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71] 정세균이 옳다 : 국회의장의 중립성

정세균이 옳다

국회의장의 중립성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20대 정기 국회가 열렸다. 여소야대로 시작한 20대 국회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두고 심한 격랑을 일으켰다. 우병우 사태, 사드 논의 언급이 발단이었다. ‘국회의장이 당적을 떠나야 한다’는 국회법 20조를 들어 여당은 ‘정치의 중립성’ 훼손을 거론하면서 거세게 반발했고, 야당은 ‘국민 눈높이를 고려한 쓴소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여론은 연일 여야 간 기 싸움 양상으로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국회의장 사퇴는 물론, 의총을 통한 향후 의사 일정 거부, 국회의장실 점거 등 여당은 집단행동으로 초강수 대응을 했다. 추경 예산 처리를 미룬 채 국회는 대결 국면으로 몰입해 이틀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아 추경 예산을 처리했지만 이런 대결 국면은 언제고 터질 분위기다. 민생 국회를 기대했던 국민의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정략적 정국 운용은 국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구태의연한 추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국회의 오명을 불식시키기보다 깊은 우려만 낳았을 뿐이다.

 

국회의장의 중립적 위치

 

이번 논란의 핵심은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이다.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해 국회의장은 취임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당적을 포기한다. 당적을 떠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에서이다. 여당은 당적 포기를 ‘정치의 중립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개회사 자체가 특정 정당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우병우 사태, 사드 논란은 여당의 입장에서는 민감한 아킬레스건이었다. 국회의장의 의견 개진을 특정 정당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야당의 편 들기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나 특정 정당의 입맛에 따라 편향성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지 아직 명쾌한 대답이 없다. 듣는 사람에 따라 거슬린 말이 편향된 것으로 판단된다면 어느 쪽이든 편향된 견해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논란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의 선출 자체가 여소야대 국회를 상징화하는 사건이다. 친여 성향의 발언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몽상에 가깝다. 물론 국회의장의 당적 포기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요식 행위일 수 없다. 국회의장의 특권을 활용하여 특정 이해관계를 충족시킨다면 위험천만한 일이기에 사전 예방 차원에서 필요한 제도적 장치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장의 지위와 특권을 활용하여 특정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면 분명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이다. 예컨대 첨예하게 대립된 법안을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통과된다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직권상정을 절차상 힘의 우위로 해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여당 주도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야당은 정치적 중립성을 거론하기보다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곤 한다.

 

이번 사건의 독특함은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두고 일으킨 여당의 반응이라는 점이다. 여당의 입장에서 국회의장의 개회사를 문제 삼을 빌미가 바로 정치의 중립성이다. 문제는 절차 문제가 아닌 국회 수장으로서 국회의장의 발언 수위다. “양심에 따라 자기 직분을 다해야 한다”는 헌법상 책무를 강조하면 국회의장의 발언은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이해관계를 떠나 시국 현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국회 수장의 발언으로 볼 경우 엄연한 사견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계적 중립은 어떤 말도 하지 말하는 뜻으로 이해된다.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자로서, 권력 분립의 한 주체로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회의장의 책무이다. 지위의 중립성과 가치의 중립성을 엄격히 구분할 경우 가치의 중립성은 적용될 수 없다.

 

개회사의 대상을 놓고도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문제다. 국민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지, 동료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정략적 차원에서 해석된 개회사는 끊임없이 논란이 반복될 것이다. 각 당은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논란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개회사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국회의장의 대표성

 

그런데도 국회의장의 중립성엔 궁금증이 남는다. 기계적 중립을 고수할 경우 현안에 대한 침묵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논란은 피하고 모두 합의된 의사 일정만을 소개하는 개회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직능의 대표성을 생각하면 쉬운 대답이 가능해 보인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입은 당을 대표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우병우 사태, 사드 논란 등 현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침묵을 정치의 중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여당의 대표성은 매우 중요하다. 책임지는 국정의 파트너로서 의견을 듣고 싶은 게 국민의 생각이다. 견해 표명이 곧 책임지겠다는 신호인 것이다. 침묵은 무책임의 방편이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침묵은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함을. ‘비서 대표’라는 말은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뼈있는 농담이다. 대표성의 차원에서 보면 침묵은 보기에 따라 책임 회피일 뿐이고, 정치적 중립은 이런 침묵의 또 다른 표현이다.

 

우리는 국회의장의 ‘대표성’이 어떤 의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회 수장으로 당당하게 현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지, 아니면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할 말도 포기해야 하는 자리인지 묻고 싶다. 지위 남용은 분명 문제지만, 허수아비 같은 국회의장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현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은 소수만의 특권이 아니다. 국회 또한 이 역할을 다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은 이를 위한 것이고, 국회의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자격마저 부여되고 있다. 국회의장의 발언이 진짜 문제라면 언제라도 문제를 제기할 표현의 자유가 있다. 이런 자유 없이는 국회는 거수기에 불과하다. 반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국민의 관심사는 커지고, 현명한 중론이 나오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선 껄끄러운 발언도 존중되어야 한다. 설사 생각이 다르고, 대통령의 입장과 대립된다 해도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문제의 발언은 반론의 기회로 교정하면 된다. 타당한 절차를 통한 합당한 비판은 합리적 토론에 꼭 필요하다. 그러나 표현과 행동은 다르다. 특정 발언과 그 즉각적인 대응과정에서 표현이 요구되지만, 행동은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특정 목적의 쟁취를 위한 대응으로써 집단행동은 표현의 자유와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

 

의견의 차이를 빌미로 힘겨루기 식 집단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표현의 자유는 획일적 가치를 지양한다.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소신 있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능한 사람은 아집을 부린다. 현명한 사람은 소신 있게 행동한다. 국회를 진정 대표할 수 있는 소신 있는 국회의장을 기대해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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