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3-17   901

과학기술중심사회에 대한 시각차가 드러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http://www.stepi.re.kr)에서는 지난 2월 동안 3회에 걸쳐 새정부의 국정지표의 하나인 ‘과학기술중심사회’에 대한 정책연구기관, 기업, 시민단체의 입장을 알아보는 과학기술정책포럼을 개최했다. 2월 7일에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정성철 연구위원이 정책연구기관의 입장을, 14일에는 삼성경제연구원의 이언오 상무가 기업의 입장을, 21일에는 우리 모임 이영희 대표가 기업의 입장을 각각 발표했다. 각 포럼에는 매회 30여명이 넘는 청중들이 모여 “과학기술중심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정성철 연구위원의 [제 2의 과학기술입국 ―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은 새정부 출범에 따른 유관기관들의 패러다임 전환을 엿볼 수 있는 발표였다. 우선 70년대 개발연대의 과학기술입국이 주로 “기술도입, 습득”에 무게중심이 있었다면 “지식기반경쟁사회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자원을 활용한 과학기술력을 국가발전의 원천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바로 제 2의 과학기술입국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과거의 투입위주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지식·기술을 통한 신산업 육성이 우리나라가 추구해야할 돌파구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삶의 질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도 점차 커지고 있으며 지역 및 계층 간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기여하지 않으면 기술혁신에 대한 국민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기술발전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면서 사회·문화적 간극이 벌어지는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사회 내의 기술전달속도는 기술자체의 발전 속도보다는 사회·문화적 수용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한 관심을 돌릴 것을 강조했다. 이런 기반에서 제 2의 과학기술입국은 단지 경제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효율성(social efficiency)’를 추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로 지적했다.

발표에 대한 토론에서는 자원이 부족한 한국적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냐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재민 박사가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정성철 연구위원은 ‘선택과 집중’은 선택의 상황에서 언제나 제기되는 것이지만 목표가 경제적 효율성에서 사회적 효율성으로 바뀌면 다른 식의 선택이 가능하다며 목표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방향전환을 위한 방법으로 대통령의 리더쉽, 국민적 지지, 정책입안자의 과학적 소양, 과학기술자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소양 제고 등을 지적한 점은 일단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동안에는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비전을 대통령 수준에서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물론 국민들의 호응을 받으려는 시도도 없었다. 과학기술정책은 일부 과학기술자들만이 관심을 갖는 사안이었지 국민적인 쟁점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정책입안자와 과학기술자들 사이의 반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도 이공계위기론에 따른 이공계 전공자 공직 진출 확대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는 면에서 의미있다고 볼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언오 상무는 발표 내용 그 자체보다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입장의 차이에서 다른 발표들과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과학기술 강국을 향한 전략과제 : 기업의 관점]이라는 발표에 앞서 이언오 상무는 자신의 경험들, 그리고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했다. 이언오 상무는 학교, 정부출연연구소, 기업에서의 경험들을 비교하면서 타 부문에 비해 기업이 우위를 보이고 있는 “역동성 ― 경직되어있지 않음”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어떻게 국가 전체적으로 이런 역동적인 환경, 문화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현정부(당시 인수위)의 경제 구상에 대해 산업정책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는 이유로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다. 향후 가능성이 있는 산업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한 비전이 없이는 정상적인 국가의 운영이 불가능하다면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향후 10년간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이윤이 난다고는 보고 있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덧붙여 정량화의 한계는 인정하지만 ‘우리의 세계 속에서의 위치가 어느 정도이며 목표 수준이 어디인지가 불분명하다’, ‘정책 의지가 약하고 방향이 불분명하다’, ‘이공계 기피 등으로 대표되는 기업과 사회의 과학기술에 대한 의지 부족’ 등을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언오 상무는 특히 위기감을 부여하여 동기를 촉발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곳에서 강조했다. 이런 얘기는 특히 기업조직과 공무원 및 정부출연연구소의 조직문화와 성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가장 두드러졌으며 항상적인 위기가 혁신의 동력이라는 점을 거듭 역설했다.

