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넷 논평] 목숨 앗아갈 유독물질보다 구멍 뚫린 시스템이 더 두렵다

목숨 앗아갈 유독물질보다 구멍 뚫린 시스템이 더 두렵다 

CMIT/MIT 든 치약 등 의약외품들 제조 유통조차 파악 못하는 환경부와 식약처 
가습기살균제 원료 공급한 SK케미칼에 면죄부 준 정부가 치약에만 원료업체 탓? 
진상규명ㆍ피해구제ㆍ재발방지 대책 마련 위해 국정조사 반드시 연장해야 

또 다시 터졌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 CMIT(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ㆍ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가 든 치약 11종이 널리 유통되어 왔다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국회의원이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지적하고 나서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조치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920명에 이르는 무고한 국민의 목숨을 떠나보낸 정부가 맞는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정부에 어떻게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겠는가! 

아모레퍼시픽이 만들어 유통시킨 문제의 치약 11종에 쓰인 방부제(MICOLIN S490)에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가 포함돼 있는데, 이것에 CMIT/MIT이 들어 있다고 한다. 문제의 CMIT/MIT는 식약처에서 치약용으로 쓰지 못하도록 했고,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터진 뒤인 2012년에 유독물로 지정한 물질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K케미칼과 애경이 연이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가 바로 CMIT/MIT를 원료로 만든 제품으로 2002년 이후로 2011년까지 165만여 개가 넘게 팔려 나갔다. 지난 8월 말까지 1~3차 판정을 받은 피해자 695명 중  CMIT/MIT 피해자는 모두 253명이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56명에 이른다. 이처럼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유독 물질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 버젓이 놓여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장품과 생활화학제품들을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팔고 있는 대표적 대기업이다. 그런데 아모레퍼시픽은 자신들이 유통시켜 온 제품들에 이같은 유독물질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일부러 유독물질을 첨가한 것은 아니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으나, 원료공급업체인 미원상사의 잘못으로 떠넘겼다. 
식약처 또한 문제의 성분 함량이 극히 적고 흡입하지 않고 물로 행군 뒤 내뱉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며 납득할 수 없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작 안전관리의 책임을 아모레퍼시픽과 미원상사에 떠넘기기 급급한 모습이다. 식약처 고시 의약외품 품목허가ㆍ신고 ㆍ심사규정에 따라 제조 판매업체가 원료와 성분을 사전 신고토록 하고 있음에도 제조유통업체와 원료공급업체 그 어느 곳도 유독물질이 쓰이는 걸 몰라서 신고내용에 담기지 않았다. 식약처도 의약외품인 치약의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았다면, 환경부와 식약처 모두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었을 게 뻔하다. 
더구나 미원상사는 CMIT/MIT를 2012년까지는 SK케미칼로부터, 지금은 다우케미칼로부터 공급 받고 있는데, CMIT/MIT가 들어간 12개 제품을 각각 치약, 구강청결제, 화장품, 샴푸 등의 용도로 제작해 국내외 30개 업체에 연간 3천 톤이나 납품해 왔다고 한다. 대표적 생활화학제품 제조기업인 애경이 만들어 판 제품들에도 CMIT/MIT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환경부와 식약처는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는 그나마 드러난 유해 제품들의 회수도 해당 기업들에 맡기고 있다. 지난 8일 한국소비자원이 물티슈 27개 제품을 검사해 발표한 결과, CMIT/MIT가 검출돼 회수 조치를 내린 태광유통의 물티슈 ‘맑은느낌’ 등은 저가제품 유통매장 등을 통해 아직도 널리 팔려 나가는 상황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도 불구하고 화학물질, 특히 생활화학제품들에 대한 사전 사후 안전 검증 시스템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있음이 다시 한 번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그저 무능을 탓하며 넘길 상황이 아니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번 치약 문제에서 원료공급업체인 미원상사에 책임을 떠미는 식약처의 논리는 그동안 SK케미칼에 대해 일관되게 취해 왔던 정부와 수사 조사 당국들의 입장과는 상반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쓰여 온 CMIT/MIT 또한 최초 개발업체가 SK케미칼이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낳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원료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등 참사를 불러온 원료물질들은 SK케미칼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SK케미칼 관계자 어느 누구도 처벌은커녕 수사받지도 않았다. 옥시를 비롯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가해업체들은 적어도 피해자들과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습이라도 보였다 할 수 있지만, 문제의 원료를 만들어 공급하고 직접 판매까지 했던 SK케미칼, 이어받아 유통시켜 온 애경 등은 아직도 정부 당국 뒤에 숨어있다. 유독 CMIT/MIT 피해와 관련해서는 이 정부와 검찰ㆍ공정거래위원회 모두 이렇게까지 소극적으로 대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검찰과 공정위는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 등으로부터 CMIT/MIT의 유해성이 확인된 바 없다며, 수사와 조사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혹시 정부가 대표적 대기업인 SK케미칼이 가해기업으로서 책임져야 할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부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지가 있기는 한지 되묻는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끝까지 꼬집으며 피해의 진상을 밝혀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까지 마련해야 할 국회의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활동은 오는 10월 4일로 종료된다. 밝혀내야 할 피해와 진상은 아직도 산적하며,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은 이제야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회 특위의 활동 시한을 연장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게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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