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한미FTA 2006-07-03   673

한미 FTA 추진에 대한 민변, 참여연대 공동 기자회견

협상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국회의 견제와 감독 기능 촉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는 7월 3일(월) 오전 10시 안국동 달개비(구 느티나무 까페)에서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대한 민변과 참여연대의 공동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변과 참여연대는 2차 협상을 앞두고 있는 정부의 한미 FTA 추진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한미 FTA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정부가 개방이냐, 쇄국이냐라는 이분법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개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어떠한 개방일 것이냐가 더욱 중요한데 정부는 FTA를 정책수단이 아닌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를 거대경제권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FTA 추진 전략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으며, 이러한 추진 전략에 기초해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은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한 무책임한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한미 FTA 협상의 모든 과정이 밀실에서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였다. 정부가 누구의 입장을 수렴하여, 어떤 ‘국익’을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수 이해관계 집단의 맹목적이고도 배타적인 요구를 수용하여 그 책임을 전 국민에게 전가하려 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이 수반될 것임이 분명한데도 정부가 협상에서 합의된 최소한의 부분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끝으로 정부가 1차 협상 과정과 협상에서 합의된 내용을 국민들 앞에 투명하게 공개할 것과 국회에서 한미 FTA 추진의 제반 사항에 대해 점검하고, 통상절차법 제정 등의 법적 제도적 대비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정부의 대책 없고 불투명한 한미 FTA 추진이 가져올 국가적 재앙을 막기 위해 다른 사회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임종대(참여연대 공동대표), 유남영(민변 부회장), 이찬진(민변 한미 FTA 소위 위원장),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권경애(민변 한미 FTA 소위 위원), 이태호(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 별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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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한미 FTA 추진에 관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의 입장

1. 최강대국 미국과의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FTA 체결’의 문제점

미국식 FTA의 특징과 문제점 : 약소국에 불리한 사실상의 경제통합협정

한국의 취약부문인 농업과 서비스업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고, 제조업 경쟁력 역시 세계 최고이며, 또한 세계 유일의 헤게모니 국가로서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협상력을 발휘할 미국과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FTA’를 추진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FTA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기 보다는 도리어 무수한 FTA 사례들로부터 예외적인 ‘시장근본주의’적 FTA로서, 특히 상대적 약소국에 가혹한 사실상의 경제통합협정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FTA는 철저한 시장 개방, 민영화, 규제완화 혹은 철폐를 요구한다. 특히 무역과 상품교역 분야 외의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등의 시장 개방에서 강력하고 공격적인 개방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

정부의 FTA 정책의 문제점 : 목표와 수단의 전도

2003년과 2004년 마련된 정부의 FTA 로드맵은 ‘선진 거대 경제권과의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FTA 지상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의 이러한 입장과 태도에 동의할 수 없다. 상대방이 누구이던 간에 일률적으로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를 추진하겠다는 정책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사실, FTA에는 정형이 없으며, 정부가 이야기하는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제 정책에 대한 주권과 공공성 및 사회 통합을 확보할 수 있는, 우리 사정에 맞는 ‘맞춤형 FTA’를 추진함이 가능하며 또한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는 FTA 로드맵에서조차 장기과제로 분류하였던 최강대국 미국과의 포괄적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FTA를 통해 사실상의 한미간 경제통합을 맹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 한미 FTA 절차적 문제점

한미 FTA는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만이 아니라 서비스/투자, 그리고 경쟁법/지적재산권/노동/환경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며, 이들 영역의 제도 변화에 따른 영향은 어느 한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제질서 나아가 사회질서 전반에 미치게 된다. 그러나 한미 FTA는 모든 면에서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으로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선행연구의 부재와 소수에 의한 배타적 독단적 추진

정부는 한미 FTA 추진과 관련된 미국측 의사가 결정된 후 별다른 준비 없이 바로 협상 개시를 선언하였다. 한마디로 협상개시를 선언하면서 미국의 의사결정과 일정에만 의존하였을 뿐, 국내에서 협상개시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였다.

