상되었다.
 이게 사실 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이고 그들이 정말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과연 근대화가 되었고 과연 삶의 질이 향상되었는가? 만약, 일제시대 조선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아 피폐해졌다고 가정한다면 다음 주장이 성립할 수 없고 앞의 두 가지 주장도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주장의 시야는 식민지만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식민지를 끼고 그 전후 시기를 보려는 시각인 거지요. 

(4) 해방 후 한국 사회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하 민중들의 삶이 향상되었을까요? 악화되었을까요? 아니면 변화없음일까요?. 이 세 가지로 나눠봤을 때  저는 '변화없음'에 한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물론 영정조시기에 상당히 많은 발전적 변화를 이루고 근대적 사상도 많이 나타났지만 19세기의 조선 경제는 슬럼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 시기에 정체되었다고 해서 발전 능력이 있다, 없다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19세기의 경제 악화는 분명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생활수준의 악화가 계속되었다고 한다면 19세기의 인구증가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죠. 또 일제때 인구증가가 있었다 해서 일제시대 삶의 질이 향상되었을까. 이건 또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2. 식민지 근대화론의 실증적 문제

(1) 국내총생산(GDP) 통계의 허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책인 [한국경제성장사]는 1910년에서 1940년의 기간의 통계자료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를 다 다루는 것 같은데, 사실 일제시대 일부만 다루고 있는 겁니다. 빠진 부분은 41년에서 45년의 4~5년에 불과한 것 같지만, 사실 그 시기는 일본제국주의가 몰락하는 시기입니다. 몰락의 시기를 빼고 발전하는 시기만 딱 떼어놓고 보니 발전한 것 같다고 평가하는 것은 환상이지요. 게다가 1차적 사료로 사용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의 통계는 초기(1910년대)일수록 과소평가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 한 나라의 통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토지면적과 인구입니다. 이 둘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 그 위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이 제대로 따져졌을 리가 없지요.
 1910년대와 41~45년 사이 두 구간의 통계가 다 부실한 것인데,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제 패망기 41~45년 사이의 통계는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1910년대의 통계는 사용한 것입니다.
  다시, 과연 1910년대에 생산이 급증했을까를 살펴봅시다. 1910년대는 압도적으로 농업중심 경제인데 우량품종의 보급을 제외하면 특별한 농업증산정책이 부재하는 상황이었고 비료, 농업용수 등의 투입량도 특별한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910년대의 농업생산(국내총생산)의 증대에는 통계적 허상이 크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식민지 초기에는 저평가하고 식민지 후기에는 고평가하는 구조에서 일제 초기 조선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고 나타나는데, 1910년대 초반의 생산은 사실 이상으로 과소평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추계된 GDP, 1인당 GDP, 1인당 소비 등의 성장률에 대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추계는 과장된 것임이 명백합니다.


3. 근대적 경제성장 (modern Economic Growth)

(1) 근대적 경제성장의 개념
  근대화라는 것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정치·사회·문화적인 변화에 경제가 포함돼야 하고, 또 경제 성장이 없으면 그 사회가 근대화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근대적 성장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근대화’를 정의하지 않는 이상, 그들도 통용되는 ‘근대화’의 정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3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쿠즈네츠 곡선 등으로 유명한 사이먼 쿠즈네츠의 정의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쿠즈네츠의 근대적 경제성장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입니다. (1)인구의 지속적 성장  (2)일인당 생산의 지속적 성장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단, 적어도 30~40년간의 성장이 있어야 하며 이 기간에는 전쟁이나 정치적 변혁기간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인구 성장을 봅시다. 전세계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20세기 상황에서 조선의 인구도 증가했지만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첫 번째 조건은 충족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조건을 봅시다. 1인당 GDP 혹은 GNP로 살펴야 하는데, 인구증가 속도보다도 GDP 성장 속도가 더 빨라야만이 두번째 조건을 충족합니다. 이런 성장이 전근대에선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런 성장이 근대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사십년 이상 장기 지속되기 힘들기에 근대적 성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인구변화
  인구는 일제시대때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이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근거로써 영남대 차명수 교수의 연구를 들 수 있습니다. 차명수 교수는 족보의 생몰연도를 토대로 인구를 추계했습니다. 그 연구에서의 인구증가의 터닝포인트는 1898년입니다. 즉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지 않았더라도 조선에서는 인구가 증가했을 것이다라는 결론이 가능합니다.

