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4-28   993

과학기술자 헌장(안)

<편집자 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는 작년 하반기에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아 [과학기술인 헌장 제정에 관한 연구]라는 프로젝트 사업을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림대 송상용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고, 인제의대 강신익 교수, 울산의대 구영모 교수, STEPI 송성수 연구위원, 한양대 이상욱 교수 등 14명의 학제적 연구팀이 참여했다. 아래 옮긴 과학기술자 헌장(안)은 이 프로젝트에서 도출된 결과물로서, 국내 과학단체들이 향후 과학기술자 윤리강령(code of ethics)을 제정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시안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 헌장(안)은 연구팀 내부의 난상토론을 통해 대강의 틀을 만들고 초안을 잡은 후 여러 자문위원들의 조언을 참조해 완성되었다. 이 헌장(안) 제출이 계기가 되어 앞으로 국내 과학단체들에서도 윤리강령과 윤리위원회를 제정하고 윤리교육을 지원하는 등 과학윤리 관련 활동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혜택을 가져왔지만 대량살상무기 개발, 환경파괴, 기술적 재난, 사회적 불평등에 기여한 부분도 있다. 1999년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세계과학회의(World Conference on Science)는 과학자의 윤리강령 제정과 과학의 사회적·문화적 측면 연구를 강조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적 위상이 부각되고, 최근 정보통신기술 및 생명공학과 관련된 사회·문화적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과학기술자 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에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과학기술자의 자세, 책임의식 및 윤리 등에 관한 과학기술자 헌장을 제정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1. 과학기술의 가치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학기술은 적절히 이해되고 사용된다면 인간을 여러 수준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세계관을 제공한다. 과학기술은 과학활동을 넘어선 영역에서 분쟁의 근원을 밝히고 그것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 긍정적인 시사를 줄 수 있다.

1.1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자신의 주변환경을 개선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자유”를 부여하고, 인간의 지적 향상과 물질적 복리 증진에 크게 기여해 왔다.

1.2 과학기술은 경험적ㆍ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구조적 특징과 자연 현상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제공한다.

1.3 올바른 과학기술은 과학기술 활동을 넘어선 영역에서 다양한 긴장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지식의 축적과 세계관의 변화를 이룩해낼 수 있다.

2. 과학기술 개발의 필요와 방향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증대됨에 따라 사회가 과학기술에 대해 요구하는 바도 다양해졌다. 따라서 과학기술 개발의 방향을 설정할 때에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과학기술능력과 사회수용능력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2.1 과학기술 개발의 목적은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며 궁극적으로 인류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

2.1.1 과학기술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2.1.2 과학기술은 국가 산업과 경제 발전의 동력이며,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제고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2.1.3 과학기술은 인류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2.2 과학기술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하고, 공익적 연구개발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은 평등과 다양성을 실현하고, 연대와 의사소통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통과학기술과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2.2.1 과학기술은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해야 한다.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자원 절약 및 환경 보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여건 형성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2.2.2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 등 불리한 조건에 있는 집단을 위한 공익적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을 강화해야 한다.

2.2.3 평등과 다양성 실현을 위한 과학기술 활동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성별, 권력의 유무, 빈부격차에 따라 계층, 집단들 사이에 남아 있는 불평등을 지양하고 자연 및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2.2.4 과학기술은 인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교통기술과 통신기술의 발전은 의사소통의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게 함으로써 인류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2.2.5 전통과학기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전통과학기술과 현대과학기술의 조화로운 발전을 모색한다.

3. 과학기술자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

과학기술자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투명성과 민주성의 강화, 성별·세대별 차별의 지양, 분야들의 적극적 교류 및 균형발전 도모, 남북과학기술 교류를 포함한 국제협력이 중요하다.

3.1 과학기술자 공동체 안에서의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의사결정과 과학기술 연구비 지원 등에서의 투명성의 확보는 과학기술자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된다.

3.2 과학기술자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성별·세대간 차별이 지양되어야 하며, 과학기술자 공동체는 학문 후속세대를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3.3 과학기술 분야들의 적극적인 교류가 장려되고 균형 발전이 도모될 때 과학기술자 공동체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3.4 과학기술자 공동체는 다양한 수준의 국제 협력을 통해 인류 문명의 지적 향상과 물질적 복리 증진이라는 과학기술자들의 공동목표를 위해 노력한다.

