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21대 총선, 평가와 전망

IP20200424_좌담회_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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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금) 오전 10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에서 총선평가를 위한 좌담회를 진행했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는 지난 4월 24일 ‘21대 총선,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좌담을 진행했다. 김만권(참여사회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연구위원이 참석하여 이번 총선의 의미와 향후 시민사회의 역할 등을 두루 논의했다.

 

김만권 코로나19라는 전지구적 위기로 세계가 거의 멈춰섰다. 전대미문의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 있음에도, 경이로운 투표율을 기록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신 분들과 함께 이번 총선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총선 국면에서 목격된 중요한 변화지점이 있었는지, 정당체계나 유권자의 특성 등을 들여다보고 나아가 시민사회단체 부설 연구소가 개최하는 만큼 시민사회가 맞닥뜨린 도전과 이후 과제와 역할도 점검해보고자 한다. ‘촛불 이후’라는 국면에서 굵직한 선거가 몇 차례 있었다. 민주당이 180석을 획득하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또한, 이것이 정치질서의 재편인지 두루 의견을 나눠달라.

 

21대 총선 결과, 주류의 교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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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더불어민주당의 180석, 20대 총선부터 내리 4연승. 이런 것들이 부각된다. 하지만 주류가 교체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주류가 교체될 정도가 되려면 주류가 잘 했다는 평가가 따라와야 한다. 주류교체론을 주창하는 분들도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냐?”고 물으면 쉽게 그렇다고 답하진 못한다. 4연승에 대해서도 어떤 연속적인 차원에서 승리를 말하는데 사실 각 선거마다의 특징적인 변수가 있었다. 20대 총선의 경우, 친박공천과 옥새파동이 있었고, 지난 대선은 촛불의 압도적인 흐름, 지난 지선은 남북정상회담 국면이었다. 이번엔 코로나19가 있었다. 4연승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대적으로 민주당이 잘했다고 할 순 있지만, 주류가 보여줄만한 절대적인 수준에서  훌륭한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정한울 주류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선거를 가지고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변화지점이 되는 선거로서 중대선거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에 크게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특히 20대 총선, 2016-17년 촛불 탄핵국면부터 정당 지지기반 등의 변화가 감지되는데 그것의 핵심은 보수 콘크리트 층의 쪼개짐이다. 그 변화가 상당히 깊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도는 아니다. 제도적으로 민주당이 우위에 있는 구도 정도이며, 쪼개진 보수 즉, 잔류보수와 이탈보수로 나뉘게 되었다. 이탈보수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여당 우위가 된 것이다. 이게 구조적이고, 20-30년 지속되는 균열이라면 중대선거, 재배열 등으로 말할 수 있겠는데, 아직은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이번 선거까지 그 구도가 연장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현상유지의 선거였다. 이런 균열이 장기적이고 구조화된걸로 보기는 아직 어렵다.

 

2016년부터 목격되는 정당시스템 변화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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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경 앞의 두 분 모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정치사회의 변화는 정당시스템의 변화와 맞물린다. 그만큼 정당시스템의 성격변화가 중요한데, 당대에 사는 사람들은 그 변화지점을 찾아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데 동의한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 시스템 체인지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사실 민주화 이후 30년간 모든 선거는 ‘새누리당이 집권하거나, 집권할 뻔한 선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새누리당이 상수고, 민주당계열이 합쳐졌다고 깨지고 이런 식의 반복이었다. 어떤 변화의 조짐 2016년부터였다는 데 동의한다. 기존 정당 시스템의 파열이 나타났고, 그것이 보수의 균열이었다. 보수의 균열이 정당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만큼 깊었는데, 탄핵을 겪으며 새누리당 일부가 탈당했다가 이번에 다시 합쳐졌다. 그렇다고 이전처럼 복원된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열린우리당 시절 깨졌던 상처가 복구되는데 10년 이상 걸렸다. 미래통합당도 마찬가진데, 탄핵 이후 지역조직이 깨지고 여전히 복구되고 있지 않다. 이전처럼 새누리당을 기준으로 하던 정당 시스템은 해체수순이 맞다고 본다. 결국 정당시스템에 있어서 2016년에 시작된 변화가 이번 선거로 하나의 매듭 정도 생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한울 지난 총선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의 증가율이 민주당이 더 높긴 한데, 정당득표율로 보면 1당은 미래통합당이다. 지역구 총득표도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 간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서복경 물론 지역구 득표율은 8.4% 정도의 차이다. 그런데 의석은 30% 정도 차이가 난다. 만만치 않은 선거였던 게 맞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참 무서운데, 유권자들은 모두 전략적으로 생각한다. 투표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다 어떤 전략적인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값을 받아들이고 결과를 스스로 재정의한다. 결과로서 180석을 보게 된다. 2016년과 다르게 이번엔 양당경쟁의 선거였다. 선택지가 양당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지형은 복잡하다. 박근혜가 미운데 현 정부도 싫은 사람들도 있고, 다양하다. 단순히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제3지대의 실종과 분열된 보수. 보수 재건은 가능할 것인가

