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들과 함께 서명을] 광장을 독점 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 뿐!


우리의 광장을 열어라!
우리는 불순하지 않다!


서울시 의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40여분간의 시정 질의를 마친 한 시 의원이 주섬주섬 노란 옷가지를 꺼내 들었다. 앞선 발표 시간을 이미 윽박 지르기와 떼 쓰기, 억지 부리기로 일관한 그는, 이번에는 ‘내가 이거 집에서 빨아봤는데…’ 하는 것으로 운을 띄웠다.

시국이 시국인만큼 노 전 대통령 얘기라도 나오려나 하는데 듣자 하니 얘기는 어쩐지 세탁물 물 빠지는 얘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의원님 노란 잠바 물 빠지는 소리.

그는 명색이 시에서 제공했다는 옷이 이래서야 되겠냐며 역정을 내고 있었다. “시정을 이딴 식으로 처리해서야 되겠어? 어?” 그가 침 튀기며 노란 잠바를 허공에 흔들어대던 그 때, 그의 물 빠진 노란 옷은 과연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보였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서울시 의회와 동네 세탁소 어귀를 분연히 방황하는 찰나, 분에 못 이긴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이거 대체 담당자가 누구야!”

잠시 장내가 술렁였지만 담당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그는 너무도 당당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믿기지 않지만, 지난 7월 7일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시민의 대표자인 의원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를 교과서 어디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하기사 국민 개개인이 국정 하나하나에 일일이 참여할 수도 없으니 똘똘한 몇 명에게 내 뜻을 위임하는 것이 현실적이긴 하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의회의 풍경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정말로 나의 뜻을 대신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수 의원의 ‘만행’만으로 의원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되겠으나, 대부분의 의원들이 전문성은 고사하고 기본적 절차에도 무지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각과, 난입과, 점거와 고성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던 대표자의 자질은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는 지금도 이토록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다.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선거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것이 사실이고, 그마저도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제 구실을 못할 때가 많다. 울분은 쌓여가고 고통은 더해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이 자조적이고 슬프다. 어디 가서 하소연이라도 했으면, 어디 가서 화라도 좀 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마땅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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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서니 놀랍게도 광장은 이미 인산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사연은 다르나 유모차와 여고생과 예비군이 기묘하게 얽혀 있는 모습이 과히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누구 하나 지휘하는 사람 없지만 누구 하나 이탈하지도 않는 풍경. 걸어가고 노래하고 고기굽고 토론하는 풍경. 우리 안의 태피스트리. 우리 거리 위의 즐거운 민주주의. 믿기지 않지만, 2008년 여름의 일이다.



광장을 되찾는 일은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유의미하다. 거리 위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 간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정면 돌파해보는 실험이다. 기실 광장은 본디부터 열려 있었고 애초부터 우리 것이었다. 헌법은 국민에게 집회의 자유를 보장했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다. 우리는 의원들에게, 법관들에게, 혹은 경찰들에게 권력을 마음껏 남용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를 불허의 대상으로, 불온한 범죄자로, 불순한 정치 세력으로 만든 적도 없었다. 우리는 불순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즐겁게 판 벌리고 건강하게 화내고 싶은 것 뿐이다. 우리는 광장에서 웃을 것이고 광장에서 슬퍼할 것이다. 광장에서 사랑하고 광장에서 반성할 것이다. 우리의 광장을 열어라.


광장 조례개정운동의 핵심은 지방자치법이 보장하는 주민발의제에 있다. 그러나 주민발의제가 시행된 이후 발의에 성공한 것은 아직까지 한 차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의회의 문턱을 힘들게 넘었을 뿐, 실질적인 정책 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광장 조례개정운동 역시 8만 여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큰 산을 앞에 두고 있고, 가까스로 발의에 성공한다 해도 그 뒤에는 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당 의원의 벽이 기다리고 있다. 목이 터져라 애 쓰는 거리 서명도 운 좋은 날에야 삼사백명쯤을 겨우 채울 수 있다. 계산을 하다 보면 이 속도로 가다가는 발의도 못해보고 끝날 수 있다는 실망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기실 이것은 실망을 넘어 어떤 열패감과도 같은 것이다. 회의와 좌절, 무력감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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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무력감을 느끼는 데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하루에 오백명을 받는 것은 죽도록 힘들지만, 하루에 한 명씩 받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조례개정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수임인은 천육백여명에 이른다. 하루에 한 명씩 50일이면 8만 명이다. 그러니 달리 계산하면 아주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결국 조례개정운동의 주최는 특정 지도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어쩌면, 조례개정운동의 종착지는 의회가 아니라 시민들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광장의 정당한 소유를 함께하는 것, 광장의 주인을 늘려가는 것이 이 운동의 또다른 목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광장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 뿐이다.


<참여연대 행정감시팀 인턴 배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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