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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는 국민주권이 광장의 시민에게 있음을 알리는 거대한 울림이었습니다. 이러한 울림을 이어받아 참여사회연구소는 11월 6일부터 27일까지 총 4회에 걸쳐 '헌법, 광장에 서다'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그동안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헌법을 시민의 눈으로 읽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2강은 11월 13일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라는 주제로 연세대 김종철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헌법, 광장에 서다



제1강 헌법이 정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이국운|한동대 법학부 교수

이국운 교수는 이렇게 운을 띄었다. "마음이 뿌듯합니다. 헌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시민들과 함께 헌법을 이야기하는 자리는 처음입니다. 먼저 시민들이 광장에서 헌법을 이야기하고 노래하였기에 오늘의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강자들도 지난 여름 광장 함께 불렀던 '대한민국 헌법1조'를 떠올리는 듯 감격스러운 얼굴로 화답했다.

헌법은 광장에 모인 '대한국민'의 감격이 담긴 문서

이국운 교수는 준비된 원고를 이야기하기 전에 두 가지 점을 강조하였다. 첫째, 헌법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감격을 담고 있는 문서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제 35년과 미군정 3년을 거치며 이제 스스로 우리들의 헌법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감격 없이 읽어내는 것, 문서화된 헌법 그 자체를 물신화하는 것은 헌법 본질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헌법 전문을 읽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바로 두 번째로 강조된 점은 헌법의 주어가 '대한민국'이 아니고 '대한국민'이라는 것이다. 헌법은 주어가 있는 문서이고, 그 주어는 대한국민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조문 앞에 다음과 같은 부분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한국민 가라사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국민 가라사대, 대한민국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강의에서 사용된 원고의 제목은 "미완의 프로젝트: '48년 체제'와 대한민국"이었다. 강사는 이 '미완의 프로젝트'라는 표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첫째로 48년 체제와 대한민국이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잘못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잘못된 프로젝트'라 주장하지 않는 것은 단지 헌정 60년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자유 시민의 감격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둘째로 이는 시행만 되면 되는 '완결된 프로젝트'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1. 헌법정치 - 이중의 프로젝트

이 교수는 이를 설명하고자 이중의 프로젝트라는 명제와, 1948년, 1950년, 1952년의 한국 정치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는 주장의 핵심적인 논거는 1948년 7월 17일의 제헌헌법 그 자체가, 특히 정당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헌헌법 자체가 미완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사용되는 명제가 바로 '헌법정치란 이중의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헌법정치는 본질적으로 이중의 프로젝트인데, 여기서 1단계의 프로젝트는 자유시민들과 헌법을 연결하는 것이고, 2단계의 프로젝트는 헌법과 국가를 연결하는 것이다.
1948년 7월 17일의 대한민국 헌법공포를 결정적인 분수령으로 한반도 정치사에서 헌법정치라는 이중의 프로젝트가 추진되어왔다. 그것은 '우리들 대한국민'이라고 자신들을 스스로 명명한 저 자유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헌법에 연결하게 하고(1단계), 다시 그 헌법을 기초로 국가를 운영하는(2단계) 프로젝트였다. 이 가운데 후자의 프로젝트는 분단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차근차근 진척되어 왔다. 그러나 대한국민과 헌법을 연결시키는 1단계 프로젝트는 여전히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2. 헌정권력의 탄생과 왜곡

1948년 7월 17일 헌법 공포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 해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어 198명의 제헌국회 의원들이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오로지 제헌국회의원들만이 대한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민주적 정당성'을 독점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일정한 제약이 주어져 있었다. 5월 10일의 총선거는 미군정이 그해 3월 17일 군정법령 제17호로 공포한 국회의원법에 기초하여 치러졌고, 이 선거법은 2월 26일에 이루어진 UN 소총회의 결의, 즉 'UN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총선거 시행'라는 결의를 이행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UN감시가 불가능했던 지역의 100석을 남겨둔 채, 나중에 선거가 치러졌던 북제주군의 2개 지역구를 포함하여 200석의 제헌국회의원만을 선출했다. 이는 5월 10일의 총선거에서 대한국민은 그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다른 대한국민이 존재하며, 그들을 대표할 100석의 제헌국회의원들이 선출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한 채로 헌정권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헌국회의원들의 헌법제정 작업은 어떤 형태로든 대한국민의 사후 추인을 전제한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1950년 5월 30일의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제헌국회의 헌법제정기에 대한 총결산인 동시에 그 과정을 주도한 제헌국회의원들에 대한 신임투표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매우 평화롭게 치러진 5월 30일 총선거결과는 한민당계의 패배와 무소속의 약진을 요약될 수 있다. 제헌국회의원들 가운데는 오로지 31명만이 재선되었고, 중도파 인사들이 다수 당선되었다. 제헌헌법은 받아들이되 그 아래서 권력을 운용하는 인물과 세력은 바꾸겠다는 것이 5월 30일의 총선거에 나타난 대한국민의 정치적 의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치적 의사는 다음과 같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인 때문에 제대로 관철되지 못했다. 첫째는 1950년 6월 19 이래 시작된 제2대 국회가 채 원구성을 끝내기도 전에 전쟁이 발발한 것이었다. 이로써 100석의 대표를 추가하여 헌법제정기에 대한 대한국민의 사후추인을 조기에 완료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 대신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의 제정과 함께 추진된 전시 긴급정부체제가 상시화되었다. 둘째는 중도파 국회의원들을 포함하여 많은 정치지도자가 피살되거나 납북되어 무소속 우위의 정치구도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셋째는 제헌국회에서 4년 임기로 선출된 이승만 대통령의 존재였다.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제헌국회의원들이 대부분 낙선했지만, 제헌헌법이 대통령제의 권력구조를 채택한 덕분에 이승만 대통령은 건재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으로 국회소집이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 비상입법권한(제헌헌법 제57조 등)의 행사를 통해 전시 긴급정부의 강력한 권력을 장악했다. 그 연장선에서 그가 제시한 북진통일론은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 48년 체제와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현저하게 축소시켰다.


