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1-08-15   2581

[30호] 다시 생각하는 과학전쟁 2/2 토머스 쿤과 과학전쟁*

쟈우딘 사다르

<번역> 김환석|우리모임 대표,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편집자주> '소칼의 날조(Sokal's Hoax)'로 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과학전쟁"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도 제법 되었다. 소개되었을 당시에는 우리 모임 김환석 대표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오세정 교수와 <교수신문>에서 약간의 유사논쟁 ― 상당히 점잖았던 ― 이 있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는 대체로 '각자 알아서 생각하는'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얼마 전 한림대에서는 과학전쟁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서로 너무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시민과학>에서는 다시 차분하게 당시를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소책자를 번역·소개하려고 한다. 책을 둘로 나누어 앞부분은 김명진 회원이 뒷부분은 김환석 대표가 각각 번역하기로 했다.

쿤 이후의 전개

1) 과학철학 분야의 논쟁

쿤의 이론은 과학의 이데올로기에서 새로운 국면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는 칼 포퍼와 포퍼 그룹에 의해서 곧바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포퍼 그룹은 스스로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몰두하였으며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따라서 포퍼 그룹은 쿤을 비판하기 위하여 1965년 7월에 과학철학에 대한 국제콜로키움을 조직하였다. 이 회의는 영국과학철학회(British Society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런던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약칭 LSE), 국제과학사·철학연합회(International Union of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를 포함한 많은 기관의 뒷받침을 받았다. 이 콜로키움의 목적은 쿤을 영국 철학자들의 집단적 힘과 비판에 맞닥뜨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패러다임'이란 말이 23개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지적이 있었고, 포퍼는 쿤의 '정상과학'을 과학과 문명의 적이라 규정하였다. 여기서 이루어진 논쟁과 쿤의 응답은 나중에 {비판과 지식 성장 Criticism and the Growth of Knowledge}(1970)이란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콜로키움에 참석했던 두 과학철학자는 이윽고 자신들의 소규모 과학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것은 임레 라카토스(1922-74)와 폴 파이어아벤트(1924-94)였다. 라카토스는 반나치 저항운동에서 싸웠던 헝가리인으로서, 전후의 공산주의 정부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을 받았으며, 1956년 봉기중에 해외로 도피하였다. 그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LSE에 있던 포퍼 그룹에 합류하였다. 그의 최고 작품 {증명과 반박 Proofs and Refutations}(1976)(수학적 증명에 대한 변증법적·역사주의적 철학을 확립하려 하였던)은 포퍼를 연상시키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사실 보다 깊은 영향은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와, 그를 통해, 헤겔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1960년대 동안에 라카토스는 '과학 연구프로그램 방법론'이라는 과학진보의 철학을 정립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는 포퍼의 이상주의(모종의 합리적 '방법'에 대한 천착)를 쿤의 단호한 현실주의(과학자를 단지 퍼즐 풀이자로 간주하는)와 결합시킨 것이었다.

파이어아벤트는 LSE에 오기 전에 다양한 경력(군대 근무, 그리고 공산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의 공동작업 등을 포함)을 지녔던 오스트리아인이었다. 그는 포퍼의 편에서 뛰어난 논쟁을 하였으나, 결국 과학에 대하여 포퍼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전개하였다. 이는 그가 1960년대에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가진 급진적 반전운동 및 대안의학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었다. 파이어아벤트는 그가 과학에서의 반동적 헤게모니로 본 것에 대항하여 무정부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런던 국제콜로키움 후 거의 10년이 지난 1975년에 그의 걸작 {방법에의 도전: 무정부주의적 지식이론의 윤곽 Against Method: Outline of an Anarchistic Theory of Knowledge}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과학적 방법'의 어떤 원칙이든 그것은 위대한 과학자들에 의해 어겨져 왔으며, 갈릴레오가 바로 그 대표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1974년에 이미 비극적으로 죽은 라카토스와의 우정어린 논쟁에 대한 그의 입장으로 제시되었다. 일종의 전술적인 '무정부주의자'로서 그는 창조론자, 다윈주의자, 마녀, 기타 '진리 행상들'(truth peddlers)을 불러들여 그들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도록 시킨 유명한 수업을 버클리에서 열기도 하였다.