일본과의 FTA 추진은 5년의 공동연구를 진행중인 반면, 이 경우보다 훨씬 큰 영향과 파장이 예상되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FTA에 대해서는 공동연구는 물론 전문가들에 의한 독자 연구도 거의 진행되지 않은 채 협상 개시가 선언되었다.

심지어 행정부 내에서도 FTA 정책결정과정에 마땅히 참여해야 할 행위자들의 참여가 배제되었다. 한미 FTA의 경우 대통령과 통상교섭본부장 등 특별한 소수만에 의해 추진되었다. 대외경제장관회의는 협상 개시 직전 사실상의 거수기(rubber stamp) 역할만을 수행하였다. FTA를 비롯한 주요 대외경제정책의 종합적 기획 및 추진전략 수립에 있어 대통령에 대한 자문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구성된 「국민경제자문회의」 산하 「대외경제위원회」는 적어도 2005년 9월까지도 한미 FTA 문제를 전혀 검토한 바 없다. 또한 한미 FTA 협상 개시가 선언되기 이전에 NSC나 동북아시대위원회 등 안보 관련 부처가 이 논의에 체계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또한 미국 의회로부터 행정부에 부여된 무역촉진권한(TPA, Trade Promotion Authority)의 시간표를 사실상의 협상 일정으로 간주하여 정부 내 준비작업, 각계 이해당사자 및 국민 의견수렴, 매 협상 단계별 점검과 평가 등을 이 일정에 꿰어 맞추고 있다. 비록 TPA가 한미간 협상의 편의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국민 의견 수렴 없는 비민주적 협상

국내 여건 조성을 위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FTA를 추진한다는 것은 우리 외통부가 밝히고 있는 4대 FTA 추진 전략 중의 하나이지만 한미 FTA는 아무런 국민적 공감대 없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2004년 5월 대통령 훈령으로 정한 「자유무역협정체결절차규정」(이하 ‘FTA체결절차규정’)을 스스로 위반한 것이다.

특히 FTA 공청회는 상기한 ‘FTA체결절차규정’에 의해 FTA 협상 개시의 전제 조건으로 규정돼 있는 제도이지만 공청회는 정부의 독단적이고 졸속적인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하기 위해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 정부는 2006년 2월 3일 한미 FTA협상 개시를 선언하기 하루 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미 미국에 건너가 협상 개시를 실무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상태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였고, 이 공청회가 요식행위에 불과함을 알게 된 농민단체들의 거센 항의로 인해 이 공청회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개회 및 폐회선언을 했으니 공청회는 개최된 것”이라며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바로 한미 FTA 협상 개시를 확정하였다. 이는 ‘참여정부’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비민주적이며 독단적인 처사이다.

국민대표 기관인 입법기관의 무기력과 무책임

그동안 한국의 국회는 한미 FTA 협상개시 이전까지 의사결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고, 협상 개시 이후에도 헌법이 부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국회를 배제한 정부를 탓하기 전에 국민의 대표역할을 포기한 국회의 책임방기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60조 1항은 “국회는 (중간 생략) 조약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그 동안 한국의 국회는 오직 비준동의권만을 행사해왔다. 체결에 대해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을 스스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2006년 2월 초 권영길 의원 등 40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공동으로 ‘통상협정의 체결절차에 관한 법(이하 ‘통상절차법’)’을 발의하였고 이 법안이 국회의 대정부 견제 기능을 실질화 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한미FTA 추진이 전 국가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순간에도 국회는 이를 아직 처리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국회는 한미 FTA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변동의 수준과 폭에 대해 전혀 사전준비 없이, 그 대책에 대해 정부로부터 어떤 보고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제시한 한미 FTA 협상 일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권한을 포기하고 있다. 정부는 국회가 2006년 4월 제정한 ‘제조업 등의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률’을 내세우고 있으나 서비스 부문을 포함 국민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한미 FTA에 대비하기에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보의 독점과 비공개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협상과 관련된 각종 제안문을 3년간 비공개하기로 하고 이를 이유로 모든 정보를 비공개하고 있다. 심지어 1차 협상을 통해 한미간에 공통점이 확인된 통합협정문 초안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를 국회의원에게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6월 28일 정부가 2차 공청회라는 이름으로 시도한 최초의 공청회가 이 행사에 참석한 사회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된 데는 통합협정문 초안을 비공개로 하고, 찬성 위주의 요식적인 의견수렴으로 공청회를 대체하려던 정부의 불투명한 업무추진에 그 원인이 있다.