 

이관후 지난 총선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둘 다 별로라고 여기는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에 표를 줬다고 본다. 국민의당 유권자를 보수에 가깝다고 본다면 이번 총선에서 미래한국당-국민의당 대 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을 놓으면 전자가 승리한 선거다. 정당투표만 봤을 때는 그렇다. 그리고 정의당을 여당쪽이 아닌 하나의 단일계열로 두고 본다면 그렇다는거다. 보수는 지난 대선 때도, 홍준표-안철수-유승민의 득표가 문재인 득표보다 많았다. 보수가 경험한 최악의 선거가 지난 대선인데도 그랬다. 정한울 박사의 말대로 보수의 균열이 가장 큰 변수이지, 민주당이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에서 박근혜라는 말뚝을 어떻게 뽑아내느냐가 관건이다. 그게 사라지면 보수연합이 가능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독자적으로 50%를 갖지 못했다. 분명 선거의 종류와 시기, 연합의 방식에 따라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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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울 국민의당 기반이 좀 변했다. 지난 총선에서는 보수/진보 모두에서 오는 표가 있었다. 탄핵 이후 이탈보수의 표가 국민의당 지지기반이었다. 하지만 야당/여당심판론의 입장에서 예전엔 양자심판론의 표가 제3지대인 국민의당으로 모였다면, 이번 총선에서는 야당심판론이 더 컸던 선거다. 유권자들은 우선 양당을 두고 평가해보고 둘 다 별로면 제3당을 찾는다. 그런데 이번엔 미래통합당이 별로나는 구도가 먼저 생긴다. 그러면 제3당을 찾기 전에 선택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보수의 균열의 차원에서도 이 균열을 봉합하려면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다. 예전 민자당 연합의 시절처럼 호남을 고립시킬만큼의 새누리 중심의 기반이 많이 깨졌다. 보수의 근거지로 불려왔던 지역 특히 강원도, 충청지역이 스윙지역으로 바뀌었다. 재배열까지 말하긴 이르지만, 기존의 것이 해체되는 과정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러한 균열이 사회경제적 가치, 이념 재편과 연결된건 아니라는 점에서 구조적이진 않다고 본다. 제1의 균열은 탄핵이었다. 이때 평생 새누리계열을 지지하다 이를 악물고 민주당을 찍은 사람도 많다. 보수층 30중에 20은 탄핵에 찬성하고 10은 탄핵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20은 이탈보수이고, 10은 잔류보수인데 이들 모두 안보나 대북정책에 같은 입장이다. 이 이탈보수는 다시 정치적 개종인 전향(컨버전)하는 이들이 있고, 무당파(탈동원)로 가는 경우가 있다. 이 쪼개진 보수는 여전히 이념적 보수다. 하지만 무당파의 경우, 탄핵이슈가 해결되면 보수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들의 복귀 여부가 관건인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은 태극기 세력을 기반으로해서 중도까지 포괄하려했는데 실패했다. 태극기 세력은 탄핵을 부정한다. 하지만 이탈보수는 미래통합당이 태극기 세력과 단절하기를 바라는데, 지금의 지도부가 태극기 세력의 반발을 완화하면서, 이탈보수를 되돌아오게하려면 ‘삼김’ 급의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통합의 능력은 생각보다 갖추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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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보수의 분열을 비롯해 이번 선거가 민주당 자력의 승리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동의된다. 어쨌든 민주당은 180석을 얻었는데, 그 의석만큼의 책임성과 개혁성을 발휘하기 바란다. 하지만 의석수 만큼의 추진력을 보일지는 낙관하기 힘들다. 촛불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이번 선거는 그간 지속되어왔던 개혁의 흐름으로 볼 수도 있다. 의회권력이 교체되면서 여러 개혁입법이 진행될 조건을 갖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선거에 비해 이번에 민주당이 보여준 정책은 매우 미흡하다. 특히 문재인정부 4년차임에도 제대로 개혁이 추진되거나 실제 이행된 부분은 약하다. 결국, 이런 지점으로 민주당이 평가받아 승리한 선거가 아니다. 유권자들의 입장에선 분명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사회경제 관련 정책에서는 오히려 후퇴한 지점도 있다. 앞으로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김만권 이번 선거가 코로나19 때문에 쟁점이나 정책이 실종된 선거라는 평가가 있다.

