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언론의 카르텔, 한국 지식사회지배”

참여사회연구소, 한국사회연구회 공동주최 토론회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지식’이 기득권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 학자와 언론이 이러한 자본화된 ‘지식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가정은 이날 토론회의 출발점이었다.

참여연대 부설 사단법인 참여사회연구소(소장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와 한국사회연구회(회장 김만흠, 가톨릭대 정치학과)가 11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 마련한 “탈냉전 시대, 한국 시민사회와 지식인” 토론회는 지난 해 지식인들이 중앙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시민운동, 언론개혁, 햇볕정책 등 시민사회의 현안들을 둘러싼 언론과 지식인, 시민사회의 관계를 분석, 평가하는 자리였다. 특히 언론과 지식인의 관계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종오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주제 발표자로 김동춘 교수, 김만흠 교수, 홍일표 씨(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정치학 박사), 김갑식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이 나섰다. 토론자로는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이동수 경희대 엔지오대학원 교수, 주동황 광운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가 참석하였다.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동춘 교수는 “한국의 지식사회와 지식권력”이라는 주제로 자본에 의한 지식유통의 메카니즘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지식사회와 지식권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지식권력을 일컬을 때는 지식이 힘을 빌어 경제적 이해를 추구하고 권력의 창출과 유지를 도모하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라며 “지식의 힘은 언어의 힘에서 오는 것으로 하나의 정보 내지 선동적인 주장이나 언어의 유희가 지식을 대신할 때 그것은 비판적인 목소리로 포장되어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가 신문의 논설이나 칼럼, 보도기사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식생산의 기지”인 대학 역시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지적하며, 언론 역시 지식사회를 길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즉 “언론이 대변하는 집단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는 지식인이나 학자들에게 지면은 주지 않고 옹호하는 측에 이면을 할애함으로써 미디어를 통해서 영향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을 길들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길들여질 뿐” 이렇게 얻은 권력은 “자신의 권력이 아닌 언론권력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90년대 후반 한국 지식사회에는 생산적인 정책논쟁, 이념논쟁은 거의 사라지고 오직 그들의 정치적 자세만을 문제삼는 담론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고 이런 담론만의 갈등은 감정대립만은 초래할 뿐, 지식의 생산문제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식인들의 2001년 7개 중앙일간지(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한국, 경향, 대한매일) 기고활동(시론, 논단, 비평, 시평, 칼럼)에 대해 구체적인 데이터 분석을 한 김만흠 교수는 기고자의 출신지 및 출신대학, 박사학위 취득지, 연령대, 언론사별 기고빈도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김 교수는 우선 언론활동을 벌인 지식인의 인구학적 특성분석으로부터 “기고자의 대부분이 교수집단, 서울대 출신, 미국유학파”이며 “연령분포는 평균 만 52세, 영남출신의 주도”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특정기고자에 대한 집중도는 한겨레와 대한매일이 높은 것으로 나왔는데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각 신문이 동원할 수 있는 지식인 풀의 특성과 신문사의 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 주요 기고내용과 관련하여, 칼럼내용은 신문(사)의 논조와 목적에 좌우될 수밖에 없으며 대립적 쟁점은 대북관계와 언론개혁에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 교수는 지식인의 언론참여에 있어 언론에 대한 종속이 강하다는 문제제기를 하며 여기에는 언론의 책임뿐만 아니라 언론의 독점적 지위와 카르텔을 형성해 지식권력을 누리려는 지식인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 김만흠 가톨릭대 교수

특히, 그는 러시아 출신 박노자 교수(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인용하며 “한국 지식사회의 중심인 대학과 교수집단이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한 책임소재는 주로 정치권력에 두어졌으며, 비판의 주체는 언론과 지식”이었으나 “민주화 이후 비판의 대상은 비판 주체의 하나인 언론으로 확산되었지만 이제 지식권력으로도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운동, ‘새로운 공공성’을 창출할 시기

홍일표 씨 역시 “2001년, 신문에 그려진 한국 시민운동의 일그러진 초상”을 발표, 언론을 통해 형성, 확대 및 재생산되는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담론을 분석했다. 또한 그는 “‘시장의 자율성’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거센 흐름과 맞물리면서 시민사회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시민사회 내부에서의 더욱 격렬한 분화와 투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후 한국 시민운동은 ‘새로운 공공성’을 창출하기 위해 기존의 시민운동의 경계에 대한 ‘대중의 상식’을 재구성, 확장해야 하고 이를 위한 ‘시민운동의 유기적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혁재 박사는 “언론개혁과 지식인,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라는 발제를 통해 언론개혁 과정에서 지식인들의 편가르기 현상이 나타났고 ‘의견의 차이’가 ‘피아의 구분’이 되었으며 어느 한쪽에 줄서기를 강요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편가르기 양상가운데 하나가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평가였다는 것이다.