2) 성찰적 과학자들의 과학 비판

1960년대의 쿤 찬성파도 쿤 반대파도 쿤의 책 직후에 발간된 다른 책이 과학에 대한 논쟁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Silent Spring}(1962)이었는데, 이 책은 과학에 기초한 기술이 초래한 환경 파괴를 대중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누가 쿤의 퍼즐 풀이자에게 봉급을 주고, 그들이 어떤 문제를 연구할지 누가 결정하며, 그들의 연구결과 발간을 누가 통제하는지를 우리가 고찰해보면, 쿤의 학문적 '정상과학'은 기업의 산업화된 과학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수년 후에, 쿤 이후 가장 독창적인 저작중 하나에서, 제리 라베츠(영국의 급진과학운동에 느슨하게 관련된 과학철학자이자 과학사가)는 산업화된 과학은 부패에 심각한 취약성을 지닌다고 주장하였다. 라베츠의 책 제목 {과학지식과 그 사회적 문제들 Scientific Knowledge and Its Social Problems}(1971; 1996)은 그 시대로서는 과감한 것이었다. 쿤과 카슨의 여파 속에서, 과학은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적 활동이라는 생각이 근거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지식 자체가 사회적 문제를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뻔뻔스럽고 비논리적이라 여겨졌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라베츠는 우리가 '과학은 사실을 발견한다' 또는 '과학은 참 아니면 거짓이다'는 생각 또는 지식이란 연구의 자동적 산물이라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제시하였다. 그 대신에, 진정한 과학지식은 오랜 사회적 과정의 산물로서 이 과정의 주된 부분은 연구가 완성된 한참 후에나 발생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이는 과학(연구 또는 광의의 학술활동이라 해석된)이 '장인적 작업(craft work)'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과학을 장인적 작업으로 본다면, 과학적 산출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진리성(truth)'은 '질(quality)' 개념으로 대체된다. '질'은 과학적 불확실성은 물론이고 과학의 사회적·윤리적 측면을 확실하게 의제에 올려놓는 역할을 한다. 현대과학의 전반적인 실천 가운데 우리는 심각히 문제시되는 4가지 범주를 지적할 수 있다고 라베츠는 주장한다. 그것은 엉터리 과학, 기업적 과학(연구비 확보하기가 게임의 이름인), 무모한 과학, 그리고 더러운 과학이다. 이들은 모두 고삐풀린 기술과 결부되어 있다. 더 나아가서 라베츠는 과학에서의 질이 대체로 현직 과학자들의 사기와 헌신에 달려 있고 과학자사회의 리더십이 지닌 도덕적 민감성에 의해 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작은 과학'의 낡은 이상주의가 그 사회적·이념적 토대를 상실하고 증발해 버렸기 때문에, 산업화된 '거대 과학'에 대해서 이에 상응하는 이상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상주의가 없이는, 과학은 부패에 매우 취약하게 될 것이며, 범인(mediocrity)에 의한 보편적 지배 혹은 그보다 못한 상태를 초래할 것이다."1)

'질'에 대한 이같은 라베츠의 관심은 과학사·철학(HPS) 공동체로부터 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질을 문제로 보는 것이 과학철학자들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다른 부분적 이유는 HPS가 학문 시장에서 분야간 경계를 세우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찰적인 전문과학자들은 HPS쪽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을 깡그리 무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따라서 존 자이먼의 {공공 지식 Public Knowledge}(1968)은, 과학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현직 과학자의 독창적 사색이 담겨 있었으나, HPS 공동체로부터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는 참 아이러니한 일인데, 왜냐면 HPS 전 분야가 '연계학문'(bridge subject)으로서 큰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은 부분적으로는 원자폭탄 투하사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또 부분적으로는 과학과 인문학이 두 개의 문화로 분열되어 있다는 C. P. 스노우의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3) 과학사회학의 변화

라베츠는 {과학지식과 그 사회적 문제들}의 상당한 부분을 과학적 '사실'의 개념을 고찰하는 데 바쳤다. 그는 연구의 결과가 어떻게 검증의 사회적 과정들을 거쳐 마침내 '사실'이 되며 때때로 심지어 이른바 '지식'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서로 다른 교육과정들이 어떻게 동일한 사실의 전혀 다른 버전(version)들을 가르치는지, 어떻게 동일한 교과서의 서로 다른 개정판들이 한 완벽한 버전으로부터 다른 버전으로 조용히 넘어가는지, 그리고 결국 학생들이 사실의 어떤 특정한 속류 버전을 절대적 진리로 배우게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이렇듯 과학연구의 결과가 어떻게 사실로 간주되게 되는가에 대한 검토는 1970년대 말에 이르면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연구분야가 되었다. 그 전까지 사회학자들은, 과학철학자들이 과학이란 항상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과학사가들은 그것이 어떻게 역사 속에 일어났는지를 보이는 데 열중해왔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적 프로그램에서 자기 몫을 수행해 왔다. 2차대전 이전에 사회학자들은 한마디로 과학에 대한 아첨만을 해왔으며, 이는 과학에 대한 사회적 연구의 초기 개척자로 보통 간주되는 R. K. 머튼의 저작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쿤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사회학자들은 쿤의 주장에 열정적으로 호응하였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쿤이 사회학자들에게 과학 자체를 모방할 수 있는 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즉 사회학은 그 자신의 패러다임을 창조함으로써 물리학같은 과학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는 전혀 새로운 사회학적 탐구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리하여 '과학사회학'(Sociology of Science) ― 또한 '지식사회학(Sociology of Knowledge)'이라고도 불리는 ― 은 새롭게 급속히 팽창하는 분야가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인류학자들도 여기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학자들을 스스로의 규범(norms)과 의례(rituals)를 지닌 이국적인 종족으로 연구하였다. 본질적으로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보이려 한 것은 과학적 사실이란, 라베츠가 이미 주장한 것처럼,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실'은 그것과 연관된 사회기술적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학자에게는 '발견(discovery)' 대신에 '구성(construction)'이란 일반적 용어가 쓰였다. 남아 있는 문제는 이러한 '구성'이 어느 정도나 '저 밖의(out there)' 어떤 객관적 실재에 의해 구속되느냐는 것이다.

