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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연구소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소입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총 6회에 걸쳐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좌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역사교과서 출간으로 촉발된 우리 근현대사의 쟁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좌표를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이 글은 2강에 대한 강의노트로 자원활동가 박소현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3강은 5월 28일 '식민지 경제는 대한민국을 근대화시켰는가?'라는 주제로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강의에 나설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참여사회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60년,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



제2강 해방 전후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정용욱|서울대 국사학과

1. 무엇이 문제인가?

1) 교과서포럼(이하 포럼)의 해방전후사 인식과 이승만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전근대편의 해당 부분 서술의 주어는 주로 무엇으로 시작할까요?  대부분 ‘무슨 무슨 왕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검인정 근현대사 역사교과서는 어떻게 시작할까요? 주로 ‘우리 민족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포럼은 이 “민족으로부터 벗어나, 한국인”을 주어로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주로 ‘지배층’을 말합니다. 교과서포럼이 ‘우리 민족’ 대신에 ‘한국인’을 역사적 행위의 주체로 보겠다고 한 이유로 ‘보통 사람들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라고 서두에 써놓았습니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서는 “해방 후 건국 과정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였다”라고 씁니다. 서론과 결론이 어긋나는 겁니다.

 주요 역사적 쟁점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와 포럼의 인식이 너무 다릅니다. 여러 가지 오류를 많이 저지르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식민지시기를 ‘능력 축적’을 위한 시기로 파악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또한 포럼 측은 기존교과서의 좌편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들의 교과서를 실증주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실증으로 포장한 제멋대로의 서술입니다. 그 예로 포럼은 제주 4.3 항쟁을 두고 “대한민국의 성립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킨 “무장반란”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4.3의 본질은 대한민국 정부 성립 이전의 단선 반대운동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시간’에 대한 개념마저도 없다는 비판이 성립하는 겁니다.

 그들은 실증주의를 주장하나 대안교과서의 사관은 근대사관(近代史觀)이 아니라고 봅니다. 전(前)근대사관과 근대사관을 구분할 수 있는 지점은 ‘정통성’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전근대 역사서는 모두 스스로의 정통성을 주장합니다. 포럼 교과서는 이런 맥락에서 전(前)근대적 사관으로서, 스스로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포럼 교과서의 또다른 문제점은 그들이 ‘민족’을 경시하거나 부인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구체적 서술에서 일제식민지기 민족 억압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평가하지 않거나 민족운동의 역사성을 평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에 대한 긍부정성에 대한 평가와 민족의 실체성에 대한 평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일부 민족주의의 부정적 사례를 들어서 민족의 실체를 부정하면 민족허무주의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또한 그들의 엘리트주의도 문제입니다. 당시 선진적 지식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김옥균 등의 갑신정변은 높게 평가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을 ‘봉기’, 즉 일회성 업라이징(uprising)이라고 비하합니다.

  이영훈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승만에 대해서는 사실 의식적으로 부각하려고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사실 1994~95년에 조선일보가 했던 주장 바로 그대로입니다. 아니,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지요. “대한민국의 기틀을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김구에 대해서는 저평가로 일관하지요.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2) 포럼 교과서의 서술 전략과 선전 전략

 포럼이 만든 교과서는 교과서라는 이름에 값하지도 않을 뿐더러 학문적 성과도 없이 선전, 선동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좌편향을 시정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역사학계에서는 과거 친일·독재 세력의 자기 변호용 책자로 보고 있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교과서 중 가장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지요. 또한 이승만과 친일세력을 정당화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햇기에, 역사학계의 보수적인 분들조차 감당할 수 없는 주장이 많아요. 심지어 상명대의 주진오 교수는 ‘한국판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라고 말합니다. 이외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같은 입장입니다.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 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와 포럼을 비교해보지요. 이들은 모두 국가주의를 고취하고 기존의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취하는 입장도 서로 같습니다.
 
