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28] ‘멘붕’에 빠져 엄살을 떠는 진보진영에게

[시민정치시평 128]

‘멘붕’에 빠져 엄살을 떠는 진보진영에게
: “아직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

12월 19일 저녁을 꼬박 대선 특집 방송의 시청에 보냈다. 선거 과정에 개입할 사정은 아니었지만 나도 그 주권자의 하나인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향후 5년 동안 이 나라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당선 여부와는 상관없이,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서 불가피하다고 본래 생각했던 시민장정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일의 결과는 그런 시민장정에 합류할 시민결집의 반이 끝났음을 알려줄 뿐이다.

18대 대통령 선거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경남 도지사 보선에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 서울시 교육감 보선에 보수 대표로 나선 문용린 후보 등이 줄줄이 당선되고, 그 즉시 바로 야당 붕괴, 국민연대 충격, 진보정당 전체 멘붕이 쓰나미처럼 뒤이어 중앙 신문사들의 지면과 인터넷 포털을 뒤덮는다. 마치 이 세상의 반이 12월 19일 밤을 지내면서 땅 아래로 푹 꺼져버린 느낌이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서울에는 영하 12도의 한파가 몰아친다. 하지만 우리의 체감 기온은 영하12도보다 훨씬 더 아래다. 의회에 과반 의석을 이미 선점한 거대 여당까지 계산하면 보이는 것은 아마 “암흑뿐일 것”이다.

하지만 땅은 여전히 우리 발밑에 있고, 영하의 추위에도 해는 오늘도 어김없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무엇보다 이 세상의 시간은 앞으로 흘러간다.

이 나라의 권력 시간이 1987년의 직선제 시계로 2012년의 시간을 1972년으로 시침을 거꾸로 돌린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시계의 시침을 거꾸로 돌렸다고 해서 시간이 흘러갈 삶의 풍경조차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40년의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국가와 사회는 변치 않은 측면도 있지만 급격하게 변한 것이 더 많다.

 
40년 전 유신체제가 남긴 지배블록의 틀은 이 나라 경제의 시장지배그룹과 사회권력 안에서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유신체제의 기축이었던 군부와 관료는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민주화 과정에서 어쨌든 선거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국가 통치의 핵심은 제도정치권, 시장의 경기, 그리고 시민적 공론장의 추이 등으로 분산되었다.

MB 정부가 그렇게 애를 썼지만 시한부 통치정권으로 제도정치권,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를 과거 유신 때와 같은 정보공작이나 감시체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조작하고 억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만 여실하게 입증되었다. 다만 이런저런 법적 수단을 통해 저항하는 시민 개개인을 일상적으로 악랄하게 괴롭히는 수법은 고도로 발달되었다. 민주주의 정치문화의 퇴행이 거론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여기 MB 정권의 반민주적 통치관행에서 찾아지는 이유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박근혜 당선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87년 체제에 길들여지고 그것으로 학습받은 사람이다. 가통으로 이어진 유신 본색은 박 당선자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자기 주변의 권력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배신 속에서도 자신에게서 아무 이득도 받은 바 없는 영세민중들이 거의 교주처럼 떠받드는 힘 속에서 자신을 지켜 왔다. 그는 편향되게 교육받기 쉬운 한국 지배층의 분위기 속에서 강권의 힘과 민권의 뜻을 다같이 체득하면서, 독재체제를 딛고 세워진 민주체제 안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익힌 행운의 정치가이다. MB와 같은 구닥다리 경제정책으로 나섰지만 MB정부 기간 그 추락을 보면서 재빨리 복지나 서민정책을 표방하고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강권과 민권을 다같이 겪은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성장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굳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가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 광범하게 스며있는 시민공론장의 예측할 수 없는 동향이 통치를 곤경에 빠트리는 것을 권력 주변에서 수없이 목격했다.

문제는 그의 모든 정책이 야당과 진보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제기했던 것들을 표절한 것이라는 점이다.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적나라하게 밝혔지만, 그의 부친이 수출주도의 성장정책을 베꼈듯이 박 당선자도 복지와 경제민주화, 하다못해 어설픈 인권 관념까지 모두 21세기 들어 자생적으로 발상된 이 나라의 진보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황급하게 베꼈다.(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논한 것은 이런 어설픔의 블랙 코미디였다.) 내용을 못 채우면 일단 제목부터라도 베꼈다. 같은 말을 쓰는데도 듣다 보면 딴 얘기같이 들리는 그의 모든 정책이 이런 식으로 성안되고, 대선판에서 선거 이슈를 선점하는 데 활용되었다.

야권은 선거 쟁점 제기 경쟁에서 항상 뒤쳐지고, 그 톤이 약화되었으며, 2011년 지자체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무상급식 같이 매력적이고도 긴급한 쟁점을 박진감 있게 제시하는 경쟁에서 밀렸다. MB의 실정을 공격하면서도 대안을 정비하여 하나의 이정표를 세워나가는 데 있어서 정책소통능력도, 무엇보다 인물 능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선거운동과정을 지켜보면서 항상 조마조마했지만, 뭔가 지켜보는 이들을 통쾌하게 매료시킬 수 있는 상쾌한 유쾌함이 결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48%의 결집력으로 야당을 지원했다. 물론 박 당선자 쪽으로는 과반수를 넘기고 1304만표라는 유례 없는 지지표를 던졌지만, 문재인 후보에게 준 1215만표는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자로 거두었던 1201만표보다 많다.

이제 박근혜 당선자가 베껴간 공약들을 같은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하나하나 결제받을 때이다. 아직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변화시킬 것은 산처럼 쌓였다.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 시민의 삶이 굳혀진다. 지금 멘붕에 빠져 자위하고, 붕괴를 엄살떨면서 정치를 놓을 때가 아니다. 정권은 유한하고 선거는 지속되며 시민의 일상은 무한하다.

2019년은 사실상 대한민국 건국 원년인 1919년 3·1운동때부터 딱 100년이 된다. 그때 이 나라의 얼굴은 그 어떤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에 있게끔 지금 이 순간 시민장정을 개시할 때이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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