4) 구성주의적 과학지식사회학

과학에 대한 구성주의적 연구 ― 예컨대 인류학자 크노르-세티나의 {지식의 제조 The Manufacture of Knowledge}(1981) 또는 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에 의한 보다 최근의 저작 {골렘 The Golem}(1993) ― 는 두 가지 기본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 산업화된 과학이 과학적 '사실'과 그것이 표현한다고 가정되는 '진리' 모두를 제조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둘째, 과학적 방법 자체가 비국지적 보편성을 갖는 패러다임이기는커녕, 단지 기회주의적 논리에 불과하며 국지적인 사회적 행위에 뿌리를 둔 국지적으로 위치지워진 실천형태라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유명한 구성주의적 연구는 브뤼노 라투르와 스티브 울가의 공저인 {실험실 생활: 과학적 사실의 사회적 구성 Laboratory Life: Social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1979; 1986)이다. 이 두 명의 프랑스와 영국 사회학자는 단일한 사실에 대한 자세한 역사를 검토하였는데, 그것은 타이로트로핀(Thyrotropin: 갑상선자극호르몬 ― 역주) 방출인자라는 호르몬, 혹은 줄여서 TRF(H)의 존재이다. TRF(H)는 1962년에 "두뇌가 타이로트로핀 분비를 통제한다"는 언명과 더불어 처음 출현을 하였고, 1969년에 "TRF(H)는 Pyro-Glu-His-Pro-NH2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확고한 사실이 되었다. 라투르와 울가는 TRF(H)가 그것이 사용된 맥락에 따라서 의미와 중요성이 달라져 왔다고 주장하였다. 즉 TRF(H)는 의사, 내분비학자, 그것을 생물반응시험의 도구로 사용하는 연구자와 대학원생, 그것을 평생 연구해온 전문가집단, 그리고 그것을 하위분야로만 연구해온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 연결망 밖에서는 TRF(H)란 존재하지 않는다. TRF(H)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수많은 가치와 선택들을 포함하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지원과 프로젝트중 자금이 끊어질 뻔했던 위급한 순간들, 화학적 구조를 얻으려는 결정에 관여된 전략의 선택, 새로운 방출인자의 존재가 수용되기 전에 받아들여져야 할 14개 기준의 부과, 해당 분야의 두 라이벌 집단의 인물들과 우선권을 둘러싼 그들간의 논쟁, 해당 물질의 명칭을 둘러싼 논쟁(TRF에서 TRH로), TRF의 펩타이드[둘 또는 그 이상의 아미노산이 결합한 화합물 ― 역주] 성격에 대한 의심, 마지막으로 대규모 분광계의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것은 해당 연구에 존재론적 변화를 초래했고 논쟁을 종결시켰음)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 발견의 과정이 아무리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 해도, 단지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무런 '실제 TRF'는 없다는 걸 의미할까? 라투르와 울가는 언명을 사실[실재 ― 역주]로 바꾸는 것이 가역적(reversible)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실재는 다시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TRF는 인공물이라고 밝혀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TRF가 '생리학적으로 유의미한' 양만큼 우리 신체에 Pyro-Gly-Ori-NH2로 존재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만한 아무 주장도 아직 개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Pyro-Glu-His-Pro-NH2 합성체가 검사에서 활동적이라 받아들여지더라도, 그것을 신체에서 측정하는 것은 아직 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TRF의 생리학적 유의미성을 확립하려는 시도가 아직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TRF가 인공물일 가능성보다는 사용된 반응시험들의 비민감성 때문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맥락이 조금만 더 변화한다면, 대안적인 해석의 선택으로 TRF가 인공물일 가능성의 실현이 유리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2)

따라서 위로부터 불가피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왜 어떤 언명(a statement)이 하나의 사실(a fact)이 되는가를 설명하는 데 실재(reality)가 사용될 수는 없다. 왜냐면 실재의 효과가 얻어지는 것은 오직 사실이 구성되고 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실험실 생활}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쿤을 의식적으로 따르는 구성주의자들을 과학학(때로는 과학기술학이라 불리고, 이전에는 과학-기술-사회(STS) 연구로 존재했음)이란 학제적 분야에 훨씬 더 중요하게 만들어줄 뿐이었다. 소칼의 날조에 이어서 발간된 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의 책 {지적 사기 Intellectual Impostures}(1997)에서, 가장 강한 적개심은 라투르와 기타 구성주의자들을 향해 표출되었다. 소칼과 브리크몽은 그러한 구성주의자들만큼 멀리 나아가지 않은 다른 과학사회학 학파에 대해서는 훨씬 친절하였는데, 그것은 에딘버러학파의 '스트롱프로그램'(Strong Programme)이었다.

5) 에딘버러학파의 스트롱프로그램

'스트롱프로그램'은 에딘버러대학교에서 196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 허나 그것의 기본적인 입장을 담은 책은 라투르와 울가의 책보다 단지 3년 전에 출간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창시자중 하나인 데이비드 블루어의 책 {지식과 사회의 상 Knowledge and Social Imagery}(1976)이 그것인데, 여기서 그는 스트롱프로그램의 목표가 과학지식이 사회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학지식사회학(SSK)을 위한 방법론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천명하였다. 그러한 방법론은 4가지 기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에딘버러학파는 주장한다. 첫째, SSK의 목적은 지식의 내용을 초래한 조건들을 밝히는 것이다(=인과성). 이러한 조건에는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그리고 심리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 둘째, SSK는 연구대상의 선택에 있어 공평해야 하는데, 즉 참과 거짓 지식, 과학의 성공과 실패, 합리적 탐구와 비합리적 탐구에 대해 동등하게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공평성). 셋째, 선택된 과학지식의 사례에 대한 설명에 있어 일관성 혹은 '대칭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대칭성). 예를 들면 '거짓' 지식을 설명할 때는 사회학적 원인을, '참' 지식을 설명할 때는 합리적 원인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넷째, SSK의 설명모델은 사회학 자체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성찰성). 에딘버러학파의 관심중 하나는 과학자들을 사회과학자들의 관심사에 보다 수용적으로 만들고, 과학자들을 과학활동이 배태된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환경들에 민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1950년대에 영국 지식인들을 처음 말려들게 한 C. P. 스노우의 '두 문화' 문제에 답하려는 일반적 시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스노우가 이 문제를 제기한 당시는 국가기구에서 '기술관료'가 옥스브리지(Oxbridge: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출신을 의미 ― 역주)의 인문학자들을 대체하기 시작한 때였다.

