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32] “사고사보다 높은 직업적 암 사망률, 대책은?”

 

[시민정치시평 132] 

 

“사고사보다 높은 직업적 암 사망률, 대책은?” 

직업성 암과 산재 보상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신년이 되면 한해의 소망이나, 덕담 그리고 계획의 일 순위는 건강이다. 건강과 관련한 불안감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도 있지만, 의료비 부담 등 경제적인 문제도 크다. 이에 시간과 돈을 들여 운동을 하고, 민간 암 보험료를 꼬박 꼬박 내고 있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 중 가장 일 순위는 “암”에 대한 것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 암 사망자는 7만2046명으로 사망원인의 28.2%를 차지하여 사망 원인 일순위이다. 이는 10만 명당 140명에 달하는 것으로 교통사고보다 10배 높은 것이다. 더욱이 10년 전보다 25%가 증가한 것으로, 매년 증가율이 상승하고 있다. 암에 대한 잘못된 인식 중의 하나가 암이 유전, 흡연이나 식습관 등 개인적인 원인으로만 치부하는 것이다.

 

2007년 국제 노동기구(ILO)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 노동자는 60만 명으로 추정되고, 52초마다 1명씩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같은 해 미국 산업의학회지 발표 논문에는 직업적 사망의 1순위가 ‘암’으로 32%를 차지해서, 사고성 사망 17%보다 높다고 분석되었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에서는 1997년 매년 암으로 사망하는 50만 명 중에서 최소한 4%인 2만 명이 직업적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같은 보고서에 의하면 모든 암의 6%-10%가 직업적 발암물질에 노출되고, 특히 폐암은 10%, 방광암은 21%-27%, 악성 중피종은 100%에 직업에 기인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은 전체 암 중에서 직업성 암이 4%- 20%를 차지한다. 더욱이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암 중에서 직업성 암 비율은 약 80%에 달한다.

 

2012년 국립암센터가 의뢰하여 진행된 <한국의 직업성 암 부담 연구> 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의 암 사망자 6만7112명중 가운데 8.5%인 5691명이 직업적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석면의 폐암유발이 높아 남성 폐암의 12.4%, 여성 폐암의 6.7%가 석면에 의한 것으로 건설노동자, 설비노동자등의 위험이 지적되었다.

 

2010년 한국의 암 사망자중 미국 국립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수적 기준인 4%를 적용하면 직업성 암에 의한 사망자는 2800여명을 상회하게 된다. 1만5623명이 사망한 폐암의 경우는 약 10%인 1500여명이 직업성 암으로 추정된다. 최소한 지난 10년간 2만5000여명이 직업성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2800- 6000명 사이가 매년 사망하는 직업성 암의 산재신청과 산재인정은 그야말로 일천한 수준이다. 한국의 최초 직업성 암 산재인정은 1993년 석면 방직공장에서 18년간 근무하던 55세 비흡연자인 여성 노동자에게 발생했다. 그 이후 2000년까지 약 8년간 직업성 암 산재인정은 35건에 불과했다. 2000년 이후에는 연평균 195건 내외가 직업성 암으로 산재신청을 했고, 산재승인은 30여건 내외에 그치고 있다. 이는 산재보험 가입인구 10 만 명당 0.13- 0.23명 수준으로, 프랑스의 백분의 일 수준이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의 수십 배 낮은 수준이다. 발암물질 노출이 용접, 도장, 조선업, 금속 등 생산직 노동자, 규모가 영세할수록 더욱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데 비해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산재 보상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인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원인으로는 네 가지 정도의 구조적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구조적 원인은 지난 50년간 달라지지 않은 직업성 암 산재인정 기준이다. 산재보험법 제정 이후 50년이 되었으나, 직업성 암 인정기준은 개정된 바가 없었다. 현재 국제 암 연구소(IARC)는 108개를 발암물질로 제시하고 있고, 19개 직업에 대해서 발암성을 경고 하고 있으며,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314종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산재 보상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국제 노동기구(ILO) 직업성 암 목록도 21종이다. 그러나 한국의 직업성 암 산재인정기준은 11개 발암물질과 9종류의 암으로 제한되어 있다. 턱 없이 낮은 수준이다.

 

다음으로 발병 숫자에 비해 직업성 암 산재 신청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한국의 직업성 암 사망자의 76%가 55세 이상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사업장에서 대부분의 정년은 55세에서 60세이다. 다른 직업병과 달리 직업성 암은 잠복기가 10년- 15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직 혹은 퇴직하고 발병한 경우가 많아, 이전의 작업환경과 연관을 짓기 어렵기도 하다. 이를 해소 할 수 있는 것이 특수건강검진과 건강관리 수첩 제도인데, 현재 건강관리 수첩은 14종의 물질로 한정되어 있다.

