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7-07   6261

인간게놈프로젝트의 다양한 측면

지난 4월 14일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미국 등 6개국 20개 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해 오던 인간게놈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고 발표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사실상 끝났다는 식의 대중적 발표만 해도 2000년 6월의 초안 발표, 2001년 2월에 ≪네이쳐≫와 ≪사이언스≫에 각각 실린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 초안에 이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종료 선언을 몇 차례나 하는 것이며, 그러면 과거의 ‘사실상 종료’ 선언은 거짓말이었던 말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번 발표의 내막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00% 완성?

이번 발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이 염기서열에 대한 상세한 논문도 특정한 유전자의 기능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번에 보도자료로 나온 것은 1990년도부터 2005년까지 약 30억 달러를 투자해 인간 유전체 전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하기로 했던 사업이 4월 13일부로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즉 프로젝트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러나 실상, 인간 염기서열의 100% 분석은 사실이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 발표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전체 염기서열 중에서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는 영역의 99% 정도를 분석했고 DNA 구조와 관련돼 있는 약 400군데는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빈 공간으로 남겨 두고 있다. 사실 염기 서열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은 지난 2001년 초안에서 거의 다 드러난 상태였는데, 이번 발표는 분석의 정확도나 예상 유전자의 개수를 조금 수정한 것에 불과하다. 정확성 역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밝혀낸 염기서열은 후속 연구를 위한 참고자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이제까지 발표된 염기서열의 내용들이 지속적으로 수정되거나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돌이켜보면, 염기서열의 정확성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초안 발표 직후인 2001년에 벌어진 적이 있었다. 염기서열 분석을 놓고 경쟁을 벌이던 국제컨소시엄(이번에 사업 종료를 발표했던)과 셀레라 지노믹스(Celera Genomics)는 각기 다른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배경에는 그들이 서로 다른 분석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했다. 국제컨소시엄은 전체 DNA를 일정한 계획아래 조각 낸 다음 서열을 분석하는 계층적 방법을 사용한 반면, 지노믹스사는 처음부터 전체 DNA를 무작위로 조각낸 후 컴퓨터로 다시 맞춰 보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국제컨소시엄의 과학자들은 셀레라 지노믹스사가 사용한 방법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생물체에는 유용할지 모르나 염기의 반복이 많은 인간에게는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해 논쟁이 빚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설령 정확성이 높은 염기서열을 얻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단백질로 발현돼 기능을 할 것으로 추측되는 유전자의 정확한 개수조차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3만개 이하일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보면, ‘종료’의 정의는 다분히 임의적이고 불명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번 발표는 DNA 구조 발견 50주년에 맞추어 벌인 거대한 ‘이벤트 행사’에 가깝다. 게놈 연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계속 유지시켜 생명공학의 연구방향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동시에 관련 시장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겠다는 의도를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완성됐다’는 말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나란히 등장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국내 언론 보도는 이런 의도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간 게놈 지도 100% 완성’, ‘인간의 청사진 완성’, ‘무병장수의 꿈 눈앞에’, ‘인류 대역사 완성’ 등, 언론보도만 보고 있으면 마치 당장이라도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아 보인다. 이런 식의 과대 선전은 일반 시민들에게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유전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심어주면서 시장형성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빛 바랜 ‘공유주의’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처음 종료 시점이 2005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반이나 앞당겨 조기 달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의 회의적 시각에서 우호적으로 변한 생물학계의 분위기나 관련 기술 발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앞으로 열릴 거대 생명공학 시장에 대한 기대와 이로 인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미 국립게놈연구소에서 게놈프로젝트 연구를 하고 있었던 크레이그 벤터가 연구소를 나와 거대 생명공학회사와 함께 셀레라 지노믹스(Celera Genomics)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었으며, 많은 기업들이 새롭게 설립돼 유전체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 것 역시 유전자 상업화에 따른 기대 때문이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들이 연구에 가세하면서 게놈프로젝트는 혼탁해졌고 긍정적 의미가 상당히 퇴색됐다. 