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1-07-25   883

“경찰은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시위자에게 발포했다”

제노바 반세계화 시위에 참가했던 유미경씨 인터뷰

핵무기, 화학무기, 통신분야의 군병력 1,500명, 제노바 근처 해안에 경비병력 800명, 지대공 미사일 부대를 비롯한 공중 공격 대비병력 400명, 경찰병력 2만명 배치, 길이 9km 높이 4m의 콘크리트 방벽을 친 통행금지 적색구역 설치.

지난 7월 20부터 22일까지 G-8(서방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이 열렸던 이탈리아 제노바는 당장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15만명의 반세계화 시위대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의 대응은 결국 유혈 충돌을 낳았고, 경찰의 총에 맞아 시위자 1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부상당했다. 또한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아직 정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탈리아 국경 근처에서 시위자 1명이 추가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날 전세계에서 몰려든 시위대가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경찰들은 시위대에 지랄탄을 난사하면서 토끼몰이식 진압을 했다. 이에 카를로 줄리아니(23. 이탈리아)씨가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방식을 항의하며 경찰차에 소화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에게 경찰은 실탄 3발을 발사했다. 쓰러진 그의 시체 위를 지프차가 앞뒤로 두번 왔다갔다했다.”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시위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던 유미경(26. 투자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위와 같이 증언했다.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시위대에 알려지자 흩어져 있던 시위참가자들은 일제히 ‘Berlusconi Assassino(이탈리아 총리인 베를루소니는 살인자)’를 외치며 경찰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경찰은 계속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했다. 하늘에는 계속 헬기가 떠다니며 시위대를 위협했고 거리 여기저기에 피가 흥건히 고일 정도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제노바는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같았다.”

“사망자를 극렬분자로 몰아 문제를 호도하려 했다”

유미경씨는 “사망자가 발생하자 현지 언론에서는 줄리아니씨를 극렬 테러리스트로 몰아 문제의 책임을 사망자에게 돌리려 했다”고 말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동생인 파올로 베를루스코니가 편집권을 갖고 있는 보수파 일간지 일 지오날레는 지난 21일 “시애틀의 시위대들이 순교자들을 갖게 됐다”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당일 현지 언론에서 그를 ‘무정부주의자다, 음주운전, 공무집행으로 입건된 바가 있다’며 문제를 호도하려 애썼다. 현지 언론에서는 계속적으로 시위대를 온건주의자와 극렬분자로 구분하며 마치 폭력사태를 일부 과격한 시위대가 조장한 것처럼 보도했다.

언론에서는 G-8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반세계화 시위대는 정당한 요구나 목적도 없이 그저 폭력을 행사하려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시위대를 대하는 이탈리아인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그러나 시위대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건물 곳곳에서 애도를 표하기 위해 검은천을 걸어놓거나 빨간 손수건을 흔들며 시위대를 격려하기도 했다. 시위대에게 경찰을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99년 12월 시애틀 WTO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올 4월 퀘벡 미주정상회담, 6월 예테보리 유럽연합(EU) 정상회담까지 반세계화 시위가 계속 번져 나갔다. 시위를 저지하는 경찰과 시위대의 무력 충돌의 수위 또한 점점 높아져 급기야 사망자까지 발생하게 됐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에게 총을 겨눈 것”

유미경씨는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에 반대하는 저항이 점점 거세어지고 있지만 각국 정상들은 시위대에 총부리를 겨누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해 모였다’던 이번 G-8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유씨는 “기만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에서는 제3세계 국가의 부채탕감과 에이즈 기금 조성에 대해 주로 논의됐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은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같이 각국의 경제 개방을 조건으로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하자고 합의됐다. 이에 대해 유미경씨는 “빈곤국가들의 채무 탕감은 수년전 퀄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바 있으나 2조 달러가 넘는 제3세계 국가들의 채무에 대해 고작 수십억 달러를 탕감해주고 있는 실정”이라며 “세계화 과정에서 제3세계 국가들이 부채가 급증하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번 정상회담에서 13억 달러에 달하는 에이즈 기금 조성을 합의했다. 유미경씨는 “이 기금 역시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의 에이즈 환자의 치료에 쓰는 것보다 선진국의 에이즈 예방에 사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비난했다.

“반세계화를 외치는 이들의 주장이 세계화의 장점조차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3세계 노동자, 농민들의 삶의 뿌리를 통째로 흔드는 초국적 자본의 움직임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유씨는 제노바에서 지난 24일 귀국했다. 그녀가 제노바를 떠난 이후에도 이탈리아 정부의 시위대에 대한 탄압은 계속됐다. 이탈리아 경찰은 지난 22일 새벽 제노바에서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제노바사회포럼’의 프레스센터를 급습, 시위대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경찰은 자정을 넘긴 직후 50여명의 시위대가 몰려있던 건물의 창문을 깨고 사무실에 진입, 곤봉 등으로 시위대를 구타하며 밖으로 끌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40여명이 부상당했다.

한편 이번 사망사건의 여파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AFP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토론토 주재 이탈리아 영사관과 프랑스 파리주재 이탈리아 대사관, 그리스 아테네소재 유럽연합 건물 앞에서는 수백- 수천명이 항의시위를 벌이며 ‘G8은 살인자들’이란 구호를 외쳤다. 독일 베를린과 쾰른·함부르크 등에서도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환경운동가들이 항의시위를 벌여 적어도 13명이 체포됐으며 스페인과 스웨덴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25일 오후 WTO 반대 국민행동, 참여연대,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이탈리아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탈리아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주장했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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