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북리뷰 2_한국 민주주의와 운동의 정치

조희연 편, 『한국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동학』

한국의 민주주의는 현재 중대한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 그 동안의 지배적 이론이었던 최소주의 관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주기적 선거로 구성되는 민주정부의 연속등장으로 인해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민주정부의 운용, 공정성, 이념적 토대와 사회-문화적 조건, 시민사회의 개입(civic engagement)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행 이후 매우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였고 또 문제인가?

『한국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의 동학』은 한국민주주의 연구와 대안모색에서 하나의 전환적인 의미를 갖는 중요한 저작이랄 수 있다. 연구와 이론의 단계에서 아직 진행중인 프로젝트인 이 저작은 한국민주주의를, 외부의 어떤 특정 이론이 아니라,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특성과 동학 자체로부터 파악하려는 일련의 지적ㆍ실천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는 한국의 현대민주주의의 발전과정과 성격을 한국의 국가, 제도정치, 운동정치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자체를 제도정치의 차원을 넘어서는 복합적-다원적인 사회적 투쟁의 과정이자 결과로 이해한다.

제도정치에 초점을 두는 연구들과 비교해 볼 때 양자의 상호작용에 천착한 이 저작의 이론적 도전의욕은 ‘발본적’(원문그대로)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국가-시민사회-경제의 영역을 구분한 뒤 이 세 영역들을 가로지르는 범주로 인간들의 ‘정치’행위를 설정함으로써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행위의 문제를 결합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는 객관적ㆍ구조적 조건을 강조하던 민주화 이전의 연구와 실천으로부터, 주체와 정치의 영역을 함께 강조하는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경향을 대변한다.

특별히 이 책은 식민시대와 국가형성 이후 좁게는 한국민주주의, 넓게는 한국정치에 대한 이해를 일관되게 제도정치를 넘어 운동의 정치영역까지 확장하여 이해함으로써 운동의 정치가 제도정치 못지않은 한국민주주의 프로젝트의 핵심 영역임을 드러내주고 있다. 6월항쟁 이후 시민사회, 시민운동, 시민단체 등 일련의 ‘시민적 범주’에 대한 착목은 한국민주주의의 딜레마를 돌파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아왔다. 민중-재야운동에 대한 이해 없이 70~80년대의 한국민주주의를 해명할 수 없듯이, 시민운동에 대한 이해 없이 87년 이후 한국민주주의를 접근할 수는 없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좌파혁명운동과 그것의 등장요인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민주주의의 초기 출발과 형성을 규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거시적-역사적인 동시에 동태적인 이해를 포함하는 이러한 접근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확장요구를 넘어 우리에게 ‘정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러나 운동 자체에 대한 역사적ㆍ이념적ㆍ조직적 드러냄과 심층해부가 부재한 것은 이 기획의 커다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최근 법학과 정치학의 주요 주제인 이른바 헌법정치(constitutional politics)와 일상정치(normal politics) 또는 탁상(협상)정치(round- table-talks politics, RTT-politics)와 운동의 정치의 분리 및 연계에 대한 분석을 원용하여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 저작이 던진, 운동의 정치와 한국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주목할 만한 문제의식은 앞으로 더욱 세련된 이론과 분석틀을 기반으로 한 심층연구를 요구하고 또 요구받게 될 것이다. 먼저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역사와 정치를 보는 기본 시각으로서 발전사관――때때로 단선사관으로 치환되는――에 기초해 있을 때 우리 자신이 민주주의, 진보, 시민사회, 운동 자체를 이론과 실천에서 물신화하여 접근할 위험성이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시민권(citizenship)에 대한 단선적 이해를 비판한 최근의 하버마스의 문제의식은 이 점에서 우리의 민주주의 이해에 시사하는 바 크다. 예컨대 시민사회 자체가 항상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근거이고 진보영역인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제 국가에 대한 이해의 전환 역시 일정 정도 필요하다. 즉 국가-시민사회의 관계를 모순적ㆍ대립적 관계에서 보던 과거 시각의 수정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근대적 시민사회는 영토적 범위를 갖는 근대 국민국가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강한 국가가 강한 시민사회를 낳는다”는 이른바 ‘강한 국가의 역설’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오늘날 국가와 시민사회의 범주 및 관계에 대한 이해는 중대한 수정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유럽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국가의 사회통합능력은 시민사회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가 된다.

본 연구에서 시민사회의 밀도(density), 시민권에 대한 논의가 소략한 것은 다음 단계의 연구과제로서 남겨진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퍼트남(R. Putnam)이 던진 시민사회 쇠퇴논쟁과 관련하여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일련의 보수적 비판은 그것이 갖는 이데올로기성을 고려하더라도, 제도정치가 아니라 운동의 정치에서조차 ‘시민 없는 대표’(advocates without members)라는 오랜 문제제기를 유념할 때, 운동의 정치에 대한 착목은 시민사회 자체의 조직, 성격과 이념에 대한 탐구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운동의 발생과 조직, 내부구성, 전개, 변화, 영향은 물론 그것이 발원하고 토대로 하는 특정 사회에 대한 깊은 내재적 이해가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한국적 민주주의 이론을 모색하려할 경우 운동이 발생하고 기반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에 대한 이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초국적(trans-national) 조건에 대한 이해 역시 중요하다. 과거의 ‘냉전’은 물론 오늘의 ‘세계화’까지 우리는 일관되게 한국민주주의의 외적 조건에 대해 부정적 요인으로서 상수화한다. 우리는 거의 모든 구조적ㆍ초국적 조건을 하나의 구조로서, 즉 부정의 구조로서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분단, 북한의 존재와 한국의 운동, 시민사회의 이념적 조건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색 역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초국적 압력과 민족분단을 비롯한 구조적 조건들이 민주주의에 일관되게 저해적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저작의 전제처럼――우리가 발양시킨 민주주의 발전의 근본적인 동력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야심찬 기획이 갖는 대안적인 이론적 체계성은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국민주주의를 더욱 깊이 탐색하면 우리가 선거와 저항, 즉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사이에 놓여 있는, 단절뿐만 아니라 높은 시계열적 배열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국민주주의에서 선거와 저항의 주기동학(cyclical dynamics)을 규명하는 것은 양자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려 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주제가 된다. 한국의 국가-제도정치에 대해, 그것이 권위주의의 절정의 시기에도 선거-정당-의회와 같은 제도정치의 주요 공간이 폐쇄되지 않고 유지되었던 요인과 효과는 운동의 정치의 공간과 그 특성, 국가의 성격까지를 규명하는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다른 나라와의 비교적 접근을 통하지 않고는 해명될 수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1940~50년대의 ‘계급’운동, 70~80년대의 ‘민중’운동, 1990~2000년대의 ‘시민’운동 사이의 연속과 단절, 변화의 측면을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 우리가 계급ㆍ민중ㆍ시민이라는 수식으로서의 집합적 배열(con- stellation)을 전제하는지, 거시적 사회의 변화와 자본주의 산업화가 그에 끼친 영향을 탐구하는 문제는 이 책이 곳곳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 연구를 출발점으로 더 깊고 세밀하며 두터운 연구가 진행될 때 한국의 사회운동과 민주주의, 그리고 양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더욱 풍부해지고, 실천의 영역에서 우리가 추구할 대안 역시 보다 명료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저작은 분명 한국민주주의의 수준을 제고시키려는 지적ㆍ실천적 노력의 한 중요한 고비를 이룰 것이다.

박명림 /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