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2-11   668

빨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참여연대를 일단 가입하고 산하 단체를 골라야 할 때 시민과학센터를 알게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항공공학을 전공했음에도, 성격 탓인지 제가 공부하는 분야의 매력에 빠져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기껏 공부해서 미사일, 전투기, 로켓 같은 무기를 만드는 일을 해야하나’ 하는 회의에 빠져 공부도 열심히 안하고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못 찾고 어영부영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시민과학 센터를 알았으면 열심히 회원 활동했을 겁니다.

공학이나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다른 어느 분야보다 돈을 버는 목적에 아주 철저히 종속되어 있는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공학의 결과물들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은 있지만 그 결과물들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좀처럼 질문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도 물론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할 수는 있습니다. 그 경제적 보상이 있거나 할 테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그저 열심히 한다는 의미만 있지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대학합격이라는 보상만 보고 맹목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나마도 이제는 모든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져서 열심히 하고도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보상을 얻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흔히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지만, 자신의 일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신바람 나게 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민과학센터의 의미는 참 소중하고 그 뜻이 담긴 잡지인 ≪시민과학≫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모자란 탓인지 ≪시민과학≫ 읽기가 참 어렵더군요. 시민과학센터의 뜻을 알린다는 목적이라면 누구나 ≪시민과학≫ 을 읽고 시민과학센터의 뜻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단지 ≪시민과학≫ 만 접한 사람들이 시민과학센터를 과연 과학 기술 민주화라는 구호가 아닌 민주화된 과학 기술을 만나 볼 수 있는 장으로 생각할까 의문이 듭니다. 주로 번역물이 많이 실리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별로 그 번역물이 품고있는 문제 의식에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 뜻에서 일반인이나 과학에 관심 가진 이들이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해 보면 어떨까요? 외국의 STS나 관련 사례를 찾아보기 전에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노력들을 소개해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정보공유운동은 그 내용을 잘 몰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의 정보공유운동 사례 및 관련 시민단체(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에 대한 소개를 통해서 컴퓨터 기술의 독점과 이의 민주적 해결에 대해서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됩니다. 또 에너지 문제도 과학 기술 민주화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에너지 문제와 대체에너지의 보급 등에 대한 소개를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태양 에너지등 에너지 문제를 과학적으로 푸는 과정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컴퓨터나 자동차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예전에 과학고등학교에서는 자동차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원리들을 공부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평소에 품고있는 문제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면,

― 환경오염문제/ 에너지 문제의 과학적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 정보공유운동은 왜 생겨났고 기업체가 정보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독점하고 사유화하고 있나

― 건강하게 살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좋은 먹거리, 영양학에 대한 잘못된 사실 이해 바로 잡기)

― 교통문제를 과학적으로 풀 수 없을까

― 인간 복제란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나(이 부분은 ≪시민과학≫ 통해 선구적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컴퓨터/네트워크, 이런 것들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등입니다.

이 문제들을 모두 시민과학센터가 다룰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말 그대로 센터로서 각 분야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단체를 소개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국내에서 실무로 뛰고 있는 과학 기술자/연구자/학생들의 글을 많이 싣는 것입니다. 어느 의사 분이 쓰신 생명의 느낌 서평이나 풍력 발전에 대한 에너지 시민 연대에 계신 분의 따라잡기 기사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이공계 위기론이 이슈가 될 때 고려대 대학원생의 글도 아주 현실감이 있었습니다. 실무 현장에 있어서 이슈가 되는 과학 및 기술 문제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그 박사과정의 학생은 e-mail연락처를 알아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정도더군요). 물론 내부자 고발 문제 차원에서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거창하지 않은 주제들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발표되는 과학분야 노벨상에 대해서 그 원리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현장의 사람들로부터 좀더 알기 쉬운 설명을 듣는다든지, 또 사회적 이슈가 되는 과학분야의 기초 도서에 대한 서평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필자의 이멜 주소도 알려주면 회원들과의 소통의 기회를 넓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사실 9.11 이후 슈마허의 번역글을 보고 김병윤씨 이멜 주소를 받아서 연락하면서 좀더 소통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언제 기회가 되면 과학/공학이라는 학문의 지도를 그려 주십시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또 공학… 전체의 지도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보곤 합니다. 과학이나 공학은 방법에 따라 참 재미있는 공부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 예가 예전에 인기 있었던 맥가이버 아닐까요? 앞으로 시민과학에 계속 애정을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정은식 우리 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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