스트롱프로그램은 그 초기에 정말 급진적이고 과학에 대해 전복적인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과학의 수호자들로부터 일제히 논쟁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구성주의자와는 달리 스트롱프로그램은 과학에서 성공적으로 탐구된 외부 실재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고, 그 급진적인 비판성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실증주의 진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스트롱프로그램의 보수적 성격은 데이비드 블루어와 배리 반즈가 이 프로그램의 최신 입장을 밝힌 책 {과학적 지식 Scientific Knowledge}(1996)에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여기서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이론의존적(theory-laden)'인 것은 이제 과학에서의 관찰이 아니라 관찰에 대한 보고(reports)이다. 관찰이 어떻게 보고되느냐 하는 것은 과학자가 속한 연구 전통에 달려 있다. 관찰의 해석은 연구 전통의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상이한 (과학적) 연구 전통에 속한 두 과학자가 동일한 사물을 관찰하고도 동일한 결과를 다르게 보고하고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에딘버러학파에 따르면 이론들 자체가 시간상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론들을 한묶음의 고정된 언명들과 동일시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론들을 위대한 과학자의 이름들과 결부시키는 것 ― '뉴튼의 이론', '아인슈타인의 이론' 등 ― 이 이러한 환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 대신에 과학 이론들은 진화하는 제도들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이 학파는 주장한다. '멘델의 이론'을 세밀히 검토하면, 멘델이 처음 그것을 정립하였을 때 이래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경험해왔는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에딘버러학파는 '경험'과 '실재'는 실제로 '저 밖에' 있다고 언제나 주장해왔다. 실재론은 사회학적 탐구에 의해 반박되는 것이 아니라 조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재론을 밝히기 위해 그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개념적 도구는 '사회학적 한정주의(sociological finitism)'인데, 이는 어떻게 '말(words)'이 '세계(world)'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한 방식이다. 한정주의는 모든 과학적 용어와 개념은 열린(open-ended) 의미를 지니고 있다 ― "현재에 완성된 어떤 시방서나 모형이나 연산법도 미래에 그 해당 용어의 올바른 사용을 고정시킬 수는 없다" ― 고 주장하며, 과학적 분류들의 규약적(conventional)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정주의는 또한 과학 분야간의 경계는, 과학/비과학간의 구분과 더불어,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무엇이 과학인가에 대한 우리의 개념 변화는 오늘날 비과학으로 무시되는 것(점성술, 침술, 초심리학 등)이 과학으로 포함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트롱프로그램은 과학 자체의 밖에 존재하는, 과학에 대한 어떤 '사회적 이해관계(social interest)'도 인정하지 않는다. 즉 과학자들 자신이 목격하는 것을 넘어서서 과학에 작용하는 보다 큰 사회적 힘들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트롱프로그램은 과학 비판이라기보다는, 에딘버러학파 스스로 인정하듯이, "과학 자체의 기획의 일부"로서 사회학적 정상과학 안에서의 퍼즐 풀이인 것이다.

6) 페미니스트 과학학

이러한 동화주의적(assimilationist) 태도는 과학에 대한 페미니스트 접근과는 날카롭게 대조되는 것이다. 거의 반세기 동안, 페미니스트들은 과학이 여성을 차별한다고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은 단지 과학의 관리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것이다. 어떤 차원에서 많은 여성을 소름끼치게 하는 것은 단지 과학의 내용이다. 과학을 군사 및 무기의 연구, 동물의 학대, 여성 실업을 초래하는 자동화 기계에 연결시키는 과학자 경력을 추구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여성은 많지 않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페미니스트 분석은 이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간다. {페미니즘에서의 과학 문제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1986)라는 유명한 책의 저자인 샌드라 하딩이 주장하는 바처럼, 과학은 본질적으로 '남성중심적(androcentric)'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일부 인간행동의 뿌리는 인간진화의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통적인 진화론을 생각해보자. 서구 중간계급의 사회생활(남자는 나가서 남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여자는 아기를 돌보고 부엌일을 하는)의 기원은 '수렵자 남성(man-the-hunter)'의 출현에서 찾아야 한다고 진화론에서는 주장한다. 즉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여성은 채집자였고 남성은 나가서 고기를 구해 왔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얇게 깎은 석기의 발견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러한 석기는 동물의 수렵에 사용하기 위하여 남성이 도구를 발명했다는 증거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와 동일한 석기를 다른 문화적 관점 ― 예컨대 여성이 집단의 주된 부양자가 되는(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문화는 심지어 오늘날도 존재하고 있음) ― 을 가지고 바라보면, 우리는 이러한 석기가 여성에 의해서 사용되었다(동물을 죽이고, 죽인 고기를 자르고, 뿌리를 파헤치고, 씨 깎지를 부수며, 단단한 뿌리를 때려서 부드럽게 만드는 데)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가설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진화론 전체의 경로가 바뀌게 된다. 과학에서의 다른 흐름들 ― 예컨대 IQ검사의 등장, 행동심리학, 태아연구, 사회생물학 등 ― 도 역시 비슷한 논리로 분석될 수 있다. 젠더 편향은 따라서 과학에서 기본적 질문이 제기되는 방식에서 출현한다. 상이한 유형의 질문들에 대한 증거로 수집되고 제시된 데이터가 이러한 편향을 더더욱 부추기게 된다. 과학에 대한 페미니스트 연구자들 ― 그 질과 양의 면에서 참으로 대단한 ― 은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 분석해왔다.3) 이들은 기존 과학에서 보이는 양적 척도에 대한 강조, 변이에 대한 분석, 비인격적이고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틀 등이 모두 뚜렷이 남성적인 경향이며 자기 자신의 젠더적 성격을 감추는 걸 돕는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이들은 수학과 추상적인 사고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 객관성의 기준들, 과학적 방법의 구성, 과학적 합리성의 도구적 성격 등이 모두 이상적인 남성성의 관념에 기초한다는 것을 폭로하였다.

