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05] 사형, 국가의 실패 숨기는 가장 쉬운 방법

[시민정치시평 105]

 
사형, 국가의 실패 숨기는 가장 쉬운 방법
: 성폭력범죄에 강성일변도 정책 되풀이되는 이유는?

박주민 변호사

최근 강력범죄와 성폭력범죄가 계속해서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그러자 경찰은 지난 9월 3일 성폭력과 강력범죄에 대한 총력대응을 선포하면서 방범비상령을 선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다중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불심검문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고(이미 명동, 홍대입구 등에서 불심검문을 행하고 있다), 아울러 우범자 정보 수집을 위한 근거규정을 마련하는 등 우범자 관리대책을 강화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법무부는 화학적 거세의 대상자 확대, 보호감호제의 재도입 등을 강력범죄 대책으로 천명하였다.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강력범죄의 예방을 위하여 지난 15년간 중단된 사형집행을 재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일부 국회의원들은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물리적 거세를 도입하려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정부와 정치권에서 내놓고 있는 강력범죄에 대한 대책들은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흉악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위험한 사람으로 낙인찍어 우리 사회에서 철저하게 격리ㆍ배제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회공동체의 연대성을 파괴하고 헌법의 기본권보장 정신과 민주주의를 침탈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만약 효과마저 없다면 우리가 굳이 이런 비민주적이고 기본권 침해적인 수단들을 선택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내놓고 있는 강력범죄에 대한 강성일변도의 대책들(이하 ‘강성일변도의 형사정책’)이 효과가 있는지를 중심으로 그 타당성을 살피도록 하겠다.

먼저 불심검문의 확대이다.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경찰의 불심검문이 무차별적으로 실시되었던 2009년의 경우 서울에서만도 무려 644만 여명이 불심검문을 받았으나 정작 불심검문을 통해 검거된 강력범죄자는 전체 강력범죄 검거자 수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불심검문을 통한 검거자수가 적다는 것은 이미 범죄를 계획하고 있던 자는 불심검문이 실시되더라도 이를 의식하여 계획했던 범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수많은 우발적 범죄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불심검문이 예방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불심검문의 확대는 실제로는 강력범죄의 예방과 범죄자의 검거에 전혀 효과를 가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화학적 거세의 확대적용이나 물리적 거세의 도입이다. 성폭력범죄 중에서 도착증과 같이 참을 수 없는 성충동에 의해 성폭력범죄가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오히려 성폭력의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성에 관한 이중적 윤리가 만연한 결과 성폭력에 대하여 관대한 문화로부터 기인하는 바가 크다. 또한 성폭력의 기본범죄인 강간죄가 친고죄로 되어 있어 성폭력을 범해도 나중에 적당히 피해자와 합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는 사회적 시선과 법원의 태도 등 사회적ㆍ문화적 여건 속에서 조장되어 왔다. 아동 성폭력범죄도 비록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성폭력을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런데 화학적 거세의 확대적용이나 물리적 거세의 도입은 성폭력을 조장하는 사회·문화적 구조의 문제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성폭력 범죄자를 정신이상을 가진 “정신질환자” 혹은 “낯선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지극히 위험한 일부 몇 몇 성폭력 범죄자만을 제거하면 성폭력에서 안전한 세상에 살 것처럼 시민들을 호도하지만, 근본적인 성문화와 인식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진정 시민들에게 성폭력으로부터의 안전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다음으로 사형집행의 재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집행이 있었다.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 15년째이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사형집행이 중단된 이후 10년(1998년-2007년) 동안 살인범죄는 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의 10년 기간을 잡아 보아도, 살인범죄 건수는 2001년 1,064건에서 2010년 1,262건으로 증가율은 18.6%였다. 반면에, 사형의 집행이 비일비재했던 시절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살인범죄의 증가율은 무려 31%였다. 사형의 집행이 중단된 이후의 살인범죄 증가율이 그 전보다 오히려 더 낮은 것이다. 이는 사형집행 혹은 사형집행에 대한 엄포가 범죄율을 낮추거나 범죄를 예방하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보호수용제의 도입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법무부가 도입하겠다는 보호수용제는 2005년 폐지된 보호감호제의 복사판이다. 그런데 보호감호제가 폐지된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보호수용제가 재범의 예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보호감호 시행 당시 보호감호 출소자들은 다른 범죄자들보다 오히려 재범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보호수용제의 도입 역시 범죄의 예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인권침해적이고,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효과도 없는 강성일변도 형사정책이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계속 되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그것이 국가의 실패를 숨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즉, 국가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이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불안해진 사람들이 이웃이 아닌 국가의 공권력에 의존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범죄로 드러난 사회, 경제적 정책의 실패를 호도할 수 있게 된다. 토크빌에 따르면,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는 국민과 국가 사이에 아무런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민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탄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토크빌은,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도 프랑스 국민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고 진단했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프랑스혁명 이후의 프랑스와 비교한다면 어떠할까. 이제 우리는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위하여, 나아가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에 대한 사회, 경제적 보호의 조건들을 고민하게 하기 위하여, 지금 당장 불안을 잠재우는 대책이 아닌, 평화와 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을 요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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