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02] 소득주도성장 비판을 들여다보니…

소득주도성장 비판을 들여다보니…

성장중시 ‘서강학파’의 비판, 불충분하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교수

 

문재인 정부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한 가지 근거로 알려진 ‘임금 없는 성장’의 논의는, 생산 활동의 성과를 나타내는 노동 생산성이 상승한 데에 비해 노동자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의 실질적인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온 그간의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노동은 노동자에게는 생활의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활동이지만 사용자에게는 이윤 창출의 수단이다. 이에 따라 임금은 국민 경제의 관점에서는 노동자 가구의 생계 기반으로서 수요(소비재 구매)의 원천이 되지만, 사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 비용에 지나지 않는다. ‘임금 없는 성장’ 논의를 둘러싼 최근 경제학계의 논쟁에서는 노동과 임금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다. 

 

노동의 평균적인 생산성을 계산하려면 산출물의 양을 투입된 노동의 양으로 나누어 측정하면 된다. 이 때 산출물에는 공장이나 설비와 같은 자본재가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본재 또한 노동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임금의 구매력은 생활의 유지를 위해 임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재의 양으로 파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와 같은 계산 방식은 사실 지극히 정상적이고 표준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문제라는 것일까? 최근의 논쟁은 이 계산 방식에 대해 박정수 서강대학교 교수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박정수 교수의 주장은 노동 생산성과 임금의 실질 가치를 비교하려면 ‘GDP 디플레이터’라는 물가 지수를 공통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을 쉽게 풀어보자면, 노동 생산성과 임금을 비교하기 위해 임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생산물의 양을 잴 때에는 자본재를 포함한 전체 산출물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계산 방식은 단지 기술적인 차이일까?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 차이에는 노동과 임금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임금을 생활과 수요의 기반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임금으로 살 수 있는 소비재 양과 노동이 실제로 만들어낸 산출물 양의 괴리에 주목하게 된다. 일정 조건 하에서 노동 생산성이 개선되면 결국 국민 경제 내 누군가에게는 더 많은 산출물이, 즉 더 큰 실질 소득이 분배된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노동자 가구의 실제 생활수준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다면 이는 소득 분배가 이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했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소득 분배 변동의 경제적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불평등의 심화는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1990년대 이후 여러 연구의 결론에 따르면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정수 교수가 제안하는 것처럼 임금의 실질 가치를 따질 때 자본재를 포함해 전체 산출물을 고려한다고 해보자. 이렇게 하면 실은 노동생산성 크기와 임금 크기의 차이는 단지 산출물의 판매 수입에서 노동 비용을 차감한 일종의 마진과 다르지 않게 된다. 여기서 임금은 노무비 원가일 따름이다. 사용자의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계산이 당연할 일이다.

 

이제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이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되짚어 보자. 박정수 교수의 문제제기에 대한 반론은 지난 5월 10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심포지엄에서 제시되었다. 주상영 건국대학교 교수는 박정수 교수가 노동 생산성을 계산할 때에는 전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반면, 임금을 계산할 때에는 5인 이상 상용근로자를 대상으로 함에 따라 임금이 과대평가되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 문제를 바로잡으면서 박정수 교수가 제안한 대안대로 명목 변수 자료로 다시 계산한 결과는 ‘임금 없는 성장’ 논의가 적절했음을 오히려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토론 과정에서는 박정수 교수가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선행 연구로 인용한 Bosworth and Perry (1994) 논문도 검토되었다. 이 저자들의 원래 주장은 임금의 실질 가치를 구할 때 소비재만 고려된 ‘민간 소비 지출(PCE) 디플레이터’를 적용하자는 것이지 박정수 교수처럼 ‘GDP 디플레이터’를 쓰자고 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 있었다.

 

박정수 교수의 문제제기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첫 번째 기여는 물가 지수로 관심이 모이면서, 그동안 자본재의 상대 가격이 소비재에 비해 하락해온 현상이 노동자 가구의 실질 소득 감소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시사점이 확인된 것이었다. 이는 풀어서 설명하자면, 노동 생산물 가운데 소비재가 다른 재화보다 비싸질수록 소비재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로서는 불리해진다는 의미이다. 이 시사점은 하준경 한양대학교 교수가 심포지엄 토론에서 제기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기여는 주상영 교수의 반론 과정을 거치면서 임금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나게 된 점이었다. 이 두 사실 모두 어쩌면 우리 경제가 겪어온 분배 악화의 단면일 것이다. 

 

이후 박정수 교수 측의 재반론이 있었다. 하지만 제기된 반론에 대한 반박으로는 현재로서는 불충분해 보인다. 주상영 교수가 계산한 ‘조정 노동 소득 분배율’과 달리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노동 소득 분배율은 상승했다는 박정수 교수 측의 지적은 실망스럽다. 한국은행의 공식 자료가 자영업 소득을 모두 자본 소득으로 간주하고 있어 분석을 위해서는 별도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동의의 기반이 넓다. 예를 들어 이미 1950년대에도 어빙 크래비스(Irving Kravis)의 연구 등에서 노동 소득 분배율 산정 시 자영업 소득 가운데 얼마만큼을 노동 소득으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무려 60년 전에도 말이다. 어쨌든 필자는 이 논쟁이 앞으로는 노동 소득 분배율의 측정 방식을 둘러싸고 더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생산적 논의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소득 주도 성장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영세 사업장 가난한 노동자들의 형벌과도 같은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ILO 핵심 협약인 결사의 자유 및 강제 노동 금지의 노동 기본권마저 부인되는 세계적인 노동 후진국의 모습이 바로 일인당 국민 소득 3만 불 시대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주력 산업이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어려운 상황에 경기 침체가 겹치고 제도 개혁이 지연되면서 경제의 체질을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도리어 약자들에게 고통을 더한 부작용이 없지 않았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적극적인 재정 대책으로 그와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떠나온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노동은 사용자의 이윤을 위한 수단임을 넘어서 마땅히 그 기본권이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할 시민의 생활이기 때문이고, 임금은 단지 생산 비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효 수요의 원천이자 시민의 생계를 지켜내는 소중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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