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8-10-15   669

[창간호] 특·집·글·② 우리나라 합의회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점

연재순서 (3회 분재)

1. 합의회의의 출발

2. 과민모의 참여

3. 합의회의 주제의 선정

4. 조정위원회의 구성과 역할

5. 시민패널의 구성과 준비

6. 전문가패널의 선정

7. 언론의 문제

8. 정치권의 반응

9. 시민단체의 역할

10. 국제적 협력의 문제: TA기구, 외국 시민단체

11. 프로젝트책임자/사무국/주최기관의 문제

12. 본행사에 대한 평가 ( 평가의 기준: 합의회의는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촉진할 것인가?)

1.합의회의의 출발

이번 합의회의의 추진 성사는 다소 우연적이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합의회의(Consensus Conference)'라는 개념이 소개된 것은 아마도 이영희 박사가 96년 12월 한국사회학회 후기사회학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이 처음인 것 같고, 이박사는 이를 후에 보완하여 STEPI 연구보고서 <유럽의 기술영향평가: 참여적 과학기술정책의 새로운 흐름>(1997년 3월)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논문과 보고서를 접한 사람은 관련분야의 연구자나 일부 학생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그리고 정작 STEPI나 과학기술처에서는 이 보고서의 중요성을 거의 무시하였기 때문에) '합의회의' 개념은 일반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약간씩이나마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7년 2월 3일자 한겨레신문의 '봉화2000'이라는 칼럼에 김환석이 이를 짤막하게 소개한 글로부터인 것 같고(이후 김환석은 7월 16일 열렸던 '생명공학의 사회적 문제에 관한 시민사회단체 토론회'의 발표에서도 이를 거론),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되어 비교적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97년 10월 29일자 한겨레신문의 '과학기술 민주화 현장을 가다'라는 특집 연재기사의 첫호로 덴마크의 합의회의가 소개(이제훈 기자)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11월 22일에 참여연대 과민모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 민주화'의 구체적인 주요 사례로서 합의회의를 널리 선전하고 이를 추진하고자 하는 노력에 시동을 걸면서 그 실현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합의회의는 주최기관의 공신력과 상당한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국회와 정부가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98년 3월에 우연한 계기가 찾아왔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98년의 주요 사업중 하나로 '생명윤리'(bioethics)에 관한 사업을 하기로 기관 차원에서 이미 결정하고 그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구상하기 위한 자문회의를 3월 12일에 개최하였는데, 거기에 김환석이 초청된 것이다. 그 회의에서 김환석은 생명윤리사업을 합의회의 방식으로 추진하도록 유네스코측에 적극 권유하였고 그 반응은 좋았다. 그후 유네스코 실무진에 대한 추가 설득과 드디어 사무총장의 재가를 거쳐 생명윤리에 관한 합의회의를 추진하기로 4월초에 최종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중 실무진에 속해 있던 한재각씨의 막후 역할이 매우 컸다.)

따라서 합의회의는 국내에 소개된 지 약 1년이란 짧은 시간만에, 합의회의의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단체(과민모)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기도 전에, 비교적 요행히 성사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기쁜 일이었지만, 과학기술운동과 우리나라의 전반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는 '준비되지 않은 행운'의 이중성을 갖고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2. 과민모의 참여

4월 초에 합의회의 성사 소식이 과민모에도 알려지고 회원들은 대체로 환영하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과민모가 조직차원에서 이번 합의회의를 추진하는 실체(공동주최?)의 역할을 하리라고 암묵적으로 가정되었다.

그러나 4월 11일의 과민모 MT(이천 유네스코청년원)에서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음이 갑자기 회원간 토론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즉 과민모의 98년 주요 사업방향으로 정한 "생명공학 문제의사회적 이슈화"와 관련하여, 당시 국내에선 일반은 물론 시민운동권에서도 생명공학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나 문제제기가 거의 없던 상황이어서 과민모밖에는 그러한 비판적 문제제기의 구심점 역할을 할 단체가 없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따라서 이와 동시에 과민모가 합의회의의 주관 역할을 공식적으로 하게 된다면, 중립적(?) 입장에서 합의회의가 잘 추진되도록 할 임무를 애초부터 생명공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당장은 그렇게 보이는) 단체가 담당하게 된다는 이른바 '역할 불일치' 혹은 '역할 갈등'의 모순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후 이 문제는 과민모가 조직차원에서는 합의회의를 주관하지 않고, 단지 '개인차원'(김환석, 이영희, 한재각, 이혜경 등)에서만 참여하는 것으로 하기로 일단락되었다. 조직차원에서는 이후 '생명안전윤리 연대모임'의 결성 등 생명공학에 비판적인 시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과민모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과민모의 '역할 갈등'의 해소는 사실 미봉적이고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현재 합의회의 주관자로 참여하는 과민모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상황마다 '이중플레이'의 고통을 겪을 때가 많다).