이런 상황이 2001년에 염기서열 초안을 각각 다른 저널에 발표하도록 만들었다. 공적자금으로 운영된 국제컨소시엄은 1996년 전세계의 누구라도 제한 없이 분석결과를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버뮤다 원칙’을 채택했지만 셀레라 지노믹스측은 자체 분석 결과를 공개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생명공학 시장의 창출은 염기 서열 및 유전자에 대한 특허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벌써 상당수 거대 기업들이 이에 대한 특허를 소유 또는 출원하고 있는데 이미 인간의 예상 유전자의 수보다 12배나 많은 염기서열 조각이 특허 출원, 획득되었다. 동일한 DNA 가닥에 대해 복수의 특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구잡이식 특허 허용으로 인해 보건의료 서비스가 교란되고 후속 연구가 저해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연구의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특허로 인해 25%는 자신이 개발한 임상시험법을 포기했고 48%는 아예 개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질병 관련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해도 임상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의 연구가 필요한데 특허가 그런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설사 기능 유전체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둬 그에 기반한 이른바 “맞춤 치료법”이 가능하게 된다 하더라도 접근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아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글리벡 사태는 특허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 차원의 논의를 보면, 1997년 UNESCO가 채택한 <인간게놈과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은 인간 유전체를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보고 있고, 다양성 또한 보호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상업적 이익에 밀려 그 소중한 정신의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이처럼 1990년대 중반 이후 인간유전자를 상품화하려는 경제적 동기로 강력히 추동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지식의 축적과 불치병 치료’라는 애초의 긍정적 목적에서 상당히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전자의 의미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적극적 옹호자들은 인간 유전체를 ‘미래의 일기’, ‘인간의 청사진’, ‘신의 암호’ 등으로 묘사하면서 염기서열을 해석하고 그 기능을 알아내기만 하면 질병, 행동양식, 지능 심지어 본성까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게놈프로젝트의 결과는 그런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기능, 구조 유전체학이나 단백질학을 강조하고 있는 최근의 연구는 유전자의 작용이 기존에 가정했던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유전정보 자체가 생물학적 의미로 바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960년대의 고전 유전학에서는 유전자의 작동을 DNA→RNA→단백질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인과적 연쇄로 파악했으며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특성을 발현시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유전자는 안정적이며 외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 상정했다. 이런 가설은 현재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관점에 대한 반성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의 연구 성과들은 유전자가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서 다른 유전자와 다양한 층위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제안한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환경과의 다양한 상호작용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세포 내부 및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유전자의 기능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유전자를 재배열하기도 한다. 물론 단 하나의 유전자나 몇 개의 유전자가 특정 질병을 확실히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특정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확실히 발병하는 유전병이라고 해도 발병 시기나 증상이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 있다. 열성 유전되는 헌팅턴 무도병의 사례를 들어보자. 특정 유전자의 안에 염기서열이 반복된 형태의 변이가 있는 유전자를 양 부모 모두로부터 물려받은 자식은 거의 확실히 이 병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발병 시기나 정도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어떤 사람은 살아가면서 증상을 거의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최근 실시되고 있는 유전자 검사 중에서 그나마 예측력이 높다고 알려진 유방암 유전자와 알츠하이머(치매) 유전자도 가족력(曆)이 없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많다.