(4) 1인당 GDP(1인당 GDP성장률= GDP성장률 - 인구증가율) 
  물질적 삶의 변화를 측정하는 지표로는 1인당 GDP 성장률 외에도 1인당 민간소비 증가율, 1인당 곡물 소비량, 1인당 칼로리 소비량 등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또한 분배구조가 극단적으로 나쁘다면 평균적으로 1인당 GDP가 증가하더라도 일반 대중들의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의 1인당 GDP 그래프(미조구치와 메디슨)를 본다면 1910년부터 시작해서 30년대까지는 1인당 GDP가 증가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의 증가는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메디슨 자료에서 보면 1945년의 GDP가 1910년보다 더 낮은 수준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지만 42년부터 45년까지는 어느 누구도 GDP를 추계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일제 최종기의 1인당 GDP라는 것은 일제 초기의 GDP를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지요.

 
 다음, 1913년부터 2000년까지의 한국의 1인당 GDP 그래프를 보시지요. 적어도 사이먼 쿠즈네츠의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본다면, 한국에서의 근대적 경제성장은 60년대 후반입니다. 물론 경제적인 변화만으로 그 시절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제3공화국 시절은 인권과 민주화에 있어서 여러가지 부정적 문제가 분명 존재합니다 또 소유구조 불평등과 소득 분배의 문제가 있지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의 근대적 경제성장은 일제시대에서는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민족별 소유구조 

  보통 수탈론에서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조선인의 토지를 수탈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말에어폐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선시대의 공유지를 조선총독부가 가져간 것은 수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일본이들이 조선인으로부터 토지를 매매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빼앗았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제시대 수탈이라는 것이 미미한 것이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얼마 안되는 토지를 소유한 조선인들이 도저히 살지 못해, 죽지못해, 마지못해 헐값에 재력 있는 일본인에게 땅을 파는 것. 왜 조선인들이 자신의 땅을 팔 수 밖에 없었는가. 그 식민지적 구조를 봐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보지않고 무조건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토지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지주제가 확대되어가는 과정도 보겠습니다. 1920년 이후부터 자소작농(일부 자기 땅 보유. 일부 소작) 수가 급감하는 반면 소작농 수는 급증합니다. 이는 농민들이 경제적인 궁핍에 몰리는 것인데, 이 상황인데 농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죠.  1인당 미곡소비량을 보더라도 일제시대 조선인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곡, 맥류, 잡곡류, 두류 소비량을 봤을 때 전체적인 소비량은 약간 증가했지만, 인구증가를 반영할때 1인당 소비량은 감소하는 추세를 뚜렷하게 보입니다.


6. 인적자본형성의 식민지적 특징

  ‘일제시대의 근대교육이 한국의 발전에 자양분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통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표면적인 접근일 뿐입니다.  또한 조선인중 44년에 대학졸업생은 7374명인데, 비중은 전체 조선인구의 0.03%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문학교는 0.1%, 중등학교 0.9%여서 다 합치면 중학교 이상 졸업자가 전체인구의 1%밖에 안되는 겁니다. 따라서 근대교육을 받은 것이 그렇게 큰 비중을 가지지 못하는 겁니다. 물론 일제시대 교육받은 사람이 해방 후 각 분야에서 활약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제시대의 교육이 사회를 이끌었다고 할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지지 않다는 겁니다. 전체 조선인 중 1%밖에 안되는데 과대 평가를 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거지요.


7. 식민지적 유산의 기여 정도

  마지막으로 일제가 건설한 철도 등의 기간시설이 이후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이야기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간단히 철도 건설을 예로 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당시 철도부설권은 이권(利權)이었습니다. 일본이 철도를 건설하지 않았다면 조선에 철도가 없었다는 것은 넌센스죠. 실제 조선인중에 철도 건설을 추진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이 특혜를 가져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일본이 안했으면 미국이 했을 것이고, 일본 미국 아니라도 국제자본이 서로 차관을 줘가면서 조선에 철도를 건설했을 것입니다. 즉 일제때 남은 철도와 공장 등의 물적 자산이 일부 도움을 준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 비중이 실제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일부러 과대 평가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지요.

성장은 아름다운가요? 비록 식민지시대의 경제성장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일제 식민지시대 경제성장은 없었으며, 식민지경제가 대한민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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