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희망본부 교육 2008-01-29   2539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 2-2] 자녀학비? 中企 · 비정규직엔 ‘딴나라’

# 1대기업=사립대 2학년 아들을 둔 서울 ㄱ은행 모 부장의 연봉은 1억원에 가깝다. 그러나 연봉이 아니라도 등록금 걱정이 없다. 그의 직장은 입학시기의 사원 자녀의 등록금 납부총액을 산정한 뒤 이를 전직원이 분배해서 갹출하고 있다. 지점장급은 월급의 3.8%, 하위직급은 0.5%를 낸다. 그는 월급에서 2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낸다고 했다. 정부가 회사의 직접 지원을 금지하자 나온 방법인데,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 2정부투자기관=대전의 정부투자기관에서 25년째 일하고 있는 양모씨(50)는 올해 큰 아들이 연간 등록금 1000만원인 사립대학에 입학했다. 연봉 6500만원인 양씨는 정부가 공무원에 지원하는 ‘학자금 무이자 대출’을 받아서 해결하기로 했다. 씀씀이를 줄이면 대출까지 받지 않아도 되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의 사교육비를 여유있게 대기 위해서는 대출받는 것이 한결 낫다고 판단했다.

# 3중소기업=포항의 한 건축용 판넬제작업체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2000만~3000만원이다. 경쟁업체 난립으로 회사는 인건비를 맞추기에 급급하다.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학자금 지원은 엄두도 못낸다. 5년 전 대학 입학금을 한 번 지원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회사 대표 안모씨는 “공장이 굴러가는데 필요한 비용을 빼면 학자금 지원은 딴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직원들도 살림이 빠듯하다. 이 회사 직원들의 대학생 자녀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정부 보증 학자금을 대출받고 있다.

# 4비정규직=20년째 ㅋ통신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한 안모씨(47)의 연봉은 2000만원이 채 안된다. 올해 대학에 진학하는 큰 딸은 사립대에 갈 성적은 되지만 집안 형편을 감안해 전문대로 진로를 바꿨다. 등록금이 학기당 300만원쯤 된다. 이씨는 “6개월마다 300만원씩 마련해야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며 “정규직은 우리보다 서너배 많은 임금에 각종 사원복지혜택도 있는데, 비정규직은 완전히 사회에서 소외돼버린 느낌”이라며 양극화를 호소했다.






▲ 서울지역 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 소속 학생이 22일 등록금 부담을 상징하는 상자를 지게에 짊어지고 교육부에 민원을 접수하기 위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경향신문
▲ 서울지역 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 소속 학생이 22일 등록금 부담을 상징하는 상자를 지게에 짊어지고 교육부에 민원을 접수하기 위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경향신문

‘신이 내린 직장’은 직원 자녀들의 등록금도 내주지만 ‘신도 외면한 직장’은 얇은 월급봉투로 무거운 등록금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대기업·공기업과 중소기업·비정규직간의 사내 학자금 지원이 또다른 소득격차 요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등록금 마련으로 가처분소득 규모가 줄어들수록 대학생 자녀들은 학비를 버느라 취업준비가 어렵다. 나아가 부모들의 노후생활의 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세대의 등록금 문제가 또다른 ‘부익부 빈익빈’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정부와 산하기관들의 직원자녀 등록금 지원방식은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직접에서 간접지원 방식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우리은행의 경우 자녀수와 상관없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다만 예전에 은행이 직접 지급하던 방식에서 은행이 출연한 복지기금에서 지출될 뿐이다.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은 무이자 융자로 등록금을 전액 지원한다. 졸업후 2년거치 3년으로 분할상환하는 방식이다. 자녀들도 등록금 부담을 무겁게 느끼지 않고 진로를 모색한다. 아버지가 시중은행에 다니는 박모군(22)은 “취업이 어려운 때라 어학연수를 가거나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 ©경향신문

비정규직에게는 먼 얘기다.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인 500만명이 넘지만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소득 ‘대물림’이 더 걱정이다. 통신업체 직원 안씨는 “딸애를 대학에 안 보낼 수도 없지만, 전문대 나와봐야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게 뻔하다”고 말했다.

저소득 노동자에게 가파른 등록금 인상률은 가계에 치명타다. 자동차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강모씨(53)는 올해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보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지난해 입학할 때만해도 290만원쯤 한 것 같은데 올해에는 내야 할 돈이 370만원”이라며 “내 벌이는 잔업과 특근까지 해도 세금을 떼면 150만원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학자금대출을 받으려니 이율이 7.5%나 돼서 적금 붓는 통장을 담보로 잡고 연이율 5.7%로 대출을 받은 상태”라며 “3~4개월 일해봤자 돈 100만원 모으기도 힘든데 또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만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탄식했다.

소득양극화와 중산층 붕괴는 이미 통계자료에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외환위기 전인 1996년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중간층(그해 평균소득의 70~150%)은 전체 가구의 55.5%였지만 감소세를 계속해 지난해에는 43.7%로 줄었다. 해마다 늘어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지난해에 24만명(4.6%) 이상 증가해 지난해 8월 현재 570만명을 돌파한 반면, 정규직 근로자는 2.9% 늘어나는 데 그쳐 1018만명이었다.

노동계는 구조적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견해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산별노조가 아니라 개별 기업별로 단체협약을 하다보니 어려운 노동자일수록 학자금 지원을 못받는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한다”며 “노동자 복지를 기업과 노동자에게만 전가할 것이 아니라 교육세를 거두는 정부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자녀 둘 장학금 지급 ‘울산 공화국’ 정규직

울산의 11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7만여명은 대학생 자녀의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는다. 단체협약에 따라 졸업때까지 등록금 전액을 회사가 대준다. 유학 때도 등록금 일부가 지원된다. 현대중공업은 3년 이상 근무한 정규직 근로자의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면 16학기 한도 내에서 등록금 전액을 지급한다. 자녀가 유학을 갈 경우에도 국내 동일계열의 사립대 수준으로 유학 장학금을 지급한다.

현대자동차는 둘째 자녀까지는 전액을, 셋째 자녀에게는 반액을 제공한다. 8~12학기 내내 등록금이 지급된다. 이들 두 회사의 정규직 평균연봉은 4000만~5000만원이다.

중견 중소기업들도 액수는 적지만 등록금을 지원한다. 자동차 부품 업체인 울산 북구 덕양산업은 자녀 2명까지 지원한다.

입학 때는 입학금과 등록금 100%를 지원하지만 2학기부터는 50%다. 2006년 울산지역 고교졸업생 1만2611명 가운데 89.9%가 대학에 진학했다. 전국 평균 진학률 82.1%보다 웃돈다. 장학금 혜택을 받는 근로자가 많아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다보니 사교육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2001년부터 5년간 울산의 입시·보습학원은 293곳에서 883곳으로 302% 늘었다. 전국 평균 211%보다 절반 가까이 높다.

참여연대-경향신문 공동기획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