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석] 불의의 권력에 맞섰던 참여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겠습니다

* 수배중인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참여연대 회원들에게 보내온 편지입니다

불의의 권력에 맞섰던 참여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겠습니다



오늘로 조계사에 들어온 지 21일째가 되었습니다. 지난 밤 경찰력이 조계사에 진입한다는 정보 때문에 이곳을 지키려는 많은 시민들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저를 포함한 7인의 수배자들도 약간은 긴장된 밤을 보냈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아침풍경이라 하기에는 꿈처럼 낯설지만, 조계사를 포위하고 있는 경찰병력을 보며 엄연한 현실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최근 도를 더해가고 있는 공안탄압을 목도하며, 마치 제가 학생운동을 하던 20년 전으로 시간이 역류해 압축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역사의 반동(反動)’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보다 더 정확할 수 있을까요? 부당한 정책에 국민이 촛불을 들고 저항한 결과치고는 너무도 과장되어 있는 현실을 보며, 집권세력의 취약함과 소통의 의미 그리고 촛불의 승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준비되지 않은 권력의 실패는 그 출발에서부터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실현 불가능한 ‘747’공약은 선거의 공학이 빚어낸 과장이라 넘어 갈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륀지’로 대표되는 설익은 정책의 남발과 ‘고소영’, ‘강부자’ 인사파행은 준비되지 않은 권력의 취약함과 말뿐인 소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소리치며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는 ‘전봇대 두 개 뽑고, 미친 소 수입한 것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자연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런 점에서 광장에 촛불이 일찍 켜진 것은 너무도 다행인 사건입니다. 권리에 민감하고 민주주의에 예민한 똑똑한 국민이 2008년의 이 시점에 있다는 것이 준비되지 않은 권력에겐 악몽일지 모르나,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는 너무나 행복한 현실입니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데다가 능력도 없는 권력은 빈사(瀕死) 직전에 몰리자 그 바닥을 쉽게 드러냈고, 공안탄압이라는 녹슨 칼마저 꺼내 들었습니다. 마라톤과 같은 통치의 출발선에서 허약하기 짝이 없는 기량과 체력을 다 드러내버린 이 정부에 어떤 통치력이 더 남아있을까요? 촛불의 명백한 승리입니다.

촛불집회로 참여연대 사무실이 최초로 압수 수색을 당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인 저와 안진걸 팀장을 수배자, 구속자 신분으로 만들었습니다. 엄청난 격변입니다. 이 와중에 놀라고 걱정하시는 회원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또한 조금 일찍 왔을 뿐, 시민사회의 존재와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이 정부하에서 어쩌면 운동이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집회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식의 시비와 논란은 왜소할뿐더러 무의미합니다. 촛불을 들고 건강과 생명 안전을 생각해달라고 호소하는 국민에게 ‘불법’을 시비하고 ‘배후’를 거론하며, 위험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를 상대로 저항 이외에 다른 수단이 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제게 덧씌워진 혐의를 인정할 수 없으며, 이 싸움을 결코 중단할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2008년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촛불은 과연 무엇인지 묻습니다. 또한 각자의 일상에 바빴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밤을 새워가며 목 놓아 외치게 만든 이 불가사의한 힘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질문에 답을 내놓을 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고백합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을 맡아 촛불집회의 한 가운데 있었지만, 광장과 거리의 촛불의 열망을 읽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었습니다. 감동과 당혹감이 교차하는 시간 가운데,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2008년 광장과 거리를 밝힌 촛불은 단시간 내에 누군가에 의해 정의되고 결론 내려질 현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2008년 광장과 거리에 켜진 촛불은 단편적으로 해석될 사회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와 토론, 저술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할 복합적 사회현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와 회원 여러분이 촛불항쟁에서 그러했듯, 그 의미를 이어가는 운동에도 중심에 설 것으로 믿습니다.

회원여러분, 어쩌면 저는 한동안 참여연대를 떠나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 불의의 권력에 맞섰던 참여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임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여러분과 함께 광장에서 승리의 촛불을 들 것을 소망합니다.

2008. 7. 25
조계사에서 박원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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