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2-06-03   2525

“아이들이 피흘려 만든 공을 당신들이 차고 있어요”

‘아동노동철폐’ 캠페인 위해 한국 온 15세 인도소녀 소냐

“아이들의 작은손이 바늘에 찔리고, 칼로 베이고, 피 흘려 가며 만든 축구공을 당신들의 큰발로 차고 있어요. 항상 그걸 잊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부디 앞으로는 큰손으로 만들어진 축구공으로 월드컵이 치러졌으면 좋겠어요”

▲ 완성된 축구공을 만져본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인도소녀 소냐

시력 상실 후에도 그만둘 수 없는 축구공 노동

5살때부터 축구공을 만들기 시작했던 인도소녀 소냐(15세).

AMRC의 초청으로 29일 한국에 방문해 월드컵 후원 초국적 기업반대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그녀가 한창 월드컵 경기에 임하고 있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7살 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열과 구토증상 이후에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후에도 그녀는 축구공 만드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소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속에서 32조각의 가죽조각들을 맞추고 바늘로 꿰멨다. 때론 바늘에 찔려 작은손이 피로 범벅이 되기도 했고, 습기차고 좁은 방안에서 쪼그리고 않아 있어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갔다. 덕분에 어린나이에 디스크로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공을 만들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가정 형편에 축구공 만들기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카스트 제도에도 들지 못하는 인도의 최하층 달릿(불가촉천민)계층의 부락인 소냐의 마을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축구공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가죽제품을 만들어 생활해 오던 그들이 지금은 초국적 스포츠 기업의 축구공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아동노동

“이곳 아이들은 5∼6세만 되면 부모들을 도와 축구공 만드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인도정부에서는 아동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아동노동에는 단속이 미치지 못하죠”

소냐의 후견인격인 자이신(Jaisigngh)씨는 인도의 달릿계층 아이들의 대부분이 노동을 하고 있으며, 축구공을 만드는 아이들만 인도전역에 2만이 넘는다고 말한다. 이들의 교육을 위해 ILO(국제노동기구)에서 학교를 만들어 1만여명의 아이들은 노동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하루종일 축구공 만드는 일에 매달린다.

▲ ‘실로암안과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를 받았지만 회복의 가능성은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

소냐 역시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인도 내 아동노동철폐를 위해 힘써오던 자이신 씨가 “축구공을 만드는 눈먼 어린 소녀”의 소식을 듣고, 소냐를 축구공 만드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할 때까지 그녀는 여전히 축구공을 만들고 있었다.

소냐에게 교육비와 생활비를 대주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녀의 가족들 중 엄마와 4명의 동생들은 아직도 축구공을 만들고 있다. 너무 어린 두명의 동생들도 1∼2년 후에는 축구공을 만들게 될 터이다.

50달러 이상에 팔리는 축구공 한 개를 만들어 받는 돈은 우리돈으로 100원 정도.

온 가족이 매달려서 하루종일 만들어 봐야 5∼6개 정도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인도에서 축구공을 만드는 노동자는 세 분류로 나누어진다. 인가받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정부에 등록되어 가정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록되지 않고 비인가로 가정에서 축구공을 만드는 노동자. 임금에도 조금씩 차이가 나게된다.

아이들이 함께 작업하는 경우 당연히 세 번째의 경우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적은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찾은 바다

▲ 생전 처음으로 찾은 바다. 그녀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우선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개안수술은 불가능합니다. 눈의 시신경이 전부 말라 버렸어요. 현재의 의료기술로 소냐가 앞을 다시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싫다는 소냐를 겨우 설득시켜 아는 목사님이 소개시켜 준 ‘실로암안과’로 데려와 31일 진료를 받게했던 AMRC 김애화 씨는 소냐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며 후회했다.

자이신 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냐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냐에게 바다에 데려가기로 약속했던 김애화씨는 상심한 소냐를 위해 일정을 앞당겼다.

