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4-28   1095

“다른 기술”은 우리에게 페미니스트의 시선을 가지라 한다

미 남동부 여성학회 주최 『젠더와 기술』컨퍼런스 현장일기

언젠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머 그림 한 장을 본 적이 있다. ‘남성용 청소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던 그 그림 속에서는 익살스런 표정의 백인 남자가, 어린애처럼 거실 안에서 1인용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1인용 자동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잔디 깎는 기계에 가까웠다. 그 한심스런 그림에 한참을 배꼽을 잡고 웃다보니 ‘집안 청소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면?’ 하는 생각에 이른다. 소리가 요란하면 어떻고 집안 구석구석 청소가 잘 안되면 어떠하리… 진짜 남자라면, 청소를 통해서 남성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법! 잔디 깎는 기계처럼 앉아서 “운전”하는 진공청소기가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 아닐까.

어쨌거나 현실은, 가상처럼 코믹하지조차 못하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공과대학 학과들에서는 여자 교수 한 명 찾아보기가 여전히 힘들다. ‘먹는 피임약이 안전하고 현명한, 심지어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피임수단’이라는 (보건복지부의 그리고 제약회사의) 지하철 광고를 볼 때면, 호르몬제가 과연 콘돔보다 안전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신형 아파트들은 한 평짜리 드레스룸·파우더룸이 “여성을 배려한 설계”라고 강변한다. 내 여자 조카에게 줄 선물을 “여아용”이라는 딱지가 붙은 장난감 코너에서 골라 주긴 정말 싫다. 블록이나 공구놀이, 자동차 같은 장난감조차도 그곳에 없으니까… 기술과 그 결과, 그리고 기술을 둘러싼 문화들은 과연 가치 중립적이고 모든 성에 평등한가? 그렇지만, 기술이 이렇듯 가부장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어야할 필연적인 이유란없지 않은가…

‘Do Artifacts Have Sexual Politics?’라는 포스터 문구가 내 발길을 멈추게 했던 건 작년 여름. 지금 있는 이 학교에 도착한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인공물에 성정치가 있는가? 그 옆자리엔, ‘Yes’라는 대답 대신 SEWSA(미 남동부 여성학회; Southeastern Women”s Studies Association)의 2003년 학회 『Gender and Technology』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야호! 하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오는 흥분된 순간이었다. 아주 오래지 않은 미래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많은 동지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몇 달 뒤, 뜻밖에도 한국에서 하정옥씨가 이 학회에 참가하려고 프로포절을 냈다는 연락을 취해왔고, 행사 코디네이터를 맡은 여성학과의 캐롤버거는 국제규모의 학회가 아님에도 한국 학자가 쓴 한국인 여성에 대한 발표 논문을 받게 되어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내게 전해왔다. 드디어 3월. 여성의 달을 기념하는 이런 저런 이벤트들이 학교에서 열리고, 미국 전역의 여성주의자들이, 코드 핑크라는 작전명(?) 하에 여성의 이름으로 혹은 성적 소수자의 이

름으로 반전을 부르짖는 조금 특별한 여성의 날 행사가 있었다. 워싱턴의 매파들이 코드 옐로니 코드 오렌지니 하는 식으로 테러 경보를 남발할 때, 여성들은 평화를 얘기하고 있었다. 학회 하루 전 날, 우울한 전쟁의 소식이 들려왔다. 학회 참석자들 대부분이 참가한 메인 세션의 사회를 보던 메건 보울러는 ‘남성들의 기술은 전쟁 무기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다른 기술을 꿈꾸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라는 멘트로 행사를 시작했다. 그렇다. 다른 경험과 다른 시각은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는 자원인 법. 따지고 보면 이번 컨퍼런스의 컨셉도 그렇지 않은가. 페미니스트들의 생산성과 이윤을 넘어서는 “다른 시각”은, “현재의 기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기술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메인 세션으로 준비된 첫째 날의 『기술 연구에 대한 페미니즘의 기여 Feminist Contributions to the Study of Technology』, 둘째 날의 『페미니즘을 테크놀러지 분석을 위한 렌즈로 사용하기 Using Feminist Theories as Lenses on Technology』, 그리고 행사 기간 내내 함께 했던 특별 전시 『Do Artifacts Have Sexual Politics? 인공물은 성정치를 가지는가?』를 제외하고는 두 세 곳에서 동시에 논문발표 세션을 진행하는 학회인 만큼, 어떤 세션에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부터가 행복한 고민이었다. 하정옥 씨는 ‘발표가 첫 날 두 번째 세션에 잡혀 있어서, 발표 후에 맘 편히 여기 저기 참석할 수 있겠다’며 좋아한다.

하정옥씨가 발표했던 논문은 ‘출산기술: 한국에서의 시험관 수정 Engendering Technology: In-vitro Fertilization in Korea’이다. 북미를 비롯한 서구에서도 출산 기술 혹은 생식보조 기술은 여성학이나 과학기술학 진영이 큰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주제다. 그러나 이 발표 논문은 한국에서 시험관 시술이 어떤 식으로 여성들에 의해 선택되는지를 보여주고, 배아연구의 윤리성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쟁 속에서 “잉여 배아”라는 표현 뒤쪽으로 “여성”이라는 주체가 애써 외면되는 것이 왜 문제인지를 지적하며, 출산 기술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분석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론화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사실 그 맥락은 아주 씁쓸하지만 불임시술은, 시술 건수와 기술력을 놓고 보자면(!) 서구의 과학 기술이 개발 도상국 이노무 표현도 참 마음에 안드는데 적절한 대체물을 찾지 못했다 에서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개발도상국은 보다 발달한 과학기술을 “모방”하기에 부산한 것처럼 기술되는 그런 틀과는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 구석이 있는 기술의 한 예가 될 것이다. 이런 기술을 분석하는 데에 단순히 한국의,제 3세계의(!) 사례는, 있다면 케이스 스터디의 재료를 제공할 뿐이고 이론 틀은 기존의, 북미학자들의 그것만이 유효적절한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에도 도전하고 싶었다는 요지의 얘기를 뒤늦게 들으면서 마음이 짜안했다.

