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누가 촛불을 ‘낭만’이라고 말하는가”

“누가 촛불을 ‘낭만’이라고 말하는가”
[화제의 책]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김진 / 변호사

참여연대와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촛불’에 관한 책을 냈단다. 책 제목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 사진기자들이 찍은 115컷의 사진에 한홍구, 오건호 등 12 사람의 글을 덧붙이고, 박재동 화백의 그림을 담은 책이다.

촛불집회 진행 과정을 ‘전조, 파도, 직접, 폭발, 광장, 민심, 진화, 역진, 공명, 계속’ 등 10개로 마디지은 이 책은 2008년 촛불을 ‘기록’하고, 또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하는데, 문득 나 자신은 지난 한해 촛불에 대해 무엇을 기록하였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아니 우리 사회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글, 한겨레 사진부 사진, 한겨레출판 펴냄) ⓒ프레시안
인터넷 서점에서 ‘촛불’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았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사진을 모아서 낸 책이나 사회단체에서 낸 책들, 촛불집회의 의미를 분석한 책들 몇 권…. ‘조갑제 닷컴’이 ‘긴급출판’했다는 <거짓의 촛불을 끄자>는 책이야 그렇다 치고, 전경련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작성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이라는 보고서가 있단다. 그 출판일자가 2008년 7월인 것을 보면 촛불이 한창이던 6월부터 연구가 진행되었던 모양이다(그러고 보니 여름에도 이 보고서와 관련된 기사를 언뜻 본 듯도 하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5월 2일부터 전국적으로 1736회 ‘발생’한 촛불집회로 인한 직접 피해비용은 6685억 원이고, 사회 불안정으로 인한 비용 등 국가적 손실은 1조9228억 원이라고 한다. 물론 도대체 그 산출방법이 무엇이냐고 발끈하거나 전직 기자라는 자칭 보수논객의 책처럼 그냥 원래 그런 거려니 하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1990년대 이후 발생한 시위건수와 투자 및 경제성장간의 상관관계 분석을 통해 시위의 경제적 효과를 실증적으로 추정했다”고 자랑하는 보고서, 그 보고서를 쓰게 하고 그것을 읽고, 인용하는(그리고 앞으로 인용할) 적지 않은 사람들까지 완전히 못 본 척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솔직히, 나는 지난 해 봄부터 여름 사이 있었던 일을 다룬 글이나 책을 몇 번이고 볼 마다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가지고 시위에 참석했다가 면허가 취소된 몇 분이 지난 연말 사무실에서 악법 저지 농성을 한답시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변호사들을 찾아 오셨더랬다. 그 분들이 “내년에는 무엇인가 희망을 가질 일이 생길까. 소위 ‘촛불세력’들이 다시 한 번 모일 수 있는 건가” 물었을 때, 대답 없이 바닥만 보면서도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어쩌면 벌써 ‘촛불 세력’ 또는 촛불의 기억까지 불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불편함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촛불 집회의 전개 과정과 종료 후의 평가 작업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과도할 정도의 상찬의 일색이었다. (…) 뚜렷한 구체적 성과를 남긴 것도 아닌데 그토록 찬사를 보낸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 현란할 정도의 수사로 장식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과연 실체가 무엇일까.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에 대한 격려와 위로의 덕담 외에 또 무엇을 담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 (차병직, 134쪽) (…) 우리의 학자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촛불 정국에 솔깃한 대안이라도 내놓은 적이 있는가. (…) 구경하고 감상할 줄만 알았지, 정확히 평가하고 다수가 수긍할 만한 지침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일이 있는가. (136쪽)”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을 굳이 ‘기록’하거나 ‘정리’해보고자 한 사람들은,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이나 계산하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추정’이 사실을 훼손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과도한 상찬’도 하나의 독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몇 사람들이 얼기설기 얽힌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촛불을 기록해 보자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 그리 유다른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기록의 목적은 망각을 피하자는 것이겠지요. (…) 기록 작업의 또 다른 목적은 ‘기억의 낭만화’를 피하는 것입니다. 촛불은 누구에게나 살아 있는 현실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아주 조금만 움직인 경우에도 시간이 갖고 있는 어떤 절대성으로 말미암아 종종 신비화되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사진과 글을 실은 사람들은 촛불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람들이 펼쳐낸 장면을 담으려고 애썼습니다. (박영선, 10쪽).”

책의 상당 부분에 보도사진을 그대로 채우고, 시간 순서대로 10개의 마디를 지어 되도록 여러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옮기려 했으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시국선언문이나 청화스님의 시국법어를 그대로 옮긴 것, 다소 장황한 촛불일지와 사진설명을 다시 실은 것 모두 그것이 서툰 ‘기억의 낭만화’가 될까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소 투박할 수 있는 네티즌들과의 좌담을 날 것 그대로 적어 낸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테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사람들이 말은 진보를 내걸고 있지만 막상 나와서 보면 속까지 그런 것도 아니고, 보수를 견제하기 위한 진보이지 진보를 위한 진보가 아니라는 느낌이 있지요. (…) 어떤 쟁점이 있을 때 그것을 이끌어 나가는 관점이나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네티즌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더라고요. 진보정당이라면 허점이 보일 때 그것을 노려서 그 자체를 슬로건으로 내세워서 사회운동을 크게 확장시켜야 하는데, 그저 지켜보고 있다가 시민들 나오고 뉴스에서 많이 커지니까 그 뒤에 붙어서 같이 가자 이런 식으로 나온 거죠. 네티즌들이 제안을 해서 진보정당 사람들이 따라온 거지 그들이 시민들에게 제안을 했던 게 별로 없잖아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봐요. (네티즌 희수, 195쪽)”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요즈음 유행하는 ‘리얼’한 덕분에 책장을 넘기고 사진들을 접할 때마다(물론 책머리의 “장면을 담으려 했지만, 다큐멘터리에는 특정한 시선이 동반되는 것”이라는 걱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정보나 죄다 글빨 있다는 열 두 글쓴이의 오묘한 관점을 접하는 것보다, 그날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었나 –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웃다가 먹먹해지다가 끝내 눈물도 흘리는 그야말로 ‘생쑈’를 해야 했다.

며칠 전 신문기사를 보니 지도 고수들은, 잘 완성된 지도책이 아니라 국토지리정보원이 제작한 1:2만5000 지형도를 구입하여, 등산로와 갈림길 등 각종 표시를 하면서 나만의 지도를 만든다고 한다. 조금 길고 많이 헤매는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내게는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 봄, 그리고 여름이 가슴 벅차거나, 불편하거나, 답답하거나… 어쨌든 조금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래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 또한 백지도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그 시간을 지나쳐 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도를 그리며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 안에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왜 촛불이 거리로 나섰느냐고.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한홍구, 44쪽) (…) 새로운 촛불이 켜질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았다.(이남주, 124쪽)”

기사입력 2009-01-13 오전 9: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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