난생 처음 가게 되는 바다를 향해 가는 동안 소냐는 금새 기분이 나아졌다. 아직 어린아이의 티가 물씬 났다. 서해안 해변도로를 달리며, 볼 수는 없지만 약간은 비릿한 바다의 냄새와 파도소리를 느낀 소냐는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바다는 매우 조용하고, 잠자고 있다고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동감있는지는 몰랐어요”

신발을 벗어 일행에게 맡기고 바닷물과 소라껍질, 고운모래를 만지며 연신 좋아라 한다.

바다에 온 느낌을 물으니 “차갑고 좋아요”라고만 대답한다.

그녀에겐 “영상”이 없다.

너무 어릴적에 시력을 상실하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녀에게서 세상의 모습은 차츰 잊혀져 갔고, 그녀는 꿈속에서마저도 소리와 촉각만 느낄 수 있을 뿐 형상이란 없다.

나중에 또다시 바다에 꼭 오고 싶다고 하는 그녀에게 그때는 누구와 함께이길 원하냐고 물었더니, 여러사람을 이야기 하는데 가족은 빠져있다. 혹시나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엄마, 아빠가 바다에 오면 돈을 벌 수가 없잖아요. 바다에 오려면 오랜시간동안 일을 할 수 없는데 그럼 동생들은 어떡해요?”

“아이들이 만든 공으로 축구하면 안돼요”

인도에서 축구공을 만드는 아이들은 대부분 월드컵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전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은 인도 및 제3세계의 빈곤계층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TV가 없기 때문에 지금 이순간에도 그들은 지구촌 어딘가에서 세계인의 축구축제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루종일 축구공을 만들고 있지만 그들에게 정작 자신들이 만든 축구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축구공을 쥐어주니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좋아한다.

자이신 씨에 따르면 축구공을 만드는 아이들은 평생 축구공 완제품을 만져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축구공의 반쪽만을 만들고 이것을 붙여 완전한 공으로 만드는 것은 숙련공이나 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어린 동생들과 마을 아이들이 겪고있는 고통의 크기가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은 마음껏 놀고, 하고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해요. 더 이상 아이들이 축구공을 만드는 일에 이용되어서는 안돼요”

어린이들이 생계를 위해 더 이상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는 그녀가 한국에 머무는 잠시동안 배운 유일한 한국어를 어설픈 발음으로 외쳤다.

“아돈노동쪄폐(아동노동철폐)”

전태일의 발자취 찾아나선 ‘해외진출 한국기업 외국인노동자’

한국정부에 해외진출 기업의 만행 진정 접수

소냐와 함께 ‘노동자·아동노동 착취 월드컵 후원 초국적 기업 반대 공동행동’에서 초청한 해외진출 한국기업 외국인 노동자들은 30일 서울의류업노동조합(이하 서의노)을 방문해 양국의 노동자의 현실과 향후 노동자들간의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의노 산하 청계피복노조는 전태일 열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으로 서의노 김정호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의 삶과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노동조합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 해외진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산업자원부를 찾아 기업주들의 부당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에서 찾아온 노동자들은 전태일열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인도네시아의 임만 씨는 “이전에도 한국의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전태일이 한국노조운동을 있게 한 영웅이라고 들었다”고 밝혀, 동남아시아 지역의 노동자들의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이 적지않음을 시사했다.

서의노 노조원들과 만남 이후 외국인 노동자들은 산업자원부 투자정책과를 찾아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기업들의 부당한 노동착취 및 노동탄압 사례를 진정·접수했다.

이날 접수된 사례는 인도네시아의 한국기업주가 임금 및 해고수당을 체불하고 도피한 사례등 인도네시아 3건, 스리랑카 1건, 멕시코 1건 총 5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날 사례접수를 받은 투자정책과 김신숙 사무관은 “여러 관련국과의 협의절차를 거쳐야하고, 당사자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속한 처리는 힘들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한 “기업주의 부당행위가 인정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조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례는 현지정부와 경찰의 사태처리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미온적인 입장을 표명해 어렵게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실망시켰다.

스리랑카에서 온 찬다라 씨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한국정부 역시 책임회피만을 하는 것 같아 매우 유감스럽다”며 실망감을 표시했다.

해외진출 한국기업에 진출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31일에는 구미공단노동조합측의 초청으로 경북 구미에 방문해 그들과 제3세계의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간의 교류를 가지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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