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4-28   1373

단추를 만든 혹은 만들지 않은 자의 책임과 권한

이라크 전쟁에 즈음한 과학자들의 반전 평화 선언

예전에 단추 하나 때문에 친구와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 아마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던 듯하다. 친구가 과학이 사회적인 것은 물론이고 과학 외적인 그 어떤 것과도 결부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오기가 났던 나는 뜬금없이 ‘너에게 핵폭탄을 발사할 단추를 누를 권한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니?’ 하고 물었다. 휴머니즘이 인류 공통의 가치이며 과학 지식의 탐구나 응용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답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친구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인류의 운명은 정해져 있어. 태양이 수소를 다 태워 버리면 지구도 끝장나는 거니까. 핵폭탄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인류의 멸망을 조금 앞당기는 수단에 불과해. 어차피 끝나는 건 마찬가지인데, 굳이 연장시킬 필요가 있을까?’

물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킬 단추가 한 사람의 과학자에게 주어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렇지만 그 또는 그녀는 단추가 어떤 효과를 가질지, 어떻게 하면 그 효과를 증폭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을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심지어는 그 단추를 사용하는 일을 정당화할 논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멀리는 나치에 복무한 우생학의 사례에서부터 가깝게는 천체물리학에서 보고들은 걸 반인륜적 행위의 근거로 써먹겠다는 친구의 예에서 보듯이. 이는 모두 과학자가 단추에 대해 가지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사실 그러한 권한쯤이야 단추를 누를 수 있는 권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단추를 만든 책임 역시 단추를 누른 책임에 대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을까? 아니, 단추를 직접 만들지 않았더라도 단추를 누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955년 7월 9일, 바로 그 단추를 만든 책임을 통감한 초일류 학자들이 모였다. 거기에는 원자탄의 기본 원리를 제공한 아인슈타인이나 직접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로트블라트도 있었지만, 러셀처럼 원자탄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학자들도 끼어 있었다. 그들은 ‘특정한 국가나 종교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핵전쟁의 결과할 재앙 일부 전문가들이 특정한 정치적 견해로 인해 그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던 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는 한편, 각국 정부에 ‘전쟁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가간 분쟁을 해결할 평화적 수단을 강구하라’고 요청했다. 이것이 아인슈타인-러셀 선언(http://www.pugwash.org/about/manifesto.htm)이다.

불행히도 인류 평화에 대한 이들의 갈망은 아직까지도 요원하기만 하다. 더욱이 ‘단추’는 이미 질적인 측면에서나 양적인 측면에서나 가공할 수준을 넘어서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접 만들었든 간접적으로 만들었든 만드는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든 간에 그 단추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스스로 떠 안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러셀 선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우려하는 과학자 동맹(Unions of Concerned Scientists, UCS)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기 하루 전인 지난 3월 19일, UN 사찰단의 충분한 조사 및 안전보장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치 않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강력히 반대하는 성명서를 낸 바 있다(http://www.ucsusa.org/news.cfm?newsID=333). 이들은 전쟁이 대량살상무기를 억제한다는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과는 달리 오히려 무기를 확산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라크 문제를 해결할 것을 미국 정부에 촉구했다.

바로 다음 날이자 공습이 시작된 3월 20일, 과학과 세계 문제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 on Science and World Affairs, 이하 퍼그워시 회의)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유감을 표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http://www.pugwash.org/reports/nw/iraq-statement.htm). 퍼그워시 회의는 1957년 아인슈타인-러셀 선언을 직접 계승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과학자 단체로, 로트블라트와 더불어 199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날 성명에서, 퍼그워시 회의는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 민중들이 겪게 될 고통, 특정 국가의 일방주의 노선 강화, 특히 서구와 아랍권 간 반목의 심화 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대화와 협력과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했다.

퍼그워시 산하의 국제 학생 조직인 ISYP(International Student/Young Pugwash)도 이라크 침공을 강력히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ISYP는 미국이 지난 50년간 UN이 고수해온 ‘무력보다는

이성, 즉 세계 각국의 확신과 과학적 증거를 통해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파기했다고 비난하면서,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 세계가 NGO 및 적십자와 공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구적 책임을 위한 국제 과학기술자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 INES)는 2차례의 호소문을 통해 전쟁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을 전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요청는데, 특별히 시라크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에게는 평화적 해결을 위해 힘쓸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다

(http://www.ineglobal.com). 한편 이 단체 산하에 있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 과학기술자 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of Engineers and Scientists against Proliferation, INEAP)는 지난 2월 베를린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미국의 정책이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http://www.inesap.org).

로트블라트는 ‘단추’를 직접 만든 축에 속한다. 책임 소재를 소급 적용할 경우, 오늘날의 핵 위기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전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해서 반드시 죄책감과 절망감을 안겨주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94세의 로트블라트와 인터뷰한 가디언 誌 기자가 그에게서 읽어낸 것은 희망이었다

(http://www.guardian.co.uk/g2/stroy/0,3604,918627,00.html). ‘나에게는 단기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핵무기를 없애는 것과 전쟁까지 한꺼번에 없애는 것이 그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장기적 목표에 대한 희망을 버렸는데, 지금은 단기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나말고 다른 사람들이 싸움을 이어가겠지요. 지금의 상황이 지나가고 부시가 핵무기로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저지르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 위험한 단추를 만든 자는 그렇게 단추를 만들지 않은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지선 | 《시민과학》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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