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시민사회일반 2001-02-10   1154

희망의 정치로 ‘개혁 감격시대’ 열어달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 국회서 여야 소장파 의원들에게 당부

“자신의 신념이 상대적으로 정당하다는 걸 알고, 주저 없이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이야말로 문명인과 미개인의 차이점이다.” 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여야 소장파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짤막한 경구로 참석자들의 귀를 열어주었다.

봄날처럼 따뜻했던 지난 2월 10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는 개혁파 여야 의원 21명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30여 명이 만나 3대 개혁법안에 대한 의견과 고충을 나눴다.

식전에 만난 여야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근황을 묻기도 했다. 김부겸 한나라당 의원은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에게 한나라당 대외협력위 초청간담회에서 벌어진 ‘서릿발 충고’에 대해 “우리도 노력하고 있는데, 좀 봐달라”며 악수를 청했고, 박 처장은 “실제 발언보다 좀 크게 포장된 것 같다”며 눙쳤다.

절망의 정치를 희망의 정치로

‘개혁을 고민하는 여야 국회의원과 시민사회대표자의 만남’은 최근 국회에서 초당적 결합으로 개혁을 주장하는 여야 소장파 의원들을 격려하고, 실효성 있는 개혁법안(인권법·부방법)의 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제안, 마련됐다.

이날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은 ‘절망의 장벽을 깨부수고 희망의 정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개혁입법이 필수불가결 하다고 촉구했고, 의원들은 현실정치의 어려움이 있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답변했다.

여야의원 인사말에서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우리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단순히 하나의 법을 폐지하자는 게 아니라 시대와 역사의 변화에 부응하자는 것이고, 남북이 갈라져 고통받았던 50년 통한의 세월을 21세기 빛나는 조국으로 바꿔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발언한 김원웅 한나라당 의원은 “우리 사회 정치허무주의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냉전수구세력 해체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고, 여기 모인 의원들이 최소한 절망의 정치에 앞장서지 않기 위해서는 시민단체가 감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대사를 맡은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시민운동과 개혁의원이 연대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으로 같이 고문당하고, 고생했던 동료들인 만큼 시민사회 문제에 대해 서로 얘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개혁세력의 단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부결각오 자유투표냐, 개정위한 세력규합이냐

이날 모임은 3대 개혁입법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의 촉구발언과 이에 대한 의원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국보법 폐지 발언자로 나선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의 홍근수 목사는 “10년 전쯤 없어졌어야 할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이제는 행동으로 철폐시켜야 한다”며 “7조(고무 찬양 등)를 적당히 미장하고 넘어가려는 당이 있나본데, 그건 용납할 수 없고, 우리의 목표는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철폐”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에 대해 서상섭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의 고민은 국보법이 부결되더라도 의원들의 자유투표를 붙일 것인가 아니면 ‘개정’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의원세력을 규합할 것인가”이고, 지금 개혁의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한나라당이 국보법에 대한 당론을 결정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한나라당 당론이 정해지면 국보법 개정에 찬성하는 의원 15명도 모을 수 없지만, 당론이 정해지지 않으면 40명 가량은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당이 사활 걸고 할 일이 아니라면 신념과 철학이 있는 의원들에게 그 공을 넘기라”고 당에 제안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송두환 민변 회장은 “국가인권위원회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활동에 제약을 주려면 차라리 안 만드는 게 낫다”고 말한 뒤 “지난 3년간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을 주장해왔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막바지에 와 있으니 만큼 여야 개혁의원들이 이에 대해 ‘끝장 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최근 여야 의원 95명이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관련 독자안을 공동발의해 놓았는데 만일 공대위안이 관철되기 어렵다면 95인 의원들이 공동입법 발의한 것이라도 조속히 제정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족되면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혹은 불법행위를 조사하게 될텐데, 검찰 등 수사기관에 의해 처벌된 사건을 재론할 수 없다면 이는 ‘반쪽짜리’ 인권위원회가 될 것”이라며 이 의미를 제대로 검토하라고 엄중 경고했다.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은 “애초 마련된 법안에 비해 한나라당이 새로 만든 실무 초안은 상당히 후퇴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인권위가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피의자 소환이나 조사활동, 위증에 대한 처벌권 등 적절한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동조했다. 따라서 이렇게 후퇴한 점을 복원하려면 무엇보다 ‘소신투표’ 할 수 있는 의원들을 시급히 규합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덧붙여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우리가 희망을 가져도 될 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며 “법무부와 민주당이 당정협의를 거쳐 법무부가 인권위법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리적 논쟁은 많지만 12일 법무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당 최고위원회를 열어 이 법안의 통과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을 보인다고 전망했다.

