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2-11-28   1301

“우리가 정말 기자 맞습니까?”

민주언론상 수상은 네티즌의 승리-「민중의 소리」인터뷰

이메일로 보도자료를 받고, 연출된 사진 한 장 건지고 나면 썰물처럼 현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부끄럽게도 그들은 우리시대 기자들이다. 천편일률적인 기사, 똑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들에 독자들은 언론에 고개를 돌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 현장을 한결같이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시민들과 함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눈높이로 사건을 대하고 때로는 함께 눈물도 흘린다. 바로 「민중의 소리」(www.voiceofpeople.org)기자들이다.

인터넷 언론 중 처음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용백)은 11월 15일 언론민주화와 언론노동운동발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제 12회 민주언론상 대상 수상자로 미군장갑차 희생자 故 심미선, 신효순 사건을 보도한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보도 이정미 한유진 기자)’를 선정했다.

▲「민중의 소리」내부 풍경. 좁은 공간에서 신명나게 일하는 그들이 아름답다.

기존 언론에서 이들의 수상소식을 크게 다루지 않아 뒤늦게 알고 급하게 달려간 사무실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단 간판이 없다. 건물 외부에도 내부에도 「민중의 소리」라고 적힌 종이 한 장 붙어있지 않아 혹시 이곳이 아니면 어쩌나 하면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10여 대의 모니터와 여기저기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카메라를 보고서야 제대로 찾았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이정무 편집장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렇죠? 퀵서비스 아저씨들이 많이 오니까 간판을 달긴 달아야겠네요”하고 소탈하게 웃는다.

윤원석 대표가 약속시간 보다 30분쯤 늦을 것 같다는 전화가 오자 다른 기자들이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한다. 화제는 단연 민주언론상이다.

“김중배 씨가 이 상을 타고 10년 만에 문화방송 사장이 됐으니 우리도 10년 후면 방송국 사장 할 수 있는 건가요?”하고 농담을 던지는 기자들. “그 상이 그렇게 큰 상이었다는 걸 받고 나서야 알았지 뭡니까. 일단 우린 상금으로 난로부터 사기로 했다”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중의 소리」막내 현석훈기자.
짧은 대화였지만 기자들에겐 인터넷 언론에 대한 넘쳐나는 애정과 긍지가 느껴졌다. 특히 이정무 편집장은 인터넷 매체에 대한 꿈이 많았다. 대부분의 인터넷 언론에 올라온 기사들을 다 파악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 나오는 대안매체들에 나온 기사도 꿰고 있다. 기자가 묻는 질문에 답하기 보다 좋은 기사들은 공유하는 게 어떠냐며 『참여사회』기사를 「민중의 소리」에 올려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다.

“인터넷 매체뿐만 아니라 요즘은 주간잡지를 만드는 것도 구상중입니다. 실현 가능성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돈도 하나도 없지요. 그래도 시민들이 읽고 싶은 기사들을 담은 시사주간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요즘 기자들끼리 나누는 대화 중의 하나예요.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주 얘기를 해요. 돈이요? 안 그래도 (사업의 확장은 커녕) 「민중의 소리」가 월급도 안 받고 일한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기자들이 부담스러워 하고 있죠.”

말끝을 흐리며 월급 얘기는 쓰지 말라는 이정무 편집장. 이 곳 기자들을 특별하게 사는 사람들로 취급하는 게 싫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민중의 소리」를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인 것은 분명하다.

사실 우리 재미나게 살고 있잖아요

시간이 흘러 어디선가 취재를 마치고 뒤늦게 사무실로 뛰어들어온 윤원석 대표는 지난 「민중의 소리」의 역사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대표라는 직함이 있지만 여느 직원들과 다를 것 없이 똑같이 취재하고 일하며 살고 있다.

▲「민중의 소리」대표 윤원석. 그는 민중의 삶의 현장 모든 곳에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 5월 15일에 「민중의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5명이었죠. 분당에서 출발해 명동을 거쳤고 얼마 전에 경복궁 근처로 왔습니다. 사람들이 개소식도 안하냐고 묻는데 안해도 괜찮습니다. 그게 뭐 중요합니까. 우리 사이트는 적게는 하루 3만 많게는 하루 10만 이상의 페이지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PC통신 시절부터 「민중의 소리」를 구상했지요. 그 때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습니다. 접속환경이 좋아지면 인터넷이 새로운 매체로 등장할 것이라구요. 함께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것도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우리 회사 막내인 현석훈 기자는 여기에 들어오려고 고향인 제주도에서 모니터를 짊어지고 왔어요. 그럴 때 마다 힘이 됩니다. 지난 3기 기자채용에는 10명 모집에 200명이 넘게 왔죠. 도와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민중의 소리」가 일반 네티즌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미군장갑차 희생자 故 심미선, 신효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도중 「민중의 소리」에 일하는 두 명의 기자가 미군들에게 폭행당하는 걸 보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극으로 치달았다.

“민중들은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원합니다. 기존 언론처럼 포장한 모습이 아니라 그대로를 원해요. 우리는 기사를 통해 열 받으면 열 받는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네티즌들이 속시원해 하는 것 같습니다. 미군관련 집회에서 사람들이 맞아서 피를 흘리는 모습들이 자칫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러나 그게 바로 현장의 모습입니다. 기자는 현장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합니다. 기존 언론은 길어봐야 15초 정도 나오면서 사건을 미화시키곤 하지요. 기존 언론에 길들여서 있기 때문에 선정적이라고 느끼지만 현실은 바로 우리가 보여주는 그 모습입니다. 여중생 사건은 네티즌 사이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사건이 확산되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봅니다. 우리가 민주언론상을 네티즌 대신 받은 거라고 여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미군문제 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들의 사는 얘기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게 현재 소망입니다.”

아울러 윤 대표는 노동자나 농민들이 늘 집회만 하고 사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한잔 기울이는 술잔 옆에도 카메라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우리는 재밌게 삽니다. 그렇지 않나요? 민중들의 다양한 삶속에 들어가야 하는 게 「민중의 소리」의 과제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변한 게 없다? 있다!

민주언론상 수상이후 달라진 게 있냐는 질문에 기자들은 한결같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며 세상에 민중의 삶을 알리며 사는 건 똑같다고 시치미를 뗀다. 그렇지만 윤 대표는 기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며 귀뜸했다. 사실 「민중의 소리」 직원들만 힘난 게 아니다. 네티즌들도 수없이 많은 활동을 하는 뉴스게릴라들에게도 민주언론상 수상 소식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민중의 소리」내부에 설치된 방송, 라디오용 부스.

“제가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기자 맞습니까? 하고요. 참석한 기자들이 모두 우리가 기자가 맞다며 큰 소리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반면 이 질문은 기존언론을 향해 당신은 정말 기자가 맞습니까?라고 묻는 질문으로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언론에 채찍질을 하자는 의미도 이 상에 들어있다고 어느 분이 하시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영광입니다. 우리 기자들도 덕분에 더 많이 변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가는 건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맞기도 하고 피를 흘리기도 합니다. 상을 받은 이후 더 취재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고 기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꺼내기 힘든 질문 하나를 던졌다. 바로 재정문제다. 윤 대표는 이 문제에도 확신에 차 있다.

“그런 문제는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한겨레신문을 만든 것처럼 국민주 운동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상업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우리에겐 지속적으로 기사를 쓰고 「민중의 소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30여 명이나 됩니다. 모두 사명감이 강하고 민족과 민중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들입니다. 우린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통해 네티즌에게 큰 신세를 졌습니다. 그것을 꼭 갚아야 합니다.”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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