협상의 상대방에게도 공개되어 이미 합의된 문서와 정보를 주권자인 국민에게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이로 인해 협상전략이 노출된다는 것도 졸속추진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국회의원에게까지 이를 비밀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차 협상결과에 대한 정부의 비공개는 정부가 1차 협상안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각계각층의 의견수렴과 이해당사자의 검토를 사전에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정부의 태도는 ‘국익’을 자임하여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하겠다는 위험천만한 반민주적 태도이다. 과연 누구의 뜻대로 밀실에서 국익을 선택한단 말인가?

3. 충격요법의 한계 : 정부의 한미 FTA 추진 논리와 기대효과의 문제점

정부는 한미 FTA 추진의 경제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거로 “중국의 부상, 제조업 공동화등에 따른 산업구조의 고도화 필요성”, “지식기반 서비스의 육성을 통한 제조업과 서비스업간의 선순환 구조 구축” 등의 일반론을 제기한 후 “한미 FTA와 같은 능동적 개방전략의 채택을 통해 해외의 글로벌 스탠다드와 혁신자원을 흡수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도 개혁의 추동력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마디로 한미 FTA같은 높은 수준의 포괄적 개방전략을 통해 일종의 충격요법을 도입함으로써 ‘산업구조의 고도화’ 내지 ‘지식기반 서비스의 육성을 통한 제조업과 서비스업간의 선순환 구조 구축’,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양극화 현상 해소’라는 목표를 얻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는 할 수 있다’식의 근거없는 낙관론이며, 그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아무런 국민적 동의도 구하지 않은 무책임하고 독단적인 결정이다.

충격요법에 의한 산업구조 고도화론의 한계

제조업의 영세화⋅양극화 현상이 1990년대 초이래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최종 조립가공형 대기업 위주의 산업발전 전략이 갖는 한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개방의 확대는 산업간⋅대중소기업간 연관관계를 더욱 약화시킬 위험성이 농후하다.

정부 주장대로 한미 FTA 등 개방전략이 긍정적 결과를 갖기 위해서는 산업정책, 특히 중소기업 전반의 구조조정 및 부품소재사업의 육성을 위한 정책과 밀접한 연관성 하에서 추진되어야 하나,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 한미 FTA 추진 준비과정에서 이에 대한 신뢰할만한 사전 검토와 능동적 전략을 찾아 볼 수 없다.

충격요법에 의한 서비스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론의 한계

서비스산업의 저생산성은 한국 경제발전의 중대 장애 요인임에는 틀림없으나, 서비스산업은 기업규모 및 고용의 질 측면에서 여타 산업에 비해 매우 취약한 상황에 있다. 따라서 서비스산업에서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의 FTA는 한국의 서비스 산업에 커다란 충격이 될 수 밖에 없다.

