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넷 성명] 영혼 없는 청부과학자에 면죄부 쥐어 준 사법부를 규탄한다

▣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성명 

영혼 없는 청부과학자에 면죄부 쥐어 준 사법부를 규탄한다 

살인기업 옥시 위해 실험 조작한 서울대 조명행 교수 무죄 선고에 분노한다 
진상 규명과 피해 대책 마련을 학수고대해 온 피해자들, 망연자실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빚은 옥시의 실험 조작 요구를 받아들여 보고서를 작성해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서울대 조명행 교수가 오늘(28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11개월 만에 풀려났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4부는 증거위조, 수뢰후 부정처사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조명행 교수에게 징역 2년형과 벌금 2500만 원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명행 교수가 옥시 보고서의 일부 시험 결과를 삭제한 것이 연구자의 재량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옥시로부터 연구비와 별도로 받은 1200만 원도 단순 자문비라 판단해 사실상 옥시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연구용역을 제안받은 교수는 부당한 요구가 아닌 한 의뢰 업체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시험을 진행할 책임이 있고 수시로 협의가 가능하다. 조 교수가 옥시의 요구대로 연구를 수행한 것이 연구자의 직무를 위배한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연구자로서 독성실험을 하고 그것이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실험 결과를 모두 확인하고 보고서를 제출했어야 한다. 흡입독성 실험과 달리 생식독성실험 결과는 옥시에만 넘기고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은 실험 결과가 드러나지 않게 해 결국 옥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과 다를 바 없다. 1심 재판부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허용 가능한 행위로 봤다. 게다가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 증거와 다른 새로운 증거를 토대로 판단하지도 않았다. 또한 옥시 연구원 최모씨는 1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실험을 의뢰한 것이 2011.11.경 피해자들이 민형사상조치를 취하겠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대응하기 위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증언한 바 있었다.  

한 마디로 오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과 판결 내용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옥시의 요구에 따른 서울대 조명행 교수의 보고서 조작은 그대로 당시 민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됐고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에게 합의를 종용해 결과적으로 쌍방 과실의 교통사고 처리와 같은 방식과 수준으로 합의되고 말았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민사 재판 결과가 나온 직접적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 조 교수의 조작된 보고서였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큰 사회 문제가 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서울대 교수의 옥시 보고서 조작이었다. ‘청부과학’ 이란 말이 회자될 만큼 기업과 교수 또는 전문가들의 결탁에 대해 사회적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로 사건이 밝혀진 뒤에도 5년 동안 잊혀져 있던 이 사건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오늘 나온 항소심 판결은 ‘연구자가 의뢰기업의 요구대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옥시 사건의 경우 동물 실험을 의뢰 받은 서울대 교수가 실험 결과 중 중요한 독성 결과 내용을 삭제해 달라는 살인기업 옥시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자문료 명목으로 연구비와 별도로 거액을 받은 일이 부정한 게 아니라는 말이 된다. 한 마디로 ‘청부과학은 정당하다’는 시각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불과 열흘 전인 지난 4월 19일에 옥시 사건에서 서울대 조명행 교수와 거의 같은 죄목으로 구속된 호서대 유일재 교수의 항소심 판결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해 피고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열흘 차이로 거의 같은 내용의 사건에 대해 법원이 정반대의 판결을 내놓고 말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1994년 제품이 처음 출시되어 2011년까지 18년 동안 최소 24개의 제품이 최소 719만 개나 팔려 전 국민의 20%인 1천만 명이 사용했으며 이 중 최소 5만 명(정부 연구)에서 200만 명(환경보건시민센터 추산)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최악의 환경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지난 4월 21일까지 정부에 신고된 피해자가 5,561명에 이르고, 이가운데 21%인 1,181명이 사망자다. 사망자 대다수는 태아와 영유아, 산모들, 6~70대 노인들이다. 

2016년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어 관계자들 일부가 구속됐다. 시민들의 옥시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롯데와 옥시 등 일부 제조 판매사들이 사과했고, 이어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국정조사가 진행됐다. 올 들어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되고 있다.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공약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1월 제조사들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 옥시의 외국인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전체 제품의 90% 이상에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 등은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돼야 한다. 새로 들어설 정부가 검찰에 ‘가습기살균제참사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참사의 진상을 다시금 철저히 파헤쳐야 하는 까닭이다. 

법원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강찬호 대표는 “살인 기업 옥시를 위해 실험 조작한 서울대 조명행 교수에게 무죄라니 어이가 없다. 영혼 없는 청부과학자에게 면죄부를 쥐어 준 사법부에 분노하고 규탄한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시민사회단체들과 민변의 변호사들은 “우리는 이번 항소심 판결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검찰은 즉각 상고해 대법원에서 적어도 1심과 같은 내용의 판결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라고 밝힌다. 

2017년 4월 28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ㆍ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환경보건시민센터ㆍ환경운동연합ㆍ참여연대ㆍ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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