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기타(cc) 2002-05-23   755

<한겨레 공동기획①>‘빚 권하는 사회’ 병 깊어간다

신세 망치는 신용카드 사용자들

(편집자주)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과 남용으로 신용불량자가 이미 110만명을 넘어섰다. 경제활동인구의 10% 가량이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고, 관련범죄가 급증하는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스톱 카드'(STOP CARD)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와 한겨레가 함께 신용카드 위기의 원인과 실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지난해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한 민아무개(20·서울 논현동)씨는 1년만에 강남의 한 룸살롱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그의 꿈많은 신입생 시절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은행에서 우연히 만든 신용카드 한 장 때문이었다.

그에게 신용카드는 `요술지팡이’였다.

화사한 캠퍼스, 화려한 거리, 가족과 떨어져 처음 혼자사는 생활 등 모든 게 새로웠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명품 핸드백과 고급 옷을 사들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매월 할부금액만 100만원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하며 갚아나갈 생각이었지만, 1시간에 2000원 남짓하는 일당으로는 턱도 없었다. 결국 부모님께는 고시준비한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를 휴학하고 고급 술집을 찾았지만, 생각만큼 카드빚이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전에 사는 김현국(31·가명)씨는 취업준비를 하던 지난해 1월 길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 3장으로 400만원을 쓴 것이 화근이 돼 신용불량자가 됐다. 취직을 하면 갚을 생각으로 카드빚을 냈는데,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혀 취업 자체가 원천봉쇄됐다.

‘묻지마’현금서비스가 신용불량 주범

`신용카드는 대출카드?’

카드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대거 양산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카드회사들의 과도한 현금서비스가 꼽힌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1분기 신용카드 사용액 156조8389억원 가운데 63.5%인 100조1144억원이 현금대출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74%와 63%가 늘어난 수치다.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한번에 수백만원을 받을 수 있는 신용카드 회사의 `묻지마’ 현금서비스는 `악마의 달콤한 유혹’이나 다름없다.

ㅎ카드는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도 250만원까지 현금서비스를 해주고 카드론은 2000만원까지 대출해 준다. ㅇ카드는 현금서비스 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ㅅ카드 역시 600만원까지 현금서비스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금수수료율은 11.9~28%, 연체 이자율은 22~24.5%이다. 은행의 가계 신용대출금리인 8~12%, 연체이율 14~21%와 비교하면 매우 높은 편이다. 이때문에 카드회사들은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여행상품권과 휴대폰 등 경품을 내걸어 현금서비스 사용을 부추긴다. 사정이 이러니 많은 신용불량자들이 `과소비-부채-범죄와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반면, 카드회사들은 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리며 창사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건범 부연구위원은 “카드사들이 현금대출에 열을 올리는 것은 할부나 일시불 같은 신용판매로는 수익이 적기 때문”이라며 “현금대출 비중을 줄이고 물품구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 idun@hani.co.kr

지난 3월말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 1명당 4.3장꼴로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카드 1억장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적 신용사회’의 뒤편에는 김씨같은 신용불량자가 엄청나게 숨어있다.

지난해 1년동안 2200만명이 신용카드로 480조원을 쓰고, 52조원을 빚지고 있다. 은행연합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 4월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개인은 모두 247만9421명이다. 이중 신용카드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은 67만3869명이며, 매월 4만명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1000만원 이상의 현금서비스를 이용한 `잠재적 신용불량자’ 53만명이 대기중이다.

`신체포기 각서’ 등으로 사회문제화됐던 사채를 이용하는 사람들 4명 중 1명이 카드빚을 갚을 목적으로 사채를 쓰고 있다. 신용카드 빚으로 인한 자살, 강도, 살인 등도 이제는 왠만해선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달 불과 이틀새 여성 5명을 살해해 주검을 차에 싣고 다녔던 엽기적인 강도살인 사건도 신용카드 대금 800만원이 범행동기였다.

경찰청 강력계의 한 형사는 “최근 일어나는 강도사건의 절반 이상이 신용카드 대금을 갚기 위한 것”이라며 “신용카드를 1장만 빼앗아도 수백만원을 뺏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신용카드 자체가 범죄 목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박원석 시민권리국장은 “문제가 잇따라 발생해도 신용카드사나 정부당국의 대책은 미미해 보인다”며 “이미 개인차원을 넘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만큼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신윤동욱 최혜정 기자 / idun@hani.co.kr

목죄는 빚독축..자살.범죄 나락으로

카드 빚에 쪼들리는 심정은 한 번 몰려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카드회사 채권추심팀이나 카드사를 대신해 채권추심을 하는 신용정보업체 직원의 빚독촉은 상상을 초월한다. 채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범죄에 빠지는 것도 `저승사자’ 같은 채권추심에서 탈출하려는 생각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밤낮없이 전화하는 것은 기본이고, 직장으로 직접 찾아가기, 가족들 협박하기 등등.

유아무개(25)씨는 카드회사의 `협박’에 못이겨 최근 세 차례나 이사를 했다. 유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괴롭혔다”며 “집에도 찾아와 동네에 소문이 나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신용정보업체에 근무하면서 본인이 신용불량자가 된 박아무개(38)씨는 “부모님께 유흥업소에서 술먹은 것 등 카드 사용내역까지 죄다 알려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며 “`몇차례로 나눠 조만간 다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장 일시불로 갚으라’고 막말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가족과 친지 등 법률상 채무상환의 책임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부당하게 빚독촉을 하거나 대금을 청구하는 일도 많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남부럽지 않게 살다 선배에게 빌려준 신용카드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최아무개(38)씨는 처가집 세간살이가 가압류되기도 했다. 최씨는 “카드사쪽은 장인과 아내가 갚을 의무가 있다며 열쇠공까지 동원해 잠겨있는 빈집에 들어가 압류 딱지를 붙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신용카드 관련 민원발생건수 2422건 가운데 폭언, 모욕, 협박과 부당 빚독촉 사례 등 사용대금 부당청구가 714건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해결사’ 수준의 빚독촉이 계속되는 한 심리적인 공황상태인 연체자들은 범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의 석승억 사무총장은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노동권을 박탈해 돈벌이를 못하게 해놓고서 무작정 돈을 갚으라고 강요하면 채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한 카드사 관계자는 “채권채무관계가 어떻게 부드러울 수 있느냐”며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으면 제 때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일부 가혹한 채권추심행위만 부각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를 정당화시킬 순 없지만, 채권추심도 법률과 상식의 범위 안에서 정당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채권추심행위의 기준을 보다 엄격히 마련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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