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동窓] 서울시민을 위한 열린광장

서울시민을 위한 열린광장
‘광장 논쟁’이 다시 뜨겁다. 2008년 이후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등 서울시내 주요 광장에선 시민들의 자율적 집회나 문화행사의 개최가 크게 통제되어 왔다. 모든 서울 시민의 자유의 공간이어야 할 광장이 관(官)에 의해 관리되는 장소로 되어버린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활기찬 사람들에 속한다 할 만한 서울 시민들이 에너지를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 시대는 경직된 정부가 시민의 활달한 기(氣)를 틀어쥐고 있는 형국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2009년부터 ‘서울광장 조례 개정 운동’을 벌여왔다. 그 결과 10만명이 넘는 서울 시민의 서명을 받는 데 성공하여 주민발의안을 제출했으나 이 발의안은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둠에 따라 서울광장을 비롯한 서울시 광장들의 이용에 관한 조례를 현행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개정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언론이 신고제 개정에 대한 우려와 반론을 연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신고제로 개정될 경우 광장들이 정치집회로 채워질 것을 우려하면서 현행대로 광장 이용을 ‘여가선용’과 ‘문화생활’에 제한하는 허가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조례와 이를 옹호하는 주장들은 ‘여가’, ‘문화’, ‘광장’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터하고 있기에 광장 개방에 대한 합리적 반론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과연 이 나라 국민들이 여가를 허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유럽에선 이미 1980년대부터 여가사회, 문화사회에 관한 학문적·정책적 논의가 계속되어 왔는데, 그 논의는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동시간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노동에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하는 사람들에게 여가생활이란 그림의 떡이다. 그러므로 만약 광장조례가 이런 정책적 의제들에 관한 집회를 금지한다면, 그것은 더욱 많은 시민들이 여가를 향유할 수 있게 하려는 집단적 노력을 금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음으로 물을 것은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곳에 문화적 삶이 만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문화와 예술이 항상 정치적 의식과 참여를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자유가 없는 곳에서 문화를 꽃피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도시공화국의 정치적 활기와 시민적 자유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고, 음울한 냉전의 도시였던 베를린은 독일 통일 이후에 비로소 세계 문화의 허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다수 시민들이 창조적 문화를 실험하고 향유하는 기적이 일어날 순 없다.
마지막으로 광장이 정치집회로만 사용되어 다른 시민들의 여가와 문화 공간이 위축되리라는 우려가 있다. 여기서 사안의 핵심은 이렇다. 즉 현재 추진중인 조례 개정은 공정한 허가제를 방만한 신고제로 바꾸는 게 아니라, 이중 잣대를 따르는 현행 허가제를 공정한 제한적 신고제로 변경하는 것이다. 현행 허가제는 정부 여당에 비우호적인 행사는 불허하면서 정부·기업 주최 행사나 친정부 단체의 행사는 신고만 하면 됐다는 점에서, 허가제라기보다는 ‘허가-신고 이중잣대제’였다. 그러므로 이런 정치적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행사불허를 불허하는 신고제로 개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고제로 개정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권위주의적 유산이 깊이 남아 있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현행 허가제 아래서는 어떤 병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조례 개정은 모든 서울 시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광장에서의 공공적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러나 불가결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신진욱 / 중앙대 교수, 사회학
*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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