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479] ‘협력이익공유제’는 더 강력해져야 한다

‘협력이익공유제’는 더 강력해져야 한다

이익공유제의 불가피성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

 

정부여당이 협력이익공유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일명 상생법)을 개정해 대기업이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과 협력해 일정 기준 이상의 성과를 내면 이익의 일부를 중소기업에게 이전하는 방식이다. 자율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상생법에 이 제도를 입법하겠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의 참여 여부는 자율에 맡겨져 있고, 참여 유인으로 각종 세제 감면 혜택을 준다. 

 

대-중소기업 격차 완화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이익 일부를 중소기업에게 직접 이전해주는 이익 공유제가 유효한 방향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율 참여 방식이 유의미한 성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당장의 실효성보다는 향후 규범성을 강화하고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근거를 법률로 제도화한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대-중소기업 문제 이대로 두고 한국 경제 해법 안 나와

 

최근 10년 동안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 격차를 보면 2010년 3.1%p를 피크로 해서 2014년에는 0%까지 갔다가 2015년 1.1%p, 2016년에는 2.1%p로 다시 확대되고 있다. 임금 격차(대기업을 100으로 했을 때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는 55%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조사 방법에 따라서는 50%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각종 사내복지까지 감안한다면 구직자들이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대기업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체 기업의 연구개발(R&D)에서 벤처기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의 R&D 비중은 2008년 28%에서 2016년 24.4%로 떨어졌다. 중소기업의 혁신 여력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 최대 현안인 청년 고용 문제만 놓고 봐도 대-중소기업 격차 문제 해결 없이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의 직종별사업체 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1분기 5인 이상 사업장의 구인 인원 약 83.4만 명 중 300인 미만 사업장이 약 6.6만 명으로 79%를 차지한다. 그런데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로 인한 미충원 인원 약 9만 명 중에서 300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다.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을 촉진하려는 정부의 재정지원 청년일자리 사업의 결과들을 살펴보자. 청년취업성공패키지 정책의 경우 취업자 50% 이상이 150만원 미만 일자리에서 1년 내에 취업과 퇴직을 반복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소기업 청년취업 인턴제의 경우 정규직 전환 1년 6개월이 지나면(정부 재정지원 중단 이후) 고용유지율이 36.7%로 떨어진다. 대-중소기업 격차를 이대로 둔다면 정부의 청년 고용지원 정책은 중소기업에게는 임시 고용보조금을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것에 불과하고, 청년들에게는 ‘눈높이를 낮추라’는 요구 이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혁신경제의 기치 아래 도모하려는 기술 혁신과 새로운 산업 및 시장의 창출도 대-중소기업 문제와 관련해 딜레마적인 상황을 만든다. 일단 혁신경제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와 조세 감면이 사회 공공성을 중대하게 훼손하는 것은 논외로 치자. 그렇게 해서 혁신경제 정책이 목적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더라도 그 수혜의 대부분은 연구개발 여력과 시장지배력을 갖춘 재벌대기업으로 귀속될 것이다. 이는 다시 대-중소기업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낳는다. 기본적으로는 중소기업이 어렵게 개발한 신기술이나 혁신 성과마저 대기업이 비일비재 가로채는 재벌 지대 경제에서 제대로 된 혁신이 이뤄질 리 없다. 대-중소기업 격차를 해소하는 일은 혁신경제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이익공유제의 불가피성

 

정부여당이 협력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온 배경을 분석해보는 것도 이 제도의 위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중소기업 사이의 이익 공유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가까이는 이명박 정부 때 정운찬 총리의 소신이었던 초과이익공유제가 무산된 바 있고, 문재인 정부에서 협력이윤공유제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익공유제의 배경에는 한국 경제의 뿌리 깊은 재벌 문제를 정공법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극소수 지분으로 방대한 계열사를 지배하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세금 없는 부와 경영권의 대물림이자 중소기업의 사업기회를 빼앗는 일감몰아주기, 총수일가에 의한 배임과 횡령의 만연 등 심각한 폐해를 낳고 있다. 재벌 소유지배구조는 총수일가의 전횡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아주 작은 자본으로도 유망 기업을 인수하거나 창업할 수 있도록 해서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는 악순환 고리가 되고 있다. 경제력 집중의 폐해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확인되는 정부여당의 재벌개혁 의지는 소유지배구조나 경제력 집중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일감몰아주기와 하도급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들이 무용하지는 않지만 구조적 한계가 더 큰 규정력으로 작용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역사를 보면 규제를 회피하는 재벌들의 노력을 규제가 일일이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일감’의 범위와 ‘몰아주기’의 정도에 대한 기준점을 정해서 계열사 사이의 ‘정상적인’ 거래 비율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데, 재벌 계열사가 늘어나고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일감몰아주기 규제와 관계없는 거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연한 불공정거래 역시 기본적으로 재벌의 시장지배력과 집중된 경제력을 통한 입법, 관료, 사법, 언론 지배력을 구조로 하고 있어서 법률에 제도적 대항력을 높여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소기업이 재벌 기업을 상대로 불공정거래 제소를 하려면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는 수준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요컨대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와 경제력 집중이라는 구조적 요인을 건드리지 않는 상태에서는 일감몰아주기든 불공정거래 문제든 규제 강화를 통해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익공유제는 이와 같은 재벌 문제의 본령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혹은 건드릴 수 없다는 인식 하에서, 일자리, 임금과 소득 불평등, 기업 기술 경쟁력 확보 등 방치할 수 없는 다른 중요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중소기업의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실용적인 사고의 산물이다. 지금 보수야당과 재계의 ‘사회주의’ 운운하는 공격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익공유제가 잘 설계되어 시행된다면 유의미한 효과를 낼 것이다. 

 

자율 방식의 명백한 한계

 

하지만 정부여당이 시행하려는 협력이익공유제가 대-중소기업 격차 완화에 그렇게 효과적일지는 다른 문제다. 대기업과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대략 20% 수준밖에 안 된다는 규모의 제약은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이다. 핵심은 자율 방식에 있다. 상생법에 기초한 성과공유제라든가 동반성장제도 등 기왕의 자율 참여 방식의 여러 제도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면 협력이익공유제가 다시 등장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납품 중소기업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해 완성한 상품의 매출이나 이윤 등 실적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협력이익공유 계약을 맺는다고 해보자. 일단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몫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재의 지배력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다. 협상에서 이 힘의 우위는 관철될 것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노력 유인을 높이고 중소기업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익 공유의 정도에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율 협약의 성격상 대기업이 이를 수용하면서 참여하려 할까? 

 

정부여당은 이미 시작된 보수야당과 재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 이 제도의 설명 문건부터 협력이익공유제가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큰 틀에서 보면 시장실패의 결과로 나타난 대-중소기업 격차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조차 시장경제 원리를 강조해야 할 정도로 시장주의 이데올로기 공세 앞에 정부여당도 경도되어 있다. 복지에 쓰일 조세를 훼손하면서 시행하는 제도라면 인센티브만이 아니라 비참여 기업들에 대한 일정한 불이익도 넣어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태도로 보건대 입법조차 어려워 보인다.  

 

요약하면, 이익공유제는 근본적인 재벌개혁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불가피하고 유익한 정책이기는 하지만, 정부여당이 들고 나온 협력이익공유제는 실효적일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에 제도적 근거를 만들 의의는 충분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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