 

코로나19는 정치세력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지

 

서복경 동의하지 못한다. 코로나19로 쟁점이 덮인 것이 아니라 코로나19가 제일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거보다 중요한 이슈는 없다. 코로나가 압도한 선거가 맞는데, 그 국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코로나는 불확실한 미래였다. 양당은 이를 대응하는 태도가 달랐다. 그게 핵심이다. 해볼걸 다 해보자고 달려들었던 집권당이 있고, 미통당은 핸들링하지 못하고 책임과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다. 불확실성은 양당 모두에게 열려있었다. 하지만 미통당 지도부는 대구에 내려가지도 않았고, 자기 역량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코로나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는 이 사태가 정치세력에게 일종의 테스트베드(testbed)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한울 코로나 영향에 있어 위기니까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밀어주자는 결집효과를 불러왔다는 건 현상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그것이 꼭 ‘묻지마 여당’은 아니었다. 유권자는 성과도 중요하게 보지만, 두드러진 성과가 아니면 어떤 태도를 본다. 정부는 코로나에 최우선적인 태도를 보였고, 미래통합당은 그렇지 못했다. 태도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에 대해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비판하는데 우선을 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여당의 불안요인을 코로나가 어느정도 억제한 건 맞다. 작년말부터 청와대와 검찰 갈등 등 집권여당 자체의 내부분열 조짐이 보였는데, 여당의 핵심의제가 그 갈등이었다면 판이 달라졌을 것이다. 코로나 이슈가 이전 이슈를 잠재우고, 정부여당은 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관후 이번 선거는 명확하게 정당 간 코로나를 두고 국정운영능력을 평가받은 자리였다. 사실 정치의제에서 이보다 본질적인 건 없다. 가장 중요한 정책의제이기도 하다. 정책의제가 실종된 것이 아니다. 정치세력의 국정운영능력이 어떠한가가 판가름 난 선거다. 많은 국민들은 세월호/메르스를 대했던 보수집권 시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촛불이 재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보수가 그만큼 어려운 건 맞는데 한국정치의 많은 부분은 외인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180명의 의원을 가진 민주당이 모두 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규모가 너무 커서 잘 통제되거나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기도 어렵다. 더욱이 새로운 당대표가 내부결속과 당을 장악하기도 어렵다. 공천권을 가졌던 이도 아닐거고,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가질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선이 코앞이라 지지후보에 따라 흩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내 스펙트럼도 넓고, 객관적으로 잘 되긴 힘들다.

 

서복경 민주당과 정부는 이제부터 철저히 관리모드에 들어갈 것이다. 사회경제 개혁 같은 건 전망이 좋지 않다. 아마 1년간 코로나 관리국면이고, 내년 중반이면 대선 경쟁구도가 될 것이다. 아마 열린우리당 시절 학습효과로 철저한 관리에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축이 바뀌었다는건 과거엔 새누리당이 우측부터 중도까지 포괄하면서 중심에 있었다면, 이젠 민주당이 중간에 서서 갈등을 관리하는 구도가 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시스템 관리자가 된다. 그렇게 보수도 복원이 되고, 왼쪽도 열릴 것이다. 정당시스템 변화의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이런 경로도 가능하다. 여하튼 민주당은 사고를 방지하고 관리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번 총선이 남긴 과제, 선거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김만권 위성정당 논란이 있었고, 선거제도와 관련된 얘기가 이제 뒤따를 것 같다.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주장해왔던 시민사회를 비롯해 향후 개정국면이 또 중요할 거 같다.

