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3-17   1273

물과 인간에 관한 네 개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하류에 산다 (Everyone Lives Downstream)’

― 1999년,「세계 물의 날」주제

‘지구가 가진 자원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소수의 탐욕을 위해서는 부족하다’

― 마하트마 간디

올해는 자원으로서의 물의 중요성과 환경을 고려한 물 관리를 세계 모든 국가에 알리기 위해 유엔(UN)이 정한 “세계 물의 해”이다. 또 다가오는 3월 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그리고 한국은 지난 2000년 유엔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에 의해 「물압박 국가군」** ― 기자들은 이것을 ‘물부족 국가’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 에 포함됐다.

해마다 3월 22일 즈음이 되면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각종 신문과 방송을 통해 2010년 혹은 2020년 ― 1990년대 초에는 2000년 대비였다! ― 의 물부족에 대비하기 위한 댐을 짓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럴 것이다. 이들은 이제 환경을 볼모로 댐을 짓지 말자는 ‘유아적인’ 발상을 버리고, 친환경적인 댐 건설을 통해서 만성적인 물 부족을 해소해야 한다고 설파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봄 가뭄이 조금이라도 심각해질라치면 거봐라는 듯 목에 힘을 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물부족에 대한 해결책으로 댐을 건설하는 것은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지난 40여 년간 물 부족과 홍수조절에 대비하여 765개의 대형댐 ― ICOLD(국제 대댐 위원회) 정의에 따르면, “대형 댐”은 기초부터 꼭대기까지 높이가 15미터 이상인, 즉 대략 4층 건물보다 높은 댐을 말한다. 이는 세계 7위 수준이다 ― 을 지어왔으나, 여전히 이전과 동일한 문제와 해결방식을 부르짖는 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여기 물의 이용과 권력, 대형 댐의 정치경제학과 환경영향, 더 나아가 물과 환경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인간들의 관계와 투쟁을 보여주고 있는 네 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국사회에서 물과 이를 둘러싼 권력관계 그리고 댐 건설의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우리는 80년대에만 해도 대형 댐의 건설을 진보와 번영의 상징 그리고 기술의 승리로 보아왔었다.

