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4-28   636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성명서

과학과 세계문제에 관한 퍼그워시 회의(Pugwash Conference on Science and World Affairs) 운영위원회(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은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의 절차 없이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했다. 퍼그워시 운영위원회는 이 전쟁 행위를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 결과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바이다.

첫째,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라크 국민들은 전쟁의 결과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것이고, 따라서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공공 시설이 대대적으로 파괴되어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둘째, 국제 기구, 특히 국제 연합(UN)의 역할이 감소할 것이다. 만약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영구 회원국 중 일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견해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안전보장이사회와 UN의 권위는 실추하게 된다. 더욱이 현재와 같이 안전보장이사회 내부에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일 경우, 국제 기구 체제를 향상시킬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한 비관론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방적 선제공격(initiative)이 앞으로 보다 빈번해질 조짐이 일어날 것이다.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상대로 이라크의 무기 감축과 1441 결의안의 강화 등의 이유로 이라크 전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UN 사찰단은 무기를 찾아내고 또 그것을 제거할 것을 독촉함에 있어 성과를 보인 바 있다. 한스 블릭스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가 누누이 언급했듯이, 사찰의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능한 한 대규모의 사찰단을 이라크에 투입했더라면, 이라크도 대량 살상 무기를 구비하거나 생산하거나 비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자국민들과 국제 사회의 여론을 향해 이라크 전쟁이 테러, 특히 대량 살상 무기의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전쟁 또는 예방전(preventive war)으로서의 명분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라크 공격은 미국의 국가 안전 문제로 치부되어 왔는데, 여기는 전쟁에 대한 국제 사회의 동의가 유용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불필요하다고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다. 사실 이라크 정권이 국제적인 테러에 연루되어 있다는 증거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라크 전쟁이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이라면, 그러한 전쟁은 한 국가가 가능한 미래에 테러 조직과 유착을 갖지 않으리라는 점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테러와의 전쟁은 그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군사 행동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그치지 않는 전쟁이 낳을 결과를 심히 우려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정권 교체, 즉 사담 후세인의 독재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국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정권 교체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그 자체만으로 논의된 바 없다. 사담 후세인의 축출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기구가 특정 국가의 정권 교체를 유도하는 일을 관장해야 하는가? 정권 교체를 유도한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정권 교체에 대한 국제 사회의 합의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 답할 수 없다면, 세계의 앞날은 국제법보다는 무력과 무정부 상태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보다 넓은 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 이라크 전쟁이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구의 적대감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그리고 그 결과 서방과 아랍 국가들, 일반적으로는 이슬람세계 사이의 적개심 및 복수심을 극대화하게 될까봐 걱정스럽다. 이 복수심으로 인해, 국제 사회 분위기가 냉각되고, 민주주의의 수준을 강등시킬 급진 세력 및 단체가 활개를 띨 것이다. 그것은 국제적 테러의 새로운 진원지가 될 것이다.

냉전 기간 동안, 퍼그워시는 대화, 무기 감축, 협력을 통해 동서간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당시의 정신을 이어서, 퍼그워시는 대화와 협력을 모색하고 서구와 이슬람 세계간의 이해를 도모하고 계속해서 무기 감축을 촉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또 좀더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결과를 낳은 최근의 상황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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