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3] 손해만 본 박명기의 경우: 곽노현 1심 판결에 대하여

참여사회연구소가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시민정치시평 33]

 

손해만 본 박명기의 경우
: 곽노현 1심 판결에 대하여

이석태 변호사, 참여연대 공동대표         
     

지난 1월 19일 세간의 주목을 끈 서울시 교육감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 선고가 있었다. 재판부는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을 준 것이 공직선거법에서 금하는 후보 사퇴 대가에 해당된다고 하여 곽 교육감에게 벌금 3000만원, 박명기 교수에게 징역 3년, 두 사람 사이에서 화해 역할을 한 강경선 교수에게 벌금 2000만원을 부과하였다. 반면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직 제공에 대한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위반 부분에 대하여서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동안 곽 교육감 측의 입장에 대하여는 그 찬부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변이 있었기에 여기에서는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발생한 선거비용 보전 문제를 중심으로 박명기 교수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판결 후 남아 있는 문제점을 생각해 보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돌이켜보면, 돈 2억 원이 박 교수에게 건네어 졌다는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사람들은 우선 박교수가 후보 사퇴의 대가로 큰 ‘이득’을 보았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판결에서는 박 교수가 선거비용으로 5억 원 가령을 지출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교수는 곽 교육감으로부터 2억 원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선거 비용에 관한 한 3억 원이라고 하는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박 교수의 선관위 신고 재산은 5억 원 가량이고, 박 교수는 후보를 사퇴하였기에 선관위로부터 선거 비용을 보전 받지 못했다). 즉 박 교수로서는 이번 선거를 재정적으로 결산해 볼 때 이득은커녕 꽤 커다란 손해를 본 결과가 된다. 공직선거법 상의 ‘대가’ 라는 말에는 공정해야 할 선거에서 후보자가 부당이득을 보았다고 하는 개념, 즉 후보 매수의 관념이 들어 있다고 할 것인데, 박 교수의 경우는 반대로 이득이 아닌 큰 손해를 보았다는 것이니, 박 교수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재판부는 판결에서 이 부분을 굳이 언급하고 있지 아니한데, 그 이유는 후보 사퇴의 대가로 돈이 제공되었느냐의 여부가 관건이지 선거 빚의 잔존 여부는 공직선거법상 책임 면제의 요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선거 비용 보전의 대상에서 제외된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득표율이 15% 이상이면 선거비용 전부를, 10%에서 15% 사이이면 절반을 보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만일 박 교수가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사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어떠하였을까. 그해 4월 26일 발간된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그 무렵 야권후보로는 박명기 후보가 28.1 %, 곽노현 후보가 20.6%로 선두를 이루고 있었고, 7명이 난립한 여권 후보로는 이원희 후보가 선두였다. 전체 후보를 상대로는 박명기 후보가 25.7%로 1위, 이원희 후보가 13.4%로 2위였으며, 그 다음으로 곽노현 후보 9.2% 등이었다. 박 명기 후보는 보수후보 와의 1대 1 가상대결에서도 41.3%를 얻어 상대 후보를 2배가량 앞섰다. 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박명기 후보가 실제로 선거에 임하였다고 가정하면 당선은 논외로 하더라도 상당히 선전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적어도 그가 지출한 선거비용은 일정 정도 선관위로부터 보전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고 하겠다. 여기에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교육감은 34.34% 득표율로 2위 이원희 후보와 1%포인트 차로 당선된 사정을 더하면, 박 교수의 후보 탈퇴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명분에서 의미가 있었고 그 사퇴는 야권 후보 당선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후보 단일화는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공직 선거에서 상당한 비중을 두고 추구하는 중요한 선거 전략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후보 단일화 전략이 일반적으로 야권 후보 당선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대선의 예로는 1987년의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단일화 실패가 있고, 200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소속 당과 정치적 이념이 다른 김종필 후보와 연합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된 예가 있다. 당시 여당의 이회창 후보는 같은 당의 이인제 후보가 경선 결과에 불복 탈당하여 제3의 대통령 후보가 됨으로써 자신의 대선 낙마에 큰 변수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이 여야의 후보가 각자 단일후보를 선출해 내느냐 여부가 선거에서 당락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경우 흔히 각 후보들 간의 정책 연대는 물론 집권 후의 선거 비용 보전과 직위 배분 등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러한 ‘대가’ 관계의 약속이나 관행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문제시 된 바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결선 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선거법제 하에서 후보 단일화는 후보 난립을 억제하고, 비슷한 정책을 표방하는 후보들이 서로 하나로 합쳐짐으로써 국민들의 선택을 용이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얻어 당선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정책 실현 과정에서 안정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그 외에 후보 단일화가 선거 문화나 공정선거에서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후보 단일화 과정과 관련하여 가급적 불이익을 보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것을 생각해 봄 직하다. 특히 단일화를 위해 어렵게 사퇴한 후보에 대하여 그러하다. 후보의 자리를 사퇴함으로써 선거에 나서지 않게 된 후보자는 그가 선거에 임하는 과정에서 쌓아 온 모든 것을 그가 양보하는 후보에게 이전하고 후보가 되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사퇴의 용단을 내린 후보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별다른 손해 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보완해 주는 것이 합리적이며, 적어도 그때까지 지출한 선거비용은 보전해 주는 것이 공평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구체적으로 후보자간의 사적인 합의 사항으로 하게 할 수도 있고, 혹은 그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컨대 단일 후보의 선거 비용으로 합산하게 하는 등) 선관위에서 보전해 주도록 할 수도 있겠다. 어느 방안이든 장단점이 있겠으나, 선거 비용이라고 하더라도 사적 ‘거래’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후자의 방안이 나아 보인다.