그러나 『소리 잃은 강』에서 저자 패트릭 맥컬리***는 그와 같은 대형 댐이 지속가능한 물 이용과 환경에 어떠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를 아주 밀도 있게 분석하여 보여준다. 『소리 잃은 강』은 한국에서 내린천댐과 영월댐(동강댐) 건설 백지화를 통해 댐 건설이 야기하는 지속가능한 물 이용과 댐의 환경 및 생태적 영향에 관한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 몇몇의 활동가와 학자들이 모여 번역한 것으로, 주로 댐 건설을 통한 물 이용과 관리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에 이르기까지 물과 인간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번역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댐 건설을 통해 물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권력적인 현상인가를 보여준다. 또 이 과정에서 댐의 혜택은 지속적으로 과장된 반면, 비용과 악영향은 끊임없이 과소평가 되며, 덜 파괴적이고 공동의 이익을 보장하는 많은 대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흔히 댐 건설의 현실적인 이유들로 내세워지는 전력공급, 가뭄 및 홍수 조절과 같은 것들이 댐 건설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이 가져올 문제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사실은 미래에 댐 건설의 발목을 잡을 것임을 방대한 자료와 연구를 토대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맥컬리는 결국 댐 건설 문제를 정치권력적 현상으로 보며, 이러한 면에서 물관리는 좀더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하천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은 단편적이고 임시적인 처방이 아니라 전체 수계와 하천 생태계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이 책은 물 이용을 단순히 수자원의 공급과 수요의 문제라는 도식적인 관계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수자원 관련 책들과 차별화되며, 우리나라에서는 댐 건설과 이용에 관한 정치경제적인 분석서 ― 책의 부제는 대형댐의 생태와 정치사회학이다 ― 로는 처음 소개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번역되어 나온 마크 드 빌리어스(Marq de Villiers)의 『물의 위기』는 제목의 진부함(?)과는 달리, 남아프리카의 오카방고 강의 문제에서부터 중국의 홍수범람원, 브라질의 습지 등을 누비며 물을 둘러싼 정치와 다양한 분쟁 사례를 좀더 현장감 있게 소개하고 있다. 비록 1장과 2장에서 조금은 교과서적인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소 지루한 자료들 ― 그러나 객관적인 자료를 원한다면 매우 유용하다! ― 을 소개하고 있지만, 3장에서는 그것을 보상할 만한 실감나는 현장의 기록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앞선 저자와 같이 물의 위기를 권력과 정치경제학적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즉, 대부분의 물 문제가 인구압박과 물공급의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좀더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그가 책의 서두에서 소개하는 남아프리카의 오카방고 강의 물 문제는 그래서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나 기업들의 계획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자그마한 행동으로 물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규정된다. 결국 그는 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좀더 많은 물을 공급하는 것 ― 예를 들어 해수를 담수화하는 것이나 거대한 물주머니로 물을 공급하는 것 등이 있다 ― 이나 기술적인 혁신과 가격정책, 즉 효율적인 운영과 보존을 통한 방법과 인구증가 억제 등과 같은 현명한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대개는 물 ‘위기’의 문제를 기술적인 처방으로 해결하는데 관심을 보인다. 저자의 이러한 물 ‘위기’에 대한 진단이 우리가 자주 목격했던 석유 ‘위기’, 자원 ‘위기’의 문제에 대해 중앙집권적 계획과 현명한 이용으로 해결하자고 말하는 기술관료들의 목소리와도 공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편 마크 드 빌리어스의 입장과는 완전히 상반되어 보이는, 그래서 매우 과격한 두 개의 책이 최근에 번역되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물의 사유화가 물 위기 혹은 물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 진단하는 『블루 골드』이다. 여기에서 “블루 골드”는 가격이 매겨진 물, 즉 다시 말해 사유화된 물이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물 이용 권리가 공적 영역에서 보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물을 매매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어 버린 것에서 물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저자들은 물의 사유화로 인해 가속화된 물 위기와 인간의 기본권 침해에 관한 수많은 사례를 제시한다. 결국 물의 사유화는 경제 세계화를 주도하는 기업들과 국제 무역·금융기관에 의해 자행된 전 지구적 물 약탈 및 인권 유린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위기’-‘음모’-‘저항’으로 이어지는 각 장을 통해 공동재산인 물을 놓고 벌이는 기업들의 행태와 물을 약탈하기 위해 정부와 국제기구가 결탁하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동시에 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지킴이”들의 활동도 빼놓지 않는다. 『블루 골드』의 저자 모드 발로는 세계화국제포럼의 국장이자, 물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 시민운동인 “푸른 지구 운동” 의 공동 창시자이고 토니 클라크는 캐나다 폴라리스연구소의 국장이자, 세계화국제포럼에서 기업위원회 위원장으로 발로와 함께 다자간투자협정에 관한 세 권의 책을 공동 집필했으며, 또 이 협정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이끄는 캐나다의 대표적 활동가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책은 우리에게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에코페미니즘』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도의 대표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인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의 최근 저작 『물 전쟁』이다. 반다나 시바는 이 책에서 유년시절부터 보아왔던 인도의 풍요롭던 강과 자연이 거대기업이나 정부에 의해 점진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과정과 이를 둘러싼 정치역학관계 및 투쟁을 심층적이고 열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과학과 사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수리권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침해되어 왔는지를 분석한다. 거대기업이 국제적으로 댐 건설, 광산 개발, 양식사업 등에 개입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자원을 고갈시키는지, 그 과정에서 제3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핍박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9.11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환경과 자원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확장과 침탈에 반대하는, 그녀가 내놓았던 일련의 책들과 같은 연장선상에 이 저작을 위치 지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다나 시바는 여기에서 ‘전쟁’을 단순히 물을 얻기 위한 물리적인 충돌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에 대한 가치관의 충돌까지를 포함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물 문제에 대한 좀더 심층적인 면을 드러내 준다. 이것은 한쪽 ― 예를 들어 인도의 전통적 삶의 방식 ― 에서는 물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며 물의 공급이 생명의 보존을 위한 의무라고 보는 데 비해, 한쪽에서는 물을 상품으로 여기며 물의 소유와 공급을 기본적으로 기업권으로 보는 이 근본적인 차이까지 파고든다. 그녀는 이것이 실제로 가치관의 충돌을 넘어 세계 각지의 다양한 분쟁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대개 종교적인 이유나 인종적인 것으로 둔갑하여 결국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반다나 시바는 물의 문제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 기술적인 처방의 문제가 아니라 물의 이용에 관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의 문제 또한 지역의 특수한 문화와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국제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관리되는 다양한 물공급 및 분배 체계를 둘러싼 정치경제와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에서 물 문제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사랑 없이는 살아도, 물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을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혹시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소개한 책들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혹시 그래본 적이 있다면 더욱더 읽어보길 바란다!

◆ 각주

* 환경과 개발에 대한 UN회의의 권고에 따른 의제21 제 18장(담수지원)에 명시된 바에 의하면 UN총회에서는 1993년에 매년 3월 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지정했다. 각 국가들은 세계 물의 날에 수자원의 보호 및 개발에 관련된 출판물을 통해 대중의 인식을 증진시키고, 홍보물을 배포하고, 회의·세미나·전시회 등을 개최하는 등 의제 21 제18장의 실행하는데 있어 구체적 인 활동을 하도록 요청을 받았다.

** UN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가 발표한 ‘Sustaining Water, Population and Future of Renewable Water Supplies’에 따르면 1인당 물 사용량 1,000톤 미만을 물부족국가군으로, 1,500톤 미만을 압박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1990년 현재 물부족국가로는 싱가포르등 20개국이 있고 물압박국가는 우리나라등 8개국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인 물의 사용량 기준은 각 나라의 물사용에 관한 사회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지은이 패트릭 맥컬리(Partick McCully)는 국제 하천 연대의 캠페인 디렉터로서 우루과이의 환경 비정부 기구에서 일했고, 1992년부터 나르마다강의 사다사로바 댐에 반대하는 인도 활동가들과 함께 일했다.

◆ 이 글에서 소개된 책

패트릭 맥컬리, 유경수 외 공역, 『소리 잃은 강』 (지식공작소, 2001)

마크 드 빌리어스, 박희경·최동진 역, 『물의 위기』 (세종연구원, 2001)

모드 발로·토니 클라크, 이창신 역, 『블루 골드』 (개마고원, 2002)

반다나 시바, 이상훈 역, 『물전쟁』 (생각의 나무, 2003)

오은정 | 시민과학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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