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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교육
  • 2009.08.10
  • 6166
  • 첨부 1
이 글은 '위기의 시대에 읽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수강자인 조홍진 씨가 작성하여 주신 글입니다.



  이번에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번역한 홍기빈 씨는 "폴라니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텍스트 해설을 주로 하며 강의를 진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지난 두 번의 강의는 3장부터 10장 정도까지 책의 내용을 충실하게 요약하고, 단순한 요약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한 상세한 사례들과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아, 왜 3장부터냐고요? 책 맨 마지막 차례로 삽입되어 있는 '역자 후기'를 미리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책은 폴라니가 1940년대 당시 전후의 지식인들을겨냥하고 쓴 책이었기에 1장과 2장은 이전의 시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의 정치사를 어느 정도 알지 못하는 한, 즉 평균의 한국인에게 1장과 2장은 책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레 떨어뜨리게 만든다는 것이죠. 그래서 홍기빈 씨는 3장부터 읽을 것을 권했고, 강의 역시 3장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강은 주로 3~5장을 바탕으로 하여 이뤄졌습니다. 사실 책 내용을 설명하기에 앞서 오늘날에도 손꼽히는 경제사상가인 케인즈, 하이에크, 맑스와 폴라니의 차이를 짚고 들어갔습니다. 홍기빈 씨는 앞의 3명과 폴라니의 근본적 차이가 시장 경제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하더군요. 폴라니가 보기에 시장 경제는 존재할 수도, 존재한 적도 없는데 반해, 시장 경제에 대해 비판을 가한 맑스나 케인즈는 이미 그 틀frame 안에 갇힌 탓에 진정한 의미의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사실 이전까지는 폴라니가 맑스주의의 하나의 변형된 형태, 정도로만 들어왔는데, 신선한 해석이었습니다. 이후 두 번 강의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이 분석은 타당한 것 같습니다. 단순히 맑스주의의 변형이라고 보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 날 강의의 핵심은 인류 역사 내에서 시장이 차지했던 위치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는 인간상을 내세우며 점차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한 시장 경제가 얼마나 허구적인 가를 입증하는 데 기반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제적 인간의 특징인 이기심, 교환에 대한 욕구 등이 사실은 허구라는 것이죠. 폴라니에 따르면 지난 수천년의 역사 동안 시장은 존재했으되 그 역할이 미미했고, 경제는 사회에 묻어들어간embedded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경제의 상당 부분은 상호성과 재분배라는 사회적 원리에 따라 작동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산업혁명과 그 뒤를 이어 등장한 기계제의 문제가 주제가 되어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상 간략하게 이루어졌지만, 핵심이었던 기계제가 등장함으로 인해 생산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바뀌게 되고, 그 결과 사람과 자연이 기계 생산의 투입물이 되어버려 인간(성)의 파괴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은 깔끔한 정리였습니다.

  7월 16일에 이뤄진 2강에서는 이 강의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같은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오늘의 첫 주제가 자기조정시장과 허구적 상품이였기 때문인데요. 허구적 상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중후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산과 서비스의 가장 기본을 이룰 뿐만 아니라 가격의 변화가 있을 시 모든 상품에 영향을 미치는 토지, 노동, 자본이 바로 그 허구적 상품들이죠. 이로부터 자기조정시장이라는 환상이 도출되었습니다. 이 체제의 전제는 시장에 아무런 개입이 이뤄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애초에 상품화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품화된 자연, 인간, 그리고 화폐였습니다. 이 같은 자기조정시장을 창출하려는 운동이라는 '작용'은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라는 '반작용'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른바 '이중적 운동'의 탄생이었지요. 이는 결국 경제가 사회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전환"의 탄생까지 이끌었습니다. 이중적 운동의 자기살해였죠.

  자기조정시장이라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득세하기까지는 스피넘랜드 법이라는 원조자가 있었습니다. 사실 16세기의 종획운동 이래 영국에서는 정주법, 직인법, 구빈법이라는 세 종류의 노동법이 보조를 맞춰가며 노동 문제가 사회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만인에게 노동을 강제함으로써 유랑 빈민 집단의 등장을 방지했는데 18세기 말 들어 도시가 성장하고 무역이 확대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고용 불안정성도 증대되고, 유랑 빈민 집단이 급증하게 된 것이죠. 이들의 도시 유입을 우려한 농촌 지주 계급이 이들을 농촌에 묶어두기 위해 교구 내 생계의 항상적 유지를 약속으로 내걸고 스피넘랜드 법을 시행하고 이것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사회적 파국을 불러왔습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해주기로 한 탓에 점차 기존의 비수혜층들이 자발적 노동을 포기하고 수혜를 받는 길을 택하게 된 것이죠. 이는 그/녀들의 인간성을 황폐하게 만드는 한편, 노동 생산성도 하락시켜 자본가들이 스피넘랜드 법의 철폐를 요청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빈민 증대의 원인이라 여겨져 스피넘랜드 법을 개선하는 개혁 구빈법이 제정되는 한편,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이론에 근거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논의의 시발점을 제공한 것은 타운센드였습니다. 타운센드는 배고픔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수를 조절하고 이에 따라 적정 임금이 결정된다며 이 자연적 법칙에 따르기 위해서는 빈민을 유기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맬서스와 리카도로 이어지는 정치경제학과 그 바탕 사상인 경제적 자유주의였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기조정시장에 의해 경제가 무한 증식할 것이라는 것이었죠.

