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7-07   1647

그녀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까닭은?

과학기술과여성위원회, 이공계 기피현상을 젠더화하다

정체 없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미신처럼 퍼져나가는 지금, 후한 장학금 제도와 함께 심심치 않게 그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것이 여성 이공계인의 양성이다. 그러나 현실은 공허한 구호와 달라서 여전히 대학의 이공계열 학과에는 여학생의 비율이 낮고, 대학원은 한 연구실에 한명씩 최소 인원으로 최다 연구실을 커버하고 있으며 여성 교수는 수백명중 한명 꼴일 뿐이다. 누구나 알고는 있으나 이상현상으로 인지하고 있지는 않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과학기술과 여성위원회(이하 여위)는 다시 ‘왜?’라는 질문을 던졌으며, 자신들의 구체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한 그 답 찾기의 과정을 이번 토론회를 통해 회원들과 공유하고자 하였다.

여성들이 이공계”스러움”을 자신의 생활 영역 안에 포함시키지 않게 되는 여러 가지 원인 중에 하나로, 여위는 고등학교 여학생의 과학 관련 교육을 지목하고 있다. 즉 고교과정에서 선천적인 과학 능력의 차에 대한 인식이 재생산되고 있으며, 남성적인 과학기술 이미지가 강화·확대되고 있고, 여성 이공계인의 역할 모델 제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위는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남/여/남여 공학 3개 고교 273명과 공대 입학 예정자 18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이번 토론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토론회에서는 앞서 말한 설문 분석 결과가 제시되었으며, 이후 나아갈 방향 제시를 위한 힌트로 외국의 멘토링(mentoring) 제도 성공사례가 소개되었다. 설문 분석 결과 중 회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거나 여위에서 특히 유의미하다고 강조하였던 내용들을 간략히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문서 마지막의 표 참조)

우선 설문 조사 결과 전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인데, 암기력이나 언어 관련 능력은 여성이 우세하고 추리력, 공간지각력은 남성이 우세하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표본에 따른 편차는 있었는데, 남학교 학생의 경우 성차에 따른 학습 능력에 대한 전형적인 인식이 강하게 드러났고, 여학교 학생의 경우 이러한 전형적인 사고로부터 보다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형적 인식으로부터 가장 많이 자유로운 집단은 공대 입학 예정 여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언어 관련 능력부터 공간 지각력까지 약 50%가 ‘양성 모두 잘함’에 응답하였다. 한 가지 놀라웠던 결과는 남녀 공학 여학생의 경우 여학교 여학생들보다 전형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간 지각력의 경우 여학교 학생의 경우 약 60%의 학생들이 차이 없음에 응답한 반면 남녀 공학 여학생의 경우 20% 정도에 불과하였다.

설문 조사 결과 중 또 한 가지 흥미를 끌었던 것은 여학생들이 의지를 약화시키는 발언들을 접하게 되는 경로인데, ‘여자가 과학은 배워서/잘해서 뭐해?’, ‘여자는 나서서는 안 된다’, ‘여자는 끈기가 부족하다’ 등의 발언들은 접하는 경로는 부모나 선생님 등 주변 사람들보다는 주로 매스미디어 등 제 3자를 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학생들의 경우 여학생들에 대한 위와 같은 의지 약화(사실 남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여학생들에 대한 폄하 발언이 되겠지만) 발언을 선생님 또는 부모님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내 자식/내 학생은 여자라도 과학을 비롯해 모든 것에 대한 높은 성취를 기대하는 반면 직접적 관계망 외의 여성에 대해서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설문조사 분석 발표가 끝난 뒤 미국의 텔레멘토링(telementoring) 제도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3차에 걸쳐서 시행된 이 텔레멘토링 제도는 멘토(mentor)와 멘티(mentee) 모두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고, 멘티로 하여금 이공계에 진출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본 프로젝트의 자체 평가에 따르면 텔레멘토링 제도가 여학생들로 하여금 이공계 관련 직업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하도록 유인하는 데는 큰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평가된다. 이는 이후 토론 시간에 한국의 WISE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는데 참고가 되었다.

주제 발표가 끝나고 패널 토론이 이어졌는데, 이은경 토론자가 주제의 가정에 대한 문제 제기와 발표 조사에 대한 코멘트로 그 시작을 열었다. 이은경 토론자는 우선 여성과 남성에 선천적 과학 기질의 차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집단적 정체성과 개별적 고유성이 개인의 행동 패턴을 결정하는데 복합적으로 반영되는 역동적인 과정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많은 과학 분야에서 “과학적 조건” 및 “과학적 기질”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단순화 추상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는데, 예를 들어 언어적 능력과 과학적 능력에 구분선을 긋는 것은 실제 과학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볼 때 부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발표 조사에 관한 문제 제기로 표본 추출이 몇 학교에 치중되어 지역적 차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는데, 이는 설문 결과 분석 과정에서 이미 인식된 사항으로 이후 보강되어야 할 사항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이은경 토론자는 여학생들의 이공계 대학 진학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여성의 이공계 대학 진학 기피와 이공계 직업 선택 기피는 서로 다른 문제로 정의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언급하였다.

그 뒤를 이은 이기순 토론자는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의 관점에서 주제 발표를 이해하였다고 전제하면서, 여학교 여학생과 남여공학 여학생의 인식 차이라는 현상에 대한 고민이 좀더 필요함을 이야기하였다. 이기순 토론자는 이러한 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여학생에게는 여학교 교육이 좋다는 식으로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며, 오히려 남여공학의 교육 현장에서 교육 방식이 어떠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의 시작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였다.

참여연대 강당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활발한 토론 속에서 고교 교육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지, 텔레멘토링이 중심적으로 지향할 바가 무엇인지, 이후 연구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인지 등이 논의되었다. 우선 현재 wise에서 진행하고 있는 텔레멘토링에 대해, 멘토와 멘티의 범위가 초등학생부터 실무 과학자 및 공학자를 모두 포괄할 정도로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따라서 멘토링이 여성의 이공계 분야 진출을 촉진한다는 본래의 목표에서 벗어난 일반적인 진학/인생 상담이 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 되기도 하였다. 한편 고교 과정에서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듣는 발언과 영향을 분석할 때 교사의 성별을 구분해 보는 것도 유의미하지 않을까 등의 의견도 제안되었다.

약 2시간 30분 여에 걸친 토론회는 여성의 이공계 분야 진출 기피의 근원을 청소년 교육 현장에서부터 찾아보려는 여위의 문제인식을 공유하기에 충분하였고, 이후 지속되어야 할 연구 방향에 대한 많은 단서를 잡아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회원들 중에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회원이 있다면 다음 기회에 있을 여성위원회 토론회에 꼭 참가하실 것을 권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사회 : 김동광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주제 발표 : 과학기술과여성위원회

토론 : 이은경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기순 (STS 교육위원회)

*토론회 자료 및 기타 자료가 필요하거나 여성위원회에 하실 말씀이 있는 회원께서는 elleskei@hanmail.net로 연락해 주시길 바란다.

전정현 | 과학기술과여성위원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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