 이들은 논의 조건을 재정의해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논의 조건에서 문제를 협소하게 좁혀버립니다. 사실 해방 전후사에 얼마나 풍부한 역사가 있었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을 분단정부 수립이냐, 건국이냐로 몰아갑니다. 이 시기의 역사적 사건을 의도적으로 좁혀서 단순화하고 프레임화해서 건국문제, 이승만 평가 문제로 논점을 몰아가는 겁니다.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게 위안부문제입니다. 그건 구조적 폭력과 구조적 시스템이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새역모는 '징집의 강제성 여부' 문제로 프레임화해버립니다. 자기가 돈 벌러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직접 위안소를 설치했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제반의 조건이 있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닙니까. 위안소에 가는 병사들에게 일본 육군에서 콘돔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다 있습니다. 이는 국가 시스템이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축소의 과정은 동시에 중요한 수사적 기능을 가집니다. 이른 바 ‘말살의 역사학’입니다. 이게 포럼과 새역모의 아주 유사한 점이지요.

3) 역사교과서, 그리고 포럼 교과서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전달되어 평생의 이념·가치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계의 논의를 거쳐 검증되고, 공감대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 논의와 합의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역사교과서에는 또 딜레마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정체성 함양과 국민 통합, 다른 한편으로 창의적인 역사적 상상력·비판적 인식 태도의 함양이라는 이중적 목표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객관적인 지식을 전달해야 합니다. 비판적 인식은 객관적 지식을 통해 함양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역사적 사유 방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암기를 시키는 구조예요. 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진나라, 명나라 등의 시기가 각각 한 문단만을 차지하고 있어요. 이건 외우라는 거죠. 여기서 무슨 비판적 인식이 길러질 수 있겠습니까.
 또 원시시대의 천년보다 현대의 하루가 더 의미있는 발전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근현대사를 가르쳐야죠. 모든 나라의 교과서는 혁명정통성을 설명하기 위한 교과서입니다. 프랑스는 그들이 이룩한 자유·평등·박애가 너무 중요해서, 프랑스 역사의 대부분은 중고등학교에서 60~70%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많게는 1/8, 적게는 1/10에 그치고 있어요.
 이런 근현대사 교과서 중 포럼의 교과서는 너무나도 문제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적 역사인식과 역사적 상식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찰·반성·비판이 부재하는 3無 교과서가 되어버린거죠. 또 사후적 평가와 결과론적 인식이 지배합니다. 또 단선적이고 독선적인 인식이 난무하죠.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 등 근대세계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걸 겪은 나라입니다. 이게 어느 한 세대만이 이뤄낸 일은 아닙니다. 시련이 많았으면 고통도 많았고 또 성취도 많았습니다. 그런 과정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기르기보다 퇴행적 역사인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탈냉전의 시대에 냉전적 시각을 강요하고 민주화 시대에 독재를 찬양하고 통일을 향한 시대에 통일 무용론을 설파하고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

2. 이승만 선전의 계보와 민초들의 망각에 대한 싸움 
 
아까 말씀드렸듯이 포럼의 교과서는 해방 전후를 이승만으로만 몰아가는 프레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집권기였던 50년대에는 그 측근 혹은 정부에 의해 활동과 업적을 찬양하는 홍보물이나 전기가 많이 나옵니다. 60년대에서 80년대에서는 관련자나 저널리스트 등이 본격적 연구를 하기 위한 전 단계를 수행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역사 바로보기와 비판론, 옹호론이 공존하던 시대입니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사상·노선·활동·업적에 대한 재평가와 본격적인 인물연구가 언론계와 학계에 의해 시작됩니다. 기억의 투쟁이 시작되는 거지요. 2000년대에는 ‘이승만 띄우기’와 ‘역사 지우기’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승만으로 그 시대의 역사를 모두 대체해버리면 그 외의 다른 역사는 지워지는 거라고 봐야지요.

<이승만 전기 연구의 시기별 특징과 경향>

 

1950년대

1960-80년대

1990년대이후

편찬주체

측근, 정부

저널리스트, 관련자

언론계, 학계

관점과 대체적 내용, 저술동기와목적

활동․업적 찬양 일색의 홍보물

노선․활동․업적에 대한 비판과 옹호. 본격적 연구의 개시

사상․노선․활동․업적에 대한 재평가. 본격적인 인물 연구

외화형태

전기 및 홍보물

전기, 사론, 실록

기사, 사론, 전시, 전기, 논문, 저서

필자

양우정, 서정주, 김광섭, 한철영, 박성하, 올리버 등, 공보처

리챠드 알렌, 이원순, 허정, 실록편찬회, 송건호, 김도현, 손세일

서중석, (이한우, 조갑제), 유영익, 이정식, 고정휴, 정병준

주요활용자료

관찰기, 회고, 전기류, 왕복문서

 