  3강에서는 폴라니에게 중요한 개념이라 일컬어지는 '사회'를 중심으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개인'을 중심에 둔 자유주의나 '계급'을 기본단위로 여기는 맑스주의와 폴라니가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폴라니가 보기에 개인과 계급은 분명히 존재하나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사회는 개인이나 계급처럼 경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중적 운동 역시 계급 투쟁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자기조정시장에 대응하는 것이지요.

  경제적 자유주의의 지지대는 토지 노동 화폐의 상품화였습니다. 각각은 1846년의 곡물법 철폐, 1834년의 개혁 구빈법, 1844년의 필 은행법을 통해 뒷받침되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다른 제도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삼위일체'를 이루어 유지되었습니다. 이 셋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기업이 파산에 이르던가, 노동자가 기아에 직면하게 되던가, 국제수지 적자에 빠지게 되었죠. 결국, 자기조정시장이라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당한 국가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폴라니가 중시하였던 사회는 인간의 윤리 종교 정치 사회 등 모든 측면의 발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이 파괴된 것이 산업혁명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사람이 짐승이 되고, 토지가 황무지가 되며, "문화적 진공"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태를 인식조차 못하게 만드는 것이 경제주의의 병폐였습니다. 그 결과, 이에 대응하고자 자연스럽게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나타났습니다. 이 때 특이한 점은 농촌에 기반한 계급은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등 계급적으로 대응이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각 계급은 제각기 요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노동자는 노동시간을 제한 하는 등 사회 입법을 요구하고, 농민은 보호 관세를 요구하고, 산업 자본가는 탄력적 금융시장을 요구하죠. 이 역시 일조의 비가시적 카르텔로서의 삼위일체를 형성하는데 불경기에 직면할 경우 문제가 됩니다.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하다보니 화폐가치가 하락하게 되나 금본위제 유지를 위해 제한적으로 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환가치의 압력에 시달리게 되는 한편, 실업으로 인한 계급투쟁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이 지위 상승을 위한 의회 진출을 기도하면서 사회적 압력이 형성됩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정치적 주권국가가 없는 곳으로의 제국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이상적으로 그렸던 19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거죠.

  마지막 강의는 제국주의와 이와 연관된 파시즘을 논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폴라니가 보기에 대공황은 이중적 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대파국의 현실태입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대처인 파시즘은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며 기계제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이런 경제주의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은 뉴딜정책과 공산주의 역시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문제는 이런 진단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필요한 현실 진단의 바탕에는 기계에 대한 관점이 있습니다. 기계는 시장경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종종 타도해야 할 것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본디 자연의 과학적 법칙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이상의 산물인 기계는 잘만 이용하면 분명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최고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계 문명을 인간의 도덕적 명령에 순응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보다 구체적으로, 개인 노동의 동기가 부여되어야 하고, 경제적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며, 사회의 포합이 필요합니다. 동기는 경제적 자유주의 식의 '생존'이 아니라 '즐거움', '열정' 같은 것이 되어야 할텐데, 사실 이것까지 폴라니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진 않습니다. 다음의 문제인 경제적 조정은 시장경제 식의 가격기구 이상의 것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조합을 형성해 대화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이후 윌리엄 카프에 의해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회계인 사회적 회계라는 개념으로 승화된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되 전지구적 차원보다는 한단계 아래의 지역적 계획경제가 제안되었습니다.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를 모델로 한 이 생각은 정치사회적 갈등의 해결 가능성을 내포하는 대안으로써 고려될 법합니다.

  이상의 네 차례의 강의는 폴라니라는 새로운 사상가에 대한 입문 과정이자, 그의 논의를 바탕으로 차후의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물론 한계도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두꺼운 책을 소화하려고 하고,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 탓에 대안에 대해 들어보고자 하다보니 심도있는 쌍방적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전달이 주가 된 세미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는 분명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운위되는 시대에 하나의 활로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번 세미나를 바탕으로 한국적 현실에서의 적용 가능성 혹은 대안이 모색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제 시작일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지난 한달동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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