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3-17   933

거대복합기술에 내재한 불확실성과 위험

컬럼비아호는 “왜” 폭발했을까?

미국 동부 시간으로 지난 2월 1일 오전 9시경, 16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던 미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텍사스 주 상공 60km 지점에서 공중폭발했다. 이 사고로 탑승했던 승무원 7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고, 12,000개에 달하는 기체 파편이 3개 주에 걸친 70,000km2의 지역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다행히 지상의 인명피해는 없었다). 컬럼비아호는 1981년에 취항한 최초의 우주왕복선으로 이번이 28번째 비행이었으며 미 우주왕복선 전체로 따지면 113번째 임무수행이었다. 이번 사고는 1986년 1월에 챌린저호가 발사 후 73초만에 공중폭발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빚어진 우주왕복선 관련 대형참사가 되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전문가들에 의해 폭발원인에 관한 갖가지 추측들이 제기되었다. 그 중에는 컬럼비아호가 가장 “노후한” 우주왕복선이라는 점에서 낡은 기체가 대기권 재진입시 높은 압력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도 있었고, 대기권 재진입 각도의 미세한 오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 NASA 관계자들은 지난 1월 16일의 발사 직후 왼쪽 날개에 가해졌던 충격이 문제가 되었을 거라는 설명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컬럼비아호가 발사되고 나서 80초가 지났을 때 외부 연료탱크에서 떨어져 나온 발포 단열재 조각 ― 크기와 무게가 빈 서류가방만한 ― 이 날개 아래쪽의 방열 타일에 충돌했고, 이 때문에 대기권 재진입 때 발생하는 1,200℃의 열을 견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 타일이 일부 손상되거나 떨어져나갔을 거라는 추측이다. 이 설명은 폭발 수분 전부터 왼쪽 날개의 온도 감지 센서가 차례로 꺼졌다는 사실로 미루어 설득력을 얻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NASA 관계자들은 단열재 조각이 너무 가벼워 문제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입장을 수정하면서 일단 컬럼비아호가 지구 궤도에 진입한 후에 미세유성(microasteroid)이나 우주 쓰레기와 부딪쳤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NASA 안팎에 독립적으로 조직된 두 개의 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다시 단열재 조각의 충돌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다.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테크니컬한 원인 규명과 맞물려 이번 사건이 그동안 수차례 예고되어 온 “인재(人災)”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언론매체들은 NASA가 지난 10여년 동안 예산 압박을 받아 왔으며 이 때문에 “낡은” 우주왕복선을 계속 사용하는 한편 그 관리와 운영의 많은 부분을 외주로 내주면서 안전관리가 소홀해졌음을 부각시켰다. 이 때문에 작년 이후 항공안전자문위원회나 의회 회계감사원으로부터 안전상의 위협을 지적받기도 했으며, NASA 전 직원인 돈 넬슨은 대통령에게 탄원서까지 보내 우주왕복선의 운행을 잠정 중단할 것을 호소했으나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특히 발사 직후의 단열재 조각 충돌 사실을 비디오 모니터링을 통해 알았으면서도 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고, 참사 이틀 전에도 안전담당 엔지니어 로버트 도허티가 재진입시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나 NASA 관리자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졌다.

앞으로 수주, 심지어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을 지난한 조사과정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컬럼비아호의 폭발원인을 둘러싼 이와 같은 추측과 주장들은 거대복합기술체계의 실패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예상컨대 이제 머지않아 조사결과가 나오면, 사람들은 그간 “수수께끼에 빠졌던” 폭발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하게 되고 NASA의 “나사빠진” 운영이 그것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유심히 살펴보면 이번 컬럼비아호 사고 이후의 전개는 1986년 챌린저호 사고 이후와 너무나 흡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17년 전으로 돌아가 챌린저호 공중폭발의 원인규명 과정을 다시한번 들여다보도록 하자.