부패방지법 제정 촉구발언에 나선 김태룡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가능한한 부방법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만 세상은 부방법을 요구하고 있다”며 “오죽하면 우리가 부방법까지 만들려하겠느냐?”며 기성정치인을 우회해 비판했다. 그는 “새로 제정될 부방법에는 반드시 공직자윤리규정, 내부고발자 철저보호, 독립적인 부패방지기구, 특검제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부패방지위원회의 독립기구화, 공직자 윤리규정은 유형별로 준거를 만들어 세분화 할 것이고, 국회 법사위 심의가 있을 때 합리적 공통분모를 도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수배자 해제해야

한편 이날 뒤늦게 참석한 이부영 한나라당 의원과 장영달 민주당 의원은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에게 현실 정치인들의 고달픈 삶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부영 의원은 “국보법 고초를 겪은 사람이 왜 더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제도권에서는 국보법의 효율적 폐지를 고민하고 있고, 여러 정치관계 속에서 ‘이 정도라도 개정하라’고 요구하는 게 우리 수준”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2002년 지자제와 대선이 몹시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민족사에서 후퇴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결단해야 하고, 그 시기가 되면 시민단체가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장영달 의원은 “DJ정권 이후 기대만큼 획기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겠지만, 원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개혁파 의원들이 국보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만큼 국보법 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마음을 국보법 개정 쪽으로 돌리는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긴급발언에 나선 권오헌 민가협 공동의장은 “명동성당에는 지난 2년간 수배해제를 요구하는 정치수배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한총련 소속으로 학창시절 총학생회장이나 단과대 회장을 역임했다는 이유로 수배되어 있다. 그들이 어둠 속에서 거리를 헤매지 않도록 김대중 대통령은 양심수 전원석방에 대한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운동 예전보다 위축된 듯

한편 이날 의원들은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문제제기와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은 “시민운동이 예전보다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원내에 국보법이나 언론개혁 등을 치고 나가고 싶어도 시민단체들이 힘을 실어줄까 하는 의문의 여지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고 말한 뒤, “시민단체들이 대중적 조직을 만들어 힘있게 개혁과제를 밀어붙이는 역할이 필요한 시기”라고 당부했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혹여 “시민운동이 명망가 중심으로 침체되고, 뿌리를 잃어가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서상섭 한나라당 의원도 “지역구에 가보면 우리 국민 대다수가 국가보안법이 왜 폐지돼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그 만큼 대국민 홍보가 부족했다”는 말이라고 언급했다.

여야 개혁의원과 시민단체 간 ‘개혁공동경비구역’이 생길 수 있는 걸까.

기자와 만난 김홍신 의원은 “여야 의원들이 당론을 넘어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는 자리인 만큼 이 모임을 계기로 여야간 정쟁을 없애고 개혁을 실천하는 ‘공동경비구역’이라도 만들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실제 이 모임의 간사를 맡았던 이태호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여야 의원들이 보스정치의 한계를 넘어 낡은 정당의 이미지를 씻고 시민단체 의견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산적한 개혁과제를 실천하는 동력으로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마무리했다.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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