그러면 과학에서 여성을 공정하게 참여시키면 여기에 어떤 변화가 올 수 있을까?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분명한 경제적 이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지식기반경제는 훈련된 과학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과학적 잠재력의 반이나 차지하는 여성인력을 그냥 낭비해서는 안된다. 또한 여성을 보다 많이 참여시키는 것은 보다 넓은 물질적·사회적 문제들에 과학을 개방하는 효과를 지닐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면 제3세계의 문제들이 보다 큰 주목을 받고 보다 많은 연구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이 이상의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즉 그들은 여성이 종래의 과학적 방법과 객관성을 벗어나서 하딩이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이라 부르고 힐러리 로즈가 '책임있는 합리성(responsible rationality)'이라 부른 것으로 이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강한 객관성'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하는 데 있어 '외부자들' ― 사회과학자들, 환경론자들, 주부들, 비서구 문화들 ― 의 시각들을 고려에 넣도록 자연과학자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과학에 대한 페미니스트 관점이 종래의 과학 실천과 병행하여 정당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또는 반-성차별적 개념, 이론, 방법, 해석이 과학적으로 [종래 과학과] 동등하게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서 이는 보다 많은 여성이 분명히 차별적인 규범과 관행 안에서 남성 동료와 함께 일하도록, 그래서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이 되어야 하도록, 훈련받고 충원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페미니스트 과학학자들의 주장은, 단지 여성을 과학에 동등하게 참여시키는 것만으로는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과학은 계속 차별적인 것으로 남으리라는 것이다. 오직 과학의 개념, 방법, 해석에 대한 근본적 변혁만이 참된 변화를 낳을 것이라고 이들은 본다. 따라서 이들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과학적 발견의 논리 그 자체의 재지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 과학학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이 서구문명이라는 한 문명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쿤의 모델은 다른 문명들 ― 자신의 패러다임을 지닌 ― 은 다른 관행의(그리고 사실상 다른 종류의) 과학을 지닐 수 있음을 주장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1978년에 이슬람 학자인 호세인 나스르가 쓴 유명한 책 {인간과 자연의 대면 The Encounter of Man and Nature}에서 처음 떠올려졌다. 나스르는 서구과학을 독특하게 서구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지닌 자연에 대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자연이 오직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며, 베이컨이 주장하듯 자연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도록 '고문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비서구 문화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다. 예를 들면 이슬람과 중국에서는 자연을 객체로 보지를 않았다. 이슬람에서는 자연을 마땅히 존경과 감사를 받으며 돌보고 연구해야 할 일종의 성스러운 신탁물(a sacred trust)이라고 생각해 왔다. 중국의 전통에서는 자연을 자기조절적인 관계의 망으로 간주해왔으며 인간들은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자연에 개입한다고 생각해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와 시간에 대한 서구의 관념은 문화에 기초한 것이었다. 우주를 '성스러운 이치에 지배되는 위대한 제국'으로 보는 서구의 관념은 그 어떤 보편적 관념이 아니라 유럽의 중앙집중화된 왕권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중국인이나 인도인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관념인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서구 과학에서는 시간을 단선적인 것으로 보지만, 다른 문화들에서는 시간을 순환적인 것으로 보거나(힌두교에서처럼) 현재가 이승 이후의 영원한 시간과 함께 짜여지는 태피스트리와 같은 것으로 본다(이슬람에서처럼). 근대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것 아니면/저것(either/or)'의 논리(즉 X는 A가 아니라면 non-A이다) 논리를 기초로 작동하지만, 힌두교에서는 논리가 4겹 혹은 심지어 7겹이나 된다. 힌두교의 4겹 논리(앞의 형태 외에, X는 A도 아니고 non-A도 아니다; X는 A이자 non-A인 것이 아니다; X는 A도 non-A도 아닌 것이 아니다)는 상징적 논리이자 인지의 논리이다. 그것은 '모든 경우에(for all)'라는 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보편적 언명의 정확하고 분명한 정립을 성취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과학의 저변에 깔린 형이상학적 가정들은 근대과학을 그 주요 특징의 면에서 서구에 특수한 것으로 만든다. 어떤 과학이 자연, 우주, 시간과 논리에 대한 상이한 관념들에 기초한다면, 그것은 서구 과학과는 전혀 다른 기획이 될 수 있는 것이다.4)

하지만 종래의 (서구적) 과학사는 상이한 종류의 문명적 혹은 문화적 과학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구 과학을 과학의 극치로 간주하면서 다음과 같은 4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독점을 유지해왔다. 첫째, 그것은 비서구 문화와 문명의 성취를 참된 과학으로 간주하길 거부하면서, 그런 것들을 미신, 신화, 민속 등으로 무시하였다. 둘째, 비서구 과학들의 역사는 일반적인 과학사에 대개 포함시키질 않았다. 셋째, 유럽 문명의 기원의 역사를 다시 써서 마치 그것이 자가발생적인 것처럼 만들었다. 많은 유명한 과학자들 ― 17세기말의 뉴튼과 19세기말의 켈빈 등 ― 은 근대 유럽문명의 기원과 아리안모델의 창조에 대한 수정주의적 역사를 만들고 보급하는 데 관여하였다. 이 모델은 그리스문화가 주로 유럽적이며 아프리카인과 셈족[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장자 셈의 자손으로서 히브리, 아랍, 앗시리아, 페니키아 등 셈어를 사용하는 여러 종족을 지칭 ―역주]은 고전적인 그리스문명의 창조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생각을 처음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그리스문화를 유럽적인 것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여러 근거에서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유럽'이라는 관념(그리고 그러한 관념이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관계들)은 수세기 후에야 나타난 것으로서, 어떤 이는 그것을 샤를마뉴의 위업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15세기부터라고도 한다. (그리스와 로마는 지중해의 문명들이었다.) 더구나 그리스를 유럽에 소개한 것은 바로 이슬람이었다. 이슬람의 확산 덕분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들 역시 그리스문화가 자신들의 유산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넷째, 정복과 식민화를 통해서 유럽은 다른 문명의 과학들을 전유하고, 그 발생지들의 지식을 억압하며, 그러한 지식을 서구의 것으로 재순환시켰다. 우리는 많은 과학적 전통들이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서구 과학에 전유되고 완전히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감자와 기타 많은 식량 작물을 제공했던 전(前)콜롬비아 농업은 유럽의 농업 관행과 과학으로 흡수되었다. 아랍과 인도의 문화에서 나온 수학적 업적들은 또 다른 예를 제공해준다. 근대 유럽을 만든 3가지 대발명이라고 프란시스 베이컨이 지적한 것들 ― 인쇄, 화약, 자석나침반 ― 은 중국에서 건너 온 것이라는 것을 이제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지리학, 지질학, 식물학, 동물학, 분류틀, 의학, 약리학, 농업, 항해법 등은 모두 비유럽인들의 지식전통이 제공한 것들이다.