토론에서는 이언오 상무가 너무 기업위주의 사고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지정토론에 나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민철구 박사는 국가의 역할과 논리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정부기관이 기업화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현정부의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대학육성도 단기적 효율성 논리만으로 바라볼 것은 아니라는 언급도 나왔다. 이언오 상무는 자신의 얘기가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위기감이 상실된 현재의 우리나라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고 어떻게 역동적인 공공부문이나 대학을 만들 수 있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연구기관과 기업에 이어 시민사회의 입장을 대표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21일의 자리에서 우리 모임 이영희 대표는 [신정부 과학기술정책의 방향 : 시민단체의 시각]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과학기술중심사회에 대한 시민단체의 시각을 제시했다. 이영희 대표는 신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은 다소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산업과 경제를 중심에 놓으면서 과학문화나 삶의 질에 관련된 영역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거나 산업 및 경제 성장에 역기능을 하지 않도록 “조율”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세한 내용은 본 호 이영희 대표의 글을 참고).

이영희 대표는 새로운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의 기본방향을 ‘삶의 질 향상’, ‘민주주의 증진’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 연구개발의 공익성 확대 ▲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투명성 증진 ▲ 참여 확대 ▲ 과학과 사회의 접점 확대 등을 제시했다.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참여의 확대, 연구개발의 공익성 확대 등의 주장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투명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정토론자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이은경 박사는 이영희 대표의 발표에 대체로 공감한다는 의견을 보이면서 시민참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와 공익적 연구개발이 어떻게 가능하겠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이영희 대표는 시민참여는 시민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며 하나의 유의미한 의사가 반영(input)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작년 우리 모임 제도연구위원회가 발간한 {과학기술·환경·시민참여}에 소개된 서구의 여러 실험들을 사례로 언급했다. 공익적 연구개발에 대해서는 아직 수요가 존재하는 지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 고령화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사회적인 수요가 더욱 긴요해질 것이라는 점을 논거로 제시하면서 향후 더욱 요구가 확대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토론으로는 시민참여는 과학기술의 속성과는 맞지 않으며 고도로 전문적인 과학기술의 영역은 민주주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고 발제문에도 제시되었던 현장과학기술자들의 참여를 위한 대표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영희 대표는 과학기술정책은 여러 단계가 있으며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참여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의 진리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으며 현장과학기술자들의 참여에 있어 대표성의 문제는 전체 과학기술자들을 대표한다는 것은 소속기관, 연령, 성별 등에 따른 차이들을 대표하기는 쉽지 않지만 현재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연구원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3회의 포럼 외에도 지난 3월 7일에는 중앙일보 곽재원 산업국장의 [언론에서 본 과학기술중심사회 전략]을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과학기술중심사회에 대한 포럼은 일단락되었다. 평소의 포럼이 20여명 내외의 참석인원으로 진행되었던 데에 비해 3회에 걸친 이번 포럼은 약 50여명 정도가 계속 참여했으며 지속적으로 참여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는 과학기술이 국정과제로 제기된 이후에 관련 주제로 진행된 포럼이었기 때문에 여러 관련 기관 및 개인들의 관심도 높았던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이번 포럼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몇 가지 특징으로는 공공부문에 대한 기업의 불신과 불만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노무현 정부의 성격 때문인지 정부출연연구소가 과거보다는 상당히 삶의 질이나 안전·복지 등 과거 시민사회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체계 내에 수용하려는 노력을 보이려 했다는 점, 그리고 시민사회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확대되고 시민단체의 역량이 성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발표 후에 이어지는 토론에서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새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영희 대표의 발표 당시에 가장 잘 드러났던 것처럼 일부 과학자들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사회)의 참여에 대해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나타내는 일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우리 모임의 입장에서 이번 포럼에 참여하게 된 것은 시민사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상승된 결과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우리 모임의 능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이번 작업이 이영희 대표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여러 운영위원들의 토론을 통해 틀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더욱 의미있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모임이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사안에 주로 집중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정책에 대한 입장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작업의 결과는 향후 관련 작업을 해나가는 데에 있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윤 | 시민과학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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