확실히 연구자의 특수한 경함과 고민이 생생하게 녹아 있는 연구들을 접할 때면 마음이 동한다. 안다는 것은 동의한다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버지니아텍 대학원생 도나 어거스틴이 발표했던 논문은 (비만 치료를 위한) 위 절제 수술이라는 의료기술의 맥락 위에 “비만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을 위치시킨다. 여담이지만 누가 봐도 자신 있게 뚱뚱한 그녀는 참 아름답다. 밴더빌트의 한국계 미국인 줄리 박은 아시아 여성들의 성형수술의 여러 측면과 그 의료적·사회적 구성을 탐색한다. 뉴 스쿨의 대학원생들은 페미니스트닷컴 프로젝트 (http://www.feminist.com)의 구석구석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전달해주었다. 문득 ‘과학 안에서의 여성문제를 질문하는 데에서 시작한 페미니스트 과학학은, 이제 페미니즘 안에서의 과학의 의미를, 어떻게 하면 과학이 여성해방의 도구로 쓰일 지를 탐색한다’는 하딩의 말이 떠오른다. ‘현재의 정보통신 기술은 어떻게 여성해방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가!’

여성학이나 과학기술학 분야의 연구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와 젠더문제를 연관시킨 연구도 꽤 여러 편 눈에 띄었다. 농업 기술과 여성의 문제에 대한 한 발표는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고민을 오버랩 시키기도 했고, 오랫동안 공간과 교통 등의 도시계획을 연구해왔던 한 발표자는 도시 공간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타자화되어 왔는 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편에서는 젠더와 기술의 문제를 실제 초중고 교육 속에서 다시 고민하려는 연구자들도 있었다. 특히 이런 연구는 여학생의 컴퓨터공학 전공과 관련해서 두드러진다. 미국에서는 꾸준한 증가일로에 있던 컴퓨터 공학전공 여학생의 비율이 10여 년 전 30퍼센트대에서 피크를 이루곤 다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대한 충격은 왜 “그녀”들이 대학내 컴퓨터 공학의 “문화”와 유리되는 지에 대한 물음들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미디어에, 뷰티 산업과 섹스산업, 혹은 의료 기술이나 최근의 생명과학기술의 연구 속에, 정보통신기술 속에… 페미니스트 시각이 구석구석 개입해야 할 여지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숱한 문제제기들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비판적 시각은 기술을 떨어뜨려 놓고는 생각할수 없는 우리의 문화를 다시 쓰는 작업이기도 하리라.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쉬운 점도 많았다. 우리는 많은 기술들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성차별적이라고 비판을 하지만, 사회가 성차별적이기 때문에 기술이 그렇게 구성된다는 식의 결론만으론 갈증을 채울 수가 없다… 일단은 페미니스트들이 과학기술에 눈을 돌렸던 이후 지금까지의 성과나 과학기술학이 쌓아온 성과만이라도 일단 제대로 소통해야 할 것 같다. 문화와 동시에 기술을

바꾸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선.

물론 테크놀러지와 사회·문화의 역학관계를 본다는 것만도 간단치 않은 일이긴 하다. 가령 컴퓨터 사이언스와 여학생의 문제를 다룬 논문들은 ‘왜 여학생이 적은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미국판 이공계 위기는 벌써 오래 전에 시작된 일이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이 처음 과학문제에 눈 돌렸을 때처럼, ‘왜 이렇게 적은가?’하는 문제는 백인·남성이 기술 분야를 독점하고 있다는 식의 문제 틀을 설정하는 이상 어딘지 어긋나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 대부분의 미국 공과대학 대학원을 인도, 중국, 한국 학생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미학자들에겐 신기하게도 간과된다. 과거 ‘과학과 젠더’가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을 때의 논의 스타일에 너무 쉽게 안주해버린 듯한 혐의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대목이었다.

이곳에 떠나오기 전, 유학 가서 뭘 공부할거냔 질문을 종종 받곤 했었다. 기술철학을 공부하고 싶고, 장기적으로는 페미니스트 인식론을 나의 기술철학에 적용하고 싶고 하는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시작될라치면, 놀랍게도 많은 이들의 반응이 내가 기술철학에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의 물음이라든가 페미니즘과 기술철학이 나라는 한 개인에게선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한 물음이 아니었다. ‘그래 공부하는 여자들은 다들 여성학은 곁가지로 하더라.’ 이제야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어느 분야에선가 자리를 잡으신, 프로젝트 프로포절에 한 줄 더 넣기 위해 도매금으로 “여성”을 집어넣고 계신 학자들의 적어도 일부는 찔려야한다는 걸. 어쨌거나 ‘젠더와 테크놀러지’라는 제목 아래에 엮일 수 있는 참 많은 주제를 접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크나 큰 행운일지 모른다. 그러나 컨퍼런스 기간 동안 논의되었던 기술들은 여전히 페미니스트 시선을 필요로 하는 숱한 다른 기술들 속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고민은 여전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따라서 성정치적으로 올바른 기술 만들기’에 향해 있겠지만, 이래저래 숙제가 많이 생겼다. 뼛속까지 페미니스트이기, 마이너리티의 위치를 제대로 활용하기, 눈 크게 뜨기, 더 많이 연대하기, 쉽게 안주하지 말기, 연구자로서도 성실하기…

마녀 | Virginia Tech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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