지난 30년 동안 새로운 명칭의 과학학 연구자들이 출현하였다. 대부분 '제3세계'에 터를 둔 이들 탈식민지의 학자들은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post-colonial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라고 불리는 분야를 개척하였다. 이들은 비서구 과학의 역사를 복구하면서 서구 과학의 유럽중심주의를 폭로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즉 이슬람, 인도, 라틴아메리카의 과학들의 역사에 대한 경험적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이들 과학이 지닌 폭넓은 범위와 넓이를 보여주고자 노력해온 것이다. 그러나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은 이보다 훨씬 더 나아간다. 첫째, 그것은 식민주의(신식민주의를 포함)와 서구 과학의 진보 사이의 연관을 확립하는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인도의 과학사·철학자인 디팍 쿠마르는 그의 여러 책에서,5) 인도의 영국 식민주의가 유럽 과학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 주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노력해왔다. 영국은 보다 나은 항해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천문대를 짓고 천문학자들을 지원하며 항해에 대한 체계적 기록을 보관하려고 하였다. 인도에서 확립된 최초의 유럽 과학이 지리학과 식물학이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식민통치 기간을 통털어 유럽 과학은 주로 영국의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요구들 때문에 진보하였지, 결코 과학의 합리성이나 진리 추구에 대한 과학자들의 헌신 때문에 진보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 탈식민주의 과학학은 이슬람, 인도, 중국의 과학 실천방식을 현대에 재확립하는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현대의 이슬람 과학에 대한 모든 담론은 어떻게 자연, 지식/가치의 통일, 공익 등등에 대한 이슬람식 관념에 기초한 과학을 형성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6) 인도 과학에 대한 비슷한 담론이 또한 지난 십 년 사이에 출현하였다.7)