미국 측 외교, 정보 문서 + 이화장 문서


  중요한 것은 90년대에 이미 포럼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다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를 기억하십니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신문의 역할인데, 한면을 통틀어 ‘이승만과 나라세우기’라는 기획기사로 메꾼다는 것은 다른 나라 언론에서는 생각도 못하는 일이예요. 공정성이 생명인 신문의 역할은 찬반 입장 설명하고 평가내리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조선일보의 태도는 이승만 살리기에 주력하고 반대진영 얘기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승만을 ‘역사적 거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독자들과 비판자들에게 ‘역사를 보는 틀’을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극도의 엘리트주의와 영웅주의, 대중경시 사상과 맞물린 채 나타나는 역사 인식입니다. 이승만 절대주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대 언론에 의해 이런 일이 자행되는 한편, 한편에서는 민초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한' 망각에 대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위안부 문제, 제주 4.3항쟁, 노근리 민간인 학살 등이 이 때 본인들과 유족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탈냉전 이후에, 냉전시대에선 생각도 못했던 일들을 민초들이 시작한 것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사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2000년대 와서 과거사 위원회로 제도화해낸 것입니다. 그거 정부가 한 거 아닙니다. 90년대 민초들이 해낸 일에 정부가 숟가락 하나 달랑 얹은 거지요.            


3. 사실(史實), 성찰, 상상력: 해방3년사? 점령3년사? 분단3년사?

 미소가 점령했었기 때문에 분단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과론이 포럼 교과서의 한 축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구조적이고 극복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분할점령에서 분단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이야기하고, 당시 상황을 역사주의적으로 평가한다면  결과론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겁니다.  해방직후 좌우대립의 역사성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지요. 좌우대립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또한 식민지하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은 어떻게 좌우합작을 하느냐였어요. 물론 노선은 있었죠. 김구는 공산주의자를 테러했고 공산주의자는 자유시 참변을 일으켰어요. 그런데도 서로 연합하려 했습니다. 그게 해방 직후 조선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주요 대립구도는 민족 대 반민족이었습니다. 45년의 정국이라는 것은, 독립과 정부수립을 위해 뭉쳐야 하는 단계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구도가 어느 순간 절대적인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좌=빨갱이=국보법으로 처단해야 하는 자들’로 절대화됩니다. 그 계기는 찬반탁 문제였죠. 1945년 연말, 신탁통치 소동이 벌어집니다. 결정적인 것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모스크바 3상회의 보도였습니다. 신탁이 확정되었고 제안자는 소련이다라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보도된 것이 1945년 12월 27일인데, 기사 출처는 해외의 육군을 위해 발행하는 육군주보 <Pacific Stars & Stripes> 12월 27일자였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석간이라 하더라도 당시 기술 수준으로, 같은 날 외신 기사를 받아 쓰는 것은 불가능하죠. 같은 날 나올 수가 없어요. 이건 누군가 정보를 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의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렸고 여기서, ‘전민족 대동단결’에서 ‘좌우 대립은 골육상쟁의 지경’으로 변화됩니다. 결국 좌=친소=친공=국가보안법 대상자이고, 우=민족주의자=친미=반공이란 개념이 새롭게 착근됩니다. 미군정을 지지하면 우고, 반대하면 좌라는 것이 된 것이죠.

[인사동 아줌마의 편지, 테러로 인한 위협을 호소하는 탄원서]

 
사실 해방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너진 민초들의 삶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라는 문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엄청난 테러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것이 바로 민생이고, 다른 말로는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그 당시에는 민족의 길과 민초의 길이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외세의 점령이라는 구조적 조건 속에서 자기 삶의 복원과 새로운 정부 수립을 일치시켜 가는 게 삶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해방 전후사에서는 바로 민초들의 삶의 복원과 새로운 정부 수립의 길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저지당했습니다. 민초와 민족의 길이 일치되는 것이 저지당했다면 어떤 구조적이고 객관적인 요인에 의해 저지당했고 어떤 주관적인 문제에 의해 실패했는지 따져보는 것이, 건국의 의미를 따지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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