과민모가 겪는 문제의 주된 원인은 국내 사회적 상황에 있다고 본다. 아직 생명공학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이나 실천이 매우 취약해서 이 부분에 과민모의 선도적 역할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 부분의 상황이 충분히 변화한다면(98년 하반기엔 이미 그런 희망적 조짐이 보임), 과민모는 더 이상 '역할 갈등'을 겪을 필요가 없게 될지 모른다. 다만 과민모 내부에는 생명공학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공존하고 있어 아직 조직차원의 입장 정리가 안되고 있음이 문제로 남아 있다. 과민모의 취지인 '과학기술 민주화'가 무엇이냐에 대한 관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만일 그것이 예컨대 생명공학 문제에 대한 특정 입장의 고수가 아니라 '민주적 시민참여'를 촉진하는데 국한하는 것이라 본다면, 장차 과민모는 생태주의적 단체와는 그 활동을 점점 차별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생명공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의식확산이 주된 초점으로 정해진다면 과민모는 합의회의 주관단체로서는 적합치 않다. (이는 예컨대 Loka Institute와 CRG간의 차이와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현실적 문제로 느껴진 것은 이번 합의회의를 실제로 과민모 멤버들이 추진하면서도 외부에 공식적으로는 '과민모' 활동이라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 신생 시민단체인 과민모로서는 큰 기회 손실이라는 점이다. 이번 합의회의처럼 과학기술에서의 참여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사회에 널리 알릴 좋은 기회는 드문데, 과민모가 실제 일은 다 하면서도 합의회의를 과민모가 주도하고 있다고는 알려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과민모는 빨리 대중에게 자신의 분명한 이미지를 심을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시민운동권 내부 혹은 좁게는 참여연대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확보할 필요가 있는데 애석하게 이번 합의회의는 이에 별로 도움이 못되고 있다. (따라서 내년도 합의회의에서는 과민모를 공동주최 자격으로 요구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수용될 지는 미지수다.)

3.합의회의 주제의 선정

생명윤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합의회의의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번 합의회의의 주제 선정은 가장 힘들고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문제였다. 4월초부터 7월초까지 무려 3개월이나 바치면서 시행착오를 거쳤다. 처음엔 합의회의의 성격을 잘 이해 못하는 유네스코측에서 그냥 '생명윤리'라는 넓은 주제 자체가 합의회의 토픽이 될 수 없느냐는 요구 때문에 애를 먹었고, 다음엔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한 주제가 무엇이냐를 찾아내느라고 애를 먹었다.

다른 나라의 합의회의 문헌들을 참고하고 여러 곳에 자문을 구해야 했다. 과민모 회원들에게도 널리 자문을 구했다. 결국 프로젝트책임자인 내가 후보 주제 둘을 선정하였다. '생명복제'와 '유전자치료'가 그것이다. 두 가지는 장단점이 달랐다. 전자는 "복제양 돌리"로 이미 어느 정도 대중화된 주제로서 유치하지만 인간복제 논쟁으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생명공학의 문제 중) 대중적 관심을 받은 주제라 볼 수 있다. 후자는 외국에서 합의회의 주제로 각광을 받은 주제로서(예: 덴마크, 네덜란드, 일본), 생명윤리와도 잘 맞아떨어지긴 하나 국내의 대중이 폭넓게 관심을 갖기엔 어려운 단점을 지니고 있다.