3.5 과학기술자 공동체는 남북 과학기술 교류 증진에 힘씀으로써 통일에 대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4.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

과학기술자는 일반 대중과 달리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거나 그것을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용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4.1 과학기술자는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양심적으로 선택된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개발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주의 깊게 성찰해 그것이 자신의 도덕적 원칙과 맞지 않을 때 거부해야 한다.

4.2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이 사회와 환경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먼저 발견하고 평가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자는 부정적 영향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이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고 일반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이를 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4.3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에 대한 토론에서 자신들의 지식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독립적·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해야 한다. 과학기술자는 전문적 조언을 제공할 때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하며, 어떤 과학기술 지식에 불확실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를 공개해야 한다.

4.4 과학기술자는 생명과 평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할 사회적 책임을 갖는다. 따라서 과학기술자는 생태계 보전에 도움을 주는 과학기술, 전지구적 및 국지적 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5. 과학기술 연구윤리

과학기술자는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높은 윤리적 기준에 헌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자는 과학기술 단체가 스스로 제정한 윤리강령을 준수하고 윤리적 실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5.1 과학기술자는 과학에서의 충전성(充全性, integrity) 유지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5.1.1 과학기술자는 연구개발 수행 과정에서 날조, 변조 및 표절(fabrication, falsification, and plagiarism ; FF&P)과 같은 기만행위를 피하고 연구결과의 제시에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5.1.2 과학기술자는 논문 발표 시 실질적인 기여 정도에 따라 공로를 합당하게 배분한 저자 표시를 해야 한다.

5.2 과학기술자는 연구개발 과정에서 그 대상에 대한 윤리적 고려를 해야 한다.

5.2.1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피험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피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5.2.2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는 실험동물에 대해 적절한 존중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5.2.3 생태계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그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의 파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6. 과학기술자의 책임과 윤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

과학기술자는 의사, 변호사 등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전문직업과는 달리 피고용인의 신분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반면, 과학기술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다른 전문직업에 비해 공공적 성격을 더 크게 갖는다. 따라서 과학기술자가 사회 전체에 대해 지는 책임과 고용주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크다. 과학기술자의 책임윤리 실현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6.1 과학기술 단체는 소속 회원들에게 윤리적 행위지침을 제공하는 윤리강령을 자체적으로 제정하고, 이에 따른 상벌과 쟁점이 되는 사안의 평가를 위해 상설 윤리위원회를 구성, 운영해야 한다.

6.2 과학기술 단체와 정부 관련부처는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를 제기한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6.3 과학기술 단체와 정부 관련부처는 분쟁해결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위한 공식 절차를 마련해 내부고발 등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6.4 과학기술 단체와 정부 관련부처는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 단체는 소속 회원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독립적 조언을 제공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또한 정부 해당 부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을 파악하고, 이에 대해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쟁을 조직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7.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

오늘날 윤리, 사회, 문화, 환경, 경제, 보건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많은 사회적 쟁점들은 인문·사회과학 또는 과학기술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요청되고 있다.

7.1 과학기술자와 과학기술 단체는 인문·사회과학자와 협력하여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을 잇는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다학문적(multidisciplinary) 연구 및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 관련부처와 지원기구는 이를 위해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 STS)의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

7.2 과학기술자와 과학기술 단체는 과학기술윤리 연구 및 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7.2.1 과학기술자의 교육과 훈련 과정에서 과학기술윤리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이 그 필수적인 부분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공계 대학 및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윤리가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되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7.2.2 과학기술 단체는 과학기술윤리 교육 및 연구의 현황을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한편, 소속 회원들이 인문·사회과학자들과 협력하여 과학기술윤리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

8. 과학기술 교육

과학기술 교육은 전문 과학기술자의 과학기술 교육, 초·중등교육 및 대학 교양교육에서의 과학기술 교육, 일반대중에 대한 과학기술 교육의 세 분야로 나누어진다.

8.1 정부는 전문 과학기술자의 양성에 가장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해야 하며, 과학기술 교육에 종사하는 인력이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의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8.2 초·중·고·대학 등 정규 교육기관은 과학기술이 아닌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과학기술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8.3 각급 교육기관은 일반 대중에게 과학기술 영역에서 평생 학습을 위한 기회(과학기술박물관, 과학기술센터, 자연박물관 등)를 제공해야 한다.

김명진 |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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