충격 전략은 한국 서비스산업, 특히 금융 및 법률⋅회계⋅세무⋅컨설팅 등 사업지원 서비스업의 발전을 이끌어낼 지도 미지수이며, 이로부터 창출되는 양질의 고용 규모는 크지 않다. 반면, 구조조정 대응능력을 갖춘 일부 부문(기업⋅계층)과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서비스 부문 사이에 차별화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월마트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형할인점은 생존하였으나 이는 재래시장의 몰락을 동시에 가져왔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의 수용을 통한 내부적 제도개혁론의 한계

개방의 충격을 통해 내부적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발상에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개방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국민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사회ㆍ문화적 영역의 공공성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 또한 개방의 충격은 구조조정 대응 능력을 갖추지 못한 영세 제조기업과 서비스업체에 집중될 것이며, 현재의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둘째, 특정 제도를 내부적 개혁 노력을 통해 적절한 속도와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방의 충격을 통해 급작스럽게 도입할 때에는 예상치 못한 제도부문간 충돌 등 예기치 못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미 FTA에 의해 개방의 충격을 받게 될 서비스/투자, 그리고 경쟁법/지적재산권/노동/환경 등의 영역은 정부 정책과 제도, 특히 감독기구⋅사법기구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분야이다. 따라서 협상과정에서의 심각한 사회적 갈등, 체결 후 한미간 분쟁과 불이익, 국내 계층간의 차별적 법집행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폭 등을 야기할 것이며 개방의 기대효과를 좌절시키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방을 통해 내부적 제도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성공보다는 실패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한미 FTA는,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제도 개혁에 실패할 잠재적 위험을 안고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충격요법의 대내적 위험 : 내부로부터의 공공성의 파괴

정부의 주장대로, 비록 미국이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FTA’를 목표로 한다고는 하나, 한미 FTA가 국내 경제사회질서의 모든 측면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미 FTA가 갖는 진정한 위험성은, 그동안 은폐⋅잠재되었던 국내의 이해관계가 한미 FTA를 계기로 일거에 표출되면서 ‘불안정한 균형상태’를 이루었던 국내의 세력관계가 근본적인 재편을 겪게 될 위험성이다.

특히 금융/교육/의료보건/노동/환경 등 그동안 이해관계자의 반발로 인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도영역에서 개혁을 개방으로 대처하고자 했을 경우, 반개혁적 성격은 유지되는 가운데 개방에 편승하여 공공성을 위한 세력균형은 일거에 무너질 우려가 있다. 또한 이들 영역에서의 탈규제화는 최소한의 공공성 원칙마저 파괴할 수 있으며,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규율의 공백을 낳아 경제사회질서의 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다.

한편, 미국(기업)이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은 사안일지라도, 한미 FTA를 빌미로 국내 기득권세력이 그동안 억제되었던 이해관계를 표출하면서 공공성을 파괴하는 제도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의료 교육부분의 영리법인화 등의 쟁점이 여기에 해당된다.

4. 한미 FTA의 외교안보적 문제점과 주권의 제약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자유무역지대나 관세동맹을 형성하는 차원을 넘어 경제동맹을 형성하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의 경제동맹 상태에서 한국 정부는 식량, 에너지, 금융, 서비스, 문화 등의 분야에서 경제적 주권을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경제적 주권의 제약은 곧 외교안보정책 차원의 주권 약화로 연결될 것이다.

남북경제협력 및 지역경제협력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독자적 정책 추진은 한미FTA 이후 한·미 경제가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 의해 직접적인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단기적으로 한미FTA 추진은 개성공단사업 확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거나,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도록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한미FTA 체결과 그에 따른 한·미 경제통합의 진전은 한·미 관계를 기존의 군사동맹으로부터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동북아 질서를 패권경쟁 구도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중장기적으로 한국은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 쪽에 편향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추진해 나가는 데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5. 한미 FTA 추진의 분야별 쟁점과 그 문제점들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 협상은 17개 분야의 광범위한 분야별 협상 테이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 이들 17분야 전부의 쟁점들을 검토하는 것은 역량 밖의 일이나, 그 일부 분야를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금융ㆍ서비스 분야의 쟁점과 문제점