 

셋째는 직업성 암 산재 인정 절차의 문제이다. 직업성 암은 잠복기가 길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역학조사를 거쳐서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종전에는 근로복지공단 지사 차원에서 비전문가들이 역학조사 자체를 의뢰하지 않고 불승인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역학조사를 실시하더라도, 역학조사 인력의 문제로 부실한 역학조사가 진행되거나, 한국타이어의 경우처럼 사업장에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삼성 직업병의 경우처럼 역학조사 결과에 대한 공정성 문제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 왔다. 또한, 산재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질병판정위원회의 경우도 직업성 암에 대한 비전문가들이 판정하는 사태가 발생해 왔다. 역학조사 과정과 질병판정위원회 운영의 문제는 최근 노사정 논의에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고, 이후 정착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산재 승인에 있어 노동자에게 부과되어 있는 입증책임의 문제이다. 사고성 재해나 일반 직업병의 경우에도 어렵지만, 입증책임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은 직업성 암에 대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직업성 암이 화학물질에 의한 것이 많다. 그러나 노동자는 자신의 작업과정에서 어떠한 발암물질이 사용되는지,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러한 기록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현행에는 산재 신청 이후에 사업주가 산재신청에 대한 조력의무가 있으나 처벌 조항이 없어 무용지물이고, 사업장 입장에서는 관련 자료를 보관하지도 않고, 설사 보관하고 있다 하더라도 왜곡된 자료이거나, 허위 조작한 자료가 제출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암에 걸려 투병중인 노동자나, 유족들에게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러니,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인정은 산 넘어 산이고, 많은 노동자들이 3년- 5년에 걸친 지리한 절차 속에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체 죽어나가고 있다. 평생 비계공으로 일했던 건설노동자는 산재인정 투쟁을 하다가 유명을 달리했는데, 급기야 5년째 투쟁에서 사망하고 나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다.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셈이었다.

 

직업성 암의 문제는 건설, 용접, 주물 등 생산직 고위험 노동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 연말에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의 유방암이 산재승인을 받았다. 이 노동자는 교대제 근무와 방사선 취급, 화학물질 취급의 3가지 요인이 중첩되어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판정 받았다. 유방암에 대한 산재 인정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여성 노동자 유방암 발병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교대제 야간 노동은 2급 발암물질로 여성 노동자에게는 유방암 발병 비율이 높아진다. 간호사 노동자, 대형 유통마트 등 서비스 노동자들의 문제로 되는 것이다. 작년에는 흔히 발행하는 영수증에서 ‘비스페놀 A’라는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은행이나 주차장 마트 등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영수증에 발암물질이 있는 것이다. 고객도 위험하지만 매일 영수증 발급을 하고 있는 창구 담당 노동자나, 계산대 노동자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새집 증후군이라고 통칭되는 건축자재에서 쓰이는 발암물질도, 새집에서 살게 되는 모든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건축물에 사용되는 시멘트, 가구, 내장작업, 도장작업등을 하는 건설노동자가 노출되는 발암물질의 심각성이 같이 논의 되어야 한다.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발암물질의 문제는 결코 소비의 문제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발암물질을 생산하고 사용하고 유통하는 모든 생산구조의 흐름에서 차단되지 않는 한 근원적인 해결을 할 수가 없다. 생산과 유통의 단계에서 발암물질을 차단하지 않는 한 고소득층이 사용하는 “발암물질 없는 제품이 또 하나의 상품화” 될 뿐이고, 저소득층과 생산과 유통현장의 노동자는 여전히 발암물질에 노출되고 직업성 암에 걸리는 악순환 구조가 반복될 뿐이다. 민주노총에서는 발암물질과 직업성 암의 인정기준을 확대하는 요구를 수년째 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자동차 생산현장에서 발암물질에 대한 조사, 추방 운동과 절삭유, 세척제등 발암물질을 생산과정에서 없애는 노사협약,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하는 ‘건강한 자동차 만들기”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 사업을 시발로 민주노총을 포함하여 노동조합, 환경단체, 생협 등 소비자 단체를 구성으로 하는 “발암물질 국민행동”이 발족되었고,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서 발암물질을 추방하는 공동행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발암물질 없는 지역 만들기 사업을 여수, 광양, 울산, 양산 등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제 일터에서의 발암물질 추방과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보상 확대가 선순환 구조를 가지면서 발전해 나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참여사회연구소가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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