게놈프로젝트의 결과는 유전자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고 있다. 유전자의 개수가 그 동안 예상했던 8-10만 개보다 훨씬 작은 3만 개 내외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간단한 벌레인 선충보다 불과 만 개가 더 많은 것이다. 2001년 초안이 발표된 후 셀레라 지노믹스의 벤터 사장은 “우리는 유전자 결정론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보여줄 충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유전자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유전자 치료(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부위를 ‘정상’ 유전자로 ‘갈아 끼우는’)의 효과에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전자 치료는 지난 1990년 공식적으로 시작된 이래 현재 세계적으로 약 500건 이상의 프로토콜이 진행되어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전달체인 바이러스 벡터를 지적하지만 일부에서는 유전자 치료 자체에 의문을 보낸다. 몇 개의 유전자 기능을 알았다고 해서 다양한 유전자와 환경의 복합적 작용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개인 유전정보의 사회적 이용

중요한 것은 생명체에서 유전자의 의미를 어떻게 보든 간에 그 의미가 실제보다 과장돼 사회적으로 유포,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도 유전정보를 사회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각종 질병의 진단, 범죄자를 비롯한 신원확인을 위해 유전정보가 활용되고 있으며,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회사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유전정보의 사회적 활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개인 사이의 모든 차이를 유전자의 차이로 생각하는 유전화(geneticization)가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을 유전자로 설명하려고 하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도 당연히 유전자의 차이가 된다. 유전자 검사가 일반화되면서 ‘유전적 부적격자’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증상 전 진단도 가능해져 ‘환자 아닌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또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차이 즉 유전자의 차이로 보는 일도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이미 고용, 보험, 법정, 학교 등에서 유전정보를 사용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말해 준다. 이제 DNA는 실험실 안의 작은 물질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권력을 획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부 바이오 벤처들의 활동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전자 중심주의의 확산과 지나친 상업 활동이 맞물린 유전자화 현상이 낳은 병폐의 결정판이다. 일부 벤처들은 관련 법제도가 없는 현실을 이용해 다양한 유전자의 수집과 각종 소인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DNA 감식을 이용한 친자확인, 가족유전자 사진제작, 출생기념 DNA 카드 제작, DNA 추출 및 영구보관 , 각종 유전자 검사 등을 핑계로 무차별적으로 유전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회사는 유명 연예인과 DNA가 일치하면 경품을 준다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광고를 통해 개인의 유전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몇몇 기업들은 결혼정보 회사와 연계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적합한 배우자를 찾아 주기도 한다. 성격, 지능, 비만, 치매 등의 검사를 통해 서로의 건강 상태를 파악한 후, 결혼 정보회사에 제공해 주고 있다. 벤처기업들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의 유전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기업의 가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유전자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가 바로 그 회사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 회사의 가치가 그 기업이 소유한 개인정보의 양과 질로 결정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벤처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많은 제휴회사를 통한 유전정보의 유통도 앞으로 큰 문제로 될 것으로 보인다.

‘단 한번의 DNA 검사로 아이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회사도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롱다리’, ‘호기심’, ‘지능’, ‘체력’, ‘비만’, ‘골초’와 같은 소인검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실시하고 있는 유전자 검사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 많다. 사회 유행어인 ‘롱다리’의 유전자를 검사해 준다는 것 자체가 허위 광고이며 실제로 이들이 제시한 유전자도 치명적 유전병에서 신장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들이다. ‘호기심 유전자’로 광고하고 있는 유전자도 대부분 병적으로 심각한 정신장애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된 것들이다. 일부 기업들은 과학적 근거라고 제시하는 관련 논문들도 대부분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짜깁기 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식의 바이오 벤처들의 활동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의학자들에게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검사들이 대부분 정확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이라고 지적하면서 장기적으로 유전자 검사의 의미가 왜곡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철저히 유전자 중심적 관점에서 출발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이제 역으로 우리에게 유전자의 과학적,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유전자에 근거한 차별과, 개인의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역동적 생명현상을 유전자로만 환원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맥락에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전자’, ‘생명체’, ‘환경’의 능동적 상호관계를 ‘삼중나선(Triple helix)’으로 표현했던 생물학자 르원틴의 주장을 진지하게 되새겨 보자.

*이 글은 <프레시안>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에 실렸던 두개

의 글을 수정한 것임.

김병수 | 시민과학 편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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