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민참여 ‘합의회의’로 갈등 풀자

참여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에 와서도 각종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그로 인한 사회갈등은 여전한 듯하다. 지난해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새만금 개발과 부안 핵폐기장 문제는 아직도 불씨가 꺼지지 않았고, 여기에 더해 지금은 이라크 파병과 수도 이전이라는 더 큰 갈등의 불길이 번져나가면서 그 대처에 정부가 갈팡질팡하고 힘에 벅차 하는 모습이다. 이로 인해 국민도 혼란스럽고 불안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갈등을 들여다보면 이해당사자들의 극단적인 대립이나 찬반 양 세력에 의한 힘 싸움으로 점철될 뿐, 정작 일반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제대로 알아내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나 통로는 매우 부족한 것 같다. 물론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언론이 여론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또 어떤 이는 국민투표로 일반 국민의 의사를 묻자고 하지만, 균형 있는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여론조사나 국민투표는 피상적인 선입견과 조작된 여론의 분포를 확인하는 데 그칠 위험이 있다.

바로 여기서 ‘합의회의’와 같은 숙의(熟議)적 시민참여 제도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합의회의’란 마치 외국 법정의 시민배심원과 같은 것을 정책결정에 도입한 아이디어로서, 예컨대 원자력이나 생명공학처럼 첨예한 사회적 쟁점이 되며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전문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는 정책사안에 대해 보통의 시민들도 주체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혁신적인 제도다. 15∼20명 정도의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되는 시민패널은 다양한 입장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뒤 치열한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쳐 채택한 최종 정책권고안을 사회에 공표해 정책에 반영하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합의회의는 덴마크에서 1987년 처음 개최된 이래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많은 나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과 1999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주최로 각각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과 생명복제기술의 윤리를 주제로 한 합의회의가 열린 바 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됐던 그 합의회의에 대해 당시 언론은 참신한 시도라며 크게 주목했고 또 시민패널의 활동도 외국 못지않게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정책결정자인 정부와 국회가 시민패널의 정책권고안과 합의회의 제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아 큰 아쉬움을 남겼다.

다행히 만 5년 만인 올해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합의회의(www.npdebate.org)를 다시 개최하기로 하면서 시민패널을 7월 11일까지 모집 중이다. 이번 합의회의의 주제는 우리나라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동안 부지선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핵 폐기장 건설 논란의 근원에는 지금과 같은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을 지속하려는 정부와 이에 반대하며 탈(脫)원전을 외치는 환경단체간의 의견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쟁점이야말로 합의회의를 통해 일반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할 문제이며, 그래야 소모적 갈등도 피할 수 있다. 합의회의의 성공은 ‘일반 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개방적 수용자세’에 달려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처럼 사회적 쟁점이 되는 정책은 이제 정부나 전문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추진될 수는 없다. 보통 시민들의 참여와 의사 반영이 보장돼야 비로소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 이 글은 동아일보 6월 2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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