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336] 누구를 위한 사시 존치? 실종된 사법 개혁?

누구를 위한 사시 존치? 실종된 사법 개혁?

한 로스쿨 지지자의 사시 존치론 비판

 

한상희 건국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법무부의 사법시험 연장안은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우리나라 행정의 난맥상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지난달 법무부는 내년부터 폐지가 법률로 확정된 사법시험을 느닷없이 향후 4년동안 연장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반발한 로스쿨 학생들은 학사 일정 중단, 변호사시험 거부 등 집단 행동에 나섰고, 로스쿨협의회나 로스쿨교수협의회 같은 교육 단위들에서는 격한 비판과 함께 변호사·사법시험 등의 출제 거부까지도 불사했다. 대법원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발표했고 교육부는 아예 사시 존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어놓았다. 우리나라 법률가 양성체계가 유례 없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태산을 뒤흔든 당사자인 법무부는 천하태평이다. 책임 추궁은커녕, 주무자인 차관과 법무실장은 다른 곳으로 전보발령됐고 아직 그 후임은 소식도 없다. 엄청난 사달을 일으켜놓고도 두 손 놓고 그저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변호사시험은 이번 월요일부터 진행 중이다. 

 

이 사달은 10여년의 논의 끝에 채택된 사시 폐지-로스쿨 설치라는 사법 개혁의 큰 틀을 일거에 뒤엎는 것이다. 사시-사법연수원이라는 법률관료 양성체계를 폐지하고 로스쿨-변호사시험이라는 법률 전문가 양성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국민에 봉사하는 법률가들을 양성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온전히 부정해 버린 것이다. 

 

나아가 이렇게 급작스러운 입장 변화는 로스쿨학생들의 신뢰를 그대로 저버린 것이 된다. 실제 로스쿨이 개원한 2009년부터는 로스쿨을 둔 25개 대학교에서 법대를 없애면서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았다. 여기에 2017년의 사법시험 폐지라는 예고는 오랜 준비 기간을 요하는 사법시험보다는 학부에서 다른 전공을 선택하고 졸업 후 로스쿨에 진학하는 경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갑작스레 사시 연장안을 말하는 것은 이들에게 법무부가 한 입으로 두 말한 것에 다름 아닌 격에 돼 버렸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법무부의 이런 번복은 누구의 어떤 이익에 봉사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가 기관의 정책 결정은 필연적으로 국민 전체의 이익 혹은 대다수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시 연장안은 그것이 봉사하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근거도 타당성도 없는 ‘금수저, 흙수저론’에 기대기는 했지만, 그것이 흙수저의 신분 상승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제도인지, 그리고 그 목적 달성의 수단이 왜 굳이 사시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예컨대, 논쟁 과정에서 가장 부각됐던 비용론을 보자. 로스쿨은 3년간 4000~600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이 필요하다. 장학금을 감안하면 대략 3000~4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반면 사시의 경우에는 고시 학원비(이도 적은 금액은 아니다) 정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로스쿨의 경우에는 그것으로 끝이다. 반면에 사시는 엄청난 고비용, 저효율의 사법연수원체제로 이어진다. 사시는 합격하고 난 후에 사법연수원에 가서 2년의 연수를 받는데 이 비용이 적지 않다. 2년간 생활비만 해도 약 6000만 원 정도 지급되며 사법연수원에서의 교수 및 학사관리 비용, 시설 유지·관리 비용 등 총합 약 8000만 원 이상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 지출된다. 그리고 이 모든 비용은 국민이 낸 혈세로 충당된다. 막말로 갑부의 자녀가 변호사가 돼 “입신영달”하는 데 필요한 교육비용을 우리 서민들의 텅 빈 호주머니를 턴 돈으로 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법연수원의 교육 내용은 변호사 양성이라는 점에서는 극도로 비효율적이다. 최근의 제도 변화에 따라 사법연수원 수료생 중 대다수는 변호사로 진출한다. 판사 임용자는 없으며, 검사 임용도 소수에 그친다. 그럼에도 사법연수원의 교육 내용은 대부분 판사, 검사가 되는데 필요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변호사로 진출하는 사법연수원생들의 교육 수요와는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나마 행해지는 변호사교육조차도 고객의 의뢰에 따라 공익을 위해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도전하는 창조적 변호사를 양성하는 데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이 논쟁 과정에서 나왔던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경로의 보장이라는 의제는 나름 타당하다. 다양성이라는 것 자체가 민주 사회에서는 상당히 가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시는 그 다양성의 명제와는 전혀 무관하거나 그에 역행하는 제도다. 사시의 경우 사법연수원에서의 교육은 동일한 교수진이 동일한 교육 과정으로 동일한 교육방식과 평가기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100명이건 1000명이건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획일화된 산출을 만든다. 과거 ‘300등 이내’ 혹은 ‘500명 바깥’ 등등의 말들이 법률가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것은 이를 말한다. 고객을 위해 그리고 시민 사회를 위해 어떤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의 능력이 아니라 판사·검사라는 기존의 법률관료들에 의해 측정되고 평가된 그 점수, 그리고 그에 기반한 석차만이 그들의 능력을 판단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를 말하면서 음서제 운운하는 주장들은 이런 석차 지상주의에 매여있다. 로스쿨은 입학에서부터 졸업, 그리고 취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평가 기준들이 존재한다. 영어를 잘해 향후 국제적인 변호사가 될 만한 재목이 있는가 하면, 성실해서 변호사시험에 제때에 합격할 만한 재원도 있다. 로스쿨은 이들 중에서 자기 학교 나름의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한다.(이 기준에서 혹시 비리나 부정이 있다면 그것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사시 존치론자들이 말하는 음서제가 이런 비리·부정을 의미한다면 그 로스쿨을 형사고발해 주기 바란다.) 판례나 법 이론에 밝아 소송에 뛰어난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말주변이 좋아 고객과의 관계설정에 유능한 사람도 있다. 혹은 부모를 잘 만나 권력의 덕을 볼 만 하거나 돈 많은 고객들을 끌어 올 것 같은 변호사도 있다. 사기업과 결코 다르지 않은 로펌들 또한 사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중에서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 신참 변호사를 채용한다. 사시 출신들이 애지중지하는 ‘석차’라는 것이 오늘날에는 결코 객관적인 잣대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로지 선택한 로스쿨이나 로펌이 부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장의 원리이다. 