금융서비스 개방에서 NAFTA 방식(한미 FTA)은 GATS 방식과는 달리, 국경간거래(cross-border trade; mode 1, 2, 4)와 해외투자(mode 3) 관련규정을 별도로 두고, 부속서에 유보나 비합치조치(non-conforming measures)가 명기되지 않으면 개방을 허용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negative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개방업종 및 규제가 모두 negative 방식이며, 협정체결 후에 추가적인 자유화조치가 자동적으로 협정에 반영되는 rachet mechanism이 적용되는 것 이다. 이 자체가 이에 대한 치밀한 사전 준비가 없는 한국에겐 매우 심각한 불이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 금융서비스 협상에서 국경간 거래(mode 1, 2) 및 신금융서비스 개방이 최대의 쟁점이다. 그러나 국경간 거래는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주재(외국인 직접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고용창출⋅선진금융기법 이전 등의 부수적 효과가 미약한 반면, 국경 밖에서 이루어지는 내국인에 대한 금융서비스의 공급에는 국내 감독기구의 권한이 미치지 않아 금융소비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야기될 것이 우려된다.

신금융서비스 개방의 경우 한미간에 금융서비스 허가 및 감독 체계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신금융서비스를 개방하면, 국내 금융기관의 경쟁적 지위에 심각한 차별을 초래하며 또한 금융소비자 보호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 감독기구 및 사법기구의 대응능력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규제완화(negative 방식으로의 전환)를 서두르는 것은 또다른 금융위기를 불러올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또한 한미 FTA의 금융서비스 협상은, 미국 금융자본의 한국진출 가속화라는 대외적 위험요소 이상으로 감독체계⋅사법체계의 능력 이상으로 규제완화가 추진됨에 따른 대내적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특히 금융업에의 신규진출 및 규제완화를 추구하는 국내자본(재벌)의 요구가 더욱 강화⋅현실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간접투자자산운용업상의 펀드산업 규제 완화, 금융업종간 겸업 확대 및 신금융상품 허용 요구, 민간 의료보험상품의 확대에 따른 공공의료체계의 훼손,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 완화 요구 등이 그것이다.

투자분야 협상의 쟁점과 문제점

투기성 단기자금과 지적재산권까지도 모두 투자로 간주하는 넓은 의미의 투자 조항 삽입 , 투자자가 현지 정부를 상대로 제3의 기관에 직접 제소할 수 있는 투자자의 정부 제소권 역시 미국식 FTA의 고유한 특징이다.

정부는 협정문 초안에서부터 미국식 FTA의 투자부문 모델인 ‘미국 2004 투자협정 모델’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2004투자협정 모델이 그대로 적용될 한미FTA가 체결되면 외국인직접투자는 공장설립형(Greenfield)보다는 대부분 M&A형의 증가가 예상되며, 투기성 헤지펀드, 핫머니의 이동의 자유도 제한 없이 보장되어 한국경제는 외국투자자들의 기업사냥터감, 고수익의 단기시세차익이 보장되는 투기장화 될 위험성이 높다.

특히 투자자 대 국가 간의 중재절차는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타국의 정부와 직접계약관계가 없는 투자자가 모국과 타국 사이의 FTA를 근거로 중재청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FTA의 투자자 대 국가 간의 중재절차는 몇몇 BIT를 제외하고는 국제법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국제분쟁해결절차로 외국투자자에게 자국민보다도 절차적ㆍ실질적으로 더 큰 권리를 부여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중재절차가 비공개로 진행되며, 상소의 기회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이 경우, 환경 등 공공정책과 관련한 예외규정(즉 경제통합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벽의 철폐라는 기본원칙에 대한 예외)이 FTA에 규정되더라도, 투자자 대 국가 간의 중재절차는 그런 예외조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NAFTA 1114조, NAFTA 환경관련 side agreement 자체의 유명무실화)