손 박사는 “지금의 정언유착은 언론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주도하며, 언론비판에 나약한 면을 보이는 정치권과 재계가 끌려가는 상황”이라며 이 과정에서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언론인들이 설자리를 잃었다”고 보았다.

그는 “언론개혁은 민주적 저널리즘의 제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라며 이를 위해 “한국언론은 소유와 경영의 투명화, 공정한 시장행위와 경쟁체제의 확립, 다원주의적 신문시장 구조, 독자주권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김갑식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김갑식 연구원은 “햇볕정책논란과 지식인”이라는 발제를 통해 우리 사회가 햇볕정책과 이에 연유되는 쟁점에 대해 ‘남남갈등’ 상태로 보고 이러한 문제 의식아래 7개 중앙일간지에 등장한 지식인들의 칼럼, 기고문에 드러난 햇빛정책에 대한 지식인들의 태도를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지식인의 성향을 ‘햇볕론자, 강풍론자, 절충론자’로 분류하는 한편, 햇볕정책 논란과 관련해 연령대, 출신지역, 출신대학 및 학위취득 국가를 분석함으로써 햇볕정책 지지자는 주로 30, 40대, 호남, 수도권 출신에 성균관대(고려대, 서울대 순) 출신의 국내대학 학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언론에 등장한 지식인의 칼럼은 햇볕론 38.7%, 절충론 35.2%, 강풍론 26.1%로 햇볕론이 약간 우세한 가운데 햇볕론과 강풍론이 약 6대 4의 비율로 나타난 반면에, 일반국민의 햇볕정책에 대한 찬반비율이 약 8대 2로 나타나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지식인과 일반국민 사이에 ‘대표성의 굴절현상’이 드러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김 연구원은 햇볕정책의 논의는 활발했으나 논쟁의 성과는 극히 저조했고 급기야 이런 논쟁이 지식인 사회를 가르고 국민들을 분열시켰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동수 교수는 5개의 발제가 공통적으로 “현상 속에 내재하는 여러 가지 차이들에 민감해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단순화시켜 단선적인 인과론으로 환원시켰다”고 보았다.

환원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 교수는 지식권력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지식과 지혜 혹은 앎에 대해 구분하지 않을 경우 학문추구에서의 모든 활동을 권력추구행위, 특히 비판정신이 부재한 기득권을 옹호하는 권력추구행위로 간주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속해서 학계와 언론계 모두가 개혁 지향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전통적으로 학자들이 언론을 기피한다는 점, 학계와 언론이 항상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 그리고 대학의 ‘학문(science)’이 언론의 ‘정보(information)’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여기에서는 언급되는 권력관 역시 자유주의적 권력관(권력을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지배관계에서 지배자들이 동원하는 도구라고 가정함)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권력(power)’과 ‘폭력(violence)’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소유지배로 간주되는 힘은 누가 소유하든, 어떤 집단적 목표를 위해 수단으로 동원되든 폭력에 불과하다”며 “지배자의 지식권력을 제한하고 이를 분점하는 것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 폭력의 분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지식권력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타파하기 위한 실천적 작업의 첫걸음은 “지식을 생산물이나 상품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학문세계의 지혜추구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학정신과 학문정신의 복원, 대학교수들의 언론을 통한 지식생산이 지양 등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김근식 연구위원 역시 “‘침묵하는 다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지식인 사이의 싸움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며 “폭력과 강제를 포함하는 권력과 영향력은 분리되어 보아야 하고 언론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옳다”고 보았다. 그는 또한 시민사회 내부의 쟁투에 대해 “시민사회 자체의 검열구조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만큼 내부의 전면적인 싸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종오 교수는 “우리시대의 과제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이끄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론을 조성하고 시민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지식인과 언론이 그 역할의 한 축”이라며 “직면하고 있는 지식인과 언론의 문제는 지나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에 이날 토론회의 내용이 보완됨으로써 개혁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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