쿤에 대한 비판

쿤의 저서는 1960년대 중반 이래 과학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들이 전개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쿤은 과학에 대해서 전복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고 또 종종 그렇게 지금도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쿤의 급진적 면모는 실제라기보다는 외견상의 것이다. 우리는 과학 활동에 대한 어떤 분석이라도 과학에 대해 전복적이며, 또 종종 그렇게 인식되어 분노를 일으키곤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혁명의 구조}가 과학에 대한 분석을 자극하는 한 그것은 급진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과학의 교육은 쿤이 말한 바처럼 신학만큼이나 독단적이고, 교과서에 나오는 과학의 역사가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같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는 쿤이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분석을 하지는 않은 과학의 정신분열적인 자의식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즉 과학에서 연구의 첨단에서는 개방성과 많은 논쟁이 있지만, 교육과 선전에서는 확신과 독단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진리'의 확고한 원천으로서 신학과 싸워왔던 과학의 투쟁적 전통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과학 자체의 영토에 대한 통제수단으로서도 매우 편리한 것이다. 왜냐면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은 정당성과 권력을 나누어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과연 누가 기꺼이 그런 일을 하겠는가? 분명히 쿤은 과학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진짜 관심은 과학의 모든 핵심적 과정들 ― 과학의 혼잡한 발견과정을 포함한 ― 이 과학의 자기조직화 원리들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데 있었다. 쿤은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과학이 지닌 문제성을 폭로하려고 시도하였지만, 과학의 내적인 순수성과 과학의 조직화 원리에 대한 신념을 보존하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과학의 개혁을 외친 사람들은 변화의 영감이 대부분 과학 자체의 외부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한 바 있다. 쿤은 이를 부정하고서 과학 자체가 내적인 개혁과 변화를 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만일 과학이 혁명들을 통해서 스스로 개혁을 할 수 있다면, 과학에 대해 외부 간섭이 있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과학혁명의 구조}가 주장하는 바는 종교, 윤리, 기술과 같은 도전과 오염의 힘들을 배제하는 데 성공적으로 이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쿤은 과학이 점점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에 관여하는 것에 반대했던 그 모든 과학 비판자들을 주변화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에서 내부/외부의 이분법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특히 과학사의 교육에서 그리고 과학사가들에게 적정하고 안전한 역사전문가적 태도를 함양하는 데 있어서 널리 수용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결국 과학사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일반적 전략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쿤으로 하여금 과학의 본성을 그 가장 파괴적인 현대의 외현(外現)들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게 한 것 ― 즉 과학의 기술적·경제적·문화적 차원들을 생략하는 것 ― 과 같은 그의 설명 모델은, 사회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들도 '진짜 과학자'로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다고 생각케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쿤은 특히 과학의 대중적 체면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과학의 '내적' 문제와 '진실'이 무엇이든, 과학을 선(Good)하고 참(True)된 것으로 보는 대중의 믿음은 수호될 필요가 있는데, 왜냐면 그러지 않는 것의 사회적 결과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 상실은 심지어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은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쿤은 보았다. 이러한 '이중적 진실' 교리는 사실상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인데, 플라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아테네의 몰락에 따른 비판적 이유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그가 꺼려하였던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대중의 기성 견해에 공공연히 반하는 진실이 가져올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사회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하려고 과학사회학자 스티브 풀러는 '임부셸먼트(embushelment)'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임부셸먼트는 중요한 문화적 인공물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관념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즉 한 가지 의미는 대중의 편견을 강화함으로써 그들을 위안하는 데 사용되고, 또 한 가지는 매우 반직관적인 진실을 소화할 만큼 정신적으로 준비된 엘리트 탐구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쿤 자신의 임부셸먼트는 하바드대의 학문적 환경 ― 원자폭탄을 옹호한 후, 냉전에서도 계속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 에 둘러싸인 그의 배경과 스승 코넌트와의 개인사가 낳은 산물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로 하여금, 불안정하고 양극화된 세계에서 과학의 자율성은 마르크스주의자나 뉴에이지 신봉자같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방어되고 보호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들었다. 과학의 대중적 이미지를 구하려는 쿤의 관심은 그로 하여금 생의 말기에 그 스스로가 쿤주의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게끔까지 만들었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지닌 혁명적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체로 과학의 진부한 낡은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쿤에 대한 탁월한 전기인 {토마스 쿤: 우리 시대의 철학사 Thomas Kuhn: A Philosophical History for Our Times}(2000)에서, 스티브 풀러는 {과학혁명의 구조}의 정당한 용법이 대부분 아주 보수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다니엘 벨은 1960년대 말에 변혁에 휩싸인 대학에서 학제적 연구에 반해 개별 학문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쿤의 이론을 이용하였다. 보다 최근에는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과학의 자율적 발전이 과학을 세계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데 쿤을 상기시켰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과학철학에 미친 영향은 과학에 대한 과학철학의 비판적 태도를 끌어올리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늘날 철학자들은 그들이 연구하는 특정 과학들에 함축된 규범들을 밝히는 데 만족하며, 이 때 각 과학은 규범적으로 바람직한 양식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가정되고 있다. 쿤이 그린 세계에서 예상되듯이, 철학적 지향의 이러한 변화 대부분은 철학 자체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을 수반하였음을 풀러는 보여주고 있다. 실증주의의 종말 이후에, 쿤은 철학적 논쟁의 새로운 초점을 제공하였으며, 따라서 라베츠, 파이어아벤트, 급진과학운동, 그리고 서구과학에 대한 대부분의 탈식민주의 비판은 주변화되기가 쉬웠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철학적 의제를 재정의함으로써, 과학적 탐구의 논쟁적이고 수사적인 측면 대신에 구성주의가 과학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이성'이나 '합리성'같은 용어들이 지속적인 수정을 거치면서, 이제 과학에 대한 급진적 비판은 비합리주의와 연관이 되게끔 되었다.

과학전쟁을 넘어서: 탈정상과학

과학전쟁에서 과연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소칼과 브리크몽이 주장하듯이, '포스트모더니스트'와 기타 과학학자들이 과학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이 단지 문제인가? 구성주의자가 저지른 오류와 수학적 실수가 문제인가? 아니면 과학이 지닌 권력과 특권이 문제인가?

분명히 과학전쟁은 학문적 날조와 사회과학자 및 문화이론가의 수학적 무지를 폭로하는 일을 훨씬 넘어선 어떤 것을 담고 있다. 소칼의 날조는 많은 학자들이 이미 의심하고 있던 것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였다. 즉 문화연구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왔고, 아무나 포스트모던 비판의 이름으로 원하는 아무 것이라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학자가 과학이 누리던 재정적 지원과 대중의 지지에 어떤 실제 변화를 초래했다는 걸 보여주는 아무 증거도 없다. 그러나 만일 과학전쟁에 어떤 중요성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과학의 권력과 권위에 대한 것이다. 과학자사회의 분노는 과학의 전통적 정당성이 침식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과학의 권위는 수선할 도리 없이 망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전쟁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별로 말해주는 것이 없다. 그 이유를 알려면, 우리는 과학 자체에 주목해야 하고 1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제 대체로 과학전쟁은 현실유관성이 떨어졌다. 소칼 이후의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8) 논의는 사례연구에 대한 자세한 비판으로 옮겨가고 있다. 물론 과학전쟁은 계속해서 논쟁과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운명은 다른 곳에 놓여 있다.