당시 챌린저호 사고에서는 고체로켓 부스터의 접합부를 밀폐하는 고무 부품인 오-링(O-ring)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 때문에 오-링의 탄성이 떨어져 고체로켓 부스터의 이음매가 벌어졌고 그 사이로 고온의 배기가스가 분출되어 나오면서 연쇄적인 폭발로 이어졌다는 것이 5개월간에 걸친 공식조사 발표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도 이번 컬럼비아호 사고에서와 유사한 비난과 고발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르면 NASA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얼음물과 고무조각을 이용한 간단한 실험(?)만 가지고도 알아낼 수 있었던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NASA의 중간관리자들은 발사 전날 로저 보이스졸리라는 엔지니어가 제기한 우려와 발사연기 요청을 묵살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빚어진 이유는 당시 NASA가 계속된 발사 연기로 인해 예정된 우주왕복선 발사 일정을 맞추지 못함으로써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발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찾아졌다. 결국 챌린저호의 공중폭발은 NASA 조직의 관료적 태도와 무지, 독단 탓이라는 게 당시 널리 받아들여진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후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이러한 단순화된 설명에 점차로 문제가 제기되었고, 1996년에 출간된 다이앤 보언의 책 『챌린저호 발사 결정 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은 기존의 해석에 대해 결정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녀는 인터뷰, 의회 속기록, NASA 문서들에 대한 광범한 조사연구를 통해 당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챌린저호를 발사하기로 한 결정이 당시의 공학적 자료나 이전까지의 안전 실행에 비추어 볼 때 일탈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NASA의 엔지니어와 관리자들은 (당연하게도) 오-링의 손상 문제를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우주왕복선 비행에서 오-링의 손상이 우주왕복선의 발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이상현상이 아닌 “허용수준 이내의 부식” 내지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으로 NASA 조직 속에 흡수되었던 것이다(사회학자 찰스 페로우는 거대복합기술체계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바로 그 조직이 오히려 위험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를 “정상적 사고(normal accidents)”라고 불렀다). 물론 일단 사고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뒤늦게서야 이런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고도로 실험적인 거대복합기술을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에게 이는 분명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 다시 컬럼비아호 사고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자. 과거 챌린저호의 교훈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 17년 동안 큰 사고 없이 우주왕복선이 운행되는 것을 봐온 사람들에게 그것은 더이상 실험적이고 불확실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무덤덤한 기술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번 사고가 뭔가 “특별하게 잘못된” 이유 때문에 빚어진 “인재”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고원인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기다리면서 그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히도록 ― 바꿔말해 “상줄 놈”과 “벌줄 놈”을 가리도록 ― 요구할지 모른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주왕복선은 다시 잘 작동하게 되고, 위험을 내포하지만 통제가능한 일상적 기술의 위치를 회복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주왕복선과 같은 복잡한 기술에서 그런 손쉬운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왕복선은 인간이 보유한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공학적 실천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운행과정에는 그것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백 가지 이상의 우연적·시스템적 위험요인들이 항시 존재하기 때문에, 여기에 단지 더 많은 기술을 덧대는 것은 안전성을 “약간” 향상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본질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주왕복선이 그간 이뤄낸 업적이 정말 대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끝으로 최근 필자가 겪은 에피소드 한 토막. 컬럼비아호 폭발 며칠 후에 필자가 택시를 타고 들은 얘기다. 택시기사분과의 우연한 대화 중에 컬럼비아호 얘기가 나오자 그분이 상당한 관심을 표명했다. 왜 폭발했을까 하는 기사분의 질문에 대해, 그걸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앞으로 몇 주,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심지어 정확한 원인은 영영 모를 수도 있다고 필자가 답하자 기사분의 얘기가 재밌었다. 아니, 그거 알아내는 데 뭐그리 많은 시간이 드냐, 달까지 사람을 보내는 세상인데 그깟 폭발원인쯤이야 길어도 며칠이면 밝혀낼 거다, 아마도 지네들끼리 누가 책임질 건지 입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겠지, 하는 것이 그분 얘기의 골자였다. 이 말을 듣고 필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사고방식은 공공기관의 입장 발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다원화된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 가져야 할 건강한 의심과 회의가 표현된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건강한 의심이 과학기술 “그 자체”의 능력에 대한 엄청난 기대 및 신뢰와 기묘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한 뭉텅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필연적 귀결은, 거대복합기술체계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학기술 그 자체(이른바 “하드웨어”)에는 책임이 없으며 그것을 다루는 사람 혹은 사회조직이 “정상적” 실천으로부터 “이탈”한 것이 문제라고 판단하는, 눈에 익은 “인재” 논의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근원에 놓여 있는 과학기술 그 자체의 불확실성과 공학적 실천의 본질을 정확히 보는 것을 가로막으며, 과학기술에 대한 과도하고 잘못된 기대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Citisci의 과학기술@사회’ (2003. 2. 25)

김명진 | 시민과학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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