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세월호참사 2014-06-23   912

[세월호 참사 두 달, 릴레이 기고 – 이것만은 바꾸자](5) 유언비어 차단 이유로 ‘의혹 제기’까지 막아선 안돼

유언비어 차단 이유로 ‘의혹 제기’까지 막아선 안돼

정민영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의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제대로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소중한 생명들을 떠나보낸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침몰의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정부의 대처는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사고 원인과 정부의 구조작업에 대한 의혹 제기가 사고 초기부터 쏟아졌지만, 많은 언론들은 ‘사상 최대의 구출작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전하기 바빴다. 그럼 정부는?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는 구실로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 제기 자체를 차단해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사건 발생 이틀 뒤부터 경찰은 사이버수사 인력 1000여명을 동원해 ‘세월호 유언비어 차단’에 나섰고, 적지 않은 인터넷 이용자들을 잡아들였다. 교육부는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세월호 관련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처벌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키라고 했다.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일반 국민들이 구속수사를 받았고, 청와대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언론사들을 상대로 한 소송이 줄을 이었다. 이런 대응방식의 바탕에는 어떤 사고가 자리 잡고 있는 걸까?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을 보자. “(세월호와 관련한) 악성 유언비어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진원지를 끝까지 추적하겠다.”(4월21일 수석비서관회의)

 

유언비어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자양분으로 삼아 확산된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견고하면 유언비어는 금세 사그라지게 마련이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악성 유언비어가 확산되고 있었다면, 그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팽배해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지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를 들먹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할 일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하고 오해가 있다면 신속하게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유언비어를 엄단하겠다며 국민을 겁박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정당한 의혹제기 자체를 봉쇄하는 일이 될 뿐이다.

 

어느 상황에서도 정부 활동이나 정책에 대한 국민의 비판은 두껍게 보호되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체제가 온전히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전제조건에 속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국가에 대한 비판과 의혹 제기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법제를 대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우선, 허위가 아닌 진실한 사실은 명예훼손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다수가 진실적시명예훼손을 비범죄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진실적시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으로 인해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 정치적 풍자나 비평, 패러디뿐만 아니라 논평까지도 광범위하게 잠재적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다.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어렵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등으로 그 적용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

 

둘째, 허위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성립하는 명예훼손죄의 경우, 그것이 공직자의 직무에 관한 내용인 한 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국민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허위와 사실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이런 경우까지 명예훼손죄로 형사처벌할 경우 국민의 권력 비판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국가기관이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소송에 등장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 대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국가기관의 업무 처리가 정당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비서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여러 건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린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마지막으로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개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지금의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의 수사 개시가 가능하다. 명예훼손죄를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제기가 가능한 친고죄로 개정할 경우 수사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면, 언론이 정부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더라면, 안타까운 희생을 조금이나마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 필요한 일은 다양한 의견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도록 언로를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보다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명예훼손 법제를 재편하는 일이 필요하다.

 

* 이글은 2014년 6월 23일, 경향신문 오피니언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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