위 두 가지 후보 주제들을 6월 15일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렸던 합의회의 홍보용 워크샵에 올렸다. 열띤 토론이 있었고 참석자들의 의견조사를 해보니 거의 반/반으로 팽팽하여 거기서도 결론을 내기는 어려웠다. 나는 첫번 합의회의는 대중의 주목을 받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또 '유전자치료'는 일본의 첫 합의회의 주제였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생명복제'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마지막으로 언론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확인차 조홍섭부장에게 연락했으나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생명복제'는 언론에서 이미 97년에 다 울궈먹은 주제여서 식상해 할 것이란 지적이었다(3달쯤 후 조 부장은 이때 자신의 판단을 약간 후회하였음). 합의회의의 성패 여부엔 언론의 관심과 보도가 중요한데, 이는 큰일이다 싶어서 다른 주제를 다시 원점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이미 7월초가 되어 촉박한 가운데 머리를 짜내어 '유전자조작 식품'을 후보로 떠올리고 주위의 의견을 타진하였다. 유네스코 이승환부장이 약간 반대했으나("그건 주로 생명공학의 '안전'에 관련된 주제이지 '윤리'와는 좀 멀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성이었다. 7월 15일의 1차 조정위원회에 이 안을 올려서 확정이 되었고 드디어 7월 20일자 한겨레신문의 시민패널 모집광고에 이 주제가 실려 이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 후에 유전자조작 식품과 관련한 여러 사건도 터지고 언론에도 널리 보도되었으며(한겨레신문의 공헌이 컸음), 또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활성화되면서 이 주제는 이제 공론의 장으로 비로소 들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주제를 잘 정했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러나 위의 과정에서 보듯 처음부터 지금처럼 정해질지는 전혀 확실치 않았다.

외국의 경우에도 합의회의의 주제를 정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인 것 같다. 덴마크의 DBT(Danish Board of Technology)에서는 다루어야 할 주제들을 전문가들에게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구하고 여기에 기관 내부에서 올라온 주제들을 합쳐, 여러 번의 조정위원회에서 스크리닝을 한 후 합의회의에 적합한 것과 기타의 것들을 분류/확정한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는 이미 확립된 조직이 있어 그게 가능하지만, 우리의 경우엔 여건상 그렇지 못했다. 내년의 합의회의 역시 주제 선정을 둘러싸고 지금부터 고민에 싸여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보다 체계적인(그러나 비용절약적인) 방법은 없을까? 주제 선정에서부터 시민(혹은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길은 없을까?

4. 조정위원회의 구성과 역할

조정위원회는 합의회의의 준비과정에서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한다. 즉 실무자들은 안을 만들어 올리지만, 승인/확정을 받는 것은 조정위원회를 통해서이다. 따라서 조정위가 어떻게 구성되며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합의회의의 성패에 매우 중요하다.

조정위원 선정은 유네스코측과 프로젝트책임자 사이의 논의를 통하여 이루어졌고, 그 원칙은 합의회의 주제를 폭넓게 잘 아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5∼6분 모시자는 것이었다. 동시에 우리들은 결과적으로 볼 때 조정위원의 구성이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해 어느 한편에 치우친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사후에 합의회의의 공정성에 흠이 잡히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연락을 드린 전문가들은 대체로 합의회의의 취지에 대해 환영을 하시며 기꺼이 조정위원직을 수락을 해주었다. 변광호 생명공학연구소장님도 의외로(과기부 때문에 걱정되었는데) 흔쾌히 수락을 하여 주최측은 고무되었다.

조정위원회는 1차(7월 15일), 2차(8월 26일), 3차(9월 30일) 회의를 전부 마친 상태다. 그동안 조정위가 한 역할을 나름대로 평가해보면, 프로젝트책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조정위는 그 역할을 충분히 그리고 적합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분들은 합의회의에서 조정위원의 역할(권한)과 한계에 대하여 비교적 잘 이해를 하셨지만 다른 분들은 그러지 못했다(시민패널의 결론에 대한 최

종심사를 하자는 분도 계셨다). 무엇보다 조정위원으로서 충분히 몰두하여 실무자의 안을 검토/심사/제안을 하기보다는 형식적인 역할에 머물고 많은 것을 실무자에 위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론 실무자가 일하기 편한 조건을 만들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무자의 재량이 너무 크고 조정위원회는 주변적인 역할(합의회의에 권위를 부여하는 장식?)에 국한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는 이번이 첫번이어서 이해가 깊지 못해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또 우리나라의 관료적인 회의문화가 대개 그런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것이든 실무자로서의 잘못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조정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충분한 숙지를 시켜드리지 못한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 번 합의회의에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여겨진다. (다음에 계속)

김환석·우리 모임 대표, 합의회의 조정위원회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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