 

이관후 선거가 끝나자마자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를 시민사회에서 주장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 지금의 선거제도 하에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건 국민들이 만든 것이다. 민주당의 180석이 무슨 잘못을 범하기 전까지 개정을 함부로 말하는 건 옳지 않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바라는 방향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옳아도 다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주장은 할 수 있는데, 비난할 수는 없다. 또한 선거결과가 왜곡되었다고도 말하면 안 된다. 이번 선거제도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높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성정당이 나타나는 틈이 생긴 것이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정치권에서 주로 논의하여 도입된 것이지 국민들이 바꿔야겠다고 나선 결과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이 이렇게 흔들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표심이 왜곡되었다거나 사표가 발생했다거나, 위성정당이 질적으로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한 주장이다. 선거제도인데, 일반적인 법을 개정하듯 추진했다. 다음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국민 다수의 뜻을 옮길 수 있어야 하고 다수가 확실하게 동의할 수 있을때 진행해야 한다. 만약 이번에 그렇게 국민의 합의수준을 높이면서 개정했었다면 위성정당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출현했더라도 국민들이 ‘심판’했을 것이다. 

 

박정은 어쨌든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박빙 지역이 많았음에도 승자독식의 결과로 민주당은 180석을 획득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례성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후 선거법 개정 국면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 거대양당에는 이 논의를 담을 그릇이 없다. 시민사회가 결국 설득해나가야 한다. 국민의 투표행위를 비난해서는 안되지만, 결과를 마냥 따를 수도 없다. 현재 선거법 개정을 위한 파트너로서 제3지대가 사라졌다. 어렵겠지만, 정당과 국민들 모두에게 계속 두드리고 알려낼 수밖에 없다. 

 

이관후 비례성을 높이는 것에 동의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믿는 이들의 언어로는 절대로 달성 불가능한 목표로 보인다. 단순히 ‘의회내 다양성을 확보하자’ 등의 식으로 설명하면 불가능하다. 비례대표가 늘어나길 바라면, 비례대표들이 어떤 의정활동을 하는지 감시하고 또 공천과정에 개입해야한다. ‘사회적 다양성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말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로 공천과정에 개입해서 좋은 비례의원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한다. 선거제도 개혁을 해놓은 다음에 개혁적 공천이 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이후 선거제도 개정이 암울하게 보이는건 이번 비례대표 공천이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더 나빠지고 어수선할 정도라는 것이다. 정의당이 이번에 고전했던 것도 비슷하다. 비례대표후보 선정과정에 정의당의 비전 같은걸 그 과정에서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비례의원들의 면면을 보아도 의정활동이 이전과 달라지지 않거나, 더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 개정하자는 주장에 있어 단순한 원칙론으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나. 

 

정한울 비례대표제가 한국에 필요한 정치개혁인지 우선 묻고 싶다. 유권자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무엇이 더 좋아지는 건가? 유권자 다수의 동의가 형성되지 못한 쟁점이다. 지금의 수준 즉, 47석 정도로 보완할 수 있으면 유권자 입장에선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이정도를 최대라고 생각한다. 현재 수준에서 지역구에서 표출 안되는 다른 메시지도 줄 수 있는 정도를 좋다고 여긴다.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되었지만,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것이 유권자가 원하는 거였다면, 유권자들이 비례를 위한 의석수를 확대에도 동의했을 것이다. 냉정하게 인정해야한다. 유권자들은 비례대표가 잘하는걸 보고, 기존의 지역구 의원보다 잘 할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늘리는데 동의하는데 현재 어떤가? 지역구 의원은 유권자의 지역에 어떤 메리트라도 주는데, 비례의원에 대해선 유권자들이 이름도 잘 모른다. 그런데 이들을 늘리는 것에 누가 동의하겠는가? 시민들 입장에선 비례의석을 늘리는 걸 정치와의 관계를 멀게 만드는 걸로 느낄 것이다. 지역구 의원은 선거철만이라도 동네에 얼굴을 보이고 관계를 맺는다.  

 

서복경 유권자는 스스로 선거제도를 내놓지는 않는다. 비례성을 높이거나 선거제도를 개정함에 있어 국민적 동의가 아예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촛불 국면에서 분명 선거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아무런 국민적 요구가 없는데 국회에서 추진된 건 아니다. 정치를 더 나아지게 하는 차원에서 분명 50대 남성 중심의 국회를 바꾸고, 여성과 청년, 소수자도 정치할 수 있도록하는 국회를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 방법을 논의하다가 쌩뚱맞게 지금의 선거제도가 탄생했다. 제로베이스는 아니고 사회적 합의는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점과 지금의 선거제도라는 결과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례대표가 지금의 모습처럼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운건 기존 정당의 책임이 크다. 정당에서 비례대표를 1회용으로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례로 국회에 입성하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지역구에 머리를 들이밀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문이나 영역의 대표성에 맞는 활동을 하기보다 지역으로 향한다. 시민사회는 각 정당이 비례대표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비례대표가 활동의 제약이 되는 요소를 폭로해야 한다. 비례의원을 유권자가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제도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기존 정당이 비례대표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또한 짚어봐야 한다. 비례대표에 대한 제도적 제약과 기존 정당의 오용에 입을 닫고, 감시견제만 말하거나 제대로 선출하자고만 말하면 안 된다.

