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4-04-20   1847

“경찰의 소음규제 안은 집회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것”

개악집시법대응연석회의, 실제 소음측정 통해 경찰측 입장 반박

“산 속으로 들어가 소곤소곤 주장하란 말이냐?”

녹색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87개 시민단체로 이루어진 ‘개악집시법대응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20일 오전 11시 경찰청 앞에서 ‘집시법시행령의 소음규제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이 주도하고 있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에 강력히 항의했다.

연석회의는 “경찰의 일방적인 소음규제안은 집회 현실을 무시하는 것일 뿐더러, 경찰의 자의적 해석권을 확대함으로써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직접 소음측정기를 가지고 나와 주변 소음을 측정하여 경찰측 시행령안의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대부분 집회 소음수준 80데시벨 넘어

경찰측 시행령안에 따르면 주간 80데시벨, 야간 70데시벨, 그리고 학교와 주거지역은 주간 65데시벨, 야간 60데시벨로 소음 한도를 정하고 있다. 경찰청은 “65데시벨과 80데시벨은 각각 휴대전화 벨소리와 승강장에 진입하는 지하철 소음에 해당한다”며 “이 소음을 넘을 경우 확성기 사용중지 명령이나 일시보관 등 조처를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연석회의는 새로 도입된 소음규제 조항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실제 소음측정기로 경찰청 앞 인도의 소음을 측정했다. 그 결과 소음수준은 지나가는 차량으로 인해 80데시벨을 기록하였으며, 기자회견 중간에는 100데시벨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곽현석 원진직업병관리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4월 10일 약 700명 정도가 모였던 ‘공무원노조·전교조에 대한 공안탄압 분쇄와 정치활동 자유 보장 촉구 결의대회’에서 측정한 소음측정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소음측정은 집회 시작 시간인 오후 2시 50분부터 집회종료 4시 40분까지 각 지역마다 5분씩 총 2회 진행되었으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리잡은 경계지역과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건물의 외벽을 선정, 소음측정기를 부착하여 배경소음과 집회 중의 소음수준을 비교 평가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인원, 앰프 수, 출력, 위치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집회 경계 지역에서의 소음 수준은 77.2-109.0 데시벨의 범위를 보여, 대부분의 경우 80데시벨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곽 씨는 이어 세종문화회관 인근은 교통량이 많은 도심지역이므로 평상시의 소음수준이 74-77데시벨에 이를 정도라고 밝히고,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집회의 소음발생이 건강상의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발표했다.

사회를 본 주제준 연석회의 상황실장도 “대부분의 집회가 80데시벨을 넘으며, 두 사람의 대화가 60데시벨임을 감안하면 경찰 시행령안은 육성으로만 집회를 하라는 것”이라며, 이는 경찰당국이 대규모 집회를 전면 금지시키고자 하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 기자회견임에도 소음수준이 88데시벨을 넘어서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의 헌법적 보장은 일시적 소음 발생 용인한 것

연석회의는 “소수의 동일인들이 하루종일 확성기만 틀어놓고 그것도 며칠동안 지속적으로 계속하는 경우는 이미 업무방해죄로 처벌된 전례들이 있다”며, “극단적인 사례를 근거로 소음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못박았다.

연석회의는 “집회는 다수의 군중이 모여 주변 시민들에게 의사를 알리고 의견을 소통하는 것”이므로, “일정한 장소를 점거하고 소음을 발생시킬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헌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일시적 소음발생 등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했다.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기존의 집시법이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법개정을 하고 있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그는 또 야간집회 규정도 현실에 맞게 고쳐야 된다고 주장했다.

홍근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는 “규제조치는 행위가 지속적이며 시설이 설치된 규제대상에 대하여 개선 조치하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소음이 발생하는 집회시위에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환경부의 행정해석을 예로 들며, “집회와 시위의 소음은 단시간과 일시적이라는 특징과 집회시위의 자유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소음진동규제법도 처음부터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임기란 민가협 상임의장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산 속에 가서 소곤소곤 하란 말이냐”며 “경찰이 거리의 소음을 없앨 생각은 안하고, 간절한 목소리만 막으려 하고 있다”며 경찰이 인권침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석회의는 또한 “경찰이 얘기하는 ‘주요도로’란 해당 관할 경찰청장이 판단 가능하고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의 판단도 경찰이 하도록 되어 있어 경찰의 자의적 해석권이 지나치게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지킬 수 없는 법률은 불법만 초래

연석회의는 또 “지킬 수 없는 법률은 불법을 강요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를 여는 단체들이 주최단체의 책임을 피하고자 신고절차를 통한 합법적인 집회보다는 주최단체가 드러나지 않는 게릴라성 시위 양태를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석회의는 “모처럼 평화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집회와 시위가 정착되는 시점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법은 한자 그대로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으로, 경찰청이 지난 시절보다도 못한 법을 만드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경찰청이 지킬 수 없는 법을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경찰청은 이 날 오후 2시부터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집시법 시행령상 소음기준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에 참가한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경찰청의 입장만을 제시하는 불공정한 토론회였다”라고 평가하고, 일부 참석자들은 오히려 경찰청에서 제시한 소음기준이 약하다며 강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고 개탄했다.

▲ 소음측정기로 집회장 경계지역 측정 (사진제공:개악집시법대응연석회의)

▲ 소음측정기로 외벽 측정 (사진제공:개악집시법대응연석회의)

“경찰청은 구체적 데이터부터 수집해야”

– 이송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인터뷰

경찰청 소음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집회는 소음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경찰청이 무시하고 있다. 또한 경찰청은 80데시벨이 지하철이 승강장에 진입하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80데시벨은 지하철 승강장의 소음수준이며, 지하철이 승강장에 진입할 때의 소음수준은 120데시벨이 넘는다”

연석회의가 지금 경찰청에 요구하는 사항은 무엇인가?

“집회는 정황과 규모에 따라 다양하며, 경찰청은 주요 집회 지점에 가서 실제 소음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조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소음을 규제하는 시행령부터 만들겠다는 것은 집회 자체를 불허하겠다는 것이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연석회의가 현재 벌이고 있는 활동과 이후 계획은?

“시민집회 감시단을 조직해 현장에의 경찰 출입, 경찰의 과도한 규제를 감시하고, 집회의 소음수준을 측정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 집시법 개악에 반대하는 뱃지를 만들고, 집회시위 매뉴얼을 만들어 주요시민단체에 배포할 계획이다. 또 6월 국회 개원 시점에 맞춰 집시법 재개정안을 만들고 있다. 오는 27일 연석회의를 구성하고 있는 87개 단체들이 모여 보다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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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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