 

사실 로스쿨은 국가 법률 관료들이 담당해 경직돼버린 사법연수원과는 달리 시장에 상당히 민감하다. 졸업생들이 나름 괜찮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어야 ‘장사’가 되며, 그를 위해서는, 변호사시험이 걸림돌이 되기는 하지만, 그 한도 안에서라도 법률 서비스 시장이 요구하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기업과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변호사를 양성해 내는 제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사법도 서비스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1995년의 사법 개혁 논의 이후의 법률가 양성 제도 개혁의 중심 과제이자 기본적인 목표였다. 로스쿨 제도가 가지는 장기적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현행의 로스쿨 제도가 가지는 한계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그 문제의 90% 이상은 로스쿨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외생적인 것이다. 총 입학 정원을 2000명으로 묶어두고 오직 25개의 로스쿨만 인가함으로써 경쟁의 가능성을 현저하게 축소시켜 놓은 점, 변호사시험이 매년 1500명에 맞추어 상대평가의 방식으로 합격자 수를 통제하고 있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로스쿨 제도 내재적인 한계는 여전히 높은 진입 장벽에 있다. 등록금 문제는 부차적이다. 오히려 그 진입 장벽의 핵은 풀타임의 학생들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재의 구조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혹은 가사일에 종사하면서 파트타임으로 변호사의 양성 경로를 밟은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간로스쿨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무부는 사실상 사시 존치안을 거두었고, 국회 법사위는 나름의 법조인 양성 제도 자문 기구를 만들어 사법 개혁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로스쿨이 이제 8년 차에 접어들고 있으니 이제 로스쿨 제도 그 자체의 점검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다만 이 기구가 또다시 사시 존치 여부에 매달리게 될 경우 국민을 위한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법 개혁 본연의 목표가 희석돼 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 자문 기구의 최대의 목표는 국민과 시민 사회에 봉사하는 법률가의 양성체계를 완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로스쿨교수협의회 등의 교육 단위들도 자체적인 평가와 개혁의 작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비 온 후 땅이 굳듯이 이번에 법무부가 저지른 정책 과오가 로스쿨의 거듭남을 위한 촉발제가 되는, 전화위복의 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나마 큰 다행일 듯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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