3. '48년 헌법'의 재발견

이국운 교수는 헌법정치라는 이중의 프로젝트가 여전히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근거로서,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 헌법에서 뚜렷하게 견지되어 온 네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1) 민주공화국(또는 주권의 민주화)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의 헌법전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정을 첫 머리에 두고 있다. 이 규정이야말로 한반도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의미를 가지는 선언이다. 헌법은 일본제국주의와 미군정으로부터 주권을 찾아온다는 독립중심, 민족중심의 관점으로서의 주권회복을 넘어 그 주권의 민주화를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국은 결코 '국왕이 없는 국가'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대한국민이 끊임없는 참여를 통해 복수의 대표기관을 구성하고, 그 복수의 대표기관이 대한국민의 신임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서로 견제하고, 나아가 그 상호견제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대한국민 또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미묘한 정치적 균형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는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대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왕이 아니다. 왕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포기한다. 나는 그저 평범한 시민이다."라고 감격스럽게 외치며 주권을 서로 나누어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2)신성한 몸/경건한 세속국가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의 헌법전은 대한국민의 몸에 특별한 경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한국민 개개인의 '몸' 및 그 사회적 확장체(주거, 통신, 재산, 프라이버시 등)에 대하여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을 가장 엄격하게 규율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제헌헌법 제9조, 제10조, 제11조 등).  
여기에 표현되어 있는 사상의 핵심은 대한민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대한국민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국민 개개의 몸은 대한민국이 건드릴 수 없는 또 하나의 국가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한국민이 제정한 헌법에 의해 구성된 국가이며, 따라서 대한국민 없이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우리 헌법의 위대한 점은 한걸음 더 들어가서 그들이 만드는 국가가 서로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 손을 대려면, 입법부가 관련 법을 만들어야 하고, 사법부가 인정 해야 하고, 행정부 그 중에서 검사만이 손을 댈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3) 공영(共榮)의 논리 -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제헌헌법 이래의 경제조항을 경제학적 관점에서만, 또는 이념적으로만 읽는 것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금 당시의 경제조문들을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것은 역사를 모르고, 또는 아예 모르기로 한다는 것이다. 제헌헌법이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교정하는 집산주의적 경제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조건이 게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35년의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3년간의 미군정을 거치면서 확보된 대한민국은 물적 기초(지하자원, 에너지, 과학기술, 도량형, 사회간접자본 등)은 특정한 계급, 특정한 집단, 특정한 개인에 의해 사유화되기 어렵다는 상황판단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헌법은 사유화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물적기초를 대한국민의 기본적 수요충족과 공동번영을 위한 공동의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의 이러한 논리는 최근 전경련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의 창의와 자율을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원칙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헌법적 시민들의 희생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의 헌법전은 1919년 3월 1일의 독립 만세운동을 기점 삼아 反제국주의와 反군국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보해왔다. 9차에 걸친 헌법개정 작업에서 그 흐름은 헌정사의 해석과 맞물려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정신을 헌법전문에 명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헌법은 그 규범적 기준에 맞추어 대한민국을 운영할 것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요구의 주체이자 헌법을 만든 주체가 과연 누구였으며 또한 누구여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프로젝트를 완결시키기 위해서 분연히 나서서 민주주의의 성숙과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낼 사람들이다. 제헌헌법 이래 헌법은 헌법정치의 과정에서 이와 같은 헌법적 시민들, 곧 대한국민이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을 예정하고 있다. 헌법적 시민들의 희생없이는 대한민국이라는 프로젝트는 계속될 수 없다.

200811_1강 강의자료_이국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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