 

이상의 고려 요소들을 모아 보면, 이번 사건은 후보 단일화라는 통상의 선거 과정에서 수반되는 사퇴 후보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든 선거 비용을 전혀 보전해 주지 않는 공직선거법의 한계로 발생했다고 보아야 할 측면이 있다. 이는 공직선거법에 개선할 부분이 있음을 시사한다.

 

여성 참정권을 최초로 주장했으며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 하원의원에 입후보할 무렵인 1865년 경 이렇게 주장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신 중의 하나는 국가의 공무를 맡기고자 하는 후보자에게 단 한 푼 이라도 선거 비용을 지출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개의 후보자가 지출하는 선거비용은 국가나 지방의 공금으로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밀은 후일 하원의원에 입후보하였을 때 이 원칙을 지켜 선거 비용을 쓰지 않았고 선거 운동도 하지 않았다.

 

미국 연방 선거법에 의하면, 후보자들끼리 대가 제공을 약속하고 사퇴를 하는 경우에도 이는 정책적 선택일 뿐이라는 전제하에 우리 공직선거법상의 소위 ‘사전 매수죄’ 조차도 처벌하지 않고 있다. 다만 유권자 매수만을 처벌하고 있는 데, 이 경우에도 선거가 끝난 이후 후보자를 지지해준데 대한 사후적 보상은 매수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시행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선거 제도가 우리 제도에 비하여 특별히 선거의 청렴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볼 이유는 없겠다. 이 미국 선거제도와 다른 나라의 예를 비교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현재의 공직선거법은 현실 정치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후보 단일화 과정과 그에 이은 적법한 후보 사퇴 행위, 그리고 그와 불가피하게 연관되는 선거 비용 보전 등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조정이 결여된 측면이 있다고 보여 진다.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관련자 모두가 커다란 손해를 입었을 뿐 아무런 이득을 본 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사퇴의 대가로 돈을 주고받는 부분만 부정적으로 부각된 아쉬움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그 개선점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아울러 향후 이어질 재판에서 이와 같은 미진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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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126094619&sectio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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