 

김만권 시민운동이 이번 총선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시민운동은 제도정치일정에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또한 이번 총선 이후 특히 ‘코로나19 이후’라는 시간에 놓여 있는 이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향후 가장 중요한 정치의제는 ‘안전’이 될 것

 

박정은 시민운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건 2000년대 초반뿐이었다. 그럼에도 시민운동은 정책적인 부분이나 사회적 쟁점이 될 만한 걸 내세우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경우는 더 어려웠다. 자산이나 주거불평등 같은 사회적 쟁점이 선거에 잘 반영되거나 선거과정 중에 드러나지 않았다. 사실 선거에 시민운동이 깊게 개입하는 게 적절한 기조는 아닌 거 같다. 과거처럼 반부패운동 차원에서 낙천낙선운동 등을 했지만, 점차 단체들도 많이 분화했고, 함께 모여서 큰 운동을 하는 그림을 그리는 건 이제 잘 없고 사실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집중해야할 것은 결국 현장일수밖에 없다. 국회도 과거보다 입법역량이 많이 보강되었고, 이제는 시민단체에 그런 부분을 의존하지 않는다. 시민운동 또한, 종합적인 관점보다는 분화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현장성 있는 정책대안을 만드는 게 주 과제가 되어야 할 거 같다. 기존의 전문가운동으로서 시민운동에서 벗어나 현장성을 갖는 운동이 필요하고, 나아가 시민과의 접점을 만드는 부분을 강조해야 할 거 같다. 법을 만들고 고치는 일을 주업으로 해왔고 이걸 마냥 안 할 수는 없지만, 시민 참여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많이 확장해야 할 것이다. 시민 스스로가 참여함으로써 정치의 효능감을 체감할 수 있는 역할도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서복경 ‘코로나19 이후’라는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건 아마 사회안전망, 작업장 권리 등일 것이다. 지금 당장 시민사회가 선거제도개정을 말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에 나타날 사회적 조건의 악화를 대응하고, 조망하는 것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의 입장에선 메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 말해야 한다. 커다란 담론상의 전환이든, 일상의 변화든 간에 한번 두루 살펴봐야 한다. 참여연대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주업으로 창립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대안제시의 역할도 했다. 당시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의 주된 맥락은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었다. 당시 온갖 잡다한 담론의 네트워크이자 허브였다. 지금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참여연대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해 글로벌한 차원, 내셔널한 차원, 소셜한 차원 등의 변화를 우선 살펴보고 이후 변화를 논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정책적인 부분까진 다루지 않더라도, 사회적 담론이 풍부히 논의될 수 있는 사회적 토론장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이관후 안전(security)이 ‘코로나 이후’라는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사회 의제가 될 것이다. 아직 안전에 대한 개념이 보편적으로 자리잡히지 않았다. 가령 특정한 직군, 소위 작업장 등에서 산업안전 등으로 얘기되나 이번에 사태를 보면 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안전, 일자리안전, 기업의 안전, 고용 안전 등이 터져나온다. 무급휴가 주장부터 기후환경의 안전까지 폭도 넓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아젠다를 잡아가면 큰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민주당이 180석을 획득했으니 ‘위험의 외주화’를 더 이상 방기하지마라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국가를 만들어보자는 큰 틀을 주장하면서 그 하위에서 비정규직이나 여러 고용안전 등을 주장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정치의제 관련해서 시민운동과 정치사회는 민주화 이후에 서로 간 굉장히 겹쳐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제안하면 선거국면에서 시민사회가 커다란 운동의 차원(낙천낙선)으로 개입할 것이 아니라 미시적인 차원에서 비례의원들의 정치활동을 어떤 식으로 보장할 것인가라는 지점에 개입을 해봤으면 한다.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주장을 주로 해왔지만, 실상 비례대표가 왜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설명하고, 비례대표의 의정활동의 제한 등을 폭로하는 활동, 그리고 민주적인 비례공천과정이 될 수 있도록 감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원칙을 주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왜 연동형비례대표제, 그리고 비례대표가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활동이 중요하다.

 
 
전문은 <시민과 세계> 2020년 상반기호(36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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