투자 분야협상에서 예견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의 불인정(이스라엘, 호주와 미국간의 FTA에서는 불인정), △투자의 정의에서 사채, 투기자본, 지적 재산권 등은 제외, △투자분야에 내국민대우원칙의 유보목록작성(국가기간산업)의 확대,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최고경영자 ‘국적 조항’ 존치, △positive list 방식의 이행의무부과 금지 조항 정리에 의한 각 대상 명시, △예외조치 및 세이프가드조치의 사유확대 등이 명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1차 본협상 이후 정부 발표에 따르면, “투자 chapter의 구조 및 항목에는 대체로 의견이 접근”했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투자 분야와 관련해서 미국측이 주장해온 BIT 2004의 내용이 거의 포함된 것으로서 심각한 부작용이 예견된다.

교육 의료 분야협상의 쟁점과 문제점

정부는 미국 측이 “교육 및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비영리 법인제도의 변경과 이를 통한 시장개방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미 경제자유구역내에 학교의 영리법인화가 시행중인 상황이다. 또한 영리병원허용은 한국정부가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영리법인 허용을 통한 의료 개방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료분야 전체의 개방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한미 FTA 서비스 투자 부문 협정의 포괄주의 체계를 도외시 한 것으로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 보건의료, 교육 분야의 핵심쟁점은 이들 협상 분야가 아닌 투자분야 등 다른 분야 협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이와 같은 교육개방을 했어도 외국학교가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이유는 과실송금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대로 교육 부분에 대한 추가 개방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투자 분야 협상에서 과실송금을 허용한다면 상당한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투자관련 ‘이행의무부과 금지’조항 등의 적용을 받게 될 경우, 이른바 3불 정책 등과 같은 정부의 규제조치 또한 와해될 가능성이 있다.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는 고급의료서비스”의 개방은 그 규모와 내용이 불명확하지만 사실상 전면개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를 고급서비스와 보통서비스로 나눈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와 같이 의료보장과 의료공공성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부분개방이 곧 전체 개방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한편, 한국 복지부의 약가계약 “포지티브리스트 약가계약제 도입” 발표에 대해 미국정부와 다국적 제약회사가 새로운 제도도입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 또한 한국으로선는 수용해선 안될 의료분야 최대쟁점이다.

농업 분야의 쟁점과 문제점

한미 FTA에 쌀이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제통상법상 본질적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쌀만큼은 꼭 지키겠다는 식으로 천명하는 것은 전략상 오류이다. 한미 FTA에서 쌀 대신 축산과 과일 분야를 상당 수준 양보할 경우, 한국 농업의 기반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미국의 한국 축산물 수입 금지 조치, 한미 FTA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추진된 미국 쇠고기 수입 금지 해제 조치는 한미 FTA 협상이 불균등한 조건 위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미국 농산물 덤핑 수출 문제를 한미FTA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농업에 대한 미국의 불공정한 위협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농산물에 대한 덤핑 수출을 지속하면서도 수입물품에 대해서는 과도한 보복을 가하는 덩핑규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2002년 9월과 2003년 1월, WTO의 1·2심은 연달아 미국 덤핑규제법이 세계무역기구 협정 위반이라고 판정한 미국의 덤핑 규제법을 한미 FTA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미 FTA는 실패한 것이 될 것이다. 미국 무역법에 의하면, 미국 덤핑규제법을 개정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는 통상협정의 경우에는 체결 180일 전에 미국 의회에 통지해야 한다.(제 2104 (d)(3)조)

한미 FTA 협상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식품에 대한 규제 해제를 합의할 경우, 이는 한국의 생태계와 농업, 그리고 국민보건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지적 재산권 분야 협상의 쟁점과 문제점

지적재산권 부문은 한미 FTA의 주요 관심 사안이며, 미국은 그동안 한국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지적재산권 강화를 요구해왔다. 미국의 기본적인 목표는 한국 지적재산권 법체계를 미국법제에 근접 또는 일치시키는 것이다.