과학은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단지 그런 것이 아니다. 과학의 이념적이고 가치의존적인 성격은 의심의 여지없이 폭로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어떻게 권력의 정치적 현실, 자금의 원천, 문제의 선택, 문제 선정의 기준, 그리고 편견과 가치체계가 심지어 '가장 순수한' 과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가가 아니다. 또는 과학적 방법의 핵심에 가치몰입(통계적 추론의 '신뢰한계'의 선택으로 실현된)이 발견된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과학의 대부분의 가정들이 유럽 문명의 그것이라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과학이 이제 불확실성과 위험에 연관되어 있느냐인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과학은 이제 더 이상 쿤의 의미에서 정상과학이 아니다. 영국의 광우병(BSE) 사건으로부터 유전자조작식품까지 최근 일련의 논쟁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은 현대의 많은 쟁점들에 대해서 빠르고 확실한 해답을 제공해주지를 못한다. 확실성과 보증을 제공하던 과학의 낡은 패러다임은 이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과학은 이제 탈정상(post-normal) 국면으로 이행했는데, 라베츠와 펀토위츠의 말을 빌면 "사실은 불확실해지고, 가치는 논쟁에 휩싸이며, 결과는 중요하고, 결정은 시급한"9) 그런 국면인 것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이 낮은 상황에서는 종래의 낡은 패러다임의 정상과학이 아직도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의 중요성과 시스템 불확실성이 매우 클 경우 ― 예를 들면 유전공학이나 인간복제와 같이 ― 에는 적합하지 않다. 과학자의 도덕적 공포는 이러한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과학의 맥락을 바꾸어 놓고 복잡시스템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전면으로 부각시킨 패러다임 변화 속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출구란 없다. 과학자들은 이 새로운 현실과 대면해야만 한다. 그들은 과학에 대한 맹신과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확신이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부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 '탈정상과학'은 과학이 그 경계를 확장하여 상이한 타당화 과정들, 시각들, 지식유형들을 포함하기를 요청한다. 특히 그것은 과학적 전문성과 대중의 관심 사이의 간극이 메워지는 걸 요청한다. 따라서 탈정상과학은 어떤 문제에 대한 모든 당사자들 ― 과학자들 자신으로부터 사회과학자, 언론인, 활동가, 주부 등까지 ― 이 그들의 형식적 자격이나 소속에 관계없이 서로 대화하는 걸 뜻한다. 탈정상과학에서는 과학적 작업에 대한 질적 평가는 과학자에게만 맡겨질 수는 없는데, 왜냐면 극심한 불확실성과 위험의 상황에서는 과학자들 역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가를 할 수 있는) '확대된 동료 공동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들은 공동체가 수집한 우연한 증거와 통계까지 포함하는 '확대된 사실'(extended facts)을 이용할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실천, 사실, 참여자의 전통적 요소들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실천의 요소가 창출된다. 이것이 탈정상과학이 지닌 본질적인 참신성이다."10) 이는 불가피하게 과학의 민주화(democratisation of science)로 우리를 이끈다. 이것은 결코 연구작업을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넘겨준다는 뜻이 아니라, 과학을 실험실에서 이끌어내어 모두가 참여하여 과학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측면에 대해 논의하는 공공 논쟁에 부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베츠와 펀토위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실천이 과학이라는 생각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과학은 과거에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고, 인류의 변화하는 필요에 부응하여 앞으로도 계속 진화해갈 것이다…. 과학의 전통적인 문제풀이 전략들, 그것들에 대한 철학적 성찰들, 그리고 제도적·사회적·교육적 맥락들은 우리의 과학기초 산업문명이 초래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풍부해질 필요가 있다. 과학에 내재한 불확실성의 발견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안전하고 단순한 세계를 향한 향수의 한 표식일 뿐이다.11)

미주


* 출전: Ziauddin Sardar, Thomas Kuhn and the Science Wars (Cambridge: Icon Books, 2000).

1) Jerome R. Ravetz, Scientific Knowledge and Its Social Problems, New Brunswick: Transaction Publishers, 2nd edition, 1996, p. xi.

2) Bruno Latour & Steve Woolgar, Laboratory Life: Social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6, 2nd edition; 인용문은 이 책에 대한 탁월한 논평을 보여주는 John Stewart, 'Facts as Commodities', Radical Science Journal, No. 12, 1982, pp. 129-37에서 따온 것이다.

3)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책들을 보라. Donna Haraway, Primate Visions: Gender, Race and Nature in the World of Modern Science, New York: Routledge, 1989; Hilary Rose, Love, Power and Knowledge, Oxford: Polity Press, 1994; Margaret Wertheim, Pythagoras' Trousers, london: Fourth Estate, 1997.

4) 과학에 대한 비서구적 대안들에 대해서는 다음 책에 실린 많은 논문들을 보라. Ziauddin Sardar, ed., The Revenge of Athena: Science, Exploitation and the Third World, London: Mansell, 1988.

5) Deepak Kumar, Science and the Raj, Delhi: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Deepak Kumar, ed., Science and Empire, Delhi: Anamika Prakashan, 1991.

6) Ziauddin Sardar, ed., The Touch of Midas: Science, Values and Environment in Islam and the West,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 Ziauddin Sardar, Explorations in Islamic Science, London: Mansell, 1985; 그리고 이슬람과학에 대한 특집호를 실은 Social Epistemology, 10(3-4), July-December 1996, pp. 253-8, ed. Ahmad Bouzid를 보라.

7) 예를 들면 Susantha Goonatilake, 'The voyages of discovery and the loss and re-discovery of "Others" knowledge', Impact of Science on Society, 167, 1992, pp. 241-64; 아울러 참고할 자료는 Proceedings of the Congress on Traditional Sciences and Technologies of India, 28 November-3 December 1993, Bombay: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1993.

8) 실재론자의 공격은 다음의 책에서 계속되고 있다. Noretta Koertge, ed., A House Built on Sand: Exposing Postmodern Myths About Science, N.Y.: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구성주의자의 강력한 방어는 다음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Thomas Gieryn, Cultural Boundaries of Science: Credibility on the Line,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1999. 이 양측간의 맞대응 싸움은 과학전쟁을 특집으로 한 다음 저널에서 찾아볼 수 있다. Social Studies of Science, 29(2), April 1999, pp. 163-315.

9) S. O. Funtowicz & J. R. Ravetz, 'Three Types of Risk Assessment and the Emergence of Post-Normal Science', in S. Krimsky & D. Golding, eds., Social Theories of Risk, Westport, Connecticut: Praeger, 1992, pp. 251-73, p. 254.

10) Ibid.

11) Ibid., p. 255. 탈정상과학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Jerome Ravetz, ed., 'Post-Normal Science', Special Issue, Futures, 31(7), Sepember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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