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한정애 환경부장관에게 묻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조사 끝났다’는 
한정애 환경부장관에게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한정애 환경부장관이 지난 4일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에 따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기능은 삭제됐다”며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는 이미 끝났고, 계속해서 ‘진상조사화’ 되는 데 대한 우려가 있다”고 발언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습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과 가습기넷은 한 장관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 규명을 원치 않는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작참사법) 개정 과정과 최근 사회적참사법 시행령안을 놓고 환경부가 취해 온 입장과 대응을 지켜보면서 우려해 왔기 때문입니다. 한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가습기살균제 문제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왔습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근거인 사회적참사법이 2017년 12월에 제정된 배경과 과정을 한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기에 더욱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해당 언론 보도에 인용된 이같은 발언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 주길 한정애 장관에게 요청합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한정애 환경부장관에게 묻습니다] 2021년 5월 11일,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한정애 환경부장관이 지난 4일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이미 끝났고, 계속해서 '진상조사화' 되는 데 대한 우려가 있다"고 발언한 게 사실인지 질의서를 보내고 환경부를 규탄하는 시민 캠페인을 가졌습니다.

2021년 5월 11일,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한정애 환경부장관에 질의서를 보내고 환경부를 규탄하는 시민 캠페인을 가졌습니다. <사진=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바이오사이드 참사입니다. 불특정 시민 · 소비자 다수가 목숨을 잃거나 평생 치료 받더라도 회복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피해에 놓여 있습니다. 2021년 4월 30일까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접수된 신고 피해자는 7,441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1,656명입니다. 그리고 가습기살균제 제품 사용자는 894만명, 건강 피해자는 95만명, 사망자는 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1)  그래서 피해자들과 소비자인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차원의 집요한 조사 활동 방해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던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가습기살균제 참사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통한 가해기업 등 관련자 처벌과 정부 책임 규명, 피해자 지원과 함께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재발방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오랜 기간에 걸쳐 외쳐 왔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던 폐 질환 사망 사건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임이 확인된지 5년 만인 2016년에야 옥시 등 일부 가해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루어지고,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첫 국정조사 과제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루었습니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피해구제법)이 제정되긴 했습니다만, 다국적기업인 옥시 레킷벤키져(현 Reckkit) 등 가해기업들의 비협조적 태도와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의 국정조사 연장 반대로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공약 중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통합적 재난 안전 관리 체계 구축, ▲생활 화학 제품에 대한 유해 물질 사용의 적극적 차단 등을 약속했습니다. 그 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국민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라는 전략을 위해 ▲안전사고 예방 및 재난 안전관리의 국가책임체제 구축, ▲국민 건강을 지키는 생활안전 강화 등을 과제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2017년 8월 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공식 초청해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며 문제 해결을 약속했습니다. 그해 말인 11월에야 330일간 신속처리안건으로 묶여있던 사회적참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어 특조위 설치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그러나 특조위는 법 제정 1년이 지난 2018년 12월 11일에야 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던 지난해 12월, 국회는 특조위 업무를 규정한 사회적참사법 제5조에서 두 참사의 원인 규명 업무 중 “가습기살균제사건에 관하여는 피해자 구제 및 제도 개선, 종합보고서 작성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에 한정하여 수행한다”고 개정하고 말았습니다. 한 장관이 취임한 환경부는 곧바로 사회적참사법 개정을 이유로 들며, 특조위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에 대해 ‘특조위가 원인 규명 업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으므로 피해자 구제 및 제도 개선에 대한 진상규명조사도 수행할 수 없다’, ‘피해자 구제 및 제도개선과 관련해 필요한 자료는 협조 차원에서만 제공한다’는 등의 의견을 밝혀 왔습니다. 법 개정 전부터 ‘두 참사를 나눠서 봐야 한다’며 특조위 활동 종료를 주장해 온 환경부가, 법 개정을 주도한 한 장관이 취임하자 노골적으로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려는 행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과 가습기넷은 환경부의 이같은 행태를 사회적참사법 제정 및 특조위 취지와 목적을 고의적으로 왜곡하고, 국회의 입법권조차 위협하는 월권행위라 규정합니다.   

신세계 이마트가 판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 유족 김태종 씨. 김 씨의 부인 故 박영숙 씨는 13년간 투병하다가 지난해 8월 1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진=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신세계 이마트가 판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 유족 김태종 씨. 김 씨의 부인 故 박영숙 씨는 13년간 투병하다가 지난해 8월 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진=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특조위의 업무와 위원들의 지위는 사회적참사법 제4조에 따라 “업무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정권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여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 활동을 방해했던 뼈아픈 기억에 있습니다. 그래서 두 참사의 피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이 제4조를 이 법 제5조인 특조위 구성보다 앞에 둔 것입니다. 이 법 제22조에서 특조위가 진상규명조사를 수행함에 있어 피해자의 신청으로 관련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특조위에 피해자들을 자문위원으로 참여시키는 것 또한 사회적참사법의 입법 취지에 따른 것입니다. 두 참사의 피해자들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아닌, 환경부가 특조위의 업무와 활동을 규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특조위는 환경부의 산하 기관이 아닙니다. 특조위가 역대 정부들의 책임 등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환경부는 피조사기관 중 하나입니다. 피조사기관이 조사기관의 조사 범위와 방식까지 규정하려 드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사회적참사법의 목적(제1조)은 ‘(참사의) 발생원인 · 수습과정 · 후속조치 등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재해 · 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을 수립하여 안전한 사회를 건설 · 확립하는 것’에 있습니다. 환경부는 이 법의 목적에 담긴 내용 하나 하나에 무한 책임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주무부처라는 점에서 더욱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올해 1월 12일, SK케미칼 등 가해기업 임직원들 전원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1심 무죄 선고에서도 알 수 있듯, 환경부가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려는 행태를 멈추지 않던 순간에도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대가는 오롯이 참사의 피해자들과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2일, 특조위에서 ‘정부 승인도 받지 않은 가습기살균제가 버젓이 유통되어도 걸러내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멈추고서는 피해자 지원은 물론, 재해 · 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 수립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회적참사법 제정과 특조위 자체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오랜 요구와 온갖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이자,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정부에서 야당일 때부터 피해자들 입장에서 스스로 다짐해 온 약속을 지켜낸 결실이기도 합니다. 한 장관이 이끄는 환경부가 그나마 이룬 성과조차 무너뜨리지 않길 바라며, 맡은 바 책무에 최선을 다해 주길 다시 한번 당부합니다.


1) 최예용 외, “가습기 살균제 노출 실태와 피해규모 추산”, 한국환경보건학회지 제46권 제4호 (2020) : 457-469. 
   
doi.org/10.5668/JEHS.2020.46.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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