미-호주 FTA, USTR의 대의회보고서, 주한미상공회의서 보고서 등을 종합할 때, 저작권, 특허권, 데이터 독점권, 집행규정, 분쟁해결규정 등에서 광범위한 쟁점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은 미국법상의 일방적 압수명령(ex parte impoundment order) 제도 – 법원이 일방 당사자의 주장만을 심리하여 상대방에게는 참여 기회없이 압수명령을 발부하는 제도의 수용,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위반하지 않았더라 하도라도 기대되는 이익의 무효와 또는 침해가 발생할 경우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제소권을 부여)의 수용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호주 FTA)

지적재산권 부분은 미국이 FTA에서 강력히 요구할 주요한 의제이나 한국 협상단은 지적재산권 부분을 타 부분을 얻어내기 위하여 양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의 지나친 강화는 문화적 권리나 정보 접근권, 의약품에 대한 환자의 접근권과 같은 기본적 권리와 충돌하며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다.

6. 우리의 입장

정부는 한미 FTA의 목표와 적절한 기대치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맹목적인 충격요법의 필요성만 강변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무리한 한미 FTA의 추진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진통상국가’라는 급조된 추상적 담론만 공허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개방이냐 쇄국이냐가 아니라, 어떠한 개방일 것이냐가 더욱 중요하다. 개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FTA는 정책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정부는 한미 FTA추진을 강행하기에 앞 서 경제 주권, 사회 통합과 사회적 공공성, 국내 분업 연관 제고, 제도적 다양성과 문화적 차이를 확보할 수 있는 관리된, 적정한, 지속가능한(governed, feasible, sustainable) 개방 전략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FTA 추진 전략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잘못된 FTA 추진 전략에 기초해 준비 부족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협상 시한을 정해두고 단기간 안에 체결코자 졸속적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한미FTA협상은 전국민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담보로 한 무책임한 월권행위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는 우리가 바라는 다음의 조건, 즉 1) 미국식 혹은 신자유주의적 FTA가 아닌 국내 정책에 대한 주권 확보와 공공성 및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상호호혜적인 ‘맞춤형 FTA’ 2) 사회의 피해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FTA, 즉 가능한 많은 유예 품목과 예외 조항 등이 있으며 자유화의 이행기간도 가능한 최장기인 것 3) 이는 결국 각 산업, 영역, 사안 별로 우리의 마지노선이 지켜질 수 있는 FTA 등의 조건을 충족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게다가 정부는 이 모든 과정을 밀실에서 불투명하게 진행함으로써 국민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 FTA 추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국민적 신뢰기반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협상하는 협상초안이 누구의 입장을 수렴하여 어떤 ‘국익’을 위해 제출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정부가 정부 내부의 소수 집단, 그리고 특정 부문과 이해관계 집단의 맹목적이고도 배타적인 요구를 수용하고 그 책임을 전 국민에게 전가하려 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수반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1차 협상에서 합의된 최소한의 부분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추가적 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이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

국회는 한미 FTA 추진의 필요성과 목표, 부작용에 대한 대책, 1차 협상 합의 결과와 의미 등 국회가 마땅히 점검하고 대비하고 있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무지한 채로 정부의 월권적 행위를 무책임하게 묵인하고 있다. 국회는 한미 FTA 추진의 필요성 및 17개 분야 협상의제에 대한 상세한 검토에 당장 착수하여야 하며, 1차 협상 결과를 상세히 검토하여 이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통상절차법 제정, 무역조정법 개정 등을 통해 FTA 추진의 법적 제도적 대비책을 시급히 마련하여야 한다. 국회는 이러한 제도적 내용적 대비책이 마련되기까지 정부의 추가협상 일정에 대해 확고한 통제력을 행사해야 한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대책한, 그리고 불투명한 한미 FTA 추진이 가져올 국민적 국가적 재앙을 막으려는 모든 사회단체, 정부, 국회의 구성원들과 최선을 다해